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와 명상을 할 수 있는 집
완성된 "우주" 다락에서 요가하는 건축주
부부는 정반대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 요즘 유행하는 MBTI로 말하면, 외향적인 ‘E’와 내향적인 I의 만남. 특히, 아내는 의심할 여지 없이 극명한 ‘E’로 보였다.
집에 지인을 초대해, 파티 여는 것을 좋아한다. 명상, 요가 같은 정적인 취미도 여럿이 함께하길 원했다. 심지어,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우주”가 완성되면, 지인들과 이 공간을 ‘공유’하고 싶어요.
새집으로 이사를 하면, 집으로 손님을 초대하기 마련. 집들이 개념이다. 그래서 보통, 단순 일회성 방문에 그친다. 나의 공간을 타인과 공유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뢰인은 달랐다. 나의 생활과 취미를, 타인과 함께 나누고 싶어 했다.
건축사가 과학적이지 못하게 웬 “MBTI” 타령인가 싶겠지만. 의뢰인이 어떤 사람인지, 그의 성향을 파악하는 일은 건축사의 첫 번째 임무다.
그녀는 자신을 이렇게 표현했다.
밖에서 에너지를 소진하는 타입.
이런 유형, 꽤 많다. 친구들 사이에서 분위기를 주도하고, 개그감 넘치는 사람들. 집에 돌아온 순간부터, 숨 쉬는 것 외엔 하지 않는 사람들 말이다.
의뢰인은 이렇게 말했다. 진짜 모습은, 오히려 내향적인 사람에 가깝다고. 겉에 비치는 모습과는 다르다는 말을 덧붙였다. 의뢰인에게 집은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공간이다. 하지만, 피곤하다고 축 처져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에너지가 떨어지는 느낌이 들면, 오히려 더 바지런하게 움직인다.
부부는 취미 여럿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요가와 명상이다. 주말 아침마다, 두 사람은 요가 매트를 나란히 펴고 운동을 시작한다. 둘이 함께할 때, 잃어버렸던 활기를 되찾는다는 부부. 그들이 원한 건, 체력을 단련하는 기능적인 공간이 아니었다. 휘몰아치던 일상에서 벗어나, 본래 내 모습을 되찾는 공간. 마모된 자기중심을 바로 세울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의뢰인은 최근, 새로운 구상이 떠올랐다. 지금까지 부부 둘이서만 즐기던 요가를, 가능하면 더 많은 사람과 함께 하고 싶다는 바람이다. 공간이 허락한다면, 네 명이 한 번에 요가할 수 있는 넓은 방을 원했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언젠가 집에서 요가 클래스도 열어보고 싶다고 한다.
이런;; 집이 점점 커진다...
건축주 부부가 살던 예전 집의 모습
방 한편이 소도구들로 가득하다
한가운데 놓인 동그란 것이 행드럼
부부가 사는 집을 방문했다. 요가와 명상을 할 때 사용하는 방이 따로 있었다. 방 한편에는 꽤 전문적인 소도구들이 구비되어 있었다. 방 자체의 크기는 작지 않았지만, 진열된 도구가 많아 비교적 비좁게 느껴졌다. “우주”를 설계할 땐, 넓은 공간과 더불어, 소도구를 보관할 공간도 더해야 한다.
두께가 얇은 매트, 두꺼운 매트. 폼롤러도 길이와 경도에 따라 여러 개. 제대로 운동하려면, 다 필요한 도구들이다. 그런데 방 한중간, 행드럼(손으로 두들겨 음을 내는 타악기로, 주로 명상할 때 사용한다)이 눈에 띈다. 요가 학원에서만 보던 기구다. 건축사 일을 하면서, 수많은 가정집을 방문해 봤다. 웬만큼 요가에 진심이 아니면, 가정집에 행드럼을 구비 해놓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
"우주"의 다락에 자리잡은 요가 용품과 서적들
그 순간, 깨달았다. 이들은 단순한 취미 부자가 아니었다. 취미를 제대로 갖춰 즐기는 부부다. 소원 노트에 적힌 내용을 단순한 ‘소원’으로 취급하기엔, 그들은 모든 옵션에 진심이었다. 그런데, 또 이것을 여러 사람과 함께 하고 싶어 한다. 그러니까 그만큼, 제대로 갖춘 넓은 공간이 마련되어야 했다.
도구 옆에는, 명상을 돕는 그림이 걸려 있다. 관련 도서가 꽂힌 책장도 놓였다. 그야말로 작은 스튜디오. “우주”는 가정집이기도 하면서, 요가 스튜디오가 결합된 공간이어야 했다. 의뢰인의 요구사항을 정리하면 이렇다.
1. 적어도 네 명이 함께할 수 있는 넓은 방
2. 매트, 소도구, 관련 서적을 보관할 공간
3. 가정집과 분리된, 요가 스튜디오의 분위기
그리고… 자연인 부부가 집착하는 그것.
4. 일출…!!!
이 모든 조건을 한 번에 충족할 방법은 단 하나.
“크고 넓은 다락”
(가로) 4.5mX(세로) 9m로, 약 13평에 해당하는 다락을 만들기로 했다. 요가, 춤, 명상뿐만 아니라, 주말에 놀러 온 손님이 이불을 펴고 잘 수 있는 너비다. 어떠한 용도로도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매 순간 다른 용도로, 다양하게 점유되는 공간. 나는 이곳을 “멀티룸”이라 불렀다.
“우주”의 1층은 입식이다. 공간마다 용도에 맞는 가구를 갖췄다. 반면, 2층 다락은, 기본적으로 요가와 명상을 위한 공간이다. 입식보다 ‘좌식’이 편한 곳이어야 한다. 그래서, 완전한 좌식, 다양한 와식 행위가 가능한 공간으로 구성했다.
크고 널찍한 "우주"의 다락
네 명은 물론, 그 이상도 거뜬히 수용할 수 있다
무위(無爲)의 공간, 다락
다락의 창가에, 요가 매트가 놓여 있다
보통 집에서 쉰다고 하면, 사람들은 어떤 모습을 떠올릴까? 거실 소파에 누워 티비를 보는 모습. 방바닥에 엎드려 뒹굴뒹굴 게으름을 피우는 모습. 대부분 이런 장면을 상상할 것이다. 문제는, 의뢰인이 그 대부분과 달랐다는 것. 낮잠을 자거나 소파에 누워 뒹굴뒹굴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심지어 “우주”를 설계할 때, 소파 놓을 공간은 없어도 좋다고 말했다.
집의 역할은 안락함을 제공하는 것이다. 마음 놓고 한껏 풀어질 수 있는 유일한 공간. 그러한 집 안에서도, 침실과 거실이 대표적인 휴식 공간이다. 거실이 없어도 되긴 된다. 잠은 침실에서 자고, 부엌에서 밥을 먹으면 되니까. 먹고 자는 데에는 문제가 전혀 없다. 다만, 거실이 없다는 건, 이런 의미를 가진다.
침실 이외엔, 긴장감을 풀어줄 공간이 없다는 것.
나는 의뢰인의 말에 깜짝 놀랐다. 거실이 없으면 발생할 단점들을 설명했다. 하지만, 의뢰인은 확고했다. 거실이 정말로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 거실과 소파 없이도 살 수 있다니. 그런 사람도 있나 보다, 철석같이 믿고 소파 없는 집을 완성했다.
완성된 "우주"의 다락
“우주”가 완공된 이후, 집을 찾아간 적이 있다. 나의 건축사 역사에서, 최초의 “소파 없는 집”. 다시 생각해도 신기한 마음에 이리저리 집을 둘러보았다. 정말로, 소파는 없었다. 물론 집의 중앙, 넓게 트인 곳은 거실처럼 사용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사람이 모이는 곳이니까.
2층 다락으로 올라간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소파 놓인 거실의 역할, 다락이 대신하고 있었다. 의뢰인 부부는 다락으로 올라가자마자, 자연스럽게 등을 깔고 누웠다. 배시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뒹굴 거리고 멍 때리는 공간. 역시, 그런 공간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때에 따라 용도가 달라지는 다락을, 나는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무위(無爲)의 공간. 꾸밈과 인위로부터 자유로운 공간.
또 다른 무위(無位). 어떠한 지위도 주어지지 않은 공간.
원래 다락은, 잡동사니를 쌓아 두는, 집과 별개의 공간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우주”의 다락은 달랐다. 바닥에 난방을 깔면서, 겨울에도 훈훈한 온기가 돌게 했다. 따뜻한 집의 일부가 된 것.
다락은 치밀하게 짜인 집 안에서, 숨통이 되어 주었다. 바람이 통하고, 시선은 여러 방향으로 확장된다. 동서북향으로 창을 내었다. 창의 높이가 낮아, 사람의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다. 요가와 명상을 즐기는 공간으로 안성맞춤이다.
완공된 "우주"에서 보는 다양한 시선과 풍경
다락 곳곳에 창을 내
따뜻한 자연광이 들어오게 했다
다락은 공짜라는 오해
공사 중인 "우주"의 다락
건축법을 펼쳐, 조금 더 면밀하게 다락을 살펴보자. 2층 멀티룸을 정확하게 표현하면 이렇다.
다락은 아닌데, 다락의 형식을 취한 공간
다락의 형식을 취한다는 말은, 건축법상 다락으로 인정되는 높이(평균 1.6m, 경사 지붕 평균 1.8m)보다, 높다는 뜻이다. <구해줘 홈즈> 같은 티비 프로그램에서, 발코니와 다락을 “서비스 공간” 혹은 “보너스 공간”으로 언급할 때가 있다. 건축법상 면적으로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사용된 표현이다.
다락을 ‘서비스’ 공간으로 표현하면서, 오해가 생긴다. ‘서비스’라는 표현 자체가 ‘공짜’의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행정적으로 면적에 들어가지 않을 뿐, 공사비에는 다 포함되는 면적이다. 그러니까, 집을 짓거나 살 때, 서비스 공간이 많다는 말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나중에 몸져눕는 경우가 생긴다.
참고로, 다락은 17세기에 나온 건축용어다. 다락의 지붕은 곧 천장이 된다. 해가 뜨면, 지붕을 통해 열기가 전달된다. 반대로 해가 지면, 열기가 금세 빠져나가 기온이 뚝 떨어진다. 또한 새벽이슬까지 겹치니, 과거엔 주거의 목적으로 사용하기 어려운 공간이었다.
그래서 유럽에선 주로, 하녀들의 방으로 사용되었다. 동화<소공녀>의 세라처럼, 불우한 처지에 놓인 인물이 사는 공간으로 자주 등장한다. 영화<나 홀로 집에>에서, 케빈이 형과 다툰 벌로 갇히는 공간도 다락방이다.
바로 이 장면.
출처 - 영화<나 홀로 집에>
그래서 “우주”의 멀티룸은 왜 진짜 다락이 아닌가? “우주”의 지붕 안, 낮은 부분은 1.2m, 높은 부분은 2.4m다. 즉, 다락의 평균 높이 1.8m를 넘는다. 요가 같은, 신체적 활동이 이루어지는 공간이기 때문에, 다락보다 높게 설정했다. 하지만, “우주”의 다락은 2층도 아니다. 설계 당시, 1층과 2층 구분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다. 지붕 아래 남는 공간을 활용한다는 것이 그 시작이었다.
넓은 다락의 비밀
위에서 바라본 "우주"
다목적 공간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큰 공간이 텅 비어있는 것이 중요하다. “우주”의 멀티룸은 구조적인 부분에서 상당한 도전이었다. 특히, '경량 목구조'의 경우라면 말이다.
경량 목구조는 목구조 중에서도, 벽체로 힘을 받는 벽식 구조(아파트처럼 벽이 구조적인 힘을 받는 구조)를 말한다. 아파트처럼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3~4m 길이의 방이라면, 적용하기 적당하다. 하지만 "우주"처럼 9m 길이가, 벽체 없이 트여 있는 형태는 구조 해결이 쉽지 않았다.
특히, 용마루(지붕의 가장 높은 수평면)가 아무런 지지 없이 9m를 가로지르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용마루의 4.5m 지점인 중간에 기둥을 세우되, 바닥까지 내려오지는 않도록 중간 대들보를 걸었다. 중간 보가 걸린 기둥은 동자 기둥이 되었다. 대들보의 기둥의 한 면은 벽으로 숨기고, 계단 난간면은 기둥을 세워 노출시켰다.
나뭇결을 그대로 살린 기둥과 트러스
나머지 공간은 하얀색 페인트로 마감했다
다른 공간은 모두 하얀색 페인트로 마감했다. 기둥과 트러스는 나뭇결을 살려 그대로 두었다. 미학적 포인트는 물론, 집이 목조 주택이란 걸 보여준다. ‘트러스 보’는 “우주”가 목조 건축물임을 보여주는 거의 유일한 힌트다. 또 하나 참신한 기능! 튼튼한 보에 해먹이나 플라잉 요가 기구를 걸 수도 있다.
멀티룸을 직역하면, 다용도실. 말 그대로, “뭐든지 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실제로, 멀티룸을 설계할 때, 가장 염두에 두었던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때때로 무언가를 “하는 것”보다 “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할 때가 있다. 즉, 멀티룸의 본질은 이거다.
뭘 하든, 불편하지 않을 것.
용도 변경을 위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용도 변경 시에는, 사용자의 움직임을 요란하지 않게 받아낼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을 뒤에서 담담하게 받쳐내는 일. 많은 설계에서 실패하는 부분이다.
다락 창가에서 요가하는 의뢰인
그 옆엔 반려견의 모습도 보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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