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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6. 04. 목요일

정체불명 무숙자






편집부 주


아래 글은 정체불명에서 납치되었습니다.








이번 글's 주의사항: 철수 공부하는 거 옆에서 보는 거야. 무지 졸립고 재미 없어. 미국 사는 얘기 없는 거는 미안. 영어 못 해서 당장 고통을 겪는 아이들이나 관심 둘 야그니까 읽고 나서 투덜거리기 없기.



1.


철수가 미국에 온 지도 벌써 3년이 지났어. 그래도 근면성실하고 착한 철수의 노력으로 낙제는 없었어. 키도 많이 커서 5피트 8인치(약 172.72cm)나 돼. '워럽 듀우' 영어인사도 하고 찝적거리는 넘들에겐 '아임고나크뤡열팍킹헤드' 욕도 해. 길 가다가 스페어쿼럴바디 홈리스가 종이컵 내밀면 '아이돈헤브이븐마이팍킹개스' 이런 말도 배워서 쓰고.


운전면허? 없지 당근. 그냥 멋있어서 따라하는 거지 뭐. 같은 학교 같은 학년을 다니는 한국 아이들이래도 네이티브 쪽인 영어를 하는 쪽과 영어를 못하는 그룹으로 자연스레 그룹이 나뉘는데 여전히 철수는 콩글리시 그룹이고.


작년에 아빠가 큰 아빠의 도움을 얻어 시작했던 봉제공장이 망했어. 쥬위시(Jewish) 회사에서 일감을 받는 하청을 했는데 큰 일감 주고 물건 가져가고 결제는 아주 조금만 해 주고. 아빠가 빚까지 얻어서 꾸려왔는데 그렇게 몇 번 하다가 쥬위시들이 쌩까 버리니까 날라간 거야.


미국에서 성공! 철수 교육과 풍요로운 미래를 동시에!


아빠의 꿈이 쓰러져버렸어 너무너무 쉽게. 살림하던 엄마는 손톱 가게 초보로 일을 시작하셨어. 결코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쥬니어 하이스쿨(우리나라로 치면 중학교 - 편집부 주)도 끝이 보이고 다가오는 여름방학이 끝나면 철수도 하이스쿨 프레시먼이(미국 중등 교육 체계의 9학년 - 편집부 주) 돼. 참 막막한 봄날이 철수 가족 어깨 너머로 왔다갔다 하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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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공짜 과외


아빠 아는 분의 소개로 일요일날 아침에 두 시간 과외를 받게 됐어. 뉴욕직업학교에서 뭘 가르친다던가 하는 공짜 과외 샘.


샘이 말했어. 


안녕, 넌 누구냐?


정철수입니다.


철수가 말했어.


응 철수... 너는 지금 여기 왜 와 있는 거야?


아빠가 찾아가 보라고 해서 왔어요.


철수야, 사는 게 재밌니?


.재미... 없는 거 같은데요.


'재미 없어요'라고 안 하고 '없는 거 같아요' 요렇게 말하는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어?


... 없는데요


그럼 수고스럽겠지만 웬만하면 '있어요', '없어요' 이렇게 말해 줄래?


......


철수는 공부를 잘하고 싶어한다며?


(끄떡끄떡)


그럼 공부를 얼마나 잘하고 싶은데?


그건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거 같은데요.


에이 그럴 리가. 아마 생각했던 걸 잊어버린 걸 꺼야. 엄마한테 전교 1등 할 거라고 했다면서? 오케이. 공 부를 잘하고 싶은데 잘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거지? 문제가 뭐라고 생각해? 왜 마음은 있는데 못하고 있 는 건데?


잘 모르겠어요.


한국에서 너 공부 잘 한다고 칭찬이 자자했다면서?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럼 자부심을 가져도 돼. 넌 공부 쪽으로는 확실히 똑똑한 거야.


하지만 지금은 아니거든요.


오케이. 자 지금 얘기하는 김에 너 생각 좀 해 봐라. 너 성적 팍팍 올릴라면 필요한 게 뭐야?


영어를 배워야할 것 같아요.


그래? 그럼 일단 영어부터 마스터하고 또 다른 필요한 걸 생각하면 되겠네.


저... 영어 선생님이세요?


나? 아냐. 그냥 쪼금만 갈쳐 줄 거야. 내가 아는 데까지만.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냐? 하 하. 철수야 너 징검다리 알지? 이제부터 내가 냇가에 놓인 징검다리고 넌 건너는 사람하는 거야. 니가 나 를 딛고 시냇물을 건너는 거지. 건너고 나면 그 담엔 니 앞으로 큰 강이 나올 거야. 그 큰 강을 건너는 다리 는 니가 직접 만들어 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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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첫 영어 수업


샘의 첫 수업은 간단했다.


첫째, 영어를 십 년 해서 마스터하겠다는 헛꿈을 깨라. 내가 반 년을 해서 도달할 수 있는 수준을 설정하고 거기까지 가서 늘어난 실력을 깔고 앉아서 다음 반 년의 목표를 정해라. 그 때의 너는 지금의 너가 아니므로. 목표는 니가 필요한 만큼으로 잡아라. 지금 너는 교과서 시험지 또렷이 읽고 선생 수업 또렷이 듣고 시험지에 단답형으로 알아먹게 쓸 수 있음 된다. 말은 잘 못해도 된다. 상대가 열 마디 하는 거 알아만 들으면 '예스, 노 땡스'만으로도 발등의 불은 다 꺼지니까.

 

 

그니까 지금 니가 못해서 답답한 거, 절박하게 필요한데 너한테 없는 '영어'만 조지라는 거였다. 당장은 네이티브 영어 수준 같은 말은 잊어 버려라. 최소한 앞으로의 반 년 동안에는.


그래서 첫 과제가 앞으로 반년 후의 목표 영어 수준 설정. 그리고 철수에게 샘은 제대로 읽고 쓰기 9학년 수준, 말하기는 4살, 듣기는 8살로 하자고 목표를 정해 줬어. 두 달 반 여름방학이 끝나고 나면 당장 성적이 나와야 되니까.


두 번째가 현재 수준파악. 이걸 샘은 항상 해야 하는 주제파악이라고 하셨다. 주제파악 테스트는 샘이 묻고 철수가 답하고의 반복. 그러다가 파악되는 게 있음 그거 같이 공부하기. 철수야 에이, 비, 씨, 디 한 번 쭈욱 해 봐. 천천히.


- &^%%^^*()%$#&*(-________-)$%^^$


철수 발음이 개판이라고 샘이 알파벳을 갈쳐줬어(영어이야기 2를 읽어보든가).


미국 와서 진짜 오랜만에 철수는 정신이 맑아지고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어. 정말 간만에 뭘 하나 제대로 배웠다는 느낌. ESL 미국 할머니 따라 하는 거 하고는 확연히 다른.


'아... 영어를 한국말로도 배울 수 있는 거구나'


'이런 거였어? 이렇게 첨부터 엉망이니까 아무 것도 안 된 거야'


샘이 했던 말이 하나 또 있어.


모르는 건 그냥 알아버리면 된다. 영어는 못 하는 게 아니고 모르는 거다.



3. 두 번째 영어 수업


알파벳 제대로 만들어 오기 숙제를 샘이 테스트했어. 결과는 합겨~억!


철수 너 임마 너 같은 녀석은 첨 본다. 어떻게 그렇게 개판이던 발음을 1주일 만에 고칠 수가 있었어?  도 이십 년이 걸려서 겨우 깨달은 것을... 흑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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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이 대견해 하고 나름 억울해하기까지 해 주니까 철수는 오늘도 기분이 무지 좋아. 그러고보니까 기분이 좋았던 날이 거의 없었어 미국에 온 후론. 내성적인 철수가 같은 연립에 사는 7학년 동생에게 알파벳을 가르쳐달라고 부탁한 건 새로운 경험이었어. 쪽 팔린 건 처음 잠시였고, 한 번 시작하니까 평소 학교에서 말 한 마디 변변히 안 나눴던 친구들에게도 부탁을 하게 되대. 지난 1주일, 철수는 알파벳에 미친 넘이 되어 버렸던 거였어. 완전 영어 거지 철수.


너 apple 한 번 해 봐. 나 apple 해 볼테니까 니가 들어 봐. 내가 abcd 알파벳 해볼 테니까 듣고 이상하면 고쳐줘 봐.


미국에서 숨만 쉬는 횟집 수족관 속 광어가 아니라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사는 멋진 사람으로 살고 싶다. 아마도 철수의 마음은 그렇게 고함을 치기도 했을 거야.


"철수 니가 미국 살면서 아마 조금 화가 나있었던 거 같다"고 하면서 샘은 철수의 노력을 성취하는 사람만이 가진 용기라고 말했어. 그니까 철수는 멋진 남자에 속하는 거라고.


그리고 다시 주제파악 시간. 니 주제를 알라. 그리고 그걸 넘어서라. 샘이 칠판에 적고 시작하는.


자, 아주 어려운 질문. 한국말로 짜장면이 몇 자냐?


세 글자 같은데요.


어이, 철수. 너 그 '같은데요' 표현 웬만하면 관 둬라. 쓸 데만 쓰도록. 확신이 없으면 그냥 '~라고 생각합 니다' 요렇게. 다시, 그럼 책상은?


두 글자요... 라고 생각합니다.


한글은 글자 단위로 음절 갯수가 나와. 아버지 하면 세 음절, 엄마 하면 두 음절. 거의 예외가 없어. 오케 이? 역시 센스가 있어서 바로 알아듣네. 근데 영어는 좀 달러. 자 문제 나간다. desk는 몇 음절?


데... 스...크... 세 음절요.


그럼 student는?


스... 투... 던... 트... 네 음절요


야, 너, 음절이 영어로 뭔지는 아니?


씰러블(syllable)요.


오케이. 오늘은 요거해야 되겠네. 씰러블. 철수야 씰러블이 틀리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 혹시 아니?  본사람들이 우리 김치를 기므치라고 한다는 거 알지? 김치는 2음절인데 3음절로 늘려서 말하고 있지.  니까 우리가 영어음절을 지멋대로 늘려서 말을 하면 학교는 하그교, 옥상을 오그상, 혹은 오그사으, 책상 을 채그사으, 컴퓨터를 커므퓨터, 식당을 시그다으, 아침을 아치므, 안경을 아느겨으... 이 정도 되면 못 알아듣겠지? 그니까 알파벳 발음하고 음절을 제대로 해야 등신구제가 돼. 알파벳이 산수에서 낱낱의 숫자 들이라면 음절에 대한 이해와 연습은 덧셈 쯤 되는 기초이자 반드시 마스터해야 하는 먹기 쉬운 떡이 야. 왜냐? 알고 나면 날름날름 보이는 단어마다 맛나게 먹어치우게 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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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은 철수에게 오른손을 가슴에 꽉 밀착시키라고 시켰어. 그리고 '엄마'를 해 보래. 가슴이 몇 번 울리나 보라고. 가슴은 두 번 울리대. 샘이 그래서 2음절이래. '바보' 해 보래, 또 두 번 울리는 가슴. 알파벳 '에이취(H)'를 해 보래. 요건 한 번 울렸어. 그래도 미국 짠밥이 있는데 당연하지. 앞의 '에이'는 한 번 가슴이 울리고, '취'는 입끝에서만 소리가 나서 가슴이 울리지 않아. 한 번 울렸으니까 1음절. 그리고 한글로 '데스크' 하니까 세 번이 울리네. 샘이 가슴에 손 얹고 시범을 해 보여 영어로는 한 번에 '데ㅅㅋ', 1음절이라고. 그러고보니까 뒤의 'ㅅㅋ(스크)'는 귓속말 할 때 그 소리구나. 가슴이 울리지 않는. 알고서 해 보니까 너무 싱겁게 쉬운 1음절 '데ㅅㅋ'


재미있어 하는 철수. 


'와... 내가 영어만 했다하면 '왇? 왇?' 거리던 인간들이 내가 미워서 그러던 게 아니었구나'


도니엄는사라므을개터르이라고부른다

돈이 없는 사람을 개털이라고 부른다


'으잉? 내가 저러고 있었어? 씰러블을 마스터하고 싶다. 진짜 하고 싶다'


철수 머리에 앤돌핀이 마구 돌기 시작해.


student도 'ㅅ튜던ㅌ' 요렇게 2음절이 되고, 'disk, risk, ski, box, stew, stove' 다 1음절. 음절을 정확히 발 음하면 미국 거지 깽깽이건 교수건 누구건 무조건 니 말을 또렷이 알아들어 철수야. 그리고 니가 정확히 말할 수 있는 단어는 미국넘(이나 여성분)이 지가 아무리 빠르게, 아님 입에 빵을 물고 얘기를 해도 니 귀 에 들려. 또렷이 알아듣는다는 얘기지. 왜? 니가 아는 단어니까. 그러니까 니가 제대로 말할 수 있는 단어 는 니가 듣는 입장에서 누가 말하면 당연히 깨끗하게 들린다. 그게 살아있는 단어란 거야 알간?


그리고 샘이 이런 말도 했어


철수야 씰러블 마스터하기 싫어질 때 내 말 기억해라. 누가 너 부를 때 '처르수야 처르수야' 그러면 좋게 싫게?


그 주의 숙제는 Youtube에서 syllable tutorial for kids 검색해서 비디오 30개 보고 따라하기(더 보는 건 니 맘이라고 샘은 그랬지), 다시 만나기까지 1주일 동안 영어 쓸 때 단어마다 신경써서 몇 음절인지를 고민할 것 두 가지였어. 물론 고민은 그 단어를 크게 소리내서 말하는 거 포함.



4. 세 번째 영어 수업


샘 왈,


읽어 보세요. butter


(r 발음 신경 쓰면서) 버...털


철수야 디스이즈낫브리튼, 디스이즈어메리카 엔드 틀렸어~ 다시 해 봐.


(역시... 하면서), (혀 꼬부리고) 버럴!


오케이 오늘 주제파악은 여기서 스탑하고, 단어 읽기 공부를 하기로 하자. 철수 너 영한사전 보면 발음기 호 있지? butter 찾아 봐, 지금... 그렇지, 어떻게 돼 있어? butter [bΛt?r] 이렇게 돼 있네. 철수 너는 이걸 읽을 줄 알면서도 말할 때는 '버털'이라고 해 근데 '버털'이 아니고 '벝얼'이라고 읽어야 돼. 'ㅌ'이 뒤에 있 는 'ㅓ'에 붙어서 '터'가 되는 게 아니고 앞에 발음 밑에 받침으로 들어가는 거야 유갓읻? '벝얼'이라고, 오 케이? '벝얼', '벋얼', 빠르게 하면 '버럴'로 들리지. 근데 이 단어만 빼서 네이티브한테 천천히 정확히 시켜 보면 '벋얼'로 말해. 그리고 그이들 귀에는 '벋얼'이 다 들리는 거고. 우린 음절 단위 체계라서 잘 안 들 려. better도 꼭 같아 '벹얼', '벧얼', '베럴'로 들리는 거야. 그리고 사실은 '벧얼'이라고 말하고 있는 거 고. battlefield 할 때 '배를'도 같은 거고. 그리고 그 단어가 몇 음절인지를 모르면 강세를 제대로 못 줘.  이 강조하고 싶은 건 알파벳 되고 발음기호 제대로 발음하면 무서운 게 없어진다는 거야. 우리 철수가 알 아들었길 바래.


참 너무 당연한 거 같고 쉬운 말들인데 나는 왜 몰랐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철수의 생각 위로 여름이 오고 있었어. 여름방학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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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들이여, 여름방학을 절대 그냥 보내지 마시라 - 샘의 당부 



공짜 과외샘의 입장

 

 

철수에겐 지금, 딱 10주. 그니까 두 달 반의 시간이 있어. 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또 하루 온종일을 잘 못 알아먹는 수업 받고 숙제하면서 일 년을 박박 기며 살아야 해. 시간만 충분하다면 뭔들 못할까. 갓 태어난 아기처럼 엄마가 하루에 100번씩 엄마를 말해주고 약 5만 번에서 7만 번 엄마라는 말을 들은 애기가 기적처럼 엄마를 따라하게 되듯이 영어를 영어로 배울 수도 있겠다만 철수는 시간이 없어. 두 달 반이라는 시간 안에 우선 철수의 무너져내린 자긍심을 회복시켜야 해. 자신감과 긍지. 친절하게, 재미있게 지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차근차근 늘어놓으면 그걸 하나하나 자기 껄로 만들면서 철수는 펄펄 날 수 있는 녀석이고, 내 경험상 올해가 지날 때 철수는 ESL에서 나올 거야. 


내가 믿는 건, 사용할 수는 없었지만 철수가 지 머리속에 암기하고 있는 영어들이야. 최소 5000개 이상 되는 영어 단어들과 지가 읽어온 문장들이 철수에겐 지금 개량해서 사용가능한 탄환과 수류탄들이야. 외국어를 보고 뜻을 안다는 것은 지난한 노력과 시간을 요해. 그걸 철수는 이미 어느 정도 해왔고. 그니까 철수의 영어공부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사용가능하게 바꾸는 작업이 될 거야. 뭔가 하나를 일정기간 노력했으면 뭔가 그만큼이 쌓여 있는 거지 그지? 해 본 넘과 아예 안 해 본 넘은 다른 거야.


십 수 년을 하고도 영어가 안 된다고 하는 너희들도 힘내. 그 긴 세월동안 입에 단내 나게 한 니들 영어공부가 허사는 아니여. 설마 도로겠냐. 담배를 예로 들자면 니들은 니들 등짝에 담배 보루를 빡스때기로 매고 있는 거여. 라이터가 없어서 피우지를 못할 뿐(영어 못하는 니들이 '불'필요한 넘들이라고 하는 거 아니야. 흐.. 썰렁했나?).


사실 난 한글로 영어 가르치는 방법만 쬐메 알어. 영어로 영어를 가르치는 법은 몰러. 철수의 현상황에선 한국어를 못하는 영어선생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왜? 철수가 알아듣게 납득이 가게 설명을 못하잖어. 철수는 영어를 못 알아들으니까. 전에 맨하탄 음대 들어가서 고생하던 학생 하나는 피아노 수업시간에 교수가 그 부분은 요렇게 하라고 하는 말을 못 알아들어서 계속 어버버하면서 피아노를 쳤는데 교수가 그 학생이 개긴다고 생각을 해서 낙제를 시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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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잡담 하나만 할게. ESL 유학인가 뭔가 하는 거에 대해선데, ESL란 게 원래 이민 와서 2, 30년이 지나도 영어를 배우지 않는 주로 남미 이민자들에 대한 자국민 동화정책으로 시작된 거거든. 할매 할배들 오셔서 영어공부란 거 함 해보셔들. 이게 에이고 저게 비여... 그니까 지금도 ESL에서 추구하는 목표는 맥도날드 가서 커피 샌드위치 영어로 주문하고 간단한 의사표현을 영어로 하는 정도라고 봐야 해. 철수에게도 할 얘기지만 뉴욕에 Queens College ESL이라고 있어. Queens College 안에 있는 건데 대학이 아니고 어학교습학원이야. 여기서 영어 버벅거리는 아이들을 꼬실 때 하는 소리가 '토플 성적 없이도 우리 ESL 코스만 다 통과하면 대학 본과 입학이 가능하지롱'이야.


이게 한 3년 돈 처들이면서 다니라는 건데. 가능은 하지 물론 즈그말대로. 허지만 대학 본과 입학 허가 받고 나면 입학 전 여름방학 때 대학 배치고사가 기다리고 있어. 영어, 수학 두 개 보는데 이게 ESL 영어테스트가 아니라는데 함정이 있지. 독해하고 에세이 두 개. 토플 점수도 제대로 안 나오는 넘이 뭔 재주로 배치고사를 통과하냐. 걍 대학본과 ESL 직행이지(또 ESL이야 알간?).


혹시나 통과를 하는 불상사가 나면 바로 본과 영어수업 받게 되는 곤경에 처하게 되지 졸업 필수학점 이수과목을 첫판부터 F로 시작하믄 안 되잖어~ 것도 이제는 'ESL 다 끝나면 본과 넣어주께'가 아냐. 시험 다시 봐서 본과 ESL 못 벗어나면 본과 졸업필수 과목들 수강이 안 돼. 계속 도전할 수 있는 것도 아냐. 세 번 기회 준다. 그럼 어쩌라고? 1년 정도 ESL 하다가 관두는 거지 뭐. 졸업도 못하면서 평생 교양과목 학점만 쌓고 있을 순 없잔여. 거기다 유학생 학비가 그 지역 거주 학생 학비의 4배야 4배. 퀸즈 칼리지의 경우 뉴욕주 거주 학생이 1학점당 260불을 내. 타 주 유학생은 1학점 당 535불. 외국유학생은 대강 얼마? 졸업하는 데 120학점 필요하니까. 그럼 일 년에 30학점, 한 학기에 15학점, 15 곱하기 1000은, 계산이 너무 복잡해서 어렵네. 읽고 있는 니들이 계산해 보고 생각을 해봐라. 중요 과목들은 수강도 못하면서 저런 거금을 처들이면서 학교 다녀야하는 건지 아닌지.


댓글에 답도 좀 써주고(계산 진짜 안 되는 사람들을 위하야). 혹시 시간이 남아도는 인간은


가서 보든가 말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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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c.cuny.edu/admissions/bursar/pages/qctuitioncosts.aspx


혹시 사연 많은 미국 유학을 했다면서 시카고 대학, 컬럼비아 대학, 브룩클린 칼리지 우짜고 하면서 이름이 훌륭한 대학 몇 군데 다니다가 귀국했다는 말을 들으면 대충 위의 과정을 몇 바퀴 돈 걸로 보면 될 꺼야.


그리고 본과 영어 수업 얘기. 미국서 최소한 대학학력고사를 쳐서 영어를 백점 만점에 60점 이상 받았다는 얘기는 한국에서 국어 과목을 한 75점 맞은 걸로 보면 돼. 국어에 간단한 문장만 나오디? 시, 소설, 수필, 희곡, 고문, 논설... 마구 나오지? 그리고 다 한국말인데 다들 90점 이상 받어? 아니잖아?


여기 대입시험 SAT가 수준이 토플 곱하기 5에서 10쯤 되걸랑 물론 개개인이 느끼는 바가 다르니까 곱하기 5에서 곱하기 10으로 했어. 그 시험을 일정 수준 이상 받아야 가는 데가 대학이잖어. 간단히 말해서 '요정도는 되어야 수업을 따라올 수 있어요' 뭐 그런 얘기 아니겠어? 실력이 안 되면서 본과 수업 듣는 건 그니까 고문이 되는 거야. 그럼 토플만 치고 유학 가서도 본과 수업 잘 버티는 유학생들은 뭐냐고? 어학 쪽으로 타고난 바탕 위에서 엄청나게 하는 거지 뭐 못 알아들으면 몽땅 미리 읽어가고 그러고도 모르겠으면 또 읽어야 되고 영어권 넘들 다섯 시간 걸리는 과제 이틀 밤샘하고도 다 못 해서 코피 쏟고, 얘네들 두 시간 동안 읽을 거 열 시간 걸려 읽고. 꿋꿋하게 버텨내고 기어이 졸업하는 유학생들은 정말 존경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나는.


없는 형편에 와서 그 개고생 다하며 힘들게 공부하고도 돈 없고 빽 없으면 돌아가서 시간 강사도 못하더라만 어려운 환경에서도 유학와서 졸업장 제대로 받는 사람들은 정말 성실하고 의지가 있는 인물들이야. 형편이 천정을 밀어 찢어지게 좋은 것들은... 모르겄다 내 아는 바가 없으므로 노커멘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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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으로 돌아와서리, 그니까 철수가 지금 목표로 하는 수준은 절대 네버 에버 ESL 수준이 아닌 거야. 하이스쿨 무사졸업? 것도 절대 안 되는 말씀. 나 철수 대학 가서 개고생하는 거 보고 싶지 않어. 한인이민가정 고등학교 졸업률이 끽해야 40프로라고 했었지? 그 40퍼센트에서 50퍼센트가 대학을 가고, 그 대학을 간 50퍼센트에서 20퍼센트만이 정상 졸업을 해. 100명 고등학생 중 40명이 졸업을 하고, 그 중에 20명이 대학을 가고 그 중에 4 명이 대학을 졸업한다는 얘기야. 


미국 평균이, 전체인구 중 약 20퍼센트가 2년제 포함 대학을 졸업하고 있어. 그니까 이민가정 자녀들의 학업성취율은 흑인들보다도 못해(흑인비하하려는 거 아니다. 학업성취율 야그야).


철수는 ESL 탈출을 시작으로 학교 공부 잘 하다가 대학 본과로 바로 가는 게 목표가 되어야 해. 철수 엄마 아빠 등골 휘는 거 막기 위해서도, 철수가 인생을 허비하는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도. 물론 좋은 대학을 갈 수는 없어. 너무 준비할 시간이 짧아서 그래. 허지만 일단 뉴욕 시립대 2년제 입학을 하고 일 년 학점만 잘 내면 장학금 받으면서 짱짱한 4년제 편입은 매우 가능성이 높아. 보석 같은 넘인데 자칫 진흙에 묻힐 뻔 했던 철수가 신명나게 사는 세상이 난 보고 싶으.


여하튼 이제 며칠 뒤면 철수의 여름방학이 시작해. 철수의 인생에 있어서 금싸라기 같은 시간이.


철수하고 뭐하고 놀 꺼냐고? 알파벳 했지? 글구 씰러블 했지? 영한사전 발음기호 보고 발음하는 공부 했지? 이제 단어는 제대로 읽을 줄 알겠네? 그럼 이제 철수는 문장을 읽고 해석하는 것부터 할 꺼야. 에잉? 말부터 해야 되는 거 아니냐고? 앞에 사전 펼쳐놓고 한참을 읽어도 모르는 넘이 쌸라쌸라 말을 하면 그건 알아듣는다고라? 무신 그런 심한 농담을. 읽어도 모르는 넘은 들어도 몰러. 니는 아니라고 우겨도 나는 그리 생각하는 바니까니 철수는 싫어도 읽기부터 할 꺼란 게 내맘이야.


편안하고 넉넉한 저녁들 되기 바래. 즐거우면 더 좋고. 커피 한 잔 마셔야것다.

 

 

쏘로웅~

 

 



 


편집자 주



게시판의 글이 3회 이상 메인 기사로 채택된 '무숙자'님께는 가카의 귓구녕을 뚫어 드리기 위한 본지의 소수정예 이비인후과 블로그인 '300'의 개설권한이 생성되었습니다.  


조만간 필진 전용 삼겹살 테러식장에서 뵙겠습니다.



 

 

 

 

 

 

 

정체불명 무숙자


편집: 딴지일보 홀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