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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레 미제라블'에 금식기가 아니라 은식기가 나오는 이유

 

Born with a silver spoon in one’s mouth: 은수저를 물고 태어났다



‘수저 계급론’의 효시는 유복한 환경에서 태어났다는 의미의 영미권 관용구이다. 이를 보면 알 수 있듯, 과거 은식기(銀食器, silverware)는 부자의 상징이었다. 빅토르 위고가 1862년 발표한 소설 <레 미제라블>에도 장 발장이 도움을 주던 주교에게서 은식기를 훔치는 장면이 나오며, 유럽의 궁전 관광지에서는 왕족들의 ‘은식기 컬렉션’을 종종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과거 일본으로부터 은이 많이 유입되면서 조선시대 양반과 왕족은 은으로 된 수저를 사용했다고 한다. 산업혁명 이후에는 중산층 가정에서도 대대로 물려받은 은식기를 한 세트 정도 가지고 있을 수 있지만 그런 은식기는 곱게 보관했다가 정말 특별한 손님을 대접할 때만 사용했다. 따라서 은식기를 일상적으로 식사 때 사용하는 집안은 형편이 넉넉한 상류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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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영화 '레 미제라블'>

 

그런데 이런 궁금증을 가져본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왜 하필 은일까?

 

금도 있고, 다이아몬드도 있는데 과거 지배층들은 왜 은만을 식기에 사용했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아이러니하게도 은이 부자들의 식기가 된 이유는 ‘은을 금보다 값싼 소재로 취급받게 만든 특유의 연약함’ 때문이다. 은은 변색이 잘 되다 보니 비소와 같은 중금속 독이 닿아도 변색하는 성질이 있었기 때문이다. 금이나 다이아몬드는 더 반짝일지는 몰라도 독살로부터 지배층을 지켜주지는 못했다. 즉 은식기는 상류층의 부유함만큼이나, 상류층이 그들의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감내해야 했던 위험을 뜻했다. 은이 지닌 특유의 연약함은 또 다른 의미에서 상류층의 특권을 의미하기도 했다. 은 액세서리를 가져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은으로 된 액세서리가 때가 타서 치약으로 닦아본 경험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은은 처음의 환한 반짝임을 유지케 하려면 부지런히 관리해 줘야 하는 소재이기도 하다. 



일본계 영국인이자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남아있는 나날>을 보면 은식기의 이런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남아있는 나날>의 주인공 스티븐스는 유서 깊은 귀족 저택에서 대를 이어 일하는 집사이다. 세계대전을 거치며 저택의 주인은 바뀌었지만 새로운 주인은 스티븐스를 계속 고용하기로 한다. 스티븐스는 저택을 우아하고 질서정연하게 관리하는 데 평생을 바친 훌륭한 집사이기 때문이다. 이런 스티븐스가 특히 자부심을 가지는 그의 특기는 ‘은식기를 양초로 반짝반짝하게 닦고 관리하는 것’이다. 이 소설의 설정을 보면 알 수 있듯 은식기를 일상적으로 사용한다는 것은 그 은식기를 광이 나게 유지해 줄 사람을 고용하고 먹여 살릴 능력이 된다는 의미기도 했다. 더불어 관리하기 어려운 은식기를 항상 청결하고 반짝이게 관리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는 만큼, 일상생활을 아름답고 우아하게 유지하고자 애썼다는 뜻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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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남아있는 나날'에서

주연 스티븐스 역을 맡은 앤서니 홉킨스

출처-<영화 'remains of the day'> 

 

2. 섬세한 의미가 사라진 현 수저계급론

 

'금수저'와 '흙수저'가 대표하는 현대의 수저 계급론에서는 단순히 더 비싸다는 이유로 은수저 위 등급의 계급들이 생기면서 은식기가 상류층을 상징할 때 지녔던 본래 지닌 의미가 퇴색하였다. 특권을 지키기 위해 위험을 감내하거나, 고용인들의 생계를 책임진다는 섬세한 의미가 사라졌다. ‘돈이 많다’는 단순한 의미만이 남았다. 그렇다 보니 그저 물질적인 기준으로만 내가 '흙수저'다, '금수저'다라고 하며 나와 내 가족의 위치를 판단하는 사람이 많다. 물질은 물론 중요하다. 생활을 윤택하게 해주고 많은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짜 수저 등급은 그 사람이 현재 ‘얼마나 부자로 보이는지’, ‘집안이 어떻고 학벌이 어떤지’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누군가에게 사기를 치고자 작정하고 속이면 얼마든지 위장할 수 있다. 오히려 이렇게 단순한 물질적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면 손해 보는 일이 더 많아진다. 사기치는 사람들은 역할 대행인을 고용해 가족이나 지인 역할을 시키기도 한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조건만 보면 누구든 속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진짜 수저는 자산이나 통장 잔고가 아니라, 세상과 삶을 바라보는 당신의 관점과 태도, 그리고 배움에 대한 당신의 가치관에서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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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링크>

 

로또에 당첨되어도 ‘내적으로 흙수저’인 사람은 돈을 다룰 줄 모르고 파산하는 경우를 본다. 반면 ‘내적으로 금수저’인 사람은 갑자기 망해 길바닥에 나앉기 직전이 돼도 다시 열심히 배우고 새로운 일에 도전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당장 빈털터리라고 그 사람의 가능성을 몰라보고 연을 맺을 기회를 져버려서는 안 된다. 또한 지금 당장 외제 차를 끌고 좋은 곳에 산다고 내면까지 금수저라고 생각해 같이 사업을 하거나 결혼을 약속하는 등 중요한 일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

 

3. 조심해야 할 사람 유형 4가지

 

요즘은 무엇이든 렌털 시스템이 잘돼있어 명품이든 비싼 차든 집이든, 대출받은 돈으로 빌릴 수 있다. 따라서 누군가를 등쳐먹고자 작정한 사람이라면 실제 부자가 아니어도 얼마든지 부자인 것처럼 위장할 수 있다. 또 그렇게 누군가에게 돈을 뜯어내는 데 성공하면 그 돈으로 자기 위장을 더욱 강화해 다른 피해자를 만들어 내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마음속에 욕심이 있으니까 당한다’, ‘나보다 훨씬 좋은 조건의 사람이 접근하면 의심부터 해라.’ 이런 말들이 있지만 욕심이 없는 사람은 없고, 자기 객관화가 잘 돼 있는 사람도 별로 없다. 나보다 많이 가진 사람이 접근해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눠줄 것처럼 굴면 처음에는 의심하다가도 ‘너라는 사람 자체를 좋아한다, 너의 내면의 선한 마음이 좋다’라는 식으로 감언이설을 하면 경계를 푸는 사람이 많다. 따라서 이런 일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 사람이 '금수저'인지 '흙수저'인지 판단할 때는 외면이 아닌 내면을 봐야 한다.

 

아래 몇 가지, 진짜로 주의해야 하는 ‘내적으로 흙수저’인 사람의 특징들이 있다. ‘내적으로 흙수저’인 사람을 구분할 줄 알면 당장 그 사람이 가진 것만 보고 중대사를 판단하는 일을 막을 수 있다. 유형에 많이 해당하는 사람일수록 조심해야 한다.

 

① 언어적 흙수저

: 어휘력이 부족하며 나이 불문 욕설을 섞지 않으면 한마디도 할 수가 없다.



특히 술에 취했을 때 바로 드러나는 특징이다. 싸구려 술집이든 고급 와인바이든 상관없이 언어적 '금수저'와 '흙수저'는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대화의 퀄리티로 갈린다. 큰 소리로 떠들며 매일 술을 마시는 것이 인생의 낙인 '내적인 흙수저'는 어휘 사용부터 다르다. "저 XX 새끼 보게, 저 미친놈은 허구한 날 XXXX…!" 친한 사람에게도 비난조로 욕을 하면서 친근함을 표시하고,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비난조로 욕을 한다. 누군가를 칭찬할 때도 여러 가지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서열 낮은 짐승이 우두머리를 따르듯 무작정 숭배하며, ‘그 형님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야.’ 내지는 ‘돈이 많아.’라는 말만 한다.

 

이는 성(gender)을 떠나 모두에게 적용된다. 모든 말에 욕설을 섞으며 대화의 주제가 연애와 남의 욕밖에 없다면 '흙수저'의 언어습관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싸구려 술집에서도 자신의 비전에 관해 이야기한다던가, 뭔가 생산적인 이야기를 한다면 '흙수저'라고 말할 순 없지만, 제아무리 고급 술집에서 비싼 술을 먹어도 위와 같은 언어습관이 있다면 '흙수저'다. 참고로 여기서 욕설을 한다는 것은 감정이 격해졌을 때 가끔 하는 게 아니라, 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든 일단 아무 생각 없이 욕을 섞는 것을 말한다. 예로부터 중요한 계약을 맺거나 새 가족을 맞아들일 때 술부터 먹여보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② 감정적 흙수저

: 감정 패턴이 매우 단순하다.



감정적인 흙수저가 느끼는 감정은 대체로 4가지다. 그들의 감정은 항상 네 가지 중 한 개에 속해 있거나 네 개가 뒤섞인 상태에 있다.

 

분노: 누군가 자신에게 해를 끼치거나 무시하는 것에 대해 욱하는 분노하는 감정

무시: 자신보다 못해 보이는 타인을 무시하는 것

우월감: 자신보다 못해 보이는 타인 앞에서 우월감을 느끼는 것

결핍: 자신이 갖지 못한 무언가에 대해 탐을 내며 피해의식을 갖는 것

 

항상 무언가에 분노해 남의 욕을 하거나, 다른 사람과 자신의 상황을 비교하며 타인을 깎아내리는데 열심인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①번의 '언어적 흙수저' 기질까지 있으면 무슨 이야기를 할 때 문장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어 하나에 꽂혀 분노한다. 또는 자신이 겪어봤거나 연관된 주제 하나를 물고 내내 자기 자랑만 늘어놓는다. 굳이 자기 얘기가 아니라도 지인이나 연관된 사람 얘기를 하며 그 사람의 우월한 점을 늘어놓는 경우도 있다. 이렇듯 평소에 그 사람과 하는 대화 주제나 감정 상태를 잘 살피면 그가 감정적 '흙수저'인지 아닌지를 쉽게 구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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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힘쎈여자 도봉순' 

'품위있는 그녀' '마인' 작가 백미경 

출처-<tvN '유퀴즈 온 더 블럭'>



③ 관점의 흙수저

: 무언가를 판단하는 잣대가 매우 단순하며, 약육강식의 논리로 세상을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다양한 관점에서 살펴볼 줄 모르는 사람은 타인을 판단하며 단순하고 폭력적인 틀에 가둬버릴 때가 많다. 뚱뚱하다 날씬하다, 돈이 많다 적다, 학벌이 어떻다 등.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태도로 살아가는지에 주목하는 게 아니라, 그를 둘러싼 외적인 조건만을 본다. 어쩌면 물질적인 기준으로만 등급을 매긴 수저 계급론에 너무 진지하게 임하며 집착하는 사람도 여기에 해당한다. 이렇게 관점이 가난한 사람은 또한 세상을 ‘눈 뜬 채로 코 베이는’ 곳으로 인식한다. 세상은 기회가 아닌 위험으로 가득 차 있으며, 내가 먼저 빼앗지 않으면 빼앗기게 된다고 여길 때가 많다. 이렇게 좁은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은 새롭게 다양한 것들을 창조해 모두를 이롭게 하는 데에는 관심 없고 어떻게든 남의 것을 빼앗아 자신의 배를 불릴 생각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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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공감의 흙수저

: 오로지 나를 중심으로만 생각하고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한다.



공감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과 이해관계가 부딪칠 때는 저 사람이 어떤 기분일지 생각하기에 앞서 ‘내 마음에 들고 안 들고’를 앞세워 이기적이고 감정적인 대처를 한다. 이들이 공감 능력을 발휘할 때는 오로지 ‘자신이 온전히 겪어본 일’ 앞에서만이다. 자신이 뼈아프게 겪어본 일이 아닌 이상 절대로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게 특징이다. 공감 능력이란 이해력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기본적으로 타인, 다른 생명체에 대한 공감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전반적인 현상에 대한 이해력이 부족하다.

 

즉 타인의 감정을 헤아리지 못하는 사람은 높은 확률로 타인의 말도 잘 알아듣지 못하고, 상황을 판단하는 능력도 부족하다. 그래서 이런 사람은 언쟁이라도 하게 되면 어떤 논리도 통하지 않는다. 큰 소리로 협박하는 것을 무기로 안다. 언쟁 중 중간에 포기하고 상대가 나가떨어지면 이들은 자신이 ‘이겼다’라고 생각하고, 공감 능력과 이해력 부족이라는 '흙수저'의 특징을 더욱더 강화한다.

 

4. 자존감도 우린 물려받는다. 그러나 바꿀 수 있다

 

'흙수저' 위의 등급에 속하는 사람은 '흙수저'보다 언어·감정·관점·공감 역량이 더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흙수저'와 반대되는 '금수저'는 물질적인 배경으로만 결정되는 게 아니다. 사회에 모범을 보이고 책임을 지고 세상을 다 같이 잘 사는 방향으로 이롭게 하는 사람들이 '진짜 금수저'고, 사회 지도층이다. 이런 내적인 자질들을 ‘수저’로 명명하는 이유는 이 모든 것들이 대체로 양육자와 자라온 환경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대체로 부모가 하던 대로, 주변 사람들이 하던 대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자라온 환경을 거스르기 어렵다. 이것이 수저 계급론의 가장 슬픈 점이다. 내적인 흙수저로 진화한 이기적이고 목소리 크고 호전적인 사람들은 그렇게 변하지 않으면 자신이 자라온 환경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금수저의 방식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내면이 튼튼한 사람들 역시 그 사람들이 뭘 잘해서 그런 게 아니라 타고난 환경이 좋았을 가능성이 높다.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냉정한 시선으로 내가 양육자와 자라난 환경에 어떤 영향을 받아 어떤 내면을 갖추게 되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내가 물고 있는 수저를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뱉고 교체할 것인지 계속 소중히 간직할 것인지 판단해야 한다. 그것은 앞으로 살아갈 삶과 이뤄낼 성장의 토대를 튼튼히 하는 일이다. 수저를 바꾸기 위해 단순히 '돈을 많이 벌겠다'라고 결심하는 것부터 바꾸어라. 금전적으로 자타공인 금수저라 하더라도 불행한 삶을 사는 경우도 많고, '흙수저'로 태어나 행복하고 여유 있게 사는 경우도 많다. 오히려 내적으로 '뼛속 깊이 흙수저'인 사람이 돈만을 목적으로 하며 사람을 속이고 이용하는 범죄자의 길로 들어서는 경우를 숱하게 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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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의 신경가소성(腦可塑性, neuroplasticity):

사람이 쓰는대로 뇌 구조는 바뀔 수 있다

출처-<링크>

 

‘환경으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은 기질과 특성’을 뜻하는 수저는 환경을 바꾸고, 어울리는 사람들을 바꾸고 변화에 적응함으로써 충분히 바꿀 수 있다. 참 어렵고 괴로울지 모르지만, 의미 있는 과정일 것이다. 나를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으려면 정신건강의학과나 심리상담센터에 가보는 것도 추천한다. 다양한 검사지가 있고 그 결과로 나를 조금 더 객관적으로 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내가 부족한 부분을 살펴주는 마음에 여유가 있는 사람, 격려해 주고 지지해 주는 사람, 독립적인 사람, 내적 외적으로 균형과 조화를 이룬 사람을 만나보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내면은 더 성숙하고 한 걸음 두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결국 돈과 명예가 먼저가 아니며, 수저는 바꿀 수 없는 불변의 무엇도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꾸준히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고, 더 다양한 시각에서 현상을 바라보려는 노력과 배움을 통해 타고난 내외적 수저를 넘어 당신 자신만의 독특하고 아름다운 다이아를 찾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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