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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코너는 4.13 총선특집인 <저평가 우량주를 찾아서>와 함께 

<20대 총선 잇(it)후보> 기획 중 하나다.


힘닿는 데까지 열쒸미 발굴할 예정이니,

독자분들도 주저 없이 추천해 주시라.

 





오늘은 딴지 선정 ‘20대 총선 잇(it) 후보’로 더불어민주당에 비례후보 공천을 신청한 전국시설노조 이진희 위원장을 소개한다. 생소하겠지만, 수십 년 동안 비정규직 노동운동과 진보정당 활동을 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직함은 위원장이지만 동시에 아파트 관리업체의 전기기사로 20년 넘게 근무하고 있는 노동자이기도 하다.


아파트 경비, 청소 등 시설 관리 분야는 노동권이 취약한 우리 사회에서도 노동 인권 침해의 대표적 사각지대로 불린다. 빈번한 해고로 인해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일부 몰지각한 주민에 의한 인격 테러를 당하는 을(乙) 중에 을 직종이다.


얼마 전 부산의 모 아파트에서 동대표가 경비원에게 90도 인사를 강요하여, 엘리베이터 앞에서 등교하는 학생에게 경비원이 허리를 굽힌 사진은 이런 현실을 가장 극명히 보여준 장면이었다. 이에 앞서 압구정 현대아파트에서는 경비원이 주민의 폭언에 시달린 끝에 분신자살한 사건도 있었다. 그리고 그해 말 경비원들은 모조리 해고되었다.


이진희는 이들 비정규직을 대표해 더민주의 비례대표 후보 공모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지금까지의 배경만 보자면 지역구 국회의원의 대표성 한계를 보완해 계층과 직능을 대변하기 위한 비례대표 제도의 목적에 부합하는 요건은 갖춘 것으로 보인다. 그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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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 리버럴, : 이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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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 더불어민주당 비례 대표 공모에 응모했는데, 느낌이 어떤가?


이 : 비례대표는 대중적으로 선거운동을 전개하지 않기 때문에 아직 실감이 안 간다. 취업 이력서를 내고 합격 통보를 기다리는 심정에 더 가깝다. 서류가 통과되면 면접인데, 이번 인터뷰를 모의 면접이라 생각하고 있다.(웃음)


 : 그럼 면접에 대비하여 강도 높은 압박 인터뷰를 전개하겠다.(웃음) 삶의 이력을 보니 66년생에 아주대 경제학과를 중퇴하셨다. 운동권 학생이었는가?


이 : 80년대 시절 대학생들 대부분이 그랬듯이 다 비슷한 경로를 통해 데모도 하고, 학생 운동하지 않았나? 특별한 이력이라고 볼 수도 없다.



노동운동 대신 생계문제로 전기기사 취업


 : 근데 왜 4학년 때 중퇴하셨나? 1년 남았는데... 그 동안 낸 등록금이 아깝지 않은가?


이 : 학생 시절에 공부 대신 데모만 했으니 졸업장이 있었다면 학교에 미안할 일이다. 평생 노동운동하겠다는 결심이 있었기 때문에 졸업장은 오히려 부담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이야 대졸 출신이 흔하고, 또 그들이 생계를 위해 생산직에 종사하는 게 특별하지 않은 시대가 되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오히려 대학 출신이 생산직에 들어가기가 힘들었다. 운동권이 노동운동을 목적으로 취업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사측에서 경계를 많이 했다. 그래서 졸업장을 굳이 따야겠다는 생각은 안했던 것 같다.


 : 후회하지 않나?


이 : 후회 없다. 지금까지 인생이 후회되지 않는데, 대학 졸업장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 그래서 결심대로 노동운동에 투신하게 되었는가?


이 : 성남 공단에 있는 한 업체에 취업했다. 한 1년간 프레스 일을 했는데, 92년도 총선 때 창당된 민중당에서 후보를 도울 일손이 너무 필요하다고 해, 일을 그만두고 선거를 도왔다. 그러나 민중당이 3% 지지율을 받지 못해 해산된 뒤 다소 공백기가 있었다. 당시 분당 신도시가 막 들어설 때였는데, 아파트 관리소에서 사람을 구한다고 해서 당분간 생계 방편으로 생각하고 들어갔다. 마침 전기기사 자격증이 있고 젊어서 쉽게 취업되었다.


 : 그럼 노동운동을 목적으로 취업한 것이 아니었는가?


이 : 그렇다. 사실 노동운동을 하러 들어간 곳은 1년 남짓 일하다 선거 때문에 그냥 나왔고, 생계를 위해 입사했던 아파트 관리업체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노동운동을 하게 될 줄은 당시에 생각도 못 했다. 그 당시 노동운동하면 공장 생산직을 생각하는 게 일반적인 통념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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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때부터 지금까지 20년 넘게 계속 거기서 근무하고 있는가?


이 : 그렇다. 생계를 위해 취업해 여기서 노조활동을 한 것은 내 자신에게 있어서 다행이라고도 생각한다.


 : 다행이라고? 어떤 점에서?


이 : 사실 과거 80년대 운동권들이 노동운동을 목적으로 위장 취업하다 보면, 아무래도 의식화라는 목적으로 들어갔으니까 자신도 모르는 새에 일종의 선민의식이 생겼을 것 같다. 그런데 나는 누군가를 의식화하겠다는 목적 없이 입사하여 같은 처지에서 일했기 때문에, 운동권으로서의 오만함 같은 것은 덜했던 것 같다.


 : 위장취업해서 노동운동했던 운동권들에게 그런 심리가 어느 정도 있었단 말인가?


이 : 뭐, 일반화해서 말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마르크스주의 서적 몇 권이랑 문건을 읽은 먹물 20대 청년이 수십 년 짬밥의 노동자들을 지도하러 현장에 들어갔다는 것이 상식적인 상황은 아니지 않나, 이런 생각이다.


 : 그래도 그들 때문에 노동운동이 발전했다는 면도 있지 않을까?


이 : 물론 훌륭한 노동운동가로 성장한 사람도 있고, 또 겸허하게 배우는 자세를 가졌던 분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운동권이 과연 노동운동에 큰 도움이 되었는지 생각해보면 유보적일 수밖에 없다. 소모적인 정파라든가, 대중과 동떨어진 운동권 문화라든가 하는 부정적인 면도 같이 봐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그 그림자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국회 들어가면 노동인권법 제정하겠다.”


 : 이 위원장은 시설관리직 노동자이기도 한데, 최근 경비원들의 처지와 관련한 언론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얼마 전 부산의 아파트 경비원이 동 대표에 의해 모든 주민에게 출근길 인사를 강요당한 사건이 있었다. 또 폭언에 시달린 압구정 현대아파트 경비는 분신자살을 시도했다. 어떻게 생각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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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 모든 국민들이 분노를 감추지 않았던 사건이다. 대다수의 시민들은 그런 황당한 갑질을 비난할 만큼 건전한 상식을 갖추고 있다. 아파트 주민들도 마찬가지다. 주민 대부분은 시설 관리인들과 이웃처럼 인간적 유대 관계로 잘 지내고 있다. 사실, 출근길 인사를 강요한 그 사진을 찍어 SNS에 고발한 것도 그 아파트 주민이다.


일부 입주민 대표자 몇몇이 그런 횡포를 부리는 것이 문제다. 그런 갑질에 관리인이 저항하기도 힘들지만, 아파트 주민들은 그런 횡포가 있는지조차 알지도 못하고, 안다고 해도 나서서 방어해주기도 쉽지 않다.


때문에 피고용인에 대한 인격적 모독과 같은 일에 대해서는 어떤 제도적 방어 장치가 필요하다. 비단 아파트 관리직만이 아니라 서비스직, 특히 감정 노동자들에 대한 인격 모독이 너무나 심하고 빈번하다. 스튜어디스에 대한 라면상무 사건에서 보듯이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무릎을 꿇리고, 폭언과 폭행 모욕을 주고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회사는 고객의 모든 요구에도 감내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거의 서비스직 노동자를 노예 대하듯 하는 비상식적인 일마저 발생하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유달리 서열문화가 강해서 그런지 다른 나라보다 심한 것 같다.


오죽하면 감정노동자의 약 40%가 중증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하겠는가? 그런대도 갑질 횡포가 드러나면 도덕적인 비난만 한때 들끓고 만다. 강력한 제도적 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내가 국회 들어가면 이들을 보호하는 노동인권법을 제정하여, 상식을 벗어난 갑질 횡포에 대해 회사가 노동자를 보호할 의무를 지우게 하고, 민형사상 배상 제도를 도입토록 하고 싶다. 그것만은 꼭 하고 싶다.



아파트 노조위원장, 아파트 주민대표 되다


 : 이진희 위원장은 어디에 살고 있나? 아파트인가 주택인가?


이 : 아파트다.


 : 아파트 주민으로서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의 관리인들을 보면 남다르게 느껴지나?


이 : 아파트 주민일 뿐만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주민대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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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웃음) 이거 정말 아주 아이러니하다. 거주지와 근무지가 다르지만 어쨌든 노동자면서 동시에 사용자인 셈인데, 관리비 절감 차원에서 경비원을 해고하고 자동 방범 시스템 도입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이 : 경비를 해고하고 방범 시스템 도입이 과연 주민복리에 더 좋은지는 의문이다. 무조건 안 된다고 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주민들의 공정한 판단을 구해야 하지 않겠나? 인정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대체로 주민들은 절감되는 관리 비용보다 경비원분들을 통해 얻는 주거 편익을 더 가치 있게 보는 것 같다. 주민투표하면 부결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런데도 이런 문제가 불거지는 것은 자동방범 시스템 업자들이 주민 대표에게 지속적으로 로비하는 영향이 크다고 본다. 얼마 전 가양동 아파트에서 그런 시스템 도입을 빌미로 경비원 해고를 강행했던 입주자 대표와 주민 대표와 갈등만 보더라도 그렇다. 주민 투표에서 두 차례나 압도적으로 부결되었는데도 그걸 강행하는 걸 보면, 몇 천 원 관리비 아끼겠다는 것이 입주자 대표의 본심은 아닌 것 같다.


 : 택배 받아주고, 쓰레기 분리수거 등의 일도 결코 작은 일이 아닌데..


이 : 사실 택배, 쓰레기 분리수거는 경비원의 고유 업무가 아니다. 그럼에도 주민 편의를 위해 그 일을 해준 것이 이제 거의 고유 업무가 되다시피 한 것이다. 문제가 되었던 가양동 아파트 경비원들은 해고 반대 기자회견을 하러 가는 도중에도 단지에 널린 쓰레기를 줍고, 분리수거 포대를 종류별로 정리했던 사람들이다.



최저 임금인상 부담스러워하는 경비원


 : 해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아파트 경비원들과 청소원들 임금이 올라가면 주민들 부담이 약간이라도 늘어날 텐데... 이진희 위원장이 주민 대표로 있는 아파트에서는 관리인들의 임금을 얼마나 인상했나?


이 : 최저임금 인상률보다 더 높였다. 10% 넘는 수준이다.


 : 주민들 반발이 있지 않은가?


이 : 단 한 명도 없었다. 우리 아파트단지 세대가 300세대가 안 되는데도 불과 몇천 원 인상에 그친다. 주로 시간제 근무하는 분이 많아 임금 자체가 높지도 않다. 근데 사실 경비업무하시는 분들 중에는 높은 임금 인상을 부담스러워하는 분들도 있다.


 : 왜 그런가?


이 : 시설관리 업무는 고령자들이 많다. 짤리면 어디서 일자리 구하겠나, 그런 불안이 가장 크다. 임금 인상 때문에 큰 부담을 느껴 해고하지 않을까 불안하여 심지어 최저임금 인상을 싫어하는 분들까지 생길 정도다. 그래서 임금 수준보다 고용 안정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 본인은 비정규직 대표로서 나왔는데, 그동안 비정규직을 위해 어떤 활동을 해왔나?


이 : 전국시설관리노조 조합원들 모두가 외주 용역업체에 속해 있는 분들이다. 내 자신이 비정규직 직원으로서 우리 조합원들을 대표해 20년 넘게 활동해 왔다. 조합원들과 함께 투쟁하고 교섭한 것은 노조위원장으로서 당연한 일이겠지만, 진보정당에 결합해서 제도 개선 투쟁에도 앞장서왔다.


최저임금 대상에서 제외되었던 경비원에게도 최저임금이 전면 적용될 수 있도록 입법 청원을 하고, 원청업체의 사용자성 인정, 위탁관리업체 변경 시 고용승계, 포괄임금제 철폐 등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현안 사항을 비정규직 보호법안에 포함시키도록 압박해 왔다.


리 : 용역업체, 외주.. 이런 업체에 근무하면 모두 비정규직인가?


이 : 정규직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 조건이 붙는다. 첫째 정해진 기간이 없고, 둘째 사용사업주와 직접 고용하는 자가 정규직이다. 이런 조건의 정규직이 아닌 모든 피고용인은 모두 비정규직이다.


리 : 그러니까 간접고용은 고용자와 사용자가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정규직 조건에서 벗어나 있는 건가?


이 : 그렇다. 예전에는 어떤 사업장에서 상시적으로 근무한다면 그 사업장 소속 노동자가 되는 것이 당연했지만, 기간제법, 파견법이 만들어지면서 갑자기 고용관행이 천지개벽처럼 바뀌어서 소속된 회사와 근무하는 사업장이 별개로 되는 일이 생겼다. 과거에는 그런 경우는 아주 특수한 직군에만 있었는데 이제 아웃소싱이 보편화되어서 상시적인 고용불안 체제다.



비정규직, 출구 규제가 아니라 입구 규제해야


리 : 최근 박근혜 정부는 비정규직 기간을 4년으로 늘리고, 파견법을 확대할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다.


이 : 그것만큼은 단호히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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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 근데 2년 제한을 둔 현행 비정규직법이 통과될 때도 2년마다 해고하라는 법이라고 노무현 정부 때 노동계가 엄청 반대하지 않았나?


이 : 맞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 기간제 노동자의 사용 기간에 제한을 두는 방식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원래 2년이라는 기간 제한을 둔 것은 그 정도 근무하면 상시, 지속적인 업무로 간주하여 정규직으로 채용하라는 것이 도입 취지인데 현실을 보면 얼마나 안이했던 생각인가? 그런데 그걸 오히려 4년으로 더 연장시키겠다는 것은 문제를 더 악화시킬 뿐이다. 이렇게 출구 규제를 할 것이 아니라 입구에서부터 규제해야 한다.


리 : 입구 규제.


이 : 처음부터 사용제한을 두어야 한다. 이게 상시적인지 일시적인 일인지 아닌지는 대부분 명확하게 알 수 있다. 가령 은행 창구일은 일시적인 일이겠는가? 그래서 출구 규제가 아닌 입구 규제를 해야 한다. 경영적인 측면에서도 고용 안정은 조직이나 직무에 대한 몰입을 끌어내기 위한 기본이다. 그래야 생산성도 좋아지고, 일의 효율성도 높아질 것 아닌가?


리 : 파견 남발도 그런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이 : 맞다. 아웃소싱이 직접 고용보다 비용절감에서 얼마나 효과 있는지도 의문이다. 내가 있는 업종만 보더라도 그렇다. 노동자 입장에서는 근무 장소와 일은 똑같은데 사장만 바뀐 꼴이다. 그런데 임금은 푹 줄어들었다. 그렇다고 원청회사가 아웃소싱업체에 주는 이윤을 생각하면 인건비 총액이 많이 주는 건 아니다. 결국 중간 아웃소싱업체에서 노동자 임금을 중간에서 갈취하는 효과밖에 더 있나? 공공기관의 경우는 직원 사우회가 아웃소싱업체로 둔갑해 퇴직한 임직원들의 노후보장 역할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파견 노동자가 그들 노후를 뒷받침해주고 있는 셈이다. 조폭 수준의 중간 갈취다. 말이 아웃소싱이지 사실상 임금 가로채기 인력관리업체나 다를 바 없다. 간접고용이라는 이름으로 임금을 중간착취가 법으로 보장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박정희 시대 때도 중간착취를 법으로 금지했는데, 노동문제로만 본다면 그 시절보다 훨씬 퇴보한 셈이다.


리 : 맞다. 아웃소싱은 사실 경영적인 측면에서도 회의론이 나오고 있다. 같은 일을 해도 소속이 서로 달라 소통도 잘 안 되고, 이직률도 높다. 이것이 제품의 질까지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가령 고객 상담 부문이 많이 외주화되는데, 고객 의견이 제품 개발에 반영되지 않는 문제가 많이 발생한다고 한다.


이 : 그렇다. 비정규직의 폐해는 노동자들이 가장 큰 피해자지만 결국엔 회사의 경영적인 측면에서도 반드시 효율적이라고만 볼 수 없다. 비정규직 폐해는 너무나 명확히 드러나 있다. 이 문제를 두고서는 대한민국 미래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IMF 외환위기, 해고가 트렌드


리 : 사실 이전에는 우리나라도 일본과 비슷하게 평생 고용 비슷한 체제였는데, 비정규직법이 만들어진 것은 IMF 외환위기 이후 아닌가?


이 : 바로 그렇다.


리 : 시설관리분야도 IMF 위기 영향을 많이 받았나?


이 : 물론이다. 그때 생각하면 기가 막힌 게... 해고가 마치 트렌드처럼 퍼져나갔다. 물론 많은 기업이 도산하거나 위기에 처해서 노동자가 무더기로 짤려 나갈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던 곳도 많았다. 그런 곳에서 정리해고야 불가피하겠지만, 문제는 그런 영향과 전혀 무관한 곳에서도 해고를 마치 선진 경영의 기법으로 여기고 마구잡이로 할 때도 많았다.


리 : 그런 사회 분위기 기억난다. 미국의 해고왕 GE의 잭웰치의 경영론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분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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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FORTUNE>


이 : 가령 내가 근무하던 분당의 A 아파트 단지에서 관리업체와 계약을 해지하면서 거기서 수십 년 근무한 직원들을 다 같이 짤랐다. 그러면 그 일을 대체할 사람이 누군가가 또 와야 하지 않나? 그러면 옆에 있는 B단지, C단지 근무자들을 채용한다. 마치 순환 근무하듯 서로 돌아가며 해고하고 채용한다. 그러면 새로 채용된 사람들은 그 아파트 보일러실부터 구조까지 모든 것을 처음부터 알아가야 하지 않겠나? 얼마나 비효율적인가.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해고가 민간 기관만이 아니라, 대학이나 공공기관에서도 비일비재했다.


제가 우리 아파트 단지에서 경기지역 전체로 노조를 조직하고, 마침내 전국 조직을 결성하게 된 계기가 바로 IMF 외환위기 때 무차별적으로 남발하는 정리해고 때문이었다. 노조 결성식을 위해 부산에 갔던 날 부산대에서 시설관리직원들이 용역업체와 계약해지와 동시에 모두 해고되었다. 해고통지서를 받아들고서 어쩔 줄 모르며 눈물만 훔치던 아주머니들 손을 붙잡고 그날 당일 총장실 점거투쟁에 들어갔다. 몇 달 동안 투쟁한 끝에 복직되었지만, 참 생각해보면 국립대학이란 곳에서도 그렇게 몰상식적으로 무분별하게 해고한다는 것이 참담했다.


리 : 그러니까 IMF로 신자유주의적 광풍이 불면서, 노동 유연성이 글로벌스탠다드로 제시되고...


이 : 그렇다.


리 : 그때가 김대중, 노무현 정권 시절이 아니었나? 민주 진보 정권에서 신자유주의 앞장서 도입한 셈인데... 비록 집권이 오래전 일이지만, 바로 그 정당에 들어가서 활동하는 건 모순 아닌가?


이 : 물론 김대중, 노무현 정권 시절의 과오랄까 그런 한계에 대해서는 단호한 평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 시대적 상황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리 : IMF가 강요한 구조조정 같은 거?


이 : 사실 외환위기가 없더라도 IMF가 요구한 일련의 정책들은 당시 정치권 모두가 추진하려던 정책이었다. 민영화, 재벌개혁, 주주 자본주의, 노동 유연화, 개방화, 규제 완화 그런 것들... 90년대 시대 상황을 생각해보자. 국내적으로는 민주화 10년 되고 처음으로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 당시 민주화세력은 그동안 국가폭력에 저항해왔기 국가 기구라든가, 국가 주도 정책 전반에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 반대 편향으로 민영화 같은 것을 민주화나 자유화 연장으로 여기는 분위기도 있었다. 당시 세계정세도 비슷했다.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가 무너지면서 시장주의, 자유주의가 세계적인 대세였다. 심지어 사회민주주의 진영도 제3의 길이라는 이름으로 그런 물결을 받아들였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펼친 정책도 당시 이러한 시대 흐름을 쫓던 것이다. 그러니까 신자유주의를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정체성이라고 무조건 규정할 수만은 없지 않나 그런 생각이다.


리 : 그래도 오늘날 양극화가 거기서 비롯되지 않았나?


이 : 물론이다. 그 시대 노동자와 서민들이 겪은 피해는 말할 수 없다. 빈부격차 심화는 세계적 현상으로도 번졌다. 그러나 80년대부터 시작된 이런 신자유주의 물결은 이제 곧 종말을 눈앞에 두고 있다. 미국의 샌더스 열풍, 영국 노동당 코빈의 등장, 피케티 현상 등은 아주 상징적인 사건들 아닌가?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지난 대선 때 경제민주화, 복지 정책이 최대 이슈가 되었다. 불과 몇 년 전 이명박의 ‘부자 되세요’ 선거 분위기와 비교한다면 상전벽해의 변화다. 미국이나 유럽이 1930년대 대공황을 겪은 후, 40년대부터 사회민주주의적인 가치로서 번영의 시기를 이끌었던 그런 시대적 분위기와 흡사해졌다.



신자유주의 시대 종말, 사회민주주의 시대 다시 찾아와


리 : 더민주당이 사회민주주의적 가치를 지향한다는 근거는 있나?


이 : 새누리당이 시장주의로 방향을 가져가고 있다면, 그와 차별성을 갖기 위해서라도 사회민주적 가치를 자기 정체성으로 가져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리 : 사회민주주의 이념을 뚜렷이 내세우는 건 정의당 같은 진보정당 아닌가? 왜 진보정당 노선을 취하지 않은가?


이 : 두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다. 우선 현행 소선거구제하에서는 양당제를 극복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정치학에서 뒤베르제 법칙이라고도 한다는데 어쨌든, 제3의 정당은 한국에서는 안 된다. 우리와 비슷한 승자독식 소선거구제 갖고 있는 미국이나 영국도 백 년 넘게 양당제의 정치구조를 갖게 된 것도 다 그 때문 아닌가.


그래서 미국의 진보주의자들,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민주당으로 들어가서 왼쪽을 차지했다. 미국 민주당은 대공황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원래 남부를 중심으로 한 지역 보수정당이었는데, 대공황을 거치며 노동자 흑인 여성 사회주의자들이 대거 합류하면서 완전히 성격이 변화되지 않았나? 우리도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미국 민주당에서 샌더스가 뜬금없이 나타난 게 아니다. 루즈벨트 시절부터 뿌리가 있는 사회민주주의 풀뿌리 그룹이 민주당 내부로 들어갔고 그런 조직들이 마침내 샌더스로 발아된 것이다. 사회민주주의적인 가치를 지향하는 조직이나 개인이라면 우리도 그런 중장기적인 전망을 갖고 한국의 제1야당에서 뿌리를 내리는 것이 전략적으로 바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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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과연 한국의 진보정당들이 과연 진보적인가에 대해 다소 회의적이다. 통진당 사태를 보더라도 그렇지만 민주노동당 시절 정파들의 행태를 보면 과연 우리 국민의 상식에 얼마나 부응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그리고 사실 정의당이 내건 정책과 이념이 지금 더불어민주당의 정강정책과 얼마나 차별화되는지도 잘 모르겠다.


리 : 지금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필리버스터를 중단시켰다. 이에 대한 생각은?


이 : 고육지책이라고 생각한다. 필리버스터 중단이 테러방지법 독소조항을 방임하겠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필리버스터를 지속할 경우 선거 연기라는 초유의 사태, 헌정 중단이라는 사태를 맞이할 수 있는 우려 때문에 불가피했을 것이라 이해한다. 다만 그 과정이 너무 급작스러웠다는 것은 좀 유감이다.


리 : 김종인 체제가 공천에 전권을 행사하고, 운동권 대신 전문성 있는 인사를 중용하겠다고 하는데 본인에게는 공천에 불리하다고 생각하는가?


이 : 하하.. 비례대표 도입 취지대로 공천한다면 유리할 것도 불리할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비례대표는 지역 대표의 한계를 보완해 다양한 계층과 직능 대표를 선출하여 국민의 대표성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지난번 문재인 대표가 만들었던 혁신공천위원회에서 청년, 여성, 비정규직 등의 사회적 약자를 우선 배려하겠다는 공천 세칙은 비례 대표제 원리에 충실한 규정이라고 생각한다.


국민의 대의기구 국회는 국민을 닮아야 한다. 그런데 19대 국회를 보면 법조인 비율이 15%에 육박한다. 우리나라 인구의 15%가 변호사나 판검사인가? 운동권도 심각하지만 문제는 특정 직업군이 이렇게 국회를 과다하게 점유하는 것 자체부터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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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뉴스타파>


제가 비정규직을 대표해서 나왔는데, 저보다 훌륭하고 능력 있는 다른 분이 비정규직 대표가 된다면 아무런 유감이 없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에 850만 비정규직을 위한 자리가 단 한 석도 남아 있지 않다면 정체성을 의심받게 될 것이다.



비정규직을 당으로 조직해 정권교체에 공헌할 터


리 : 맞다. 특히 비정규직 문제는 양극화 문제와 직결되는데 그들을 대변하는 사람이 이렇게 적다면 문제 해결 의지가 없는 것이다.


이 : 제가 하고 싶은 말씀을 대신해주서 정말 고맙다. 사실 정규직 비정규직, 대기업 중소기업과 같은 이중화된 노동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우리나라 미래는 없다. 이 심각한 노동의 이중화 문제를 해결하는데 남은 생을 다 바치고 싶다.


리 : 끝으로 본인이 정치인으로서 어떤 전망을 갖고 있는가?


이 : 우선 당에 큰 보탬이 될 수 있는 정치인이 되는 것이 목표다. 우리 당 지지층을 보면 고학력, 젊은층, 전문직 등에서 지지율이 높지만, 상대적으로 저소득층과 비정규직들에게 희망이 되지 못하고 있다. 비정규직을 조직하고 이분들과 함께 정권교체에 기여하고 싶다.


리 : 장시간 인터뷰 감사하다. 비정규직의 목소리를 국회에 전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 이렇게 인터뷰까지 해줘서 영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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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노동자 850만 명, 노동자 3명 중 1명이 비정규직이다.


'850만 명'이라는 숫자로는 심각성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 사회 곳곳에서 밀린 이들, 언제 잘릴지 몰라 고용불안에 떠는 이들,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대우조차 받지 못하는 이들, 즉, 절벽을 등지고 사는 이들이 600만 명이라는 말이다. 


더 많은 이들이 절벽을 마주하기 전에 정치가 이 문제를 전면에서 다루어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이자 노동운동 현장에서 경험을 쌓은 그와 같은 사람이 필요한 순간이다. 우리에겐 '정치인'의 시각이 아니라 '노동자'의 시각으로 대변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이번 총선으로 비정규직의 고통을 온전히 전달할 수 있는 그가 더 많은 목소리를 낼 수 있기 바란다. 





리버럴


편집 : 딴지일보 coco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