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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해병 사건

     

 
 
 
 

 

 

채 해병 사건을 구성하는 두 가지 '핵심 축'

 

8장. 첫 번째 사건 : 지시 

 

채수근 상병의 사망 사건은 간단하다. 

 

핵심은, 임성근 사단장이 

 

『바둑판식으로 무릎 아래까지 들어가서 찔러보면서 정성껏 탐색할 것』

 

라는 지시를 내렸느냐다. 

 

수색 사진 연합뉴스 독자 제공.jpg

2023년 7월 19일

채수근 상병이 속한 해병대 수색조가

하천에서 수색하는 모습

출처-<연합뉴스>

 

군 인권센터의 발표에 따르면, 사고 전날인 7월 18일 채 상병이 소속된 중대의 카톡 대화방에 '바둑판식으로 무릎 아래까지 들어가서 찔러보면서 정성껏 탐색할 것'이라는 지시가 전파됐다. 

 

사단장 지시.jpg

7월 18일 오후

해병 1사단장 지시라며

단체 카톡방에 전파된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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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8일 밤

단체 카톡방에 내려진 지시 내용

출처-<군인권센터>

 

이걸 누가 지시한 걸까? 임성근의 주장을 들어보면, 

 

"어떠한 대화나 회의 중에도 '물에 들어가라'는 지시를 한 적 없으며, '물에 절대 들어가지 말라'고 수차례 지시했다." 

 

- 임성근 사단장이 중앙군사법원에 제출한 진술서 中

 

이에 대한 진실은 7월 18일 오전 6시 20분 즈음에 포7대대장과 포11대대장의 대화 내역을 보면 얼추 짐작할 수 있다. 

 

포11대대장 : 야 이거 수변을 어떻게 내려가냐?

 

포7대대장 : 못합니다. 선배님 이거 하면 안 됩니다. 위험합니다.

 

포11대대장 : 하하 참 나… 내가 우선 7여단장이랑 통화해 볼게.

 

포7대대장 : 예. 사진 보내드리고 통화하는 게 나을 거 같습니다.

 

당시 포7대대장은 작전지역 내성천 사진을 찍어 포병 대대장들의 카톡방에 올렸다. 그리고 7여단장은 상황을 파악하고, 

 

“수변 정찰 시 위험한 지역은 도로정찰 위주로 하라”

 

라는 말을 한다. 

 

7대대장 내성천 사진.jpg

출처-<김경호 변호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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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한겨레TV>

 

임성근 사단장은 실종자 수색 작업을 계속 신경 썼다. 사건 당일인 7월 19일에도 임성근 사단장은 재난 현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해병대 상황을 점검했다.

 

(7월 18일과 19일에 벌어진 사건들의 타임라인은 여러 언론에서 많이 다뤘다. 그중 MBC와 한겨레에서 다룬 타임라인을 바탕으로 타임라인을 정리했으니, 궁금한 독자는 <여기>를 클릭해 주시길)

 


사건의 타임라인

 

사고 전날인 7월 18일 아침, 병력들이 물에 들어가지 않고 도로 위주 수색 활동을 하던 모습을 본 임성근 사단장은 수변으로 내려가서 수색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에 대해, 채 상병의 소속 포7대대장은 너무 위험해 절대 안 된다고 선임인 포11대대장에게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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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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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7대대장은 폭우로 수색 작업이 불가능하다며 계속 해서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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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그대로 수색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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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장의 지시라 어쩔 수 없다는 것. 7여단장도 사단장 지시 때문에 철수할 수 없다고 난감함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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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당일인 다음 날 7월 19일 아침. 7여단장은 임성근 사단장이 전날에 이어 다시 현장을 찾는다며 어느 부대를 보여줘야 할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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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타임라인2.PNG

출처-<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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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전날에, 임성근 사단장이 물에 빨리 들어가지 않는다며 질책했기 때문에 부하 군인들은 어떻게든 사단장에게 물속에서 수색 중인 장면을 보여주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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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두 시간이 채 지나기 전, 채 상병은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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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이어 임성근 사단장도 채 상병이 물에 빠졌다는 보고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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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상병이 실종되고 3시간이 지난 후, 임성근 사단장은 이런 걱정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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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 점검까지는 핵심 문제가 아니다. 핵심 문제는 기사 서두에서 언급했듯 '바둑판식으로 무릎 아래까지 들어가서 찔러보면서 정성껏 탐색할 것'이란 지시를 임성근 사단장이 내렸냐는 거다. 그게 핵심이다. 그랬다면 그는 업무상과실치사를 피해 갈 수 없다. 

 

당시 상황에 대해선 상반된 주장이 부딪치고 있다.

 

임성근1.PNG

 

임성근 사단장은 이렇게 주장한다.

 

일명 ‘호우피해복구작전’의 작전통제권이 2023년 7월 17일 오전 10시부로 해병대 1사단에서 육군 50사단으로 넘어갔기 때문에, 그 시간 이후로는 50사단장에 현장을 총괄 지휘했다. 그래서 육군 50사단장은 7월 18일에 해병대 7여단장에게 전화를 걸어 작전 종료 시점을 정해 보고하라고 했다. 

 

이때 임성근 사단장이 7여단장 옆에 있었다. 그리고 7여단장은 옆에 있던 임성근 사단장에게 의견을 구했다(여단장이 의견을 구했다는 건 임성근 사단장이 자신의 입장을 정리한 문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임성근 사단장은 직속상관인 자신에게 의견을 구하는 7여단장에게 의견을 제시한 것뿐이다. 

 

임성근 입장 정리 문자.jpg

임성근 입장 정리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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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근 사단장 입장 문자

 

하지만, 당시 현장 지휘관이었던 7여단장의 주장은 달랐다. 그가 해병대 수사단에 진술한 내용은 이랬다.

 

7여단장은 육군 50사단장과 VTC(화상회의)를 한 적도 없고, 50사단장이 사고 발생 전 해병대 지역으로 와서 작전지도를 한 적도 없다. 50사단장은 사고 발생 이후 한 차례 방문 했다. 

 

반면, 임성근 사단장은 7월 18일 현장을 찾아 작전지도를 했고, 저녁에는 VTC(화상회의)도 주재했다. 이 회의에서 임성근 사단장은 전반적인 작전에 대한 평가와 지침을 하달했다. 실질적인 지시는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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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다른 의견이 맞서고 있다. 많은 언론이 두 사람 중 누구의 말이 맞는지에 대해서는 많이 분석했고 보도했다. 지금껏 나온 증거로 판단하자면, 7여단장의 진술 쪽으로 판단이 기우는 건 무리가 아닐 것이다.

 

나는 이 지점에서 추가적으로 주목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임성근 사단장의 ‘군인’으로서의 생명이다. 

 

거듭 말하지만, 관리형 군대인 대한민국에서 부대 내 사망사고는 지휘관에게 치명적이다. 아주 만약의 상황을 가정해 보자. 당시 지휘권이 50사단장에게 있다는 임성근 사단장의 말이 틀리지 않았고, 임성근 사단장이 단순히 ‘의견 제시’를 했다는 것이 진실이라면, 명분상으로 임성근 사단장에게 책임은 없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가 다시 군인으로 복무하는 것에는 무리가 따를 것 같다.  

 

당시 채 상병과 급류에 휩쓸려 갔다가 살아난 병사가 전역 후 임성근 사단장을 공수처에 고소했다. 

 

이 정도면, 지휘관으로서 끝났다고 보는 게 맞다. 그의 명령을 누가 따를 건가? 군인으로서 그의 생명력은 이미 끝났다. 

 

 

9장. 두 번째 사건 : 격노

 

해병대 수사단이 2023년 7월 31일 날 일정대로 수사 결과를 브리핑했다면, 첫 번째 사건은 조용히 마무리됐을 거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첫 번째 사건과 이어진 두 번째 사건이다. 이제 첫 번째 사건은 중요치 않게 됐다. 대한민국의 모든 시선은 해병대 수사단이 7월 31일 일정을 수행하지 못하게 한 두 번째 사건에 모아지고 있다. 

 

두 번째 사건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격노(激怒)』

였다. 

 

7월 31일 오전 11시 용산 대통령실에서 안보실 회의가 있었다. 

 

안보실 회의.jpg

출처-<연합뉴스>

 

‘격노’의 시작이었다.

 

우리나라에 있는 120여 명의 소장 중 한 명이 지휘하는 부대 중 한 곳에서 사망사고가 났고, 대통령은 이런 일로 지휘관을 처벌하면, 지휘관이 어떻게 부대 지휘를 하느냐며 ‘격노’한 걸로 대외적으로 알려졌다. 

 

유추해 본다면, 전날 장관 결재가 끝난 상황에서 대통령안보실 회의 중 임성근 사단장의 ‘처리결과’가 보고 됐을 테고, 가볍게 생각했던 이 보고에 뇌관이 격발 됐을 거다. 

 

그리하여 오전 11시 54분 대통령실이 사용하는 번호인 02-800으로 시작된 유선 전화로 이종섭 장관에게 전화가 갔다. 이 전화를 받고, 14초 뒤에 이종섭 장관은 보좌관의 전화로 김계환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통화로 언론 브리핑 취소와 사건 이첩 보류가 결정 났다.  

 

엠비씨 대통령실 전화.PNG

출처-<MBC> 링크

 

개인적인 판단이지만, 이날 해병대 수사단을 멈춰 세웠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과는 별개로) 이 사건은 국방부 선에서 해결이 가능했을지 모른다. 그날 있었던 대통령의 격노와 지시는 대통령의 통치철학과 법리 적용의 해석 차이로 포장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명분이 많이 떨어지긴 하지만, 어쨌든 대통령의 철학이라고 우길 수 있는 범위 안쪽이었다). 

 

그러나 대통령의 격노로 시작된 움직임은 여기서 브레이크를 밟지 않았다. 사건은 7월 31일 날 벌어졌다고 생각하지만, 사건의 실체적 진실은 8월 2일 날 벌어졌다. 8월 2일에 벌어진 사건은 이제 정권을 위협할 정도로 커졌다. 보수적으로 판단해도 최소한 대통령의 국정 동력을 멈춰 세울 정도로는 커졌다. 

 

박정훈 대령 연합뉴스.jpg

박정훈 대령

출처-<연합뉴스>

 

8월 2일, 박정훈 대령이 사건을 경상북도 경찰청에 이첩했다. 만약 박 대령이 사건을 이첩하지 않았다면, 사건은 이렇게까지 커지진 않았을 거다. 

 

이날을 기점으로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 시작했다.

 

이날, 낮 12시를 약간 넘은 시간에 우즈베키스탄에 있던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게 전화가 한 통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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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국방장관회담을 위해

우즈베키스탄에 있던 이종섭 장관 

출처-<국방부>

 

발신 핸드폰은 대통령이 검사 시절부터 쓰던 대통령의 개인 전화(핸드폰)였다. 이 통화가 있고 30여 분이 흐른 뒤 박정훈 대령은 해병대 김계환 사령관에게 보직해임을 통보받았다. 첫 번째 통화 내용을 유추할 수 있는 힌트다. 

 

시간대와 이후 벌어진 일들을 기반으로 추정하자면, 통화 내용은 이렇게 흘러갔을 거다.  

 

1. 대통령은 사건 이첩 소식을 듣고 다시 한번 ‘격노’한다. 

 

2. 우즈베키스탄에 있는 이종섭 장관에게 전화해 박정훈 대령의 ‘처리’를 말한다. 

 

통화내역 시간대와 벌어진 일을 짜맞추면 이렇게 추리된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추리와 추정의 영역이다. 확실한 뭔가가 나오려면, ‘통화 내용’을 확인해야 한다.

 

이날 통화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통화는 두 번 더 있었다. 낮 12시 40분과 57분에도 대통령 개인 전화로 국방부 장관에게 전화가 갔다. 

 

이 외에도 8월 2일에는 수많은 전화 통화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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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환 사령관은 임성근 사단장과 통화 했고, 이어서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과 통화했다. 유재은 법무관리관은 김계환 사령관과 통화 이후 경북경찰청의 고위 간부와 통화했다. 

 

어떤 의식의 흐름인지 보인다. 

 

이제부터 이들의 통화 순서와 내역으로 사건을 추리해 보겠다. 

 

김계환 사령관이 임성근 사단장의 ‘목’을 다시 붙여줬고, 이후 유재은 법무관리관과 통화하여 사건 회수에 대해 통화했을 거다. 통화가 끝나자, 유재은 법무관리관은 경북 경찰청으로 연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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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경북경찰청 간부는 이렇게 증언하고 있다.

 

"군 검찰이 가져가기로 하는데, 경찰이 사건을 정식 접수하지 않았으니 '반환'이 아닌 '회수'로 하고 회수는 오늘 한다는 것까지, 모두 세 가지를 협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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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도 수많은 이들이 전화를 걸고, 받고, 통화를 이어 나갔다. 

 

7월 31일까지의 일은 ‘대통령실의 누군가가 외압을 넣었다’ 정도에서 멈춰 세울 수 있는 영역이었다. 하지만 8월 2일에 벌어진 여러 사건으로 인해 이 외압의 몸통이 ‘대통령’일 수도 있다는 ‘가정(假定)’을 할 수 있게 됐다. 만약 아니라고 하더라도 사건의 흐름을 조립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 게 됐다. 

 

8월 2일에 벌어졌던 사건들이 곳곳에서 드러나기 직전까지만 하더라도, 국민의힘 소속 성일종 의원 같은 정치인이 방송에 나와서 

 

“대통령이 격노한 게 죄냐”

 

라며, 격노에 대한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대통령실을 방어하기 위해 ‘격노’한 사실 자체는 인정하되, 법적 문제가 있는 건 아니라고 방어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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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경향신문> 링크

 

성일종 의원의 해석을 들어보면, 이랬다. 

 

“거기 들어가서 작전하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 돌아온 8명을 기소 의견으로 낸 게 맞냐는 얘기를 (대통령이) 국군 통수권자로서 한 것 (중략) 책임을 묻는다면 앞으로 작전 명령을 했을 때 누가 나가겠냐. 국군 통수권자로서 당연히 할 수 있는 얘기이다.”

 

일견 타당해 보이는 말이며, 이제껏 대통령이 ‘격노’한 명분이었다. 이 부분을 보면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 X의 헌신>의 대사 한 구절이 생각났다.

 

“기하 문제인 것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함수 문제라거나”

 

당시 성일종 의원이 내세웠던 논리는 2023년 8월 2일에 벌어졌던 일들이 속속히 드러난 지금에서는 납득되지 않는 논리가 됐다. 그 말을 납득시키기 위해서는 깨야 할 정황이 너무 많아졌다. 

 

물론, 그 통화 내용이 명확하게 밝혀진 게 아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는 아직 추측의 영역에 머물러 있지만, 중요한 건 이 사건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이제 외압의 주체를 대통령실이 아닌 대통령으로 보고 있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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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뉴시스>

 

그리하여 이 사건은 지금, 정권의 운명을 좌우할 가장 핵심 사건이 되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