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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좀 어려운 주제(인종차별, 집값)를 연이어 다뤘다. 이번에는 그래서 날로 먹... 아니, 생활밀착형 주제를 가지고 얘기해 보려고 한다. 바로 ‘미국에서 애 키우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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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Sioux City journal>

 

애를 키운다는 건 어디서든 힘들다. 내 자신조차 감당이 안 되는데, 나보다 훨씬 어린 생명을 책임지고 기른다는 게 보통 일인가. 근데 미국은 특히 더 '애 키우기' 힘든 부분이 있다. 바로 ‘보육’ 문제다. 

 

 

미국에서 애 키우기 힘든 이유

 

미국에는 공적인 차원에서 이뤄지는 보육이라는 개념이 없다. 무슨 얘기냐, 애가 태어나서 유치원에 들어가기까지 5-6년간 정부에서 해주는 게 거의 없다는 것이다. 세금 보고할 때 자녀당 연간 2천 달러(약 260만 원) 정도 세금 공제를 해주긴 하는데, 후술할 비용들을 생각해 보면 이는 턱없이 적은 금액이다. 아이 보육의 책임은 온전히 부모에게 부여된다.

 

요즘 세상에서 부모가 애를 보육하는 게 특히나 더 빡센 이유 중 하나가 대부분 부모가 맞벌이(65%)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은 한국 달리, 조부모들이 적극적으로 보육을 도와주는 분위기가 아니다(땅덩이가 원체 넓다 보니, 가족들이 멀리 흩어져 사는 경우가 허다하다). 보육의 대부분을 부모들이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산후조리의 개념도 없다. 출산 후 얼마 되지 않아 퇴원하게 되는데,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나에겐 갓 태어난 아이를 안고 병원을 나설 때에 막막했던 심정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이대로 퇴원하는 게 맞나... 내가 정말 애를 키울수있는가... 하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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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출산한 경험을 이야기하는 배우 서민정 씨

 

이 외에도 건강보험, 다른 보육 프로그램 등 정말로 해주는 게 없다. 미국에서 나고 자란 미국인들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지만, 정상적인 복지가 있는 국가에서 이민 온 외국인들에게는 충격인 부분이다. 실제로 미국에서 어린 자녀를 기르는 게 너무 힘들어서, 아시아 혹은 유럽으로 다시 역이민 가는 케이스도 많이 봤다.

 

미국인들이 이 문제를 딱히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건, 공적인 시스템의 부재를 민간과 개인들이 메우고 있기 때문이다. 건강보험과 마찬가지로, 보육 프로그램에 있어서도 사설 보육 시스템이 거대한 산업을 이루고 있다. 

 

동네마다 사립 어린이집, 사립학교가 존재한다. 보통 만 1세 미만을 신생아반(Infant), 35개월 미만을 영아반(Toddler), 5세 미만을 유아반(Preschool), 그리고 7세 미만을 유치원으로 나눠 분류한다. 이렇게 프로그램을 나누는 이유는, 아이 나이가 어릴수록 선생 한 명이 커버하는 아이 숫자가 적기 때문이다. 어릴수록 보육 시 신경 써야 할 게 많으니까. 연방 정부에서 권장하는 선생님 한 명당 아이들 수는 영유아의 경우 최대 2명, 유아반의 경우 최대 7-8명, 유치원의 경우 최대 10명이다. 그래서 아이가 어릴수록, 부모가 지불해야 할 비용도 올라간다.

 

그런데 이 비용이 정말 천차만별이다. 모든 것이 민간에 맡겨져 있다 보니, 기준점이랄 게 없는 느낌이다. 한국처럼 크게 몇 단계로 나뉘어 있다기보다는, 정말로 다양한 층위의 보육 프로그램들이 존재한다. 또한 한국은 아무리 저렴한 유치원이라도 최소 어느 정도 선까지는 교육의 퀄리티가 유지되는데, 미국은 그게 없다. 참고로, 명문 유치원의 경우는 연간 학비로만 4-5만 달러가 든다. 여유가 더 되는 사람들은 여기에 가정교사, 보모 등을 더 붙이기도 한다. 이 정도까지 되는 사람들은 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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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한 명 보육하는 데 드는 1년 평균 비용

출처-<미국 노동청> 링크

 

미국 노동청 자료에 따르면, 신생아 한 명을 민간 시설에서 보육하는데 드는 연간비용은 8천 달러에서 1만 7천 달러 사이라고 한다. 이처럼 범위가 넓게 잡혀있는 이유는, 거주 지역에 따라 보육 비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대도시(인구수 100만)에는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일자리가 많다. 보육 비용도 이에 비례해서 가장 높다(1만 7천 달러). 반면, 인구수가 적은 동네에는 양질의 일자리가 적다. 대신, 보육 비용도 저렴하다. 보육이 완전히 민간에 맡겨져 있다 보니, 지역 소비자의 구매 능력(소득)에 따라 가격이 매겨지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이처럼 소득비례형 과금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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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별 어린이집 비용

색이 진할수록 비싸다.

출처-<미국 노동청> 링크

 

높은 연봉을 지급하는 일자리는 대부분 대도시에 집중되어 있다. 대신, 대도시에 살면 나도 남들에게 비싼 서비스 요금을 낼 것을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높은 집값을 치러야 한다. 그래서 사실 미국에서는 연봉 이야기를 하는 게 큰 의미가 없다. 아무리 잘 벌어도, 지역에 따라 그만큼 많이 쓰면 남는 게 없다. 

 

보육 비용이 천만 원이든 이천만 원이든, 미국인들에게 졸라 큰돈이라는 건 같다. 미국 가구 소득이 연간 7만 달러 정도 되니까, 미국인들은 세후 소득의 최대 3분의 1가량을 보육 비용으로 내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이건 아이 한 명을 키우는 데 드는 비용이다. 만약 미취학 아동이 둘이라면, 비용은 두 배가 된다. 

 

실제 사례를 보자. 

 

내가 거주하는 지역의 어린이집은, 아이 한 명당 한 달에 평균 2천 달러 - 2천 5백 달러 정도가 든다. 애가 둘이라면 매달 5-700백만 원이 보육비로 깨지는 것이다. 여기에 모기지, 학자금대출, 카드값까지 차례로 빠져나가면, 통장은 말 그대로 텅장이 된다. 그래서 내 지역 사람들은 자녀들이 어릴 때 거의 저축을 하지 못한다. 미국 직장인들의 연봉은 빚 좋은 개살구 같은 것이다. 

 

비싼 보육 비용을 지불할 수 없는 경우라면 어떨까? 집에서 직접 키우면 된다. 다자녀 가정의 경우, 아이들을 보육시설에 보내는 비용이나 부모가 버는 소득이나 큰 차이가 없다. 그래서 자녀가 어릴 때는 부모 중 한 명이 일을 쉬거나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경우가 꽤 많다. 

 

그 외로도 보육 비용을 줄이는 여러 가지 방법이 존재한다.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보육 시설의 경우, 민간 시설 절반 가격에 아이들을 키워준다. 여름에는 양질의 자원봉사자들로 구성된 서머캠프를 운영하기도 한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없던 신앙심이 생겨나기도 한다. 그리고 동네마다 일반 가정집에서 아이를 돌봐주는 곳들이 있다. 규모가 영세한 대신, 비용이 저렴하고 부모들의 필요를 잘 맞춰준다는 장점이 있다. 

 

 

애 키우기 좋은 점도 있다

 

어쨌든 간에 미국에서 어린 자녀들을 키운다는 건 상당히 힘들고, 많은 돈이 드는 일이다. 그런데도 미국의 출산율은 1.64로 한국의 두 배에 달한다. 과거에 비해 미국도 출산율이 내려가는 추세지만, 다른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괜찮은 수준이다. 옆나라이자 선진국인 캐나다만 봐도 1.4명으로 미국보다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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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머니투데이>

 

원인으로는, 저소득가정과 히스패닉 이민자 가정에서 많은 자녀를 출산한다는 것이 거론된다. 나는 여기에 미국경제가 계속해서 성장해 왔다는 점을 추가하고 싶다. 2010년, 5만 달러를 밑돌던 미국의 1인당 GDP는 2020년대 7만 달러대로 올라섰다. 세계 최대의 경제 대국인 주제에, 소득이 계속 성장한 것이다. 한때 미국을 위협하던 다른 선진국(일본, 독일 등)을 제치고, 미국의 소득은 독보적인 수준까지 올라갔다. 이렇게 소득이 꾸준히 증가했기 때문에, 미국 사람들은 계속해서 애를 가질 생각을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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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순서대로) 미국, 독일, 일본, 중국의

1인당 GDP PPP(실질 구매력) 변화 그래프

출처-<World Bank>

 

미국에서 애 키우기 좋은 점도 있다. 가장 큰 장점은, 미국은 땅덩이가 넓고 자연환경이 잘 보존되어 있다는 것. 애들을 마음껏 풀어놓고 놀게 할 공원과 잔디밭이 지천에 널려 있다. 그리고 동네마다 아이들을 위한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내가 사는 지역에는 박물관(스미스소니언)과 공원이 잘 확보된 편이다. 도시가 하나의 거대한 공원 같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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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공원들

 

집주변에 아이들의 HP를 깎을만한 필드가 많다는 것은, 주말마다 육아 레이드를 뛰어야 하는 부모들에게는 엄청난 장점이다. 최근 한국에서는 개념 없는 부모들을 비난하는 영상이나 글이 많이 보인다. 이런 갈등이 생겨나는 근본적인 원인은, 방해받지 않고 쉬길 원하는 어른들과 언제나 날뛰고자 하는 아이들의 생활반경이 겹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이런 문제가 생길 일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 같다. 

 

우선 단독주택/타운하우스가 많이 보급되어 있다 보니, 층간 소음 문제로부터 자유롭다. 외출을 하더라도 아이들을 데리고 갈 만한 장소가 많다 보니, 굳이 카페 같은 곳에 가지 않게 된다(한국에서 카페가 인기인 건, 그만큼 사람들이 모일 공간이 부족하기 때문 아니겠냔 생각도 든다). 반대로 아이들이 많은 공원이나 수영장을 방문하는 어른들은, 아이들이 많을 것을 어느 정도 예상하다 보니 상당히 너그러운 태도를 취해 준다. 

 

앞서 언급한 보육 비용 문제도, 아이가 공립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면 상당 부분 해소가 된다. 공립학교는 미국에서도 무료이기 때문에, 매달 어린이집에 내는 돈이 세이브 된다(대신 교육 퀄리티가 좋진 않다). 문제는 이후 발생하는 사교육 비용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미국에서는 모든 문제에 돈을 쓰고자 하면 얼마든지 많은 돈을 쓸 수 있다. 아이를 아이비리그에 진학시키기 위해 사립학교에 입학시키거나, 비싼 과외활동(운동이나 연주 등)을 시키다 보면, 정말 많은 돈이 깨진다. 

 

그러나 이는 선택사항이다. 모두가 본격적인 입시 경쟁에 참가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학진학률은 한국보다 훨씬 낮다. 그리고 대부분 학생들은, 각자 살고 있는 지역에 위치한 주립대로 진학하길 지망한다. 현실적으로, 주립대가 가장 많은 학생을 뽑고 학비도 저렴하기 때문이다. 명문 사립대를 목표로 전국 단위의 입시 경쟁을 하는 학생의 비율은 현저히 낮다. 그래서 자녀를 반드시 명문 대학에 진학시켜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은 미국이 덜한 것 같다. 물론, 아이들이 아직 어리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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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한 가지 확실한 건 굳이 좋은 대학을 나오지 않더라도, 미국에서 먹고 사는 데에는 다양한 방법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미국 학생들도 공부 외에 다른 테크트리가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내가 겪어본 미국 학생들은, 자신들이 공부를 못 한다고 해서 움츠러들거나 스스로를 패배자라고 여기지 않는다. 미국 학생들이 얼마나 상식이 없는지를 다룬 동영상이 유튜브에 곧잘 돌아다니는데, 나는 오히려 답을 몰라도 당당한 그 태도가 부럽다. 왜냐하면, 상식이 좀 없거나 공부를 잘 못하더라도, 인생 사는 데는 별 지장이 없다는 걸 아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비용적인 부분을 떠나서, 진로가 획일화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은 확실히 긍정적인 것 같다. 

 

 

미국 직장은 애 키우기에 어떨까

 

직장에 대한 이야기도 해보자. 요즘 한국에서는, 육아휴직제도가 잘 정착되어 예전보다 아이 키우기 좋아졌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미국에서는 공적인 차원에서 육아휴직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다. 여성이 출산하는 동안 무급으로 휴가를 갈 수 있도록 (무급 휴가 기간 동안 해고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적 조항이 있을 뿐이다. 

 

앞서 공적인 시스템이 부재하면, 그 틈을 민간이 메꾼다고 했다. 이는 육아휴직에도 적용된다. 법적 의무는 없지만, 많은 기업들이 육아휴직을 베네핏으로 제공한다. 기업이 좋은 베네핏을 제공하는 것은 그만큼 좋은 인재를 유치하는 데도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기업의 좋은 이미지를 대외적으로 홍보하는 데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업들은 Great Place to Work(포츈 파트너사로 자주 인용된다), Best Place For Parents 등에서 매겨지는 순위를 적극적인 마케팅 포인트로 활용하고, 순위를 올리기 위한 별도의 인사 태스크 포스를 운영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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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포츈(Fortune)에서 발표한

‘미국 내 일하기 좋은 기업 순위’ 중 일부

Great Place to Work에서 조사했다.

 

현재 내가 일하는 직장에서는, 여성의 경우 18주, 남성의 경우 8주 육아휴직을 제공한다. 이렇게 한번 정해놓은 조항은, 대부분의 하부 조직에서 잘 준수된다. 상사나 동료 눈치 볼 필요 없이 정해진 육아휴직은 잘 챙겨 먹을 수 있다. 그 외로도, 일부 기업에서는 긴급 돌보미 서비스를 복지로 제공한다. 내가 다녔던 회사에서는, 대형 어린이집과 연계하여 연간 15일가량을 무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복지가 존재했다. 여름 방학이나 개교기념일 등 아이를 맡길 곳이 없을 때 요긴하게 써먹었다. 요약하자면, 법적으로 정해진 제도는 거의 없지만, 기업 차원에서 애 키우는 데 필요한 것들을 복지로 제공하는 것이다.

 

기업 조직문화에도 상당한 차이가 있다. 미국 기업들은 회식이나 불필요한 야근이 없다. 코로나 이전부터 재택근무가 일반화되어 애 키우기 좋다. 모든 미국 회사가 이렇다고 할 순 없지만, 꽤나 흔히 볼 수 있는 특징이다. 미국에서는 사회적으로 어린아이를 키우는 건 힘든 일이라는 인식이 깔려있기 때문에 아이가 있는 직원들은 직장 생활에서 어느 정도 배려를 받는다. 갑자기 아이가 아프거나, 애를 돌봐줄 사람이 없을 때 재택근무를 신청하는 게 꽤 자연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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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게티 이미지>

 

하지만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하기 마련이다. 미국 직장에서도 당연히 한국처럼 일 열심히 하고, 출장/회식도 자주 참석해서 인맥 쌓는 게 직장 생활에 더 도움 된다. 오히려 초과근무 수당이나 최대근무 시간 같은 게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미국 워커홀릭들은 한국보다 훨씬 더 빡세게 일한다. 

 

그래서 모든 미국 기업이 애 키우기에 적합한 환경을 제공한다고 무조건 단정적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애 키우기 좋은 직군이 있고, 그렇지 않은 직군이 나뉘어져 있다고 보는 게 정확할 것 같다. 

 

본인이 커리어를 더 우선시할지, 아니면 가정을 우선시할지를 선택할 수 있다. 후자를 선택할 경우, (직군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매일 칼퇴하면서 워라벨 좋은 직장 생활을 할 수 있다. 그리고 회사도 개인의 선택을 존중해 준다. 자기 페이스대로 일하고자 하는 직원을 굳이 빡센 팀에 집어넣어, 일 열심히 하는 싱글들과 경쟁시키지 않는다. 실제로 프론트 오피스(최전선에서 업무하는 부서)에 있다가 가정을 꾸리고 나서는 백 오피스(백업하는 부서)로 옮기는 사례를 많이 봤다. 보통 널널한 직장/팀에 가면, 육아하면서 업무를 병행하는 직원들이 많다. 상사나 동료들도 대부분 애를 키우고 있는 입장이기 때문에, 자신의 업무를 과도하게 다른 사람에게 떠미는 게 아닌 이상 웬만한 일은 너그럽게 넘어가 준다. 

 

반면, 본인이 빡센 직군에 남는 걸 선택한 직원들은, 출산 전과 다름없이 열심히 일한다. 부인의 출산 사실을 회사에 알리지도 않고, 일상적으로 야근하는 남자 직원도 봤다. 이처럼 조직문화는 극과 극이다. 미국 직장 생활에서 제일 강점은, 이렇게 자신의 커리어/업무 페이스를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에서 애 키울 때 중요한 것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내가 미국에 정착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결정적인 계기는, 중학교 때 1년 정도 미국에서 살았던 경험 때문이었다. 그때 봤던 미국이 엄청 좋았냐? 아니다. 내가 살았던 곳은 노스캐롤라이나 시골이라서, 당시 한국과 비교해 봐도 나을 게 없었다. 한두 번 놀러 가 본 뉴욕은 내 생각보다 훨씬 더러웠다(그래서 나중에 뉴욕이 아니라 워싱턴에 정착했다). 

 

그럼에도 미국에 대한 좋은 인상이 남았던 것은, 아버지와 보낸 시간 때문이었다. 재경부에서 일하시던 아버지는 평생을 밤/주말 구분 없이 일하셨는데, 미국에서 같이 산 1년 동안은 맨날 집에만 붙어 계셨다. 워낙 시골이라, 오후 5시만 지나도 갈 곳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냥 매일 좁은 아파트에 붙어서 같이 밥 먹고, 산책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했던 시간이 내게는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미국에서 살면, 다들 이렇게 여유롭게 사는 건 줄 알았다.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와 외고로 진학하고 매운맛 입시를 치르다 보니 다시 미국으로 가고 싶더라. 그래서 이민을 왔고, 지금은 애 둘을 키우는 아빠가 됐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아버지로부터 일하는 걸 좋아하는 유전자를 물려받아 미국서 워커홀릭으로 열심히 사는 중이다. 아버지가 살던 미국과 내가 사는 미국은 같지만, 나는 당시의 아버지와 다른 삶을 살며 애를 키우고 있다.  

 

이런 나의 개인적 경험과 미국에 살면서 내가 보고 들은 것들을 종합해 보면, 미국에서 애를 키울 때는 현재 내 상황이 어떠냐는 것보다, 내가 어디에 초점을 맞춰서 아이를 키우느냐에 따라, 즉 내가 어떻게 행동하냐에 따라 아이 키우기에 더 괜찮은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

 

 

잠시, 책광고 들어갑니다

 

딴지스 여러분 덕분에, 『재무제표가 만만해지는 회계책』이 출간되었습니다. 이전에 쓴 딴지 연재물을 확장하여, 이때다 싶어 열쒸미 공부, 정리하여 낸 책입니다. 아마, 현직 회계사 중, 저만큼 회계공부를 싫어했던 회계사는 거의 없지 않을까 추측해봅니다(저만큼도 공부를 안 했다면 못 붙으셨을 테니까요). 회계 공부를 싫어했던 사람이 저와 비슷한 독자분들을 위해서 쓴 책이다 보니 재밌습니다(아마도...). 그동안 회계 공부가 하기 싫었다거나, 회계에 관심이 없었던 독자분들(사실상 전원)에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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