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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부가 엔화 외평채 700억 엔을 발행하였습니다. 엔화 외평채는 사무라이본드(Samurai bond)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정부가 외국인을 대상으로 엔화 외평채를 발행한 건 대한민국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입니다. 최근 발행한 외평채는 2021년에 미화 5억 달러, 유로화 7억 유로로 총 13억 불가량의 채권을 발행한 것이지요.

 

그동안 달러나 유로화로 발행하던 외평채를 너무도 갑작스레 엔화로 발행하는 것에 우려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정부의 사무라이본드 발행 목적은 무엇인지, 우리 경제에 어떤 영향을 줄지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정부도 발행한 '사무라이 채권'… 물꼬 트는 일본 자금 _ 머니투데이방송 (뉴스) 0-41 screenshot.png

출처-<MTN>

 

1. 외평채는 빚이다

외평채는 외국환평형기금채권(foreign exchange equalization bond)의 약어입니다. 외환시장의 안정을 위해 대한민국 정부가 발행하는 국채의 일종이지요. 외평채를 발행하여 차입한 외화로 국내 환율 안정화나 외화 보유를 목적으로 하며 채권 금리는 국가 신용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달러 외평채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미국이 발행한 채권의 금리가 10년 만기 10%라고 가정했을 때 미국이 망하지 않는 이상 미국이 발행한 채권은 안전하게 이자와 함께 상환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미국이 발행한 채권이므로 혹시 미국 재정에 문제가 생기거나 했을 때 최악의 경우 미국은 달러화를 발행해서라도 상환이 가능하지요.

 

[기획재정부X어피티슈] 💵 역대 최저금리! 성공적인 발행! 💶 외평채 이슈된 이유는_!  l 기획재정부 2-26 screenshot.png

출처-<유튜브 채널 '기획재정부'>

 

하지만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가 달러화 채권을 발행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미국보다 신용도가 높고 달러 보유가 안전한 국가라면 모르지만, 그렇지 못한 대부분 국가는 같은 10년 만기 채권이라도 미국과 같이 10% 이자로는 투자자들에게 어필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미국보다 최소 0.2%~0.5% 정도의 추가적인 이자를 지급합니다. 가산금리라고 하지요. 참고로 이번에 발행한 엔화 외평채는 일본의 국채금리보다 최대 0.48%(48bp)를 더해 10년 만기 1.312%입니다.

 

日 투자자 대상 '사무라이본드' 700억엔 첫 발행 _ 연합뉴스TV (YonhapnewsTV) 0-13 screenshot.png

출처-<연합뉴스TV>

 

외평채를 발행하면 해당 통화로 된 외화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언급한 대로 이 외화는 국내 환율 안정화와 외화보유액을 늘리는 데 사용합니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나라의 엔화 환율이 매우 불안정하거나 엔화 보유액이 부족하기 때문에 외평채를 발행하는 걸까요? 아시다시피 엔화 환율은 역대급으로 낮은 상황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엔화 가치가 하락했을 때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엔화 부채가 있다면 빨리 상환하는 것이 상식적입니다.

 

2022년 기준 외화보유액 중 엔화의 비중은 4~5% 내외입니다. 미 달러는 약 60%, 유로화 약 20%, 파운드 약 5%, 기타 통화 10% 수준입니다. 달러가 아닌 유로, 파운드 등의 통화는 유사시 달러를 매각해서 마련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외화 보유액에서 달러 비율을 높게 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왜 이 시점에 하필 엔화를 구한 걸까요? 일단 엔화의 현재 상태를 살펴보고 그 이유를 계속해서 짚어보도록 하지요.

 

2. 엔화의 현재 상태

엔화 환율은 지난 3년간 꾸준히 하락하여 현재는 100엔당 900원 정도까지 내려왔습니다. 엔-달러 환율은 1달러당 약 150엔입니다 그만큼 세계적으로 엔화 가치가 낮아진 터입니다. 이 같은 엔저 현상이 지속되는 이유는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가 금리 인상을 통한 긴축재정에 들어가고 있음에도 일본이 기준금리를 -0.1%로 유지하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안전자산으로 평가받는 엔화였지만 아무리 안전하더라도 수익이 나지 않으면 자금은 이동하기 마련이지요. 

 

일본이 기준금리를 인상하지 못하는 이유는 국가부채 때문입니다. 일본은 아베 시절 실시했던 아베노믹스 정책으로 시장에 유동성(liquidity. 기업의 자산이나 채권을 손실 없이 현금화할 수 있는 정도)을 풀어 경제성장을 이끌려 했습니다. 이때 대량으로 찍어낸 엔화로 엔저 현상을 일으켜 수출증대와 내수진작이라는 결과를 끌어내려고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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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조보라/매일경제>

 

일본은 금리를 조정하는 통화정책이 아닌 정부가 발행한 국채를 일본중앙은행이 매입함으로써 유동성을 증가시켰습니다. 그 결과 일본중앙은행은 자국 국채 보유 비율이 50%가 넘어갔습니다. 비정상적이지요. 이 금액이 무려 1,026조 엔입니다. 일본 재무성은 금리가 1%만 올라도 연간 이자 부담이 3조 7000억 엔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기에 금리를 쉽사리 올리지 못하는 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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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조보라/매일경제>

 

3. 왜 엔화 외평채를 발행하나

그렇다면 왜 지금 시점에서 정부가 엔화 외평채를 발행하는지에 의문이 듭니다. 외평채를 발행하는 것 자체에 문제로 삼는 것은 아닙니다. 이를 토대로 국내 외환시장 안정화 등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만약 달러 외평채를 발행했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도 달러 환율을 안정화하고 달러 보유액을 늘리기 위함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왜 하필 엔화일까요?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일본과의 정치·외교적 관계입니다. 역대 어떤 정부보다 일본과의 관계가 돈독한 현 정부에서 일본에 외교적인 선물을 했다는 것이지요. 사실 이번 엔화 외평채를 발행하면서 투자자를 모집했을 때 일본인 투자자들이 엄청나게 몰렸습니다. 일본이 직접 발행하는 국채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투자자들이 모인 것은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이 일본보다 높기 때문입니다(일본 A+, 한국 AA 수준). 더불어 한국의 부채비율(GDP 대비 48.7%)이 일본의 부채비율(GDP 대비 263.9%)보다 낮다는 점을 적극 어필해서지요. 즉, 일본인 투자자에게는 한국이 일본보다 자산건전성이 높은 국가이며 조금 더 높은 금리를 보장하는 우수한 투자처인 셈이지요.

 

정부도 발행한 '사무라이 채권'… 물꼬 트는 일본 자금 _ 머니투데이방송 (뉴스) 1-36 screenshot.png

출처-<MTN>

 

다만 국내에서 유력한 이유 중 하나로 거론하는 것이 외평채 발행 금액으로 부족한 세수를 메운다는 것입니다. 물론 발행한 700억 엔을 바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보유하던 외국환평형기금 내 불용예산이나 잉여금 항목에서 40조 원 정도를 국가 일반회계로 전용해서 사용한다는 계획입니다. 외평채 금액으로 부족한 세수를 바로 메우는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결국 외평채 발행과 세수 부족분의 전용이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닌 셈이지요.

 

정부도 발행한 '사무라이 채권'… 물꼬 트는 일본 자금 _ 머니투데이방송 (뉴스) 1-13 screenshot.png

출처-<MTN>

 

외국환평형기금의 여윳돈이니 아무 상관 없지 않겠냐는 의견이 있지만, 이 여윳돈이 왜 생겼는가도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최근 급격한 환율 인상을 방어하고자 정부는 달러를 풀었고, 이 과정에서 달러를 팔아 발생한 원화가 이 여윳돈이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여윳돈으로 다시 달러를 사서 유사시를 대비해야 할 터인데, 이 여윳돈으로 세수를 메운다는 것이지요.

 

4. 이러다 과거에 폭망한 사례가 있다

1996년, 미국의 기준금리는 5.25%였고 일본의 기준금리는 0.25%로 5% 차이였습니다. 지금과 비슷한 상황인데, 이때 글로벌 투자사들은 미국의 국채를 구매한 뒤 미국 국채를 담보로 일본에서 엔화를 빌려 동남아 등 신흥국에 투자했습니다. 이렇게 저금리 엔화 대출로 금리가 높은 곳에서 자산을 운용하는 것을 캐리 트레이드 방식이라고 합니다. 엔화를 이용한 것은 엔 캐리 트레이드(Yen-Carry Trade)라고 일컫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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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메르/네이버 블로그>

 

전 세계의 투자자가 엔화를 대출받기 위해 달러나 다른 통화를 가지고 오면, 시장에 엔화가 많이 풀려 엔화 약세가 됩니다. 실제로 엔 캐리 트레이드가 유행했던 1998년 엔화는 달러당 147.64엔으로 떨어집니다. 당시 캐리 트레이드 방식으로 동남아 등 신흥국에 투자했던 달러가 아시아지역의 무역수지 적자와 미국 금리 인상으로 동남아에서 미국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이후 일련의 사건들이 발생함에 따라 아시아의 외환위기, 한국의 IMF 외환위기, 러시아의 모라토리엄(지급유예) 선언이 있었습니다. 투자자와 펀드들은 캐리 트레이드를 청산하고 안전자산인 달러와 엔화로 복귀하기 시작했습니다. 달러당 147.64엔이었던 엔화는 두 달 만에 112엔까지 올랐습니다. 

 

이후 2008년에도 엔 캐리 트레이드 방식의 투자 철수가 다시 발생했고, 엔화 가치 역시 단기간에 2배 이상 올라갔습니다. 당시 100엔당 800원대의 엔저 현상이 지속되고 국내 대출(4~6%)에 비해 저금리였던(2~3%) 엔화 대출을 국내의 많은 민간 기업과 병원에서 이용했습니다. 대출금을 원화나 다른 통화로 환전해 국내외에서 투자 및 물품 구입 등으로 사용했는데, 이후 엔화 환율은 폭등하여 100엔당 1500원을 넘어섰습니다. 앉은 자리에서 대출금은 2배가 되어버린 사건이지요. 지금 정부가 엔화 외평채를 발행하는 시점도 과거의 상황과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일본의 금리 인상 등으로 엔화 가치가 상승하면 나중에 갚아야 할 돈은 지금의 2배 이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정부도 발행한 '사무라이 채권'… 물꼬 트는 일본 자금 _ 머니투데이방송 (뉴스) 1-56 screenshot.png

출처-<MTN>

 

5. 현 정부가 싼 똥을 다음 정부가 치워야 한다

엔화 외평채 발행으로 우려하는 사태가 발생한다면 책임소재를 묻기가 어렵습니다. 현재 발행한 외평채는 3년, 5년, 10년 만기의 세 종류입니다. 3년 만기 채권의 상환기일이 도래하는 2026년 하반기는 윤석열 정부의 끝자락입니다. 3년 뒤 엔화가 폭등했다고 해서 이 정부가 책임지는 모습을 보일까요? 3년 뒤에도 그럴진대, 5년, 10년 뒤 발생한 문제를 이 정부 사람들이 책임질까요? 기재부는 이번 엔화 외평채 발행을 통해

 

"당장은 아니지만 우리 기업들이 일본의 기업들과 비즈니스를 할 일이 점점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으로 반도체나 2차전지 같은 분야에서 한일 간 협력이 늘어나지 않겠냐는 막연한 기대감이지요. 한일관계는 한국 정부뿐 아니라 일본 정부의 영향을 많이 받는 관계이기에, 지금의 한일관계가 언제까지 계속된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한일관계가 악화하였을 때 과거처럼 일본이 한국의 상환 기한 연장을 거부하는 등 오히려 한국경제에 커다란 악수가 될 수도 있는 내용입니다.

 

정부도 발행한 '사무라이 채권'… 물꼬 트는 일본 자금 _ 머니투데이방송 (뉴스) 0-55 screenshot.png

출처-<MTN>

 

여담이지만 세계적인 투자자 워렌 버핏의 버크셔 해서웨이도 올 4월 1,600억 엔의 사무라이 본드를 발행했습니다. 이를 토대로 우리나라의 700억 엔 발행은 괜찮지 않을까?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워렌 버핏과 우리나라는 처지가 다릅니다. 워렌 버핏은 조달한 자금으로 일본의 종합상사 주식 비중을 높이겠다고 했으니, 일본에서 자금을 빼지 않고 주식에 투자할 것입니다. 만기가 되어도 주식을 팔아서 상환할 수 있고, 주식 투자에 실패하더라도 환리스크가 없습니다. 참고로 환리스크(換risk)란 장래의 예상하지 못한 환율 변동으로 보유한 외화표시 순자산 또는 현금 흐름의 가치가 변동될 수 있는 불확실성을 뜻합니다.

 

6. 결론: 이슈가 너무 많아 덮여버린 경제 문제

현재 정부의 엔화 외평채 발행과 관련해서 주류 언론은 별다른 의견을 제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일부 언론은 2021년 문재인 정부에서 발행했던 달러 외평채는 "시기에 맞지 않고 의미가 없다"고 까지 평가했는데, 이번 엔화 외평채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하기도 합니다. 오히려 네이버 블로거나 브런치스토리 같은 곳에서 개인들이 우려를 하는 터이지요.

 

이번 엔화 외평채 발행으로 한국 경제에 이익이 되지 않는 것은 명확해 보입니다. 오히려 문제가 발생했을 때의 리스크가 훨씬 큼에도 정부와 경제부총리의 이 같은 결정은, 국가의 손해 속에서 이익을 얻는 누군가가 있으리라는 것 말고는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언론의 상태가 말이 아니다 보니, 이미 여러 곳에서 구멍이 숭숭 나 있는 경제에 관해 함구하고 있는 듯하여 안타까운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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