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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죽인 수사관과 사건을 덮은 검사장

 

2020년 5월 미국 조지아주의 주도 ‘애틀랜타’가 불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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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 29일

미국 애틀랜타에서 벌어진 폭력시위 

출처-<게티 이미지>

 

11일간 계속된 시위로 425명이 체포되었고, 조지아주는 주방위군 3,000명을 투입해 진압해야 했다.

 

왜 이런 시위가 일어났을까?

 

한 명의 검사장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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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키 존슨 조지아주 브런즈윅 검찰 검사장

출처-<선거운동 홈페이지>

 

사건은 3개월 전인 2020년 2월 23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흐무드 아버리(Ahmaud Arbery)라는 흑인 청년이 조지아주 브런즈윅에서 조깅하다가 총에 맞아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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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흐무드 아버리

 

총을 쏜 건 백인 남성 3명이었다. 그들은 이렇게 주장했다. 

 

“아버리가 연쇄 절도사건의 용의자이며, 정당방위 차원에서 총을 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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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CBS 뉴스>

 

그러나 아버리는 비무장 상태였다. 또한 공교롭게도 3명의 백인 남성 중 한 명은 그레고리 맥마이클(가운데)이란 인물로 전직 검찰 수사관이었다. 검찰청에서 24년을 근무하다가 퇴직한 지 1년도 안 된 상태였다. 

 

출동한 경찰은 검찰청에 이 상황을 보고했다. 전화를 받은 인물은 현직 검사장 재키 존슨(Jackie Johnson)이었다. 존슨 검사장은 불과 1년 전 맥마이클의 상관이었다. 경찰은 나중에 이렇게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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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사건 조사에 개입했다. 검찰은 맥마이클이 도주 우려가 없다며, 체포영장을 발부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결국, 맥마이클 등 3명은 현장에서 체포되지 않고 풀려났다.

 

그 후, 이 사건은 이웃 지역 검찰청으로 넘어갔다. 원래 이 사건은 존슨 검사장의 검찰청 관할이었지만, ‘이해 충돌’을 이유로 이웃 검찰청이 맡게 된 것이다. 용의자 중 한 명이 24년간 해당 지역 검찰청에서 근무한 수사관이었기 때문에 당연한 조치였다.

 

사건을 넘겨받은 이웃 검찰청 조지 반힐(George Barnhill) 검사장도 역시 맥마이클을 체포하지 않았다. 그의 의견도 존슨 검사장과 같았다.

 

“총을 쏜 것은 정당방위로 보인다.”

 

그리하여 이 사건은 흔하디흔한 ‘흑인 범죄자가 총에 맞아 죽은 사건’으로 끝날 것으로 보였다.

 

 

사건의 반전

 

그러나 한 언론이 유튜브에 충격적인 영상을 공개하며 사건은 반전되었다. 사건 발생 74일이 지났을 때였다. 그 영상에는 맥마이클 등 3명이 자동차를 타고 멀쩡하게 조깅하고 있는 아버리를 쫓아가서 총을 쏘는 모습이 생생하게 찍혀있었다.  

 

산탄총과 권총을 뽑아 들고

피해자에게 다가가는 맥마이클 일당

 

맨몸의 흑인을 백인들이 총으로 쏴 죽이는, 말 그대로 ‘인간사냥’에 여론은 들끓었다. 그리고 또다시 놀랐다.  

 

“백주 대낮에 흑인을 총으로 쏴 죽인 백인들이, 3개월 동안 체포도 안 되고 ‘자유의 몸’으로 지내고 있다고?”

 

검찰과 경찰은 뭐하고 있었냐는 비난이 빗발쳤다. 그리고 해당 검찰청이 불구속을 지시했다는 사실에 분노가 일었다. 

 

74일 동안 자유롭게 지내던 맥마이클 일당은, 비디오 공개 이틀 만에 살인죄로 전격 체포됐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었다. 검찰과 경찰의 부당한 사건 처리에 분노한 흑인들은 애틀랜타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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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마이클 재판이 벌어지는 법원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군중들 

출처-<게티 이미지>

 

처음에 사건을 맡았던 두 검찰청은 ‘부적절한 사건 처리’를 이유로 재판에서 배제됐다. 새롭게 사건을 맡게 된 캅 카운티 검찰청의 린다 듀니코스키 검사는 맥마이클 일당의 유죄판결을 이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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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다 듀니코스키 검사는

‘흙수저’ 출신으로

로스쿨 야간수업을 다니면서

변호사와 검사가 된 인물로도 유명했다. 

출처-<게티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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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맥마이클 일당 3명은

재판 결과 살인 혐의 유죄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출처- <연합뉴스>

 

맥마이클 일당의 재판은 끝났지만, 검찰청과 검사장의 부적절한 대응도 도마 위에 올랐다. 무엇보다 전직 검찰 수사관 부하의 체포를 막고 불구속 수사를 지시한 재키 존슨 검사장은 호된 비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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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장 선거를 앞두고

선거운동을 벌이고 있는

재키 존슨 검사장

출처-<연합뉴스> 링크

 

마침 사건이 발생한 2020년은 대통령 선거뿐 아니라 검사장 선거가 있던 해였다(미국은 검사장을 선거로 뽑는다). 존슨 검사장은 10년 동안 검사장 선거에서 승리한 ‘터줏대감’이었고, 이번에도 재선을 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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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권자들이 재키 존슨 검사장을 쫓아냈다”는

제목의 지역 신문 기사 

출처-<AllOnGeorgia> 링크

 

 

사건의 결과

 

그러나 사건 발생 후 6개월 만에 벌어진 검사장 선거에서 존슨 검사장은 낙선하고 말았다. 단순 검사장 자리가 날아간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선거 1년 후인 2021년, 조지아 주검찰은 재키 존슨 전 검사장을 기소했다. 죄목은 다음과 같았다.

 

1. 수사 방해죄

2. 검사로서의 서약 위반

 

한마디로, 검사로서 공정하게 법을 집행하겠다는 맹세를 어겼다는 이유다. 주검찰은 검사장이 용의자인 맥마이클이 범행을 저지른 당일날 16번의 전화 통화를 했으며, 한 통화는 무려 21분에 걸쳐 계속됐다고 지적했다. 존슨 검사장에게 적용된 혐의는 최대 5년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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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낙선 후

구속되어 머그샷을 찍힌

재키 존슨 전 검사장

출처-<CBS47> 링크

 

여기까지만 보자면 사이다 결말이지만, 미국이라 할지라도 현실에선 고구마가 있었다. 미국에도 ‘전관예우’가 있는 것이다. 물론 한국에 비하면 ‘새 발의 피’이지만. 존슨 전 검사장은 2021년 기소됐지만, 3년이 지난 현재도 재판이 시작되지 않고 있다. 전직 검사장이 아니었다면, 이런 특혜가 계속됐을지 의문이다.

 

존슨 전 검사장 다음으로, 유권자들이 분노를 표출한 인물은, 사건을 넘겨받았던 이웃 검찰청의 반힐 검사장이었다. 그 역시 수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 사건은 정당방위”라고 말해 사실상 수사 방향을 지시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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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힐 검사장의 사임을 촉구하는 웹사이트에는

1만 5,000개 이상의

서명이 몰렸다.

출처-<Change.org> 링크

 

유권자들은 반힐 검사장을 상대로 ‘주민 소환 투표’(recall)를 시도했다. 유권자들은 2만 4,000명의 서명을 받아냈으나, 이중 무효 서명이 발견돼 소환투표는 성사되지 않았다. 분노를 실행에 옮긴 건 단순 유권자뿐 아니었다. 300명 이상의 조지아주 변호사들은 반힐 검사장을 징계해달라고 조지아 변호사협회에 신고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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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힐 검사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시위대의 팻말

출처-<게티 이미지>

 

빗발치는 비난에 반힐 검사장은 결국 2022년 선거에 불출마를 선언했고, 임기 만료로 검사장직에서 물러났다.

 

 

선거로 견제받는 판검사

 

위 사건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 미국은 판검사를 선거로 뽑는다. 또한 판검사의 논란 및 오류는 선거를 통해 유권자의 심판을 받는다. 유권자들은 자신의 한 표로 판검사를 견제한다. 

 

예를 들어,

 

1. 4년마다 선거에서 재신임을 물을 수도 있고, 

2. 커다란 잘못이 발견될 경우 ‘주민소환투표’를 진행할 수도 있다.

 

머나먼 미국의 시스템이지만, ‘판검사 직선제’는 우리에게 그렇게 낯설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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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차드 기어, 에드워드 노튼 주연의

영화 ‘프라이멀 피어’

출처-<Paramount Pictures>

 

수많은 미국 할리우드 법정 영화를 보면 흔히들 이런 장면들을 볼 수 있다.

 

1. 유명한 사건 재판에서 승소하여 선거 승리를 노리는 야심만만한 검사장의 모습

2. 검사가 패소하면, 상관이 “너는 모가지야. 다른 일자리 알아봐”라고 하는 장면

 

이 모든 것이 사실은 ‘판검사 선거’ 때문이다.

 

관심 있는 독자는 알고 있겠지만 ‘판검사 직선제’는 이제 한국에서도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판사, 즉 사법부의 경우는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가운데 유일하게 직접 선거를 통해 민의의 통제를 받지 않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에서도 사법부 직선제에 대한 논의가 낯설지 않다.

 

2016년 송영길·박주민·이용주 국회의원은 대한변호사협회와 함께 토론회를 열고 “검사장 직선제 도입이 시급하다”는 입장을 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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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법조신문> 링크

 

올해 총선에는 조국혁신당에서 검사장 직선제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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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오마이TV> 링크

 

물론 ‘사법부 직접선거’나 ‘검사장 직선제’가 만병통치약은 아닐 것이다. 판검사 직접 선거가 오히려 ‘정치의 사법화’를 심각하게 할 것이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그렇다면 그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왜 이렇게 판검사 직선제를 고집할까? 어떤 이유와 논리로 판검사가 선거로 견제받아야 한다는 걸까? 선거 말고 판검사를 견제하는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일까?

 

그래서, 다음 기사에서는 미국 현직 판사 및 법조계 관계자에게 ‘판검사 선거’에 대한 견해를 직접 들어보려 한다. 

 

기대하시라. 커밍 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