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쾌함
윤대통령의 동해 석유 가스 매장 관련 국정브리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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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가 포항 앞바다에 대규모 석유/가스가 묻혀 있을 거란 발표에 대한, 솔직한 감정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번 발표는 급조되었다거나, 조사 결과를 내놓은 엑트지오가 이런 대형 프로젝트를 맡기에는 공신력과 역량이 부족하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그리고 주먹구구식으로 추진되는 만큼, 석유가 있으리라는 주장도 사실은 국면 전환용 ‘뻥카’ 아니냐고 생각한다.
이에 대한 내 생각은 이렇다. 석유 발견 보도가 국면 전환용인 것도 맞고, 윤석열 정부가 이를 가지고 설레발치는 것도 맞다. 그러나, 윤석열 정권의 이러한 행태와 별개로 이번 유전개발이 긁어볼 만한 복권인 것 역시 맞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밝힌 이번 프로젝트의 성공 확률은 20%. 그리고 이 복권을 긁어보는데 들어가는 탐사 비용은 약 5천억 원으로 추산된다. 순전히 투자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1. 이번 원유개발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수익이 2.5조 이상이고
2. 5천억 원이라는 돈이 국가 전체로 봤을 때 감당 가능한 비용이라면,
이 프로젝트는 진행해 볼 만하다.
문제는 정부가 발표한 20%라는 확률의 객관적인 근거가 지금으로써는 매우 빈약해 보인다. 게다가 정부가 직접 나서서 호들갑을 떠는 바람에 스스로 신뢰도를 많이 깎아 먹었다. 하지만, 나는 프로젝트 성공 확률이 10% 미만이라고 하더라도, 이번 물리 조사를 통해서 추산된 가능 매장량(복권에 당첨되었을 때 얻을 수 있는 수익)을 고려해 보면 한번 진행해 볼 만하다고 본다.
한 번에 성공하면 베스트이지만, 실패하더라도 탐사 과정에서 국내 대륙붕의 지질구조에 대한 이해나, 심해 탐사에 대한 노하우 등을 습득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여러 차례 시도하다 보면, 정말로 석유가 발견될지 누가 알겠나...!!
석유 탐사의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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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 탐사의 역사는 곧 시행착오의 역사이다. 중동에서 가장 먼저 개발된 유전은 이란이다. 영국인 사업가 윌리엄 달시는 페르시아 정부로부터 독점 사업권을 따낸 뒤, 전 재산과 대출받은 돈까지 석유 탐사에 투자하지만, 석유 발견에 실패한다.
자칫 실패할 뻔한 프로젝트에 산소 호흡기를 달아준 건 (윈스턴 처칠이 장관으로 있던) 영국 해군이었다. 당시 영국 해군은 석탄에서 석유로 연료를 교체하려고 했는데, 이걸 추진하려면 반드시 자기 나와바리에서 석유를 수급할 수 있어야 했다. 그래서 영국 해군은 버마석유회사를 동원해 자국 사업가인 윌리엄 달시를 밀어줬다.
하지만, 윌리엄 달시와 버마석유회사가 새로 투입한 자금을 모두 소진했음에도 석유는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그들은 파산을 결정하고, 자국 기술자들의 철수와 작업 중단을 명령한다. 그런데 현장 기술자였던 레이놀즈가 곤조를 부려 명령을 무시한다. 그는 조금만 더 파면 석유가 나올 것으로 생각했다.
레이놀즈는 몇 주간 석유탐사를 강행한다. 그리고 본국의 명령을 어기고 시추한 그 기간, 놀랍게도 석유가 콸콸 터져 나오게 된다. 그것이 위대한 석유기업 BP (브리티시 페트롤리움)의 시작이다.
유전 개발 프로젝트의 역사를 살펴보면 유독 극적인 반전이 많다. 항구를 얻으려고 넘겨준 사막 땅덩이에서 대규모 유전이 발견된다든가 (요르단-사우디의 경우), 기름을 확보하려고 태평양전쟁까지 일으켰으나 정작 발밑(만주)에 대규모 유전이 있었던 경우(일본)라든가.
석유 개발을 둘러싸고 이런 일들이 숱하게 벌어지는 근본적인 이유는, 땅 밑에 뭐가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데 있다. 현재는 석유 탐사 기술이 매우 진보하였으나, 파기 전까지 확실히 알 수 없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사우디아라비아의 파딜리 유전 지역 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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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나온 김에 조금만 더 얘기해 보자. 같은 석유라 하더라도, 육지에서 퍼 올리는 것과 해상에서 퍼 올리는 것은 천지 차이이다. 사우디가 원유시장에서 최강자인 이유는, 석유생산 단가가 압도적으로 낮기 때문이다. 사우디 석유의 배럴당 생산비용은 고작 4달러밖에 되지 않는다.
유전들이 지상에 있는 데다가, 채굴하기 좋은 여러 조건(지층 부근에 몰려있다)을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브라질 심해에서 원유를 생산하는 비용은 몇 년 전까지 배럴당 70달러를 넘었다. 바다라는 혹독한 조건을 견딜 수 있는 거대한 해양 플랜트를 짓고, 가동하고, 유지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다음으로, 석유가 어떤 지층에 어떻게 분포되어 있느냐에 따라서 뽑아낼 수 있는 기름의 양은 천차만별이다. 예를 들어, 중국은 세계 최대의 셰일 가스 매장량을 보유한 국가이다. 세계 최대 산유국인 미국보다도 1.5배나 많은 셰일 가스가 매장되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개발이 어려워, 아직은 많은 양을 생산하고 있지 못한다는 것.
여기까지 듣고 나면, 우리의 험난한 미래가 그려지지 않는가?
1. 포항 유전은 깊이 1KM이상의 초심해 유전이다. 이보다 깊은 심해에서도 석유를 채굴한 사례가 있기 때문에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매우 어려운 프로젝트가 될 수밖에 없다.
2. 아직 물리 조사만 진행했고 실제로 석유가 존재하는지는 확인된 바 없다. 석유가 존재하더라도, 현재 기술로 시추가 가능한 지층에 있는지는 당연히 모른다.
3. 설령 석유가 발견되더라도, 해양 유전의 개발까지는 최소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이것도 모든 단계가 한방에 통과할 것을 가정한 것이다. 중간에 우여곡절을 겪는다면 개발기간은 그만큼 길어지게 된다.
이런 모든 난관에도 불구하고, 유전 개발에 성공했을 때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이익 또한 막대하기 때문에 나는 윤석열 정권과 별개로, 이번 프로젝트는 해볼 만하다고 말한 것이다.
설레발의 부작용
동해 심해 가스전 개발 관련 브리핑 중인 엑트지오 비토르 아브레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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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심해 유전개발은 대형 장기 프로젝트가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러한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함에 있어서 필요한 것은, 장기적인 비전과 프로세스에 대한 신뢰이다. 비전과 신뢰가 없다면, 석유 탐사 과정에서 겪게 될 수많은 시행착오와 막대한 탐사 비용 앞에서 프로젝트는 흔들리게 된다. 필연적으로.
따라서 윤석열 정부가 했어야 하는 행동은, 국민들에게 이해와 협조를 구하는 것이었다. 앞으로 긴 시간과 시행착오를 겪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건 파볼 만하기 때문에 꾸준히 밀어붙여 보겠다고 동의를 구했어야 한다.
내가 가장 분노한 지점은, 아직 나오지도 않은 석유를 두고 대통령이 직접 140억 배럴이 포항 앞바다에 있다고 설레발친 것이다. 언론에서는 이걸 그대로 받아 적어 삼성전자 시총의 10배가 포항 앞바다 속에 있다고 맞장구를 쳤다. 순식간에 유전 개발사업이 초전도체 개발과 비슷한 떡밥이 되어 버렸다.
아직 채굴 단가는커녕, 석유가 있는지조차 확인된 바 없다. 이렇게 혼신의 설레발을 치다가 내년에 파봤는데 석유가 안 나오면, 유전개발은 영영 포기할 건가? 나중에 국내 유전을 개발해 보려는 정부와 기업이 나타나면, 똑같이 사기꾼으로 낙인찍힐 것이 아닌가?
이번 정권은 이런 중대 프로젝트를 앞두고 하는 짓이 너무나 아마추어 같다.
다시 말하지만, 아직 석유는 발견되지도 않았고, 발견되더라도 개발까지는 10년 이상이 걸린다. 이번 정권에서 마무리 지을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데 물리 조사 결과가 좋게 나오니까, 대통령 본인이 등판해서 여기에 빨대를 꽂으려 한다. 이 얼마나 유치한 행동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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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나온 김에 얘기하자면, 이번 프로젝트는 2020년(문재인 정권)에 발표된 자원개발 10년 단위 종합계획에 일환으로 시작된 프로젝트이다. 당시 문재인 정권은 과거에 의미 없이 지출해 오던 해외 자원탐사사업을 정리하고, 국내의 대륙붕을 먼저 개발해 보자고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그 노력의 성과가 지금에서야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국가의 중요 자원개발은, 특정 정권의 공이 될 수 없고, 공이 되어서도 안 된다. 국익을 위한 과거 / 미래 정권 간의 지속적이고 일관된 협조가 있을 때만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궁지에 몰린 대통령이, 평소에는 하지도 않던 국정브리핑을 직접 주재하면서, 자기(정권이) 140억 배럴을 찾았다고 설레발을 치니… 빡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렇게 성급하게 접근하면 잘 될 일도 안 된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번 석유 탐사 계획이 반드시 성공했으면 한다. 우리나라도 제발 산유국 소리 좀 들어봤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와는 별개로 기쁜 일을 있는 그대로 기뻐할 수 없게 만드는 현 정권에 대한 분노를 금할 수 없다(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사업조차도, 사기극으로 보이게 하는 기묘한 재주를 가졌다).
내년에 땅을 파서 석유가 나오지 않았을 때, 대통령직을 사퇴할 것이 아니라면 “포항 앞바다엔 140억 배럴이 있다!”와 같은 식으로 설레발을 쳐서는 안 된다고.
물론, 대통령 본인이 자기 말에 책임을 지고, 정말로 사퇴하겠다면 말릴 생각은 전혀 없다.
잠시, 책광고 들어갑니다
딴지스 여러분 덕분에, 『재무제표가 만만해지는 회계책』이 출간되었습니다. 이전에 쓴 딴지 연재물을 확장하여, 이때다 싶어 열쒸미 공부, 정리하여 낸 책입니다. 아마, 현직 회계사 중, 저만큼 회계공부를 싫어했던 회계사는 거의 없지 않을까 추측해봅니다(저만큼도 공부를 안 했다면 못 붙으셨을 테니까요). 회계 공부를 싫어했던 사람이 저와 비슷한 독자분들을 위해서 쓴 책이다 보니 재밌습니다(아마도...). 그동안 회계 공부가 하기 싫었다거나, 회계에 관심이 없었던 독자분들(사실상 전원)에게 추천합니다.
[재무제표가 만만해지는 회계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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