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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죽음 이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예측 불가능성 때문이다. 예측불가능함으로 인한 무력감은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만든다.
나아가 가족이나 친지의 장례를 맞닥뜨렸을 때도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 황망함과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죽음은 항상 우리 곁에 있지만, 또 어떤 경험을 통해서도 죽음의 공포에 대한 면역력은 길러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법도 각자 다르다.
큰아버지는 이미 병원에서 손 쓸 방도가 없다고 하여 집으로 돌아가 임종을 기다리고 계셨다. 하지만 병원에서 손을 놓았다고 해서 가족들까지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큰집 식구들은 밤낮 구분 없이 피를 토하고 아파하시는 큰아버지의 수발을 들고, 언제일지 모르는 그때를 기다리며 몸과 정신이 모두 피폐해졌다. 그리고 병원에서 퇴원하신 지 석 달 뒤에 큰아버지는 돌아가셨다.
큰집 식구들에게 석 달은 긴 시간이었지만, 나에겐 마음의 준비를 할 새도 없이 갑작스럽게 다가온 큰아버지의 죽음이었다. 왕따를 당하면서 습관적으로 죽음에 대한 충동을 느꼈던 나였지만 타인의 죽음은 선뜻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의 고향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나는 그곳이 싫었다. 사촌들과 왕래가 잦지 않아 어색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큰집 사람들의 억눌린 분위기는 나를 답답하게 만들었다. 주눅 들고 생각 없는 사촌들의 눈빛을 보고 있자면, 거울로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렇다. 큰집 역시 큰아버지의 불같은 기질 때문에 가족 모두가 마음 졸이고 살았다. 큰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면 남겨진 사람들의 분위기도 바뀔 수 있을까? 그거 하난 궁금했다.
죽음 뒤에 찾아온 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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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외버스 터미널에 내려 택시를 타고 큰집으로 향했다. 하늘이 회색빛으로 변하더니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상복을 입은 큰집 식구들이 우리를 맞이했다.
먼저 와 계시던 아버지는 셋째 삼촌과 술잔을 기울이고 계셨다. 평소 술에 취하면 같이 술 먹는 사람들에게 농담도 하고 웃기도 잘했던 아버지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슬쩍 우리를 바라보시고 계속 술만 드셨다. 그날 아버지는 다른 사람들과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불편한 분위기 속, 날을 새고 출상하던 날. 난생처음 본 전통 장례의 출상은 강렬했다. 흰옷을 입은 수많은 사람이 곡소리를 내고 상여를 따라가는 풍경은, 당신이 어떻게 살아왔든지 간에 그 순간만큼은 떠나는 사람을 진심으로 애도하는 듯 보였다. 감정은 폭발적으로 터져 전염되었고, 어쩌다 보니 나 역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 모든 과정이 끝나고 사람들이 큰집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어딘가 그들의 얼굴은 홀가분해 보였다. 나는 차분하게 가라앉은 분위기를 틈타 사촌 형에게 물었다.
"행님아, 니 인자 안 우네…?"
멍하니 앉아서 바닥만 보고 있던 사촌 형은 맥없이 웃으며 대답했다.
"계속 울고 있을 수는 없다 아이가? 산 사람은 살아야지. 너무 슬퍼하면 돌아가신 분이 이승을 떠나가지 못한단다."
그때까지 나는 누군가 삶을 등질 때, 그를 계속 기억하고 슬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짜 이별의 방식은 따로 있었다. 고인이 좋은 곳으로 기원하면서 그와의 추억만을 남기고 서서히 떠나보내야 한다는 것.
사촌 형의 얼굴에는 슬픔과 동시에 해방감이 보였다. 큰아버지의 억압 속에 살던 그들이 이제야 주도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 같은 느낌. 그들은 이제 변화하고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가부장제가 극에 달한 이 가문의 ‘전통’은 나를 숨 막히게 했다. 불합리 속에서도 그저 버티고 살아야만 하는 것. 불합리의 원인이 자연적으로 사라질 때까지 견뎌야 하는 것. 그리고 은연중에 그에게 물들어간다는 사실이 너무나 싫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숨 막히는 인생을 그저 그렇게 버티다가 또 다른 아버지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 그건 죽는 것보다 더 싫었다. 큰아버지의 죽음은 슬픈 일이었지만, 나에겐 다시금 이곳을 벗어나야겠다는 결심을 굳힌 사건이 되었다. 나는 타인에게 상처 주지 않는 상냥한 어른이 되고 싶을 뿐이었다.
집안의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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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버지는 고압적이기로는 끝판왕이었다. 여자아이가 태어나면 업어주지 않고, 아들만 대우하던 집의 장남으로 태어난 것이 그 원인이었을 것이다. 그 집안 사람들은 모두 숨도 못 쉬고 살았다고 한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내를 두들겨 패는 것은 기본이고 자식들도 찍어 누르니, 큰집 식구들은 모두 항상 기운이 없었다. 매사에 주눅 든 모습이었다.
때리지는 못했지만, 찍어 누르는 범위에는 우리 가족도 포함되었다. 명절에 모두 모여 식사하던 때. 어려서부터 상추를 먹을 땐 흙 닿는 밑부분을 떼고 먹으라고 배운 어머니는 상추 아래쪽을 남기고 드셨는데, 큰아버지가 그 모습을 못마땅하게 보고는 고함을 질렀다.
"제수씨!!! 상추 밑을 왜 떼고 먹습니까?!"
"저희 고향에서는 이렇게 먹는데…"
"그래도 그렇게 먹지 마쇼! 보기 안 좋습니데이."
우리 집 여포인 아버지도 큰아버지 입에서 큰소리가 나는 상황에서는 아무 말 없이 식사만 했다. 보통 남의 집에서 나고 자란 새 식구에게는 대하기 어려운 것이 일반적이다. 오죽하면 백년손님이라는 말도 있겠나. 더구나 다 큰 어른에게 밥 먹는 일로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은 그저 웃으면서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큰아버지는 주저하지 않았다. 자기 가족은 물론, 동생의 가족도 자기 아랫사람일 뿐이었고 자기 말에 거스름이 없어야 했다.
한마디로 큰아버지는 집안의 왕이었다.
삼봉이 삼촌
어린 시절 형제간의 우애는 내 것과 네 것의 별 차이가 없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각자 가정을 꾸리고 나면 문제가 달라진다.
삼봉이 삼촌은 아버지 형제 4남 중 세 번째 삼촌이다. 어릴 때 한약을 잘못 먹어서 말을 못 하게 되셨다고 한다. 그런 삼촌을 조부모님과 형제들도 다들 안타깝게 생각했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시면서 삼봉이 삼촌을 잘 부탁한다는 유언을 남겼다. 그런데 이것은 큰아버지가 가문 전체의 자금을 관리하고 쓰게 할 좋은 명분이 되었고, 아버지에겐 족쇄가 되었다.
"어무이! 영봉이(아버지) 돈을 왜 제수씨가 관리하노?"
"인자 가정을 꾸리고 따로 사는데 그기 맞지."
"여자가 우째 돈 관리를 하겠노? 영봉이 돈 안 모으는 성격인데 제수씨한테 돈을 주겠나?"
"가장되고 새끼 생기면 사람이 다 바뀐다."
큰아버지는 아버지가 월남에서 돌아와 결혼하기 직전까지 아버지가 버는 돈을 관리했다. 그런데 이제 어머니가 관리하게 될 거라는 할머니 말씀에 매우 못마땅해했다고 한다.
이후 큰아버지는 다른 형제들과 사촌들에게 “제수씨가 영봉이를 쥐고 흔들어서 즈그들기리만 잘 묵고 잘산다.”라는 말까지 하고 다녔다. 하지만 실상은… 큰아버지 예상대로 아버지는 월급을 어머니에게 맡기지 않으셨고 어머니 입장에선 너무나 억울한 모함을 들어야 했다. 게다가 집안의 어른이 자기 욕을 하고 다닌다는 것을 안 어머니는 큰아버지와 큰어머니에게 감정이 크게 상할 수밖에 없었다. 진짜 잘 먹고 잘살았으면 억울하지나 않지…!
아무튼 결혼 전이나 결혼 후나 '우리가 남이가!'라는 마인드로 아버지에게 물질적 지원을 요구했던 큰아버지에게는 셋째 삼봉이 삼촌을 보살핀다는 명분이 있었다. 아버지는 속아주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그렇게 믿고 계셨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금전적 지원을 해주는 것을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않으셨다.
어디 그뿐이랴. 큰아버지의 요구에 토 다는 일 없이 오히려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지고 계셨던 것 같다. 다만, 하나 짚어볼 만한 건… 아버지가 금전적 지원을 해줘도 삼봉이 삼촌이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편하게 사는 모습은 평생 볼 수 없었다는 것.
그리고 얼마 후, 아버지와 내가 단둘이 식사를 하게 된 자리에서 아버지가 먼저 말을 걸었다.
"니 사촌들하고 같이 사는 거 어떻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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