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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야당의 필리버스터가 끝내 중단되었고, 192시간의 피나는 노력이 무색하게 결국 테러방지법이 통과되어 버렸다(‘테러빙자법’, ‘국정원강화법’, ‘아빠따라하기법’ 등 수많은 별칭이 있으나, 해당 법안이 가지는 내용의 본질이 어떠하든 간에 공식적인 이름이 그러하니 그냥 테러방지법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독자들도 알다시피 작년 11월 파리에서 충격적인 테러가 발생한 후, 전 세계는 테러의 충격에 빠졌다. 그 위험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테러를 예방하는 것이 각국의 안보를 위한 가장 중요한 과업 중 하나로 떠올랐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집회에 복면을 쓰고 참가하는 이들이 IS에 비유되는가 하면, 갑자기 일부 언론에서 모든 이슬람을 위험인물로 묘사하기도 하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한국 역시 테러의 안전지대일 수 없다며 테러방지법 제정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12월 8일 국무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IS가 우리나라에 테러방지법이 없다는 걸 알아버렸다"며 테러방지법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했다. 파리 테러 이후 한참동안이나 한국 역시 이슬람 급진주의 단체 IS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고, 곧 이전의 북한 프레임으로 돌아왔을지언정 파리에서 벌어진 참상은 분명 테러방지법에 힘을 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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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13일 파리 테러 부상자를 경찰이 다급히 이송하고 있다

사진 출처 - <파리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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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30일, 파리 테러 참사 현장 바타클랑 공연장에서 헌화하고 있는 박 대통령 

사진 출처 - 청와대


테러의 피해를 입은 당사국인 프랑스 역시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본래 법대로라면 15일 이상 지속될 수 없는 국가비상사태가 두 번씩이나 연장되어 5월에야 그 기한이 종료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미 두 번씩이나 과반수가 한참 넘는 투표 결과로 연장된 국가비상사태가 계속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또한 테러 혐의가 의심되는 이중국적자의 프랑스 국적을 박탈할 수 있음을 헌법에 명시하는 건 역시 이미 하원에서 통과되어 상원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국제법에 따라 무국적자를 만드는 상황을 만들어서는 안 되기에 해당 법을 적용하는 데에 있어 보다 신중해야 한다는 것에는 대부분 동의하지만 더 이상 프랑스 사회에 테러와 같은 행위를 용인할 수 없다는 굳은 의지가 그 어느 때보다 표출되고 있는 상황이라 하겠다.


그와 함께 난민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 역시 높아지고 있다. 현재 프랑스에서 난민 문제를 대표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것은 바로 ‘칼래(Calais)의 정글’. 이미 이전 기사를 통해서도 여러 번 언급한 바 있는데, 이 ‘칼래의 정글’은 프랑스 북부, 영불해협을 통하여 영국과 프랑스를 오가는 배들이 정박하는 항구가 위치한 도시인 칼래에 조성된 난민촌이다. 4제곱킬로미터 가량 되는 면적에 6천여 명이 모여 살고 있는 이곳은 말 그대로 프랑스의 골칫거리.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난민들이 최종적으로는 영국으로 건너가고 싶어 하지만, 지난 2003년 프랑스와 영국 사이에서 맺은 투케(Touquet) 협정으로 인해 두 국가의 경계가 프랑스령에 위치하고 있어 칼래에서 더 이상 진전하지 못 하고 있는 상태이다. 게다가 칼래 시가 속한 노르 파 드 칼래 피카르디(Nord-Pas-de-Calais-Picardie) 지역은 2015년 12.5%의 실업율을 기록하였다. 이는 프랑스 전체 평균 실업율 10.3%를 뛰어넘는 수치. 즉 칼래는 현재의 프랑스를 뒤덮고 있는 주요 사회 문제인 실업과 난민 문제가 가장 첨예하게 뒤엉켜 있는 지역인 것.


게다가 점차 테러와 난민 두 가지 이슈가 결합하기 시작한다. 파리 테러가 이슬람 단체에 의해 일어났다는 점과, 테러범들이 난민 행렬에 섞여 들어왔다는 정황이 포착되면서 난민에 대한 시선은 원래도 곱지 않았음에도 불구, 더 부정적으로 변했다. 12월 지역선거에서는 극우 정당인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Marine Le Pen)이 지역 대표로 나서면서 1차전에서 40%가 넘는 득표율을 챙기며 승리하는 상황까지 보여 준다. 다행히 사회당(PS) 측에서 이 지역을 포기하면서 결과적으로는 공화당(LR)이 승리를 거두지만 ‘칼래의 정글’을 둘러싼 긴장은 점차 커져가기만 한다. 난민의 인권을 지지하는 시민들과 활동가, 난민으로 인한 피해를 호소하며 주민들의 생활권을 우선 주장하는 시민들과 활동가 사이의 긴장이 첨예해져 몇 번의 아찔한 상황들이 연출되었다. 칼래 지역의 반 난민 집회에서는 전 프랑스 외인부대 수장이 정부의 금지 조치에도 불구하고 난민에 반대하는 집회에 참여했다가 체포되는가 하면, 이 집회에 참가하려던 이들 중에는 테이저 건과 커터 칼을 소지하고 있다가 불법 무기 소지죄로 재판에 회부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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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래 시내 샤를 드골 동상에 적힌 낙서, "프랑스 X발(Nik la France)"

사진 출처 - <파리마치>


난민에 대한 인도적인 입장에 무게를 두고 있던 정부는 결국 2016년 초, 난민촌 축소 계획을 발표한다. 결국 2월 12일, 파 드 칼래(Pas-de-Calais)의 파비엔 부치오(Fabienne Buccio) 도지사가 ‘칼래의 정글’ 철거 계획을 발표하고, 2월 말 프랑스 사법부가 일부를 철거하는 것을 허가한다. 그로부터 나흘이 지난 시점인 3월 1일 월요일, 정부는 기어이 철거 작업을 시작하고 말았다. 정부는 무력 개입은 없을 것이라 호언장담했고, 순조로이 진행되는 듯했으나 오후께에 투입된 경찰력과 시민단체 사이에 무력 충돌이 생기고야 말았다. 경찰은 정글 살던 난민들의 텐트에 불을 붙였다. 난민들과 탈세계통합주의자 단체 ‘No border’ 회원들은 돌 등을 던지며 반격했고 곧 경찰의 최루가스 세례를 맞아야 했다. 난민들과 해당 NGO 단체 회원들은 소방관의 진입을 방해하기 위하여 텐트 20채에 불을 붙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3명의 NGO 활동가와 1명의 미성년자 난민이 체포되었고, 5명의 공화국 보안 기동대(CRS) 대원이 가벼운 부상을 입었다고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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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 중인 ‘칼래의 정글’

사진 출처 - <렉스프레스>


저녁 7시에서 8시, 150여 명의 난민들이 쇠파이프를 들고 정글로 진입을 시도했다. 일부는 경찰대원들을 향해 돌을 던졌고, 일부는 영국으로 향하는 차량을 부수기도 했다. 7시 45분경, 경찰이 이들을 저지하였다. 월요일 15번 고속도로(A16)는 운행이 중단되기에 이르렀다. 그 이후 야간에는 별다른 폭력 사태가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글 철거는 3월 4일 현재에도 진행 중이다. ‘난민들의 집(Auberge des migrant)’ 시민단체 소속 프랑수아 게녹(François Guennoc)은 경찰들이 아침 일찍 몰려와 아직 집안에 있던 난민들을 몰아내고 철거를 시작했다며, 그 태도나 방법이 폭력적이고 불쾌했으며 이는 정부의 기존 약속에서 어긋나는 처사라고 항의하였다. 국경 없는 의사회 칼래 지역 책임자 올리비에 마르토(Olivier Marteau)는 "본래 철거는 사람이 더이상 살지 않는 텐트를 대상으로 평화롭게 진행될 것이라고 발표되었다"며, 실상은 난민들이 조밀하게 모여 있는 구역에 폭력적인 철거를 가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그곳에는 가족들과 아이들이 살고 있었다고 항의했다.


파리 테러 이후 4개월. 아직도 프랑스를 ‘인권의 나라’라 칭할 수 있는지 점차 의구심이 들고 있다. 테러 소식은 여전히 사람들의 공포심을 유지시키며 아직도 적잖은 이들이 국가비상사태를 지지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모두들 국가비상사태가 개개인의 자유를 속박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나, 2015년 한 해를 뒤덮은 테러 위협은 쉽사리 프랑스인들의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3월 2일, 하원에 새로운 테러방지법이 상정되었다. 조직범죄와 테러 및 그 자금조달 대항을 주요 목적으로 사법부, 내무부, 경제부 장관에 의해 소개된 이 개정안은 곧 사회당 및 좌파 정당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쳤다. 현재 350여 개에 달하는 개정안에 대한 검토가 남아 있으며 하원의 최종 발표는 3월 8일에 진행될 예정이다. 하원에서 통과된다 하더라도 상원에서의 검토 및 승인이 있어야 제정될 수 있다. 현재 프랑스 정부는 이 새로운 테러방지법이 국가비상사태가 끝나는 5월 26일 전에 통과되기를 촉구하고 있는 중으로 알려졌다.


3월 2일 프랑스 하원에서 통과시킨 안은 1) 신원조사 후에 4시간까지 계류 가능, 2) 군경의 무기 사용 조건 완화, 3) 지하드 가담 후 귀국 시 행정감독 시행, 4) 군경의 이동 카메라 사용 보편화, 5) 미성년자 출국 시 허가 필요, 6) 야간 가택 수색 허가 등이다. 한국 언론에서는 테러용의자의 통화내용 및 통신정보를 영장 없이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안이 부결되었다며 '테러방지법 부결'이라 했지만, 나머지 안건들이 통과되었음으로 프랑스 정부가 개인의 자유를 야금 야금 갉아먹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하겠다. 게다가 프랑스는 2016년 축구 유로 리그를 개최하도록 되어 있어 점차 안보 문제가 더욱 심각하게 논의되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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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헤럴드 경제>


최근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테러 정국'에 대응하는 각국 위정자들의 모습은 묘하게 닮아 있다. 하지만 그에 대응하는 사회의 모습은 조금씩 다른 것 같다. 닮은 듯 다른 한국과 프랑스. 한국에 계신 분들께 심심한 위로를 표하며 글을 마친다.



덧붙임. 2016년 2월 넷째 주 TOP25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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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랑스는 지금> 연재 기사는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프랑스에서 가장 많이 읽힌 인터넷 기사 매일 5건, 한 주에 총 25건을 수집하고 분석하는 기사로, 동시대의 프랑스 사회에 대한 이해를 돕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2. 프랑스어로 된 매체의 기사들을 모두 프랑스인들만 읽는다는 보장은 없지만, 전세계 프랑스어 사용자의 대부분이 프랑스 본토에 분포하고 있음을 감안하여 구글의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기사 검색 시간은 프랑스 시간으로 매일 오전 8-9시 사이입니다.  프랑스 현지 시간에 따라서 기사를 수집하여 오류를 최대한 좁히려 하였습니다.


3. 본 연재물에서는 프랑스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 혹은 프랑스 매체에서 다루는 모든 기사를 대상으로 하고 있지는 않는 관계로 그저 수박 겉 핥기 식으로 프랑스 사회의 모습을 보여줄 수 밖에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4. ‘인권의 나라’라던가 ‘낭만의 나라’ 정도로 알려져 있는 프랑스의 민낯은 어떤지, 한국의 모습과는 어떻게 닮고, 또 다른지를 전할 수 있다면 제 목표는 충분히 전달한 것일 듯 합니다.





지난 기사


사법부vs전 대통령 사르코지

파리 테러, 현재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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