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9일, GS에서 짓던 검단의 LH 아파트 주차장 일부가 무너져 내렸다.
논란이 되었을 때, 무엇보다 뉴스에 나오는 구조 자체가 낯설었다. 무량(無梁)판 구조. 형틀목수로 일하기 시작 한 지 3년 차인데도 무량판 구조는 만들어 본 적이 없다. 그동안 벌어졌던 관련 논란들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지 알려면 이것부터 알아야 한다.
무량판 구조
무량판의 량은 ‘梁(들보 량)’, 즉 ‘보’가 없는 구조라는 이야기다. 보는 바로 위의 사진에서 빨간 타원 안에 들어가 있는 부분이다. 천정에서 조금 내려와 있는 것. 기둥 위에서 천정의 무게를 전달하고 횡 방향의 힘이 가해질 때 버텨주는 역할을 한다. 말이 좀 복잡한가? 사실 집의 식탁에도 저 비슷한 역할을 하는 부분이 있다. 식탁 아래를 잘 보시면 다리 사이에 좁은 폭의 합판이 잡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거기 문제가 생기면 식탁이 한쪽으로 쉽게 자빠진다. 보 역시 마찬가지의 역할을 한다. 아주 중요한 구조물이고, 형틀 목수들이 만들어야 하는 중요한 구조물들 중 하나다.
쇠 파이프 같아 보이는 것 위에 있는 것이 유로폼(거푸집)으로 만든 ‘보’다.
사진 오른쪽에 위쪽으로 철근이 나와 있는 게 기둥이고.
무량판이라고 하면 바로 위의 사진에서 저게 없다는 거다. 그런데 이쪽 업계 종사자가 아니라고 하면 이 대목에서 바로 이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어라? 중요한 게 없으니 무량판 구조는 매우 위험한 건가?”
무량판 구조의 장점
아주 중요한 부분을 없애다는 건 위험할 수 있는 공법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그걸 없애는 공법이 있고 ‘구조체’ 명칭이 있다는 건 그것이 가지는 장점이 분명히 있다는 뜻이며 제대로 만들면 별 탈 없이 그 장점들을 모두 누릴 수 있다는 의미다.
이 사진에서 보가 없다고 생각해 보자. 그러면 보 바로 밑으로 지나가는 각종 파이프와 케이블들을 천장에 바로 붙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럴 수 있다는 게 어떤 강점이 있는지는 별 느낌 없으실 거다. 그런데 다음 사진으로 보면 느낌 이 좀 달라지실 게다.
내가 목수로 처음 일했던 현장의 지하 주차장 입구다. 그런데 저 빨간 사각형으로 표시된 부분이 입구의 ‘보’다. 무려 120cm나 된다. 바닥은 보통 20cm 정도니까, 저 사이즈의 보 2개가 없다고 하면 저 단지에선 지하 주차장 2층을 만들 수 있는 깊이로 거의 3층을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대체로 아파트 단지들의 경우, 지하층 만드는 데 들어가는 시간이 전체 공기의 절반 정도다.
즉, 지하 주차장을 무량판 구조로 만들면 공기를 몇 달 당길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지하 주차장 만드는 데 시간이 많이 들어가는데 그걸 몇 달 줄일 수 있다는 건 어마어마한 공사 경비를 줄일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되겠다.
무량판 구조가 각광받는 이유가 또 하나 있다. 언제부터 지상층에 차가 못 다니는 구조의 아파트 단지들이 유행을 타기 시작했다. 아마 아이들 안전 때문이었던 것 같은데… 여튼, 그게 유행을 타다 보니 특정 지역 단지들의 경우엔 원가 그대로 반영하기 힘든 경우들도 생겼다. 그래서 건설사는 원가를 줄일 수 있는 것들을 모조리 찾아냈고 그들이 찾아낸 방법 중에 하나가 지하 주차장 층고를 낮춘 것이었다. 뭐, 완공하고 사람들이 입주할 때까진 그 아파트 단지에 어떤 결함이 있는지 아무도 몰랐다. 입주한 다음에 택배를 받기 전까지.
택배 기사들에겐 시간이 돈이다. 배달 시간을 줄이기 위해 저층은 아예 뛰어 올라간다. 그런데 요즘 아파트 단지로는 진입 자체가 안되고,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가서 개별 동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 와중에 낮은 층고 때문에 탑차 진입도 안 되었던 것. 결국 택배 기사들이 배달 거부에 나서는 아파트 단지들이 나오게 된다. 이게 문제가 되자 정부는, 2018년 '주택 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칙’을 개정, 2019년 1월 이후 사업 계획 승인 아파트는 의무적으로 지하 주차장 높이를 2.7m 이상으로 설계하도록 했다.
택배사들 나름대로 높이가 낮은 탑차를 배차하는 방법을 찾긴 했는데,
저건 사람이 짐칸에서 허리를 펼 수 없는 높이다.
그때 문제가 되었던 것은 약 40cm 정도였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보의 높이는 40cm가 넘는다. 보통 50~60 정도, 그 이상인 보들도 많다. 그러니까 ‘보’만 없애면 법도 지키면서 공사 기간도 왕창 줄여 건설 경비를 절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왜 무너진 건가?
출처: 국토부
국토부 사고 조사 결과를 요약하면,
1) 도면에서부터 절반의 기둥에 ‘전단보강근’이 누락되었으며 시공 과정에서 추가로 4개 기둥에서도 ‘전단보강근’이 누락되었고
2) 콘크리트 강도가 품질기준에 못 미쳤으며
3) 이 상태에서 이 위로 설계보다 1.1m 많은 흙이 덮였다는 것이다.
결과가 이렇게 나오자 이런 제목의 글이 SNS를 떠돌았다.
여기에 업계 종사자님들이 한 말씀씩 하신 게 마구잡이(...)로 공유되면서 큰 논란이 되었다.
기둥 절반 정도에 ‘특정’ 철근이 빠졌다.
그런데 이게 사람들에겐
‘철근’이 빠졌다.
로만 이해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오해다.
일단 빠졌다는 ‘전단보강근’이 뭐냐면,
위의 사진, 원 안에 보면 갈고리 모양으로 생긴 철근이 수직으로 내려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전단보강근’은 저렇게 정육점에 고기 걸어놓은 갈고리 비슷하게 생겨먹은 철근이다. 그렇게 두껍지도 길지도 않다. 쟤 역할은 펀칭 전단균열(Punching shear crack)을 막는 것이다.
펀칭 전단균열(Punching shear crack)은 슬라브(천정)에 부하가 걸렸을 때 슬라브가 기둥에 뚫려 내려앉는 것을 말한다. 전단보강근은 주욱 이어지는 철근들을 특정 방향으로 잡아서 저 현상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거고. 그래서 실제 길이는 물론 시공되는 부분도 얼마 되지 않는다. 기둥 주변으로 1미터 안쪽 정도 될까말까하다.
바로 위의 사진이 전단보강체다. 바닥에 깔려 있는 철근 말고 수직으로 세워져 있는 저게 전단보강용으로 집어넣는 거다. 저만큼의 철근이 수천만 원할 것 같은가? GS에선 약 1천만 원 정도의 물량이었다고 해명했는데, 내 보기엔 그것도 인건비를 최고 단가로 계산했을 때나 나올 액수 같다.
그러면 왜 저걸 설계에서부터 누락시켰던 걸까.
가능성 1) LH 땅투기의 여파
저거, 전체 도면에서 보자면 정말 작은 철근들이 일부 빠져 있었던 거다. 그 작은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공사 들어가기 1년 전부터 도면 검토를 한다. 저 아파트 단지가 착공했던 건 2021년 4월이다. 참여연대에서 LH 직원들의 땅투기 의혹을 폭로했던 게 2021년 3월이다. 폭로 이후 담당자 인사이동 등의 문제로 도면 전달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발주사인 LH가 도면을 책임지는 곳이었으니까. 더군다나 CAD 도면의 경우 copy & paste가 많은데 인사이동된 이가 그 작업하던 중이었다고 한다면 저런 걸 찾아내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다.
가능성 2) 시공사와 작업자의 의사소통 문제
저 현장은 건설노조가 들어가지 않았던 현장이다. 대한민국 건설 현장에서 노조원이 아닌 철근공이라면 오야지 빼고 거의 대부분 동남아시아 출신 노동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의 작업 능력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작업자들도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작업했겠지만 의사소통의 한계 때문에 적당히 넘어갔을 것이다. 도면에서 누락된 곳들 이외에 몇 곳이 더 빠져 있었던 것은 ‘저기에서 안 했으니까 여기도 안 하는 곳’이라고 도면도 안 보고 작업했다가 빼먹었을 가능성이 있다. 한국말을 하는 오야지의 경우엔 그들과 관련된 각종 행정 작업들과 작업 지시받아서 내리기 바빴을 것이니 본인들이 확인했을 시간적 여유는 없었을 것이다.
즉, 민주노총 건설노조에서 “노조가 들어갔다면 생기지 않았을 일”이라고 했던 것은 철근공들이 “왜 이 기둥은 전단보강근을 넣고 저 기둥은 안 넣어요?”라고 관리자들에게 물어봤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건처럼 치명적인 사안은 아니더라도 하청사 기사, 혹은 원청사 기사와 현장 작업자들의 의사소통으로 도면 단계에서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기준치 이하의 콘크리트도 마찬가지다. 강도가 떨어지는 콘크리트는 배합된 이후 현장에 너무 늦게 도착했거나 물을 너무 많이 타서 발생하는 문제다. 조합원들이 들어와서 일했다면 이것도 바로 관리자들에 보고되었을 것이다. 그러면 뭔가 다른 조치를 취했을 것이다. 하지만 타설도 꽤 힘든 일이라 한국어 서툰 외국인들이 많은 분야다. 이분들이 관리자들에게 보고하는 것은 사실 쉽지 않다.
조합이 때려잡아야 할 조폭이 되면서 비가 많이 오는데도 계속 타설했던 현장들이 꽤 된다. 내가 일하던 현장들 몇 곳에서도 그랬다. 비 오는데도 콘크리트를 부어 넣으면 시멘트가 가장 많이 쓸려간다. 상태 상관없이 일단 부어버리면 공사 기간을 줄여서 건설사들의 건축단가는 많이 준다. 하지만 그 건물들의 강도는 제대로 나올까?
가능성 3) 그리고 LH 자체의 문제
수평적이지 않은 원청사와 하청사의 관계를 문제 삼아 봐야 입만 아프다. 그 와중에 LH는 갑질에 있어서 왕 중의 왕이다. 해외에서 뽀시락거렸던 경험이 있어서 꽤 큰 규모의 대기업 관계자들과 만날 일이 많았지만, LH는 특히 그게 심했다. 뭐 LH 같은 곳들을 ‘조져야 하기 때문’에 검사정권이 탄생해야 한다고 말하는 분들도 좀 봤다. 뭐, 장관이 VVIP 집안의 땅과 고속도로에 대해 별도 보고를 받는 세상에 이게 말인지 막걸리인지.
토지개발을 하는 곳에서 내부정보를 이용해 투기에 나섰던 판에 ‘전관예우’한다고 퇴직 LH 직원들이 감리 회사 운영하는 게 말이 되나. 그런 식으로 일을 했으니 저런 것을 찾아내지 못했던 건 어쩌면 불 보듯 뻔한 일인 거다. 지금은 부도난 건설사의 아파트 지을 때도 깐깐한 감리 덕택에 고생 좀 했던 입장에선 도대체가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일을 걷잡을 수 없게 만든 것은 LH와 GS의 멍청한 언론 대응이다. 생소한(?!) 공법을 갖고 구조계산 오류가 날 수도 있었던 걸 왜 만드는가. LH는 수천 명이 살 주거 공간 갖고 실험하는 곳인가?
현장 책임자는 현장 상황 수습하는데도 심신이 갈린 상황일 텐데 저 양반을 미디어 앞에 세우다니 제정신인가. 현장 상황을 이해하는 정도가 제각각이며 요약 정리하는 능력들도 각자 다른 상태에서 특종 욕심에 마이크를 들이대는 기자들을 대책 없이 상대하고 있었으니, 애먼 공법이 문제의 원인이 된 거다. 전체 공사 단가에서 보면 눈곱 위의 먼지나 될까 말까 한 걸 떼어먹으려고 아파트를 무너뜨렸을 리가 없잖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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