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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6일, 제39회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에서 유통소상공인과 제조업체의 가격경쟁력 상실을 타개하고 소비자의 안전과 피해예방, 중소 유통, 소상공인의 새로운 사업기회 창출을 위해 국민 안전을 해치는 해외직구 제품을 오는 6월부터 원천 차단하겠다는 정부의 발표가 있었습니다. 이미 이틀 전인 5월 14일 보도자료가 배포되었기에 해당 내용들은 SNS를 통해 빠르게 확산된 바 있습니다. 발표 이후, 각종 커뮤니티를 비롯해 국민들의 비판이 있었습니다. 개인의 해외직구를 금지하는 국가를 찾아보기 힘든 만큼 정치권과 언론에서도 비난이 쇄도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정부는 다음날인 5월 17일 해명에 나섰습니다. 이번 정부의 발표가 늘 그래왔던 것처럼 "당장 시행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협의를 거치고 결정될 것"이라며 한발 물러나는 자세를 취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위해성 검사를 통해 위해성이 확인된 제품만 반입을 차단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후 주말 간 정부의 브리핑을 통해 해외직구를 제한하는 정책을 보류하겠다는 내용이 보도되었고, 5월 20일 국무조정실의 보도자료가 발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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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대한민국 뉴스브리핑>

 

결과적으로 정부는 해외직구를 철회하지 않을 방침입니다. 일부 언론 매체는 '철회, 보류' 등의 단어를 사용하며 정부가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한 것처럼 보도합니다. 그러나 5월 20일 국무조정실 보도자료 내용은 6월 중 시행되는 것은 위해성이 확인한 제품만 반입을 제한하는 것이며, 논란이 되었던 KC인증 외에 다양한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신중히 검토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어디에도 해외직구에 대한 정책을 철회하겠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오히려 기존 입장을 구체적으로 밝힌 것이라고 보입니다. 특히 위해성과 관련해서는 향후 충분한 의견수렴 과정을 거쳤음에도 최초 발표되었던 80여 가지 제품이 모두 위해하므로 반입을 금지한다고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1. 직구 금지의 표면적 배경

 

이번 해외직구 금지는 최근 국내에 공격적으로 시장점유를 늘리고 있는 알리익스프레스나 테무 등 중국 유통업체들에 향한 견제를 이유로 들고 있습니다. 최근 이들 중국 업체의 저가공세로 국내의 소상공인들과 오픈마켓의 매출액이 감소함에 따라 소비자의 안전을 명목으로 직구 자체를 규제하겠다는 것이지요.

 

이외 제품의 품질과 안정 보장의 문제도 있습니다. 최근 들어 중국산 직구 제품의 안전 이슈가 떠오르기 시작했지요. 올 4월에 중국에서 들어온 아동용 제품에서 위해 성분이 기준치를 초과해 검출되는 일이 있었고, 5월에도 어린이용 머리띠에서 기준치를 270배 초과하는 발암물질이 검출되기도 했습니다. 어린이용 슬라임이나 학용품에서까지 기준치를 초과하는 유해 물질이 발견되기도 하면서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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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MBC>

 

무엇보다 늘어나는 직구로 짝퉁이나 저질제품, 배송 지연 등 소비자 분쟁이 급증했으며, 늘어난 직구제품들로 인해 관세청의 업무가 가중되어 이를 완화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고 합니다. 특히 해외직구의 경우 관세청 공무원들에 의해 간이 통관절차를 거치는데, 늘어난 물품으로 인해 한 물품당 검수할 수 있는 시간이 5초밖에 되지 않음에 따라 마약류 감시가 소홀해졌다고 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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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MBC>

 

참고로 이번 직구금지의 표면적 배경이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 등 중국 유통업체를 겨냥했다고 하지만, 특정 국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이베이나 아마존 등 수입업체를 통한 정식 수입품이 아닌 모든 제품이 대상이므로 사실상 인증되지 않은 모든 제품에 대한 직구를 금지하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2. KC인증

 

많은 논란을 가져왔던 것이 KC(Korea Certification)인증이었습니다. KC인증이란 과거 지식경제부·환경부·고용노동부 등 부처마다 다르게 사용하던 13개의 법정 강제인증마크를 하나로 통합한 단일 마크입니다. EU에서는 1993년부터 안전·환경·소비자보호와 관련된 강제인증을 CE마크로 통합해서 사용해 왔습니다. 일본은 2003년부터 전기, 공산품에 PS마크, 중국은 2002년부터 CCC마크를 부여해 왔지요.

 

KC인증은 한국에 정식으로 출시하는 제품들에 대해서는 반드시 강제되는 제도입니다. 해외 물품을 수입하여 판매하는 유통업자라면 반드시 받아야 하지만, 직구 등으로 KC인증을 받지 않은 제품을 중고로 재판매했다가 품목에 따라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다만, 개인이 자기 사용 목적으로 제품을 반입할 때도 KC인증을 받는 것은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정책이긴 합니다. 해외에서는 비슷한 인증이 유통·판매를 목적으로 할 때 필요한 것이지, 개인적 사용과는 관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업자가 아닌 개인이 기관에서 이러한 인증을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실상 인증이 필요한 제품의 개인 직구를 금지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또한 대부분 선진국은 2단계 상호 인정 협정을 체결하고 있어서 한 국가에서 시험 및 인증이 통과되면 다른 국가에서 추가적인 절차 없이 수출이 가능합니다. 한국은 전 세계 어느 나라와도 2단계 상호 인정 협정을 체결하고 있지 않아 이미 다른 국가의 인증을 받은 제품에 국내기관의 추가인증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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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MBC>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 제5조(안전인증 등)'에서 규정한 바에 따르면 KC인증은 제조업자와 수입업자가 받는 인증입니다. 일인이 개인의 사용 목적으로 해외구매를 하는 상황에서는 받을 필요가 없는 인증입니다. 한편 KC인증의 신뢰성 자체가 의심받는 터이기도 합니다. 과거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일으켰던 제품들도 KC인증을 받은 제품이었고 이 외에도 스마트폰 폭발 사고, 파워서플라이 폭발 사고가 있었던 제품들도 KC인증을 받은 제품이었기에 실효성 자체를 지적하는 의견도 있지요.

 

3. 민영화

 

이번 직구금지와 관련된 이슈가 커지면서 뒤늦게 밝혀진 사실이 있습니다. 바로 작년 12월 정부가 KC인증을 민영화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KC인증은 공공기관이나 비영리단체(비영리 민간시험기관)에서만 가능했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인증기관이 늘고 경쟁 환경이 조성하면 서비스가 개선될 것이라는 취지이기에 이번 해외직구 금지와는 관계가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KC인증을 받지 않은 상품은 국민의 안전과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이 개인의 직구를 금지하는 명분인데, 안전과 건강에 직결된 인증 절차를,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영리 단체가 맡는다는 것이 모순입니다. 특히 인증을 위해 영리업체에게 기술정보를 넘겨주어야 하는데, 이로 인한 기술 유출문제, 영리단체들의 가격 담합도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영리 단체들이 인증한 제품에서 문제가 생겼을 경우 정부에서는 이를 발뺌의 용도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일부 민영화를 옹호하는 이들은 KC 인증에 드는 비용이 20년째 동결 중이어서 인증 기관을 확대할 유인이 적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만약 사실이라면 현재의 인증 단가로는 민간 영리기업이 인증사업에 참여할 수 없겠지만, 바꿔 말해 영리 기업들이 참여하는 순간부터 인증비는 폭등할 것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KC 미인증 해외직구 금지' 사실상 철회…정부 _혼선 죄송_ _ SBS 8뉴스 1-14 screenshot.png

출처-<MBC>

 

또 다른 문제는 민간 인증기관의 전문성입니다. 단순한 민영화를 넘어 특수, 고가 시험설비가 없더라도 외부기관과의 계약을 통해 해결할 수 있도록, 즉 인증시험을 하청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요건을 완화한 것입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허가만 받은 업체가 하청 시험업체의 날림 시험 결과지만으로 KC인증마크를 찍어낼 수 있다는 것이지요.

 

4.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

 

서두에 말씀드렸지만, 이번 해외직구 금지 조치의 배경 가운데 중국 유통업체 견제가 있었습니다. 정부의 발표 이후 국내 유통업체들은 해외직구로 인한 매출감소를 회복할 수 있으리란 기대에 어느 정도 환영하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부의 발표가 있었던 5월 16일보다 이른 5월 13일,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가 한국의 KC인증 의무화 조치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이미 자율협약 형식으로 한국 정부의 통보를 받았고, 정부의 KC인증 의무화를 수용하겠다고 밝힌 것입니다.

 

중국 유통업체를 견제하기 위한 조치인데 중국 유통업체들은 협조하겠다? 심지어 테무의 관계자는 한국에 판매한 제품에 문제가 생길 경우 리콜(Recall, 특정 제품에 문제점이 생겨 제조업체가 그 제품을 '다시 불러' 고장난 부분을 고쳐준다는 의미)을 포함한 보상 조치까지 마련하겠다고 했습니다.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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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MBC>

 

중국 유통업체들은 KC인증 의무화를 통해 오히려 한국시장 진출을 공고히 할 수 있을 것입니다. KC인증으로 소규모 수입업자들은 인증비용과 시간을 고려했을 때 오히려 수입을 포기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는 특히 다품종 소량 수입을 하는 업체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인데, 품목 하나하나 인증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소품종 다량 수입을 하기엔 저가 공세를 펼치는 중국제품과 경쟁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특히 이베이나 아마존 등 해외에서 소량을 판매하는 업자들은 무리하게 KC인증을 받으면서까지 한국시장에 진출하기보다 차라리 상호인증이 가능한 다른 국가에 집중하는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미 일부 직구사이트에서는 KC인증이 되지 않은 물품은 취소처리가 되거나 판매가 중단되기도 했으니, 이미 일어나고 있는 일인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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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MBC>

 

중국 유통업체들은 다품종 다량수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품에 대한 KC인증만 끝나면 다른 수입업체들에 비해 저렴하고 엄청난 물량으로 시장점유를 높일 수 있고, 일정 수준 이상 시장점유를 하게 되면 신규 유입되는 사업자도 거의 없기에 시장을 독점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결국 이번 정부의 정책은 중국 유통업체를 견제하고 국내 유통업체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은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여담이지만 해외직구가 활성화되면서 수많은 배송대행업체가 생겼습니다. 직구금지가 현실화한다면 이런 배송대행업체들의 피해도 클 것입니다. 또한 한국의 늘어나는 직구 수요에 대응하여 DHL이나 FedEx 등 글로벌 특송기업들은 인천공제공항에 물류센터를 건립하는 등 한국 특송시장에 활발하게 진출하는 터입니다. 하지만 직구금지가 현실화한다면 이들 기업이 한국시장에 진출할 이유가 사라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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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9월 뉴스

출처-<서울경제>

 

5. 또 하나의 헛발질

 

이번 직구금지로 인해 피해를 보는 곳이 또 있습니다. 바로 국내 이공계 학생들입니다. 이공계의 경우 전공 특성에 따라 국내에 시판되지 않는 각종 소재나 제품을 해외 직구하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직구가 막힌다면 국내 도매상으로부터 높은 가격을 주고 구입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KC인증에 시간이 소요되어 적시에 제품을 구입하지 못한다면 시간싸움인 R&D분야에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KC인증 업체의 민영화와 이번 직구금지, 더불어 중국 유통업체가 사용할 수많은 인증비용이 모두 계획된 것이라는 음모론도 있습니다. 사실 확인이 되지 않았기에 섣부른 판단을 할 수는 없지만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심각한 문제는 정부의 무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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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MBC>

 

이번 직구금지 이슈가 커지자, 정부는 부랴부랴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는데 이는 이미 익숙한 모습입니다. 임기 초 만 5세 초등학교 취학개편, 주52시간 노동 유연화, 연구·개발 예산 감축 정책 등 대책과 계획 없이 정책을 발표했다가 아니면 말고 식으로 정정하거나 보류한 사례들이 있습니다. 아직 남은 임기 동안 이 같은 상황이 얼마나 더 반복될지 알 수 없지만, 무능한 정부 때문에 국민들의 시름만 깊어지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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