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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5. 28

coc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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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한겨례


1.전교조 때리기


한겨례가 입수한 국정원 내부 문서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에 따르면 원세후니 국정원장님께서 부서장 회의 중 ‘전교조를 정리해야겠다’는 명랑한 발언을 하시었다고 한다. 국정원법 위반, 선거법 위반으로 2심에서 징역 3년, 자격정지 3년을 선고 받은 대인배의 행보는 역시 남다르다. 가히 犬 국정원, 아, 아니, 大 국정원의 원장 직을 맡을 만한 인물이다.


원세후니 사례에서 알 수 있듯, 나랏일 하시는 분들 눈에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이 참으로 눈엣가시인가 보다. MB때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전교조 때리기’의 전통을 간략하게 살펴보자.


정부는 ‘해직교사는 전교조 조합원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전교조는 교원 노동조합이니 교원, 즉 선생님들만 조합원이 될 수 있다는 거다. 그러나 전교조는 교원뿐만 아니라 아래와 같은 부칙을 통해 해직교사도 조합원 자격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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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교직원노동조합 규약


2010년 MB가카 시절, 노동부는 전교조의 이 규약을 문제 삼으며 해직교사는 조합원이 될 수 없도록 시정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전교조는 이에 불응하였고, 2012년 노동부는 2차 시정명령을 통보한다. 전교조는 역시 거절.


2013년 레이디 가카가 취임한 그해 9월, 노동부는 다시 전교조에게 규약 시정명령을 내린다. 이번엔 그냥 명령이 아니라 최후통첩이었다. 1개월 이내에 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노조 설립 취소'를 통보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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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부가 전교조에 보낸 시정명령


전교조의 입장에서 살펴 보자. 전교조가 이 명령에 따를 경우 노동조합 지위는 유지할 수 있지만 해직교사 9명을 내쫒아야 한다. 반면 불응할 경우엔 노조 지위를 잃게 될 위험이 있으나 해직 교사들은 안고 갈 수 있다. 전교조는 이를 두고 조합원 총투표를 시행했다. 그 결과, 조합원 68.59%가 시정명령을 거부하는 것에 투표하였다. 투표율은 80%. 정면 돌파를 선택한 것이다.


2013년 10월, 결국 노동부는 전교조에 ‘노조 아님’을 통보하였고, 전교조는 이 명령이 부당하다며 노동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


2014년 6월 19일, 1심 재판부는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 노조로 보지 않는다’는 노동부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전교조의 노조 지위를 박탈한다.


이에 전교조는 항소로 맞서고, 2심 재판부는 노조원 자격제한을 규정한 교원노조법 2조가 ‘위헌적인 조항이라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며 졸라 법조인 같은 말투로 판결을 연기하였고, 헌재에 위헌심판을 제청하였다.



2.해직교사 9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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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그렇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전교조는 왜 6만여 명에 달하는 조합원 중 고작 0.015%인 9명의 해직교사를 이토록 보호하려 하는 걸까. 단순히 자존심이나 명분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보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걸고 있다. 아니, 어쩌면 전교조의 운명이 걸려 있는 큰 싸움일지도 모른다.


물론 전교조가 ‘노조 아님’ 처분을 받는다 하더라도 노조 자체가 ‘강제 해산’ 되거나 ‘불법노조’로 전락하는 것은아니다. 다만 그 지위가 합법노조에서 법외노조로 바뀌는 것이다. 전교조가 법외노조가 될 경우 ‘노조’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 없으며, 교섭권과 단체 행동권을 잃게 되고 지원금을 받을 수 없게 된다. 노조 전임자도 둘 수 없다. 조직은 있으나 사실상 손발이 다 잘리게 되는 것이다.


누구보다도 전교조 교사 스스로가 이런 위험성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자칫 무모해 보이는 싸움을 강행하는 이유는 자신들도 ‘잠정적 피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교조가 끌어안으려는 9명의 교사가 해직된 이유를 살펴 보자.


이모 교사는 사학 비리를 고발하며 재단 퇴진 운동을 벌이다 해직을 당했으며, 박모 교사는 우열반을 나누고 벌점 제도를 운영하는 것에 항의하다 해직 당했다. 송모 교사를 비롯한 6명의 교사들은 교육감 선거 중 선관위의 유권해석을 받고 기부금을 걷었으나 공무원법 위반 처분을 받아 해고 되었다.


이처럼 9명의 해직교사 대부분이 비리에 맞서거나 교육 정책에 대해 항의하다 ‘부당하게 해고되었다고 판단’되기 때문에 전교조 교사들이 함께 싸우려 하는 것이다. 사학비리가 판을 치고, 교육정책을 엉망으로 끌어가는 이 나라에서 자신들도 언제 그들처럼 부당하게 해고될 지 알 수 없으니 연대를 통해 힘을 모으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다.



3.조합원의 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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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헌법재판소는 위 교원노조법 2조의 위헌여부를 결정한다. 조합원의 자격을 교원으로 한정 짓는 것이 헌법에 규정되어 있는 과잉금지원칙을 벗어 나는것인지, 단결권과 평등권을 침해하는 것인지 아닌지를 따져보는 것이다.


현재 전교조 때리기의 근거가 되고 있는 이 조항이 위헌 판결을 받을 경우, 전교조는 남은 2심과 대법 판결에서 승리하게 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지게 된다. 이번 헌재의 판단을 분수령으로 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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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정치적 판단을 삼시 세끼 챙겨 먹듯 꼬박꼬박 내리고 있는 헌재가 이번에는 어떤 판결을 내리게 될까.


글로벌 스탠다드를 입에 달고 살면서 국제기구의 경고 정도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정권이니 신경 쓰이지도 않겠지만, 이와 관련하여 OECD 산하 국제노동기구(ILO)“해직자들에게 노조원이 될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하는 법률 조항은 결사의 자유 원칙과 양립할 수 없는 모순된 것”이라며 교원노조법 2조를 개정하라는 성명을 발표하며 이례적으로 긴급개입(urgent intervention)을 선포하였다.


또한 전 세계 172개국의 401개의 교원단체가 가입되어 있으며 회원 수가 3000만 명에 이르는 국제교원노조연맹(Education International)은 오늘 아침 "국제 노동 기준을 위반하고 있는 고용부의 전교조 노조 등록 취소 결정은 무효화돼야 한다"는 의견서를 헌재에 제출했다.


뿐만 아니라 프랑스, 독일, 영국, 미국 등 대다수 국가의 교원노조는 퇴직자, 해고자, 대학생 등에게도 조합원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 교원의 지위, 권리가 향상되어야 한다는 뜻에서 교원노조에 가입해 힘을 실어 주는 이들을 막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교원이 아닌 경우 직책을 주거나 의사결정권을 제한한다.



4.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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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 같은 걸 예측하면 꼭 펠레가 탄생한다는 딴지의 유구한 전통이 없지 않으나, 요번에는 다를 것이라는 근거없는 기대를 바탕으로 헌재 판결을 예측해 보도록 하겠다.


결국 헌재는 ‘위헌’ 판결을 낼 것으로 보인다...고 쓰고 있었는데 판결이 났다.


'합헌'. 교원노조법 2조가 정당하다는 판결이다. 8:1 합헌이란다. 교원 노조에 비교원이 개입할 시 노조의 자주성을 해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제한하는 교원노조법 2조는 합헌이라는 논리다. 야당이 추천한 김이수 재판관만 해당 조항이 교원노조 탄압에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며 위헌 판결을 내렸다.


헌재의 이 판결은 조합원 가입 자격은 조합 스스로 결정해야 할 문제라는 것을 간과하였으며, 앞서 본 외국의 사례처럼 조합원 가입은 받되 의결권은 제한하는 방식은 고민조차 하지 않은 듯 하다. 아니, 철저히 계산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정부는 언제나 전교조를 눈엣가시로 생각했으니까. 1996OECD에 가입하기 위해 억지로 전교조를 승인해줬던 그 시대에서 단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다. 그들은 교사의 단결을 끔찍하게 싫어한다.


이 판결로 박근혜 정권의 전교조 때리기는 탄력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죽도록 맞고 있던 사람이 도움을 요청했더니 도움은 커녕 때리는 놈에게 빠따를 쥐어준 격이다. 전교조가 해직교사를 조합원으로 받아들인 핵심 논리가 헌재에 의해 꺾였으니 앞으로 진행될 항소심과 대법원 재판이 어떻게 될지 눈에 선하다.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밀어내는 길에 고속도로가 뚫린 셈이다.



"교원노조법 2조는 합법인데, 전교조는 그 법을 어긴 위법 집단이야. 그러니 전교조 지위박탈"



통진당을 해산시킨 그 방법 그대로 전교조를 해산시키려는 것이다. 물론 아직 최종 판결이 난 것은 아니다. 남은 재판에서 전교조가 산별노조로 인정될 경우 교원이 아니여도 가입할 수 있다는 주장 등을 통해 법적으로 다투어 볼 여지가 남아 있긴 하다. 하지만 지금 상황으로 봐선 남은 판결들도 그냥 깔아 뭉게고 갈 가능성이 높다. 이번 정권은 앞서 본 원세후니의 말처럼 '전교조를 정리'하고 싶어 하니까. 국제기구의 경고나 글로벌 스탠다드 따위로 멈출 수 있는 그들이 아니었다.


1989년 전교조 창립 이후 26주년이 되는 오늘, 헌재는 생일을 맞은 전교조에게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판결을 내렸다.


대단하다. 장하다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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