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소망
월남에서 돌아온 참전용사들의 수기를 보면 알 수 있는 사실이 있다. 그들이 경험하는 지옥 같은 상황을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건, 고향과 가족에 대한 생각 그리고 그들과 함께 만들어 갈 미래를 구상하는 것이었다. 인간은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있어야 온전한 정신으로 살고 버틸 수 있는 존재다. 그리고 기대감을 가지려면 목표를 세워야 한다.

출처 - <영화 친구>
큰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 어느 날 저녁. 그날은 '타이밍'이 맞지 않아 아버지와 단둘이 식사하게 되었다. 평소에는 내게 "밥무라" 정도의 말만 하던 아버지가 식사 중에 먼저 대화를 시작했다.
"니 사촌들하고 같이 사는 거 어떻게 생각하노?"
'오늘은 꼬투리 안 잡히고 조용히 밥을 먹을 수 있을까?' 생각하며 애써 TV와 밥그릇에 집중하고 있던 찰나,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놀란 표정으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사실 혼내기 위한 빌드업인가? 싶었다).
"사촌…? 사촌 누구요?"
"삼봉이하고 말봉이(막내 삼촌)하고 전부 다."
아버지는 남자 형제들의 가족과 큰집 식구들까지 같은 집에서 살거나 그들을 근처로 이사시켜 한동네에 사는 것을 구상하시는 것 같았다. 집성촌을 이루는 것도 아니고 90년대에 그런 발상을 한다는 것도 특이했지만, 과연 사촌들이 그 계획을 좋아할까? 의심스러웠다.
당장 나조차도 사촌들과 다 같은 동네에 사는 것은 껄끄럽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삼촌들이 한동네에 산다면 아버지는 지금보다 술을 더 자주 마시게 될 거라는 예감도 들었다. 하지만 이때 아버지의 눈은 조금 달랐다. 이제 자신이 가문의 수장으로서 집안을 이끌어야 한다는 확고한 의지가 보이는 듯했다. 그리고 당신의 생각이 너무나도 획기적이어서 흡족해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아버지는 어차피 남의 말은 듣지 않는다. 그리고 정작 본인 가족은 함부로 대하면서, 형제들과 형제의 가족들에겐 그토록 관대함을 베푸는 것이 서운했다.
"나는… 잘 모르겠는데요. 좋을랑가?"
나는 대답을 흐리며 TV로 눈길을 돌렸다. 아버지는 나의 대답이 긍정의 의미라고 생각하고 다시 말했다.
"돈을 더 모아가 집을 구해줘서 같은 동네에 살면 서로 힘이 되고 좋을끼다."
아버지는 형제들이 모이면 서로에게 힘이 되고 세상살이가 행복해질 거라고 믿었다. 아마, 큰아버지가 투자 명목으로 아버지의 돈을 가져가 반토막으로 돌려준 것을 잊은 듯했다. 그것도 몇 번씩이나.

출처 - <황금빛 내 인생>
가족애… 그때는 그저 아버지의 이상한 고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월남에서 얻은 정신적 충격과 상처를 딛고 아버지가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유지해 준 톱니바퀴 중 하나가 가족애(또 다른 하나는 술)였던 것 같다.
내가 힘든 시간을 친구의 존재로 버텨냈던 것처럼 아버지는 마음의 상처와 공허함을 형제들의 존재로 버티고 살아냈다. 안타까운 점은, 역시나 나의 예상대로 막냇삼촌은 아버지의 제안을 무시해 버렸다. “형님, 뜬구름 잡는 소리 좀 하지 마이소!” 하고 말이다.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이번에도 아버지는 남의 말을 듣지 않았다.
이듬해 아버지는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막냇삼촌의 말을 듣고 빚을 내러 고압 콤프레샤를 수입했다. 그 장비를 들고 막냇삼촌의 지하수 파는 일을 도와 같이 다니기 시작했다. 인터넷도 없던 시절, 영어도 유창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장비를 찾고 주문하고 수입한 것인지 지금도 의문이지만. 그런 면에서 아버지의 추진력과 생활력은 대단했다.
아버지는 형제와 함께 일하기로 한 결정이 훗날 자신에게 큰 상처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끔찍이 아끼는 형제들과 엮이면 손해를 보고, 상처받는 건 항상 아버지였다.
기묘한 가족묘

출처 - (링크)
1999년 세기말. 종말이 온다든지, Y2K 버그로 컴퓨터가 오작동을 일으켜 전 세계 핵미사일이 발사되어 인류가 멸망할 것이라는 소문으로 온 세상이 뒤숭숭할 때였다. 가문을 한데 모을 생각으로 열심히 일하던 아버지의 노력이 무색해지는 순간이 찾아왔다.
9시 뉴스를 보면서 식사하던 저녁, 전화가 울렸다. 반찬을 집던 젓가락을 내려놓고 아버지는 수화기를 들어 한참을 대답 없이 듣기만 했다. 그리고 “알겠소.”라는 말과 함께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통화 중인 아버지의 표정을 가만히 살펴보던 어머니는 아버지가 전화를 끊자마자 물었다.
"누군겨?"
"누나다. 형수가 아버지 어머니 묘를 이장한다고 했단다."
"묘를? 그거를 와 건드리노? 그리고 우리한테는 왜 말을 안하노?"
아버지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아버지 어머니 묘를 거기다 해놓으니까 내만 잘된다고 옮긴다네."
평소 미신을 잘 믿지 않으시던 어머니는 큰어머니의 기이한 행보에 어리둥절해하시다가 갑자기 기분이 나쁘셨는지 혀를 끌끌 찼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나 역시 어리둥절하다가 헛웃음이 나오는 걸 애써 참았다. 그러니까 큰어머니는 다른 형제가 잘되는 꼴은 못 보겠다는 걸 이장 문제를 꺼내 들어 그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이다.
큰집은 이제껏 아버지에게 돈을 꾸준히 요구해 왔고, 요구하는 즉시 아버지는 돈을 가져다주었다. 아버지가 셋째 삼촌을 위해 큰집을 지원하지 않았다면, 우리 가족은 큰아버지 말대로 우리끼리만 잘 먹고 잘살 수 있었다. 남 부럽지 않게. 하지만, 아버지는 끝까지 ‘혈육’과 ‘술’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우리 가족은 다른 형제들이 생각하듯 풍요롭게 살지 못했다.
아버지의 형제 사랑은 각별했지만, 돌아오는 건 악의와 공허함 뿐이었다. 의논 없이 마음대로 큰일을 벌이거나 언제든 아버지에게 빅엿을 날리고 싶어 하는 큰어머니. 그리고 그런 악의마저 허허 웃으며 넘기면서 정작 본인 가족에게는 온갖 행패를 부리던 아버지. 나는 이 사람들에게 질려갔다.
얼마 후 조부모 님의 묘는 이장 되었다. 이장된 장소는 큰아버지의 묘지 옆쪽으로, 그곳은 지대가 낮았다. 아들의 무덤이 부모의 무덤을 내려다보는 형국. 가족묘가 기묘한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이장 이후, 큰어머니가 계획하고 진행한 일이 얼마나 효과를 보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장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집게손가락 두 마디가 잘린 채로 거실에 앉아 계셨다. 짧아진 손가락 절단부에 과산화수소를 바르면서 멍하니 서 있는 나를 올려다보았다.
<계속>
검색어 제한 안내
입력하신 검색어에 대한 검색결과는 제공하지 않고 있습니다.
딴지 내 게시판은 아래 법령 및 내부 규정에 따라 검색기능을 제한하고 있어 양해 부탁드립니다.
1. 전기통신사업법 제 22조의 5제1항에따라 불법촬영물 등을 기재(유통)시 삭제, 접속차단 등 유통 방지에 필요한 조치가 취해집니다.
2. 성폭력처벌법 제14조, 청소년성처벌법 제11조에 따라 불법촬영물 등을 기재(유통)시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3.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11조에 따라 아동·청소년이용 음란물을 제작·배포 소지한 자는 법적인 처벌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4.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및 시행령에 따라 청소년 보호 조치를 취합니다.
5. 저작권법 제103조에 따라 권리주장자의 요구가 있을 시 복제·전송의 중단 조치가 취해집니다.
6. 내부 규정에 따라 제한 조치를 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