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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엔 잘 사용되지 않는 단어이지만, 10여 년 전 한국의 청년세대는 스스로를 'N포세대'라는 자조 섞인 이름으로 명명했습니다. 처음 시작은 삼포세대입니다.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세대라는 뜻으로 당시 20~30대의 청년들이 비혼, 비출산을 택하는 사회현상을 일컫습니다. 이후 포기하는 것들이 늘어나면서 결국 N포세대로 불리게 된 것이지요. 사실 청년들의 고단함을 포기하는 단어는 이 전에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 유명한 88만원 세대나 니트족이 있었고 이태백(이십 대 태반이 백수), 인구론(인문계 구십퍼센트가 논다) 등 청년실업에 초점을 맞춘 용어들도 있었습니다.

 

기성세대는 그 유명한 '노오력'을 강조하며 이러한 청년들의 아픔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 버렸습니다. 기성세대가 바라볼 때 요즈음 청년들의 삶은 자신들이 겪었던 삶에 비해 풍요로워 보일 터입니다. 노력의 결과를 보장받을 수 있느냐와는 별개로, '포기'를 외치는 청년들의 모습에서 기성세대의 말에 일견 수긍이 가는 면도 있습니다. 다만, 이런 청년의 모습은 특별히 우리나라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전 세계 많은 청년이 미래에 대해 회의적이고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청년들이 삶을 포기하려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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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허핑턴포스트>

 

1. 사토리 세대

 

아마 이런 청년들을 지칭하는 단어 중 가장 유명한 단어는 일본의 사토리 세대가 아닐까 합니다. 사토리란 '깨닫다'라는 뜻의 사토루에서 파생된 말로, 해탈과 같은 의미입니다. 시대적 구분은 1987년~2004년생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로, 2010년대에 주로 20~30대를 보낸 일본의 청년세대입니다. 이들은 연애·결혼·출산은 물론 돈과 명예·출세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고 득도한 것처럼 최소한의 욕망만을 품고 살아갑니다.

 

이들의 대부분은 일본의 경제불황이 시작되던 시기에 출생했기 때문에 일본의 경제적 호황기란 것은 교과서에서만 볼 수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성장기엔 경제적 불황을 겪었고, 이들의 바로 윗세대인 '빙하기 세대(잃어버린 세대라고도 하며 2000년 전후에 성년이 된 세대)'가 노력에 비해 낮은 보상을 받는 것을 보았기에 시간을 들여 명문대에 가고 좋은 직장에 취업하려고 적극적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거나 책임이 덜한 비정규직을 선호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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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JTBC>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리스크 때문에 무모한 도전을 하지 않으며 내 집 마련, 해외여행, 자동차 등 소비를 포기하고 최소한의 경제생활과 소비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들의 극단적인 소비 거부와 책임 기피 현상은 당연히 일본의 기성세대가 보기에는 부정적이었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나름의 삶의 지혜'를 터득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특히 소비문화에서는 이전의 기성세대가 중시하던 자동차와 가전제품과 달리 좀 더 의식주에 치중한 소비를 보입니다. 주택구입에 관해 말하자면 일본의 80~90년대생들이 국내외의 부동산 폭락을 경험했던 세대이고, 인구감소와 세계화, 주식과 채권 등 다양한 투자기회들로 인해 자산으로써 부동산 입지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부동산에 높은 금액을 주고 무리하게 투자할 필요가 없다고 느낍니다. 결국 기성세대와는 다른 사고와 가치를 가지고 기성세대의 자산을 재구매하지 않으니, 자산의 가치가 하락할 것을 우려해서 이를 비판하고 자기세대를 옹호하고자 기성세대가 청년들을 사토리 세대로 몰아가고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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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KBS '명견만리'>

 

2. 탕핑족

 

탕핑은 '드러눕는다'라는 뜻으로, 중국의 20~30대 청년들이 중국 공산당을 향한 저항을 포기하고, 희망 없는 삶에 자포자기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모습을 의미하는 신조어입니다.

 

중국은 시장경제를 받아들이며 고속 압축 성장을 이뤄낼 수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부의 쏠림과 빈부격차가 심해졌습니다. 그런데 시장경제 도입을 통해 이룬 부는 공산당과 관련자들에게 집중되었고, 혹여 자수성가한 이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공산당에 복종하지 않으면 정부의 제재를 당했습니다. 이런 현실은 시진핑의 장기독재로 더욱 굳어졌습니다. 경제적 민주화는 물론 정치적 민주화를 주도해야 할 젊은 엘리트층은 공산당에 숙청당하지 않고자 아무런 목소리도 내지 못하는 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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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뉴스1TV>

 

이렇게 시진핑과 그에 충성하는 이들이 사실상 왕족처럼 살아가고, 그렇지 못한 대부분은 노예로 전락해 버린 것이지요. 결국 중국의 젊은이들은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적극적인 저항이 봉쇄된 상황에서 조직을 만들지 않고, 사상 탄압에도 걸리지 않는 저항의 방법으로 탕핑을 선택한 것입니다. 공산당의 체제에 저항하는 '불복종운동'인 탕핑은, 법적으로 처벌할 명분이나 기준도 없으며, 어떠한 조직화한 집단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집단적 시위나 집회는 쉽게 탄압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탕핑족에게는 쉽게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3개월 직장에 나가지 않으면, 공산당의 힘이 모두 소진되고, 반년을 일하지 않으면, 새로운 중국을 맞이할 수 있다."

 

라는 말이 유행한다고 합니다. 이들 스스로는 한국의 N포세대들처럼 취업·연애·결혼·출산·내 집 마련 등을 포기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주로 가난한 서민층에서 시작되었지만, 점차 중산층으로까지 번져가고 있습니다. 중국의 경제성장 속도가 느려지고, 경제전망이 불투명해지기 시작하자 이미 어느 정도 부를 축적하고 경제적으로 자유로운 30~40대도 안전하게 현상 유지를 하거나 무리한 사업확장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실물경제 활동이 줄어들어 중국의 경제전망을 더욱 어둡게 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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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뉴스1TV>

 

3. 두머(Doomer)

 

두머는 영미권에서 주로 사용되는 신조어로 비운·파멸·운명 등을 뜻하는 Doom과 사람을 의미하는 er의 합성어입니다. 198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 출생자(한국으로 치면 MZ세대)들로, 각종 경제불황과 사회문제 등을 경험하며 무관심·염세주의·자기혐오 등에 빠져버린 이들을 일컫습니다. 4chan이라는 미국의 유명 인터넷 커뮤티니에서 유래한 단어로 언론과 매체에서도 인용되며 알려졌지요. 

 

이들이 자라나고, 사회에 진출하던 시기에는 미국의 911테러와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 대출), 코로나19 등 굵직한 사건들이 있었기에 경제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불안정한 시기였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에게는 기성세대의 복지를 위해 높은 세금이 요구되었고 사회문제와 경제불황까지 겹치면서 연애·인간관계·취미 등에 투자할 여력이 없는 터입니다.

 

미국 기성세대가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나약한 청년들'입니다. 나약함으로 인해 경쟁에서 도태되고 포기했다고 하지만, 미국도 기성세대(베이비부머)가 경제활동을 하던 경제 호황기에는 노력하면 기회를 잡을 수 있었고, 열심히 하면 보상을 받을 수 있었던 시기입니다. 반대로 이들은 부모 세대의 높은 눈높이와 기대를 받았지만, 장기 불황과 저성장으로 '열심히'와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한 시대를 살고 있으며, 기성세대는 이를 간과하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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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두머' 밈(meme)

출처-<인터넷 커뮤니티>

 

결국 청년세대는 이런 기성세대를 향해 냉소적입니다. 부모 세대가 현재 자신들이 겪는 환경문제나 사회문제를 발생시킨 뒤 해결하지 않고 다음 세대인 자신들에게 떠넘겼다고 여깁니다. 결국 해결되지 않는 사회문제와 가망 없는 미래 등 암울한 현실을 염세주의적 태도로 대하지요.

 

이 밖에도 유럽권에서는 1,000유로 세대를 지나 700유로 세대, 이케아 세대라는 단어도 있습니다. 이케아의 제품은 단기간 사용하고 버리는 가성비 제품인데, 유럽의 청년들도 인턴이나 비정규직으로 단기간 채용하는 것을 빗댄 것입니다.

 

4. 20세기 인구 폭증과 고도성장에 따른 반작용 

 

이처럼 현재의 청년층은 불안정한 고용과 취업시장, 미래를 계획하기 어려운 경제상황 등으로 인간들의 보편적 소비 욕구는 물론이고 기본적이고 본능적인 욕구마저 포기하고 있습니다. 이런 청년들의 포기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우선 이들의 부모 세대는 고도 성장기를 거치며 경제 호황을 누렸고, 자수성가할 수 있었던 시대였습니다. 부모 세대는 지금의 청년들을 높은 교육열을 갖고 교육하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청년들이 진출하는 현 사회는 성장률이 낮으며 고학력자들의 눈높이에 맞는 일자리가 부족하지요.

 

세계적으로 비슷한 나이대의 청년들이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는 하지만 비슷한 특징을 보인다는 것은 우연이라고 할 수 없겠지요. 기득권 대부분을 쥐고 있는 기성세대는 청년들의 모습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려 할 뿐, 지금까지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로 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인구구조에서나 경제력으로나 우위에 있는 기성세대에게는 당연하게도 남의 일이라 그러할 터입니다.

 

[자막뉴스] _포기합니다_…대한민국 청년, 씁쓸한 현실 _ YTN 0-38 screenshot.png

출처-<YTN>

 

5. 세대 간의 갈등

 

서두에 언급했지만, 기성세대는 청년들의 선택을 노력의 부족, 나약한 세대 등 개인의 문제나 이기심쯤으로 치부해 버립니다. 기성세대는 과거의 경제적으로 가난했던 시절을 겪으며 경제성장을 이룩했다는 자부심과, 이러한 과정에서 노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받았던 경험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기성세대가 지금의 청년을 보았을 때 적어도 밥 굶는 일은 없다는, 상대적으로 풍요로운 시대라서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기성세대의 시각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기성세대가 겪었던 가난과 배고픔, 독재정권의 억압이 현재 청년들이 겪는 무력감이나 절망감보다 힘들었을지 몰라도, 현재의 것들도 충분히 힘들고 고통스럽다는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 기성세대는 꼰대가 되어버리고 그들이 하는 이야기는 라떼가 되어버리지요.

 

또한 당시 개인의 삶은 부족했을지라도 국가 경제는 급속도로 성장하던 시기였습니다. 부동산과 자산의 가치는 계속해서 상승하고 있었고, 내 집 마련이라는 것도 열심히 일하고 저축하면 불가능하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부동산은 구입만 하면 무조건 이득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취업시장에서도 IMF외환위기 전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기업들은 평생 고용을 추구하였으며, 그만큼 양질의 일자리도 많았습니다. 이처럼 시대가 변화하고 이에 따라 국민들의 가치관과 의식도 많이 성장하고 바뀌었습니다. 과거에는 사회에서 통용되었던 많은 것이 이제는 법적으로 문제가 되거나 주변 사람들의 눈총을 받는 대상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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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머니투데이>

 

청년들은 이러한 모습을 기성세대가 뿌린 씨앗의 결과물이라고 말합니다. 한국의 경제성장과 함께한 부정부패와 기업들의 방만한 경영은 외환위기를 불러왔고 경제는 장기적인 불황에 빠졌습니다. 이후 최대한 인건비를 줄이고자 계약직을 넘어 파견이나 하청을 도입했습니다. 악덕 기업들은 최소한의 인권조차 보장해 주지 못해 산업재해로 사망하는 일도 흔합니다. 청년들은 미래를 꿈꾸고 계획하기보다 당장 내 몸 하나 건사하기에 바쁘고, 결혼과 출산은 뒤로 미루면서 욕심을 버리고 억누르며 포기하는 것입니다.

 

6. 문제는 심리에서 기인할 테다

 

청년들이 삶을 포기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다양한 해결책이 있을 수 있습니다. 사회적인 합의와 새로운 제도, 경제적인 지원이나 양질의 일자리, 지방과 도시 간의 격차 해소 등등 지금도 많은 정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으며 일부는 실패했고 일부는 진행 중이며 일부는 아직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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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YTN>

 

사실 처음 글을 구상할 때는 어떤 구체적인 해결책을 찾아서 이야기할지를 많이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해결책을 고민하고 이를 시행하는 것도 모두 기성세대의 입장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청년들이 포기하지 않고 성실하고 부지런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경제활동도 활발히 하고, 소비활동도 적극적이며, 출산율도 높이는 것이 과연 그들의 행복일까요? 어쩌면 기성세대가 쌓아놓은 사회와 경제적 산실을 청년들의 희생으로 지탱하기 위함인지 모르겠습니다.

 

잠시 언급했지만 청년들의 현실을 이야기하는 뉴스와 기사들은 은연중에 모든 현상의 책임을 청년들에게 돌리고 낙인찍는 듯합니다. 기성세대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청년세대의 환경은 풍족한 게 맞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아마 내일은 더 이상 성장하지 않으리라는 희망 부재, 즉 심리적 요인에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쩌면 청년들을 낙인찍지 않고 심리적으로 체념하지 않게 주거(住居)나 소득 면에서 안정감이나 희망을 느끼게 해줄 수 있다면, 다양성을 높이고 조금만 더 나누어 가지는 사회가 된다면, 청년들이 미래를 그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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