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공학 교수가 오타쿠스럽게 글을 쓰니, 어떤 미래적 기계장치에 대한 썰을 풀길 기대하는 독자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살짝 미안하다. 나는 기계공학의 자연과학적 측면에 집중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그 어느 신기한 기계 장치나 공학 시스템을 만든다 하더라도, 그 장치나 시스템은 자연의 법칙을 거스를 수 없다. 기계 장치를 만들 때, 그것이 선풍기이든 하늘을 나는 자동차든, 개발자인 기계공학자는 자연의 법칙을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당연한 말이다. 그래야 기계가 돌아가니까.
그래서 기계공학과 학생들은 물리, 화학, 수학 같은 기초 자연과학을 열심히 배우고, 이후에도 선생들은 여러 역학 과목을 통해 자연이 어떻게 거동하는지에 대한 법칙들을 열심히 가르친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러한 자연 법칙을 개나 줘버리는 기계 장치들은 아니메에 버젓이 등장한다. 상당수 만화적 상상력으로 귀엽게 봐주기에는 너무도 명백히 법칙을 위반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공학자와 오타쿠라는 정체성 사이에서 무참히 방황한다. 빌어먹을 어쩌란 말이냐.
오늘 풀어 볼 썰은 바로 이거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프로페서 오타쿠의 방황.
뭣보다 나를 괴롭게 하는 건 “포켓몬스터 (ポケットモンスター)”에 등장하는 “몬스터 볼”과 “드래곤볼(ドラゴンボール)”에 등장하는 “호이포이 캡슐”이다. 물론 안다. 너무나 기발하고 창의적인 발상이다. 쓰레기와 폐기물을 가득 때려 넣은 캡슐만 주머니에 넣고 내가 싫어하는 사람의 집에 가서 “호이포이!” 한마디로 매우 더러운 테러를 즐기는 음험한 상상 나도 많이 했다!
하지만 다시 정신을 차리고 공학자로 돌아오면 너무나 슬픈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몬스터볼과 호이포이 캡슐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 과학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하여 도라에몽이 온 22세기가 된다 해도 안된다. 때려 죽여도 안돼! 엉엉.
전설의 레전드, 포켓몬스터와 드래곤볼
자연법칙이 지배하는 현생을 생각하니 너무 슬프니까 행복한 아니메 이야기부터 하자. 그렇다. 현실도피이다.
“포켓몬스터”는 원래 비디오 게임 시리즈였다.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몬스터볼로 몬스터를 포획한다. 포획한 포켓몬스터를 다른 플레이어의 몬스터들과 싸움을 붙인다. 그 과정에서 플레이어들은 몬스터들을 키우고 진화시킨다. 이 시리즈는 게임에서 머물지 않고, 만화 및 실사영화 (라이언 레이놀즈 주연의 “명탐정 피카츄”) 등을 포함한 다양한 미디어 믹스 작품들로 이어졌다.
일본 주부국제공항 상점가에 있는 포켓몬스터 가게.
항공 승무원 제복을 입고 있는 피카츄.
심지어 2023년 일본에서 “포켓에 모험을 가득 담아”라는 텔레비전 드라마까지 나왔다. 일본 내에서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인기가 엄청 나다. 그 인기와 위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게 포켓몬스터의 전 세계 미디어 믹스 총매출이 세계 1위다. 포켓몬스터의 총매출이 스타워즈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합한 것보다 많다.
“드래곤볼”은 뭐…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라는데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있으면 나와보자. 나는 드래곤볼을 아직 읽지 않은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부럽다. 아직 그런 기쁨이 인생에 남아있다니.
“드래곤볼”은 대한민국 만화사에도 족적을 남겼다.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정식 발매된 일본 만화가 드래곤볼이다. 이제 진짜 호랑이 전자담배 피던 시절 이야기가 돼버렸지만, 예전에는 일본 대중문화 수입이 금지되던 시절이 있었더랬다.
출처 - <링크>
이전의 “드래곤볼”은 그때의 일본 만화들이 그렇듯이 해적판으로 국내에 들어왔다. 1989년 마침내 “아이큐 점프”라는 메이저 만화 잡지에서 정식으로 “드래곤볼”을 일본 만화라고 밝히면서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아이큐점프가 나오는 날마다, 학교 문방구에 친구들과 가서 잡지는 사지 않고 “드래곤볼”만 읽었던 추억. 부르마의 치마가 무천도사를 향해 펄럭인 장면은, 당시 엄격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이성에 대한 호기심과 욕망을 호시탐탐 키워가던 나와 친구들에게 더없이 커다란 충격이었다. 무천도사가 뿜어내는 코피는 우리의 것과 진배없었다.
손오공의 모험은 드래곤볼을 모으는 것으로부터 시작하고, 드래곤볼을 모두 모으면 신룡이 나타나 소원을 하나 들어준다. 심지어 죽은 사람도 되살려준다. 손오공도 죽은 적이 있는데, 친구들이 드래곤볼을 모두 모아서 살려준다.
매우 단순한 스토리이지만, “드래곤볼”의 위상은 정말로 대단했다. 일본 역사상 가장 큰 인기를 끈 만화와 아니메 시리즈 중 하나이고, 전 세계적인 인기를 여전히 얻고 있다. “드래곤볼”은 미국에서 역대 최고의 인기를 얻은 일본 애니메이션이고, 지금도 관련 굿즈나 피규어 등을 월마트 같은 가게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드래곤볼”의 새로운 극장판 영화가 개봉되었을 때, 미국 대표 시골 도시인 링컨의 극장에서도 상영이 될 정도였다.
얼마 전에 작고한 드래곤볼 작가 “토리야마 아키라(鳥山明)”는 일본 만화가 중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번 사람이고, 한때는 일본 내 10대 부자에 속한 적도 있다. 워낙 세금을 많이 내다보니, 토리야마 아키라가 살고 있는 아이치현에서 이사를 못 가게 한다거나, 원고를 도쿄로 바로 보낼 수 있게 토리야마 아키라의 집에서 공항까지 바로 갈 수 있는 도로를 만들어줬다는 도시 전설도 있을 정도다.
몬스터볼과 호이포이 캡슐
기계공학자가 볼 때, “포켓몬스터”와 “드래곤볼”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아무래도 “몬스터 볼”과 “호이포이 캡슐”이다.
몬스터 볼은 포켓몬 트레이너가 몬스터들을 가두어 두고, 휴대하면서, 필요할 때 포켓몬을 꺼내는 장치이다. 미국에서는 Poke ball이라고 하는데, 하와이 식 회덮밥인 poke bowl과 종종 헷갈린다 (나만 그런가?). 호이포이 캡슐은 부루마의 아버지인 브리프 박사가 발명한 장치다. 세상의 온갖 것을 조그만 캡슐 안에 보관했다가 필요할 때 꺼낼 수 있다. 그나저나, 부루마 집안의 작명 센스는 괴랄하다. 부루마는 옛날 일본 여학생들이 입던 매우 짧은 체육복 하의이고, 브리프는 팬티의 일종이다.
드래곤볼에서 호이포이 캡슐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
예를 들면, 그림에서처럼 부르마가 호이포이 캡슐을 작동시키고 던지면 안에서 오토바이가 나온다. 자동차, 비행기, 배, 심지어 집까지 들어갈 수 있다. 이 정도면 밀수는 일도 아닌… 아 아니다.
오타쿠인 나는 몬스터볼과 호이포이 캡슐의 신박한 기능에 나는 흠뻑 매료되지만 공학자인 나는 이 장치들에게 엄중해질 수 밖에 없다. 이 둘은 질량 보존의 법칙을 가볍게 무시해버리기 때문이다.
오타쿠의 세계에선 이미 몬스터 볼에 대해 심도깊은 연구가 진행되었다 (그딴 걸 왜 하는지 묻지 말자 그게 우리의 세계다!). 몬스터 볼은 어떤 구조이고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서 참으로 다양하고 진지한 아이디어들이 제시 되었다. 포켓몬을 아주 작은 공간 안으로 넣어야 한다는 조건을 해결하기 위해 몬스터 볼 내부에 웜 홀이 있어서, 잡힌 포켓몬을 어딘가 다른 공간으로 옮겨준다는 학설(?)까지 제기 된 상태다 (그럼 다시 어떻게 데려와? 잘 데려오면 된다).
아무래도 몬스터 볼이 외계인을 고문해서 만들어진 오버테크놀로지 급의 물건이다 보니 다양한 설명들이 등장하는 것 같다. 최근의 설정에 따르면, 몬스터 볼이 포켓몬을 축소시켜 안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몸 크기를 줄여 몬스터 볼 안에 들어가는 것이 포켓몬의 종특이라고 한다 (그럼 뭐 할 말 없지).
아늑한 몬스터 볼 내부와 휴식을 취하는 피카츄.
매우 이상적인 생활이다. 부럽다.
포켓몬의 종특이 그러하다 하더라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난제가 있다. 바로 질량이다.
포켓몬이 몸집을 줄인다 한들 그 몸을 이루고 있는 원자들의 개수는 변하지 않는다. 즉, 포켓몬의 질량은 몬스터 볼 안에 있든 밖에 있든 변하지 않는 것이다 ( 크기가 작아지니깐 밀도가 높아지겠네). 이는 호이포이 캡슐 안에 들어가는 물건들도 마찬가지다.
설정에 따르면, 몬스터 볼 하나의 질량은 3.6 kg이다. 이 정도 질량을 지구의 중력 하에서 들고 다니기만 해도, 그 무게가 만만치 않다. 물을 가득 채운 1리터 페트병을 3개 반 몸에 붙이고 다는 것과 동일한 정도. 여기에 피카츄의 질량이 6 kg이라고 하니, 피카츄가 들어간 몬스터 볼은 대략 10 kg의 질량이 되는 것이다. 아이를 키워본 부모는 알 것이다. 몸무게가 10 kg인 아이를 안고 다녀보면 아이에게 줘야 하는 부모로서의 헌신과 은혜 따위는 다 필요 없다고.
나이에 비해 엄청난 전완근의 소유자 한지우 군
뭐.. 포켓몬 트레이너들이 이 정도 무게는 들고 일상생활이 가능하도록 훈련을 받았다고 매우 너그럽게 생각해 보겠다. 하지만, 포켓몬은 진화를 한다. 파이리의 경우에는 진화해서 리자몽이 될 때, 그 질량이 90.5 kg이라고 하니, 이 포켓몬을 몬스터 볼에 넣으면 총 질량이 94 kg에 육박한다! 어지간한 남성 어른의 체질량보다 더 크니, 이 포켓몬을 넣고 다니는 트레이너는 마동석 배우를 몸에 얹고 다니는 것과 같으리라. 그러니 한지우 같은 어린 포켓몬 트레이너도 매일 매일이 웨이트 트레이닝인지라, 결국은 마동석의 몸이 되고 말 것이다.
질량 보존의 법칙을 고려한 경우,
포켓몬을 담은 몬스터 볼은
마동석의 체질량에 육박할 수 있다.
무거운 포켓몬과 몬스터볼을 들고
다양한 배틀을 겪다 보니
한지우 자신이 마동석이 되어버린다.
몬스터 볼이야 포켓몬만 넣으니 트레이너들이 다들 마동석급으로 몸을 키우면 된다라고 어찌어찌 우긴다고 치자. 집이 들어가고 자동차가 들어가는 호이포이 캡슐은 어쩔 건가. 캡슐 안에 담긴 질량을 생각해 보면, 캡슐 안에 어찌어찌 쑤셔 넣는다 해도 그걸 주머니에 넣는 순간 엄청난 중력이 바지 집중되어 몸이 박살 날지도 모른다.
질량 보존의 법칙은 쉽게 깨지는 법칙이 아니다. 아니 애초에 법칙이 그런 거다. 안 깨지는 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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