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정권 당시, 실질적으로 하나회를 관리한 인물
박정희가 자신과 같이 쿠데타를 주도했던 육사 8기, 즉 개국공신들을 견제하기 위해, 육사 11기를 중심으로 작정하고 키워준 게 하나회다. 이런 하나회가 뿌리부터 흔들리던 사건이 하나 있었다. 수많은 매체에서도 언급한 바로 그 ‘윤필용 사건’이다.
이후락(좌)과 강창성(우)
윤필용(좌)과 박종규(유)
박정희의 용인술은 전형적인 ‘상호 견제’였다. 이후락(중앙정보부장), 강창성(보안사령관), 윤필용(수도경비사령관), 박종규(대통령 경호실장) 등 2인자 그룹들이 상호 견제를 하며 눈치싸움을 벌이게 했던 거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게 윤필용이다. 육사 8기생이었던 그는 박정희가 5.16쿠데타 때부터 믿었던 인물이었다. 물론, 그를 잠시 멀리하고 그 자리에 김재규를 앉히며 적절히 사람들의 긴장감을 올리기도 했지만 말이다.
박정희와 악수하는 윤필용
출처-<국가기록원>
윤필용이 월남 맹호부대를 거쳐 수경사로 들어왔을 때, 김재규는 라이벌의 등장에 다시 긴장해야 했다. 이 부분도 잘 생각해 봐야 하는데, 김재규는 박정희와 함께 육사 2기생이었다. 같은 고향에, 교사 생활을 했다는 공통점은 이들을 서로 가깝게 만들었다. 그러나 박정희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이런 인연도 별로 소용이 없었다. 물론, 김재규가 직언을 하는 것이 눈에 거슬렸을 수도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었다.
“박정희는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완벽하게 군대를 통제한 대통령”
이기 때문이다.
5.16 군사 쿠데타 당시, 왼쪽부터 박정희 소장, 박종규 소령, 이낙선 소령, 차지철 대위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는 군의 무서움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이 때문인지 그는 자신 외에 다른 곳에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꺼려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군 내부 세력이 ‘권력’을 욕심내는 것을 극히 꺼려했다. 그 결과 철저하게 상호 견제와 감시를 위한 구조를 만들었다.
하나회는 박정희의 이런 생각들이 구체화된 조직이었다.
그렇다면 박정희 정권 당시 하나회를 실질적으로 감독하고, 키우는 역할을 누가 했냐. 그 인물이 바로 윤필용이다. 육사 8기생인 윤필용은 경북 출신에 대구에서 고등학교를 나왔다. 대통령이 좋아할 만한 출신에다가, 박정희 밑에서 근무도 했었다(박정희가 5사단장을 하던 시절 그 밑에서 군수참모를 했다). 5.16쿠데타 직후에는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실 비서실장 대리를 했었기에 믿을 만한 측근이었다.
이제부터는 ‘추측’의 영역이다.
박정희는 자신의 측근인 육사 8기들을 견제하기 위해 모른 척하며 11기 중심의 하나회를 키워나가야 했고, 이를 대리해 줄 인물이 필요했다. 그 역할을 윤필용이 맡았던 거다. 윤필용은 하나회의 대부 역할을 하며, 물심양면으로 하나회를 키웠다. 많은 매체에서 보면, 전두환을 아끼는 모습을 보였는데, 수도경비사령관을 할 때 참모장이 육사 11기의 손영길이었다(준장 진급하자 바로 여기로 데려왔다).
1967년, 수도경비사령부 30대대장 이·취임식 후 기념사진
가장 왼쪽이 전두환, 가장 오른쪽이 손영길
하나회의 위기 : 윤필용 사건이 터지다
윤필용 사건
사건은 간단했다. 윤필용이 이후락과 술을 마시다가 말실수(?!)를 하게 된다.
"박정희 대통령께서 노쇠했으므로 그만 물러나시고 형님이 후계자가 돼야한다."
이 말을 전해 들은 박정희가 노발대발해서 윤필용을 날려버린 게 윤필용 사건의 전말이다.
(많은 이들이 중앙정보부장 자리에 욕심을 내던 박종규가 이 사건을 부풀려 이후락을 날리려 했던 게 아니냐고 말하는데... 그건 하나의 썰이다. 내용은 대략 이렇다. 당시 대통령경호실장이던 박종규는 박정희의 채홍사 역할을 했는데, 이 문제 때문에 육영수에게 이런저런 소리를 들어야 했고, 그게 싫어서 중앙정보부장 이후락을 날리고 그 자리로 도망가고 싶어 했다는 것이다)
가장 왼쪽부터 육영수, 박정희, 박종규
윤필용 사건의 핵심은 박정희가 만들어 놓은 판. 그러니까 상호 견제를 통한 컨트롤을 어그러뜨렸다는 거다. 이후락과 윤필용이 붙어 버리면, 박정희가 원하는 대로 판이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드러난 게 하나회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이야기는 이렇다.
1.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던 강창성이 수사 도중에 윤필용이 챙기던 전두환과 하나회의 실체를 확인했다.
2. 이를 박정희에게 보고했다.
3. 박정희가 하나회 해체와 이들의 처벌을 명령했다.
4. 그러나 박종규가 이를 만류해 대충 수습이 됐다.
그러나 이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강창성의 보고를 듣고 박정희는 적당히 ‘쇼’를 한 것이다. 자신의 친위 세력을 이렇게 쳐낼 리는 만무하다. 잘해봐야 하나회에 대한 군기 잡기 정도로 보는 게 맞다.
하나회를 만들었다고 주장한 손영길은 이런 생각에 힘을 보탠다.
“박종규와 전두환 두 놈이 짜고 날 나락으로 빠뜨린 거야!”
장군으로 승진한 지 100일 만에 영문도 모른 채 손영길은 난데없는 쿠데타 모의 혐의로 징역 15년을 받으며 나락으로 떨어졌다(1년 있다가 형집행정지로 풀려났고, 1980년 사면받는다).
1973년 4월 29일 윤필용 사건 관련 재판 당시 사진
가장 오른쪽이 윤필용 소장, 그 옆이 손영길 준장
손영길이 15년형이나 받은 건 사실 알고 보면, 쿠데타 모의 혐의로는 별 혐의가 없었기에 횡령이나 직권남용, 군무이탈 같은 혐의로 줄줄이 엮은 거였다. 당시 손영길은 분노했는데,
“내가 목이 날아간 이유는 내가 육사 11기의 선두였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박종규(대통령경호실장)는 윤필용과 이후락(중앙정보부장)을 엮어서 둘 다 낙마하길 기대했다. 그러면 중앙정보부장 자리가 빌 것이고, 이때 자신이 이후락의 자리에 가겠다는 거다. 전두환이 협조한 이유는? 손영길의 목을 날리고, 명실상부 육사 11기의 에이스로 자리 잡겠다는 욕망이 있었다는 거다. 박정희의 사랑을 손영길과 나눠 가지는 게 아니라 전두환 혼자 독식하겠다는 거다.
이 당시 윤필용 및 이후락과 관계된 군인들이 많이 옷을 벗어야 했다. 여기에 하나회 쪽 비자금 관리를 하던 민간인도 곤욕을 치렀다. 어떻게 보면 박정희가 대대적으로 군기 잡기를 한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전두환이 손영길의 목을 치기 위해 다른 이들도 엮어서 하나회 전체가 위험했다는 스토리를 만든 것일 수도 있다.
어찌 됐든 하나회는 살아남았다. 아니, 이건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박정희만 이겼다.”
라는 표현이 더 맞는 표현인 것 같다. 당시 하나회의 존재를 파악하고, 이를 보고하고 수사한 보안사령관 강창성은 하나회 회원 수십 명의 옷을 벗겼다.
(여담이지만, 이 사건으로 강창성도 좌천되게 된다. 수사를 주도한 보안사쪽도 박정희의 심기를 건드린 거다. 박정희의 친위 세력을 건드렸으니 말이다)
하나회의 1인자가 된 전두환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11기의 에이스인 손영길을 포함해 앞에 튀어나온 하나회원들을 정리했다.”
라고 볼 수 있다. 이건 강창성이 아무런 생각 없이 나서서 박정희가 수습하기 어려웠던 거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박정희의 용인술일 수도 있다. 하나회가 아무리 자신에게만 충성한다고 하지만, 자신의 권력에 기어오르면 가차 없이 처단할 수도 있다는 일종의 경고, 그리고 군기 잡기일 수도 있다.
출처-<한국일보>
아니면, 손영길의 주장처럼 전두환과 노태우가 작정하고 자신을 몰아낸 것일 수도 있다. 5.16쿠데타 때부터 박정희를 모셔 왔고, 이때까지 박정희의 총애를 가장 많이 받았고, 가장 진급이 빨랐던 손영길.
육사 11기의 에이스이자, 그의 주장대로 하나회를 만들었지만, 너무 바빠 회장 자리를 전두환에게 넘기고, 자신은 박정희의 제1 가신으로 박정희만 바라보던 손영길이었기에, 전두환과 그를 따르는 다른 하나회 멤버들에게는 손영길을 넘어서야지만 박정희에게 더 다가갈 수 있고, 그래야만 더 높은 자리에 앉을 수 있다는 계산이 있었을 거다.
손영길은 전두환에게 인간적인 배신감을 느꼈다고 한다. 자신은 친구로서 그를 믿고, 도와줬는데, 전두환은 자신의 등에 칼을 꽂았다는 거다.
“전두환이 증인에게 압력을 넣어서 거짓 증언을 하게 만들었다! 이 사건의 배후에는 전두환, 노태우, 박종규가 있다!”
사건의 성격 자체가 복잡해졌지만, 결국은 하나로 귀결된다. 내부의 권력투쟁과 뒤이은 충성 경쟁이다.
1973년은 하나회의 성격 자체를 완전히 바꿔 버린 기념비적인 해였다. 이제까지 박정희의 총애를 받았던 손영길이 낙마하고, 이제 전두환 단독으로 박정희의 옆에 서게 됐다. 아울러 하나회의 대부로 불렸던 윤필용이 물러나면서 전두환에게 힘이 더 쏠리게 되었다.
이제 너랑 내가 하나회 1짱, 2짱이다
(한 가지 더 보탠다면, ‘김대중 납치 사건’도 이 윤필용 사건에 의해 발생한 거였다. 이후락이 윤필용 사건으로 박정희의 눈 밖에 나자 점수를 만회해 보겠다고, 김대중 납치 사건을 기획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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