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라는 특수성

출처 - 영화<어느날>

화장 후, 대부분의 고객은 납골당에 유해를 안치합니다. 하지만, 아직 선산을 선호하는 고객도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고객들에게 제일 먼저 ‘장지(葬地)’에 관해 물어봅니다. 장지까지의 거리가 멀면, 별도의 추가 비용이 발생합니다. 잊지 않고, 고객의 의사를 확인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입니다.

자연스럽게 관이나 수의 등, 장례용품에 대해서도 먼저 이야기합니다. 물론, 우리 회사의 상조를 이용하면, 장례용품 비용은 전체 금액에 포함됩니다. 상주분들이 따로 준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일부 상조 회사는, 상주에게 수백만 원의 추가 비용을 요구합니다. 장례는 자주 겪는 일이 아닙니다. 고객은 장례 상품에 대한 가격 정보를 명확히 알고 있지 못합니다. 그런, 상황의 특수성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이런 일은 꽤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최근에, 한 지역의 장례를 주관한 상조 업체의 장례지도사를 만났습니다. 그는 제게 자랑스러운 얼굴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번에 말이야, 내가 재단 비용으로 무려 300만 원이나! 추가 매출을 얻어냈다고.”

한 번의 장례 행사로, 폭리를 취하는 일부 상조 업체의 모습입니다. 여전히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과도한 장례 비용으로 유족 간의 갈등이 심화되는 경우를 자주 봐왔습니다. 그래서 고객 상담 시, 특히 장례용품에 대해 상세히 이야기합니다. 우리 회사를 이용하지 않더라도, 다른 곳에서 과도한 장례 비용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거절할 수 없는 요청

출처 - 영화<어느날>

얼마 전, 한 고객이 장례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그의 장모님이, 이번 달을 넘기기 힘들 거란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는 제게 장례를 전적으로 의뢰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을 덧붙입니다. 

“대표님께서 제 아내와 통화해 주실 수 있을까요? 절차에 대해 직접 알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고객의 요청에, 순간 당황했습니다. 보통 장례 상담에서는, 이런 질문을 합니다. 전체 금액은 얼마인지, 어떤 것을 준비해야 하는지. 고객의 궁금증은 대부분 정해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의뢰인의 요청은 이례적이었습니다. 자기 부인과 전화 상담을 해달라고 합니다. 그것도 직접 전화를 걸어서 말이죠. 이유를 물었습니다. 

“제 아내는 외동딸입니다. 지금 슬픔에 잠겨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표님이 직접 장례 절차를 설명해 주시면, 와이프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아 부탁드립니다.”

거절할 수 없는 이유였습니다. 그렇게 남편으로부터 부인의 연락처를 전달받았습니다. 무거운 마음으로 번호를 누릅니다.

“안녕하세요, 남편분이 번호를 알려주셔서, 이렇게 전화 드립니다.”

이미 그녀의 목소리는 잠겨 있었습니다. 밤새도록 울다가 전화를 받은 것 같았습니다.

“남편에게 이야기 들었어요. 제가 뭘 준비해야 하죠?”

말끝에 떨림이 느껴집니다.

“따로 준비하실 건 없습니다. 저희 회사에서 알아서 잘 준비하겠습니다.”

지금 그녀에게 필요한 건 장례 절차 설명이 아닙니다. 제가 해줄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했습니다.

“지금부터 부인께서는 장례 준비보다 더 중요한 것을 해야 합니다.”

저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습니다. 

“어머님과 이별 준비를 해야 합니다. 어머니는 어떤 분이셨나요?”

이 질문을 시작으로, 우리 대화는 30분간 이어졌습니다. 그녀는 어머니에 대해 떠올리기 시작합니다. 딸 하나만 바라보고 살아오신 어머니. 이제 여유가 생겨 호강시켜 드리려 했는데, 갑작스레 떠나게 되어 가슴이 미어진다고. 그녀는 솔직하게 감정을 드러냈습니다.

위로는 하지 못했습니다. 그 슬픔을 헤아리지 못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일을 하면서, 수많은 죽음과 이별을 목격했습니다. 거기서 얻은, 저의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를 조금 나눴습니다.

“어머니와의 즐거웠던 추억을 하나둘씩 되새기길 바랍니다. 기억이 시작하는 순간부터 되짚어 보세요. 따님은 어머니로부터 깊은 사랑을 받아왔을 것입니다. 그런 기억을 모아, 어머니에게 이야기해 보세요. 의식이 없으시더라도, 딸의 목소리가 들릴 겁니다. 

어머니의 삶 자체가 따님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었는지 알려주세요. 마지막까지 딸과의 행복했던 추억을 간직한 채 편안히 눈을 감으실 수 있도록. 당신의 딸이어서 너무나 행복했다고. 다음 생에는, 내가 받은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을 어머니께 주겠다고. 또 다른 인연으로 다시 만나자고 말해주세요.”

그녀에게 필요한 건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준비하는 방법입니다. 어떤 장례 서비스를 이용할 것인지, 그 절차가 어떻게 되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별을 준비하는 방법

출처 - 영화<어느날>

고객과 통화하면서, 제 마음도 아립니다. 언젠가는 제가 겪게 될 일이기 때문입니다. 장례 사업을 시작하면서, 주변에 늘 이런 말을 했습니다. 부모님 살아생전에 잘해야 한다고. 후회하지 않도록 효도하라고. 하지만, 사실 저는 그런 말 할 자격이 없는 것 같습니다. 실생활에서 저 역시 불효자입니다. 부모님이 아직 건강하다는 이유로, 부모님과 만날 기회를, 대화할 기회를 미루곤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네 부모님은 격동의 시절에 태어나셨습니다. 삶의 풍파를 견뎌내며, 자식을 키웠습니다. 가족이 삶의 전부였던 때입니다. 위기를 맞아도, 가족을 생각하며 다시 일어서신 분들입니다. 저희 아버지는 80년대 사우디에서 건설 노동자로 일하셨습니다. 90년대 후반엔, IMF 직격탄을 맞으셨습니다. 자식의 삶이 윤택하지 못한 것을, 아직도 당신 때문이라 자책합니다.

제가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보니 뼈저리게 느끼는 바가 있습니다. 아버지의 삶은 흉내조차 낼 수 없습니다. 수많은 위기를 그저 “덤덤하게” 이겨 내신 부모님. 자식들에게 티 한 번 내지 않으신 부모님의 삶이 그저 경이롭게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부모의 임종을 앞둔 자녀분들께 감히 말씀드립니다.

장례 절차와 비용에 대해 집중하다 보면,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칠 수도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의 삶을 기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건강히 잘 살고 있다는 것을 꼭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들의 삶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끼도록 말이죠.

어쩌면, 다음 생애에 지금의 가족과 다시 만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 기대를 가지고, 마지막을 맞이할 수도 있는 것이죠. 다만, 다음번엔 다른 형태로 만나길 기대합니다. 내가 부모님의 부모로 태어나는 것. 그래서 한 평생 받은 사랑과 행복을, 부모님께 수백 수천 배로 보답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슬픔에 빠지는 일. 조금만 뒤로 미루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별을 앞둔 사람과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당신들의 삶을 되새기며 의미 있게 보냈으면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온몸으로 당신의 사랑을 표현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