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읽을 독자분들 대부분은, 거상이라는 게임의 존재 자체를 몰랐을 것이다. 온라인 게임을 좋아했던 아재라면, 이름 정도는 들어봤겠지만, 그런 똥겜이 아직도 서비스되고 있단 사실은 몰랐을 것이다.

출처 - <링크>
거상은... 그러니까 어디 내놓기 좀 부끄러운 게임이다. 후진 그래픽과 인터페이스는 일단 그렇다고 치자. 거상은 오래된 게임답게 무지막지한 반복 사냥을 요구하는데(옛날 MMORPG 게임들은 피시방에 유저들을 최대한 오래 앉혀두기 위해 설계되었다), 그 사냥이라는 게 좀 거시기하다.
거상에서 사냥이라는 건, 몬스터와 전투를 하는 건데 대부분의 전투가 고작 9초 ~15초 안에 끝난다. 전투 시작과 동시에 모든 용병들이 전장 중앙으로 뛰쳐나가서, 온갖 스킬을 파바박하고 갈기고 튀어버린다.
대부분의 게임에서 플레이어들은, 어려운 도전과제를 수행한다. 다크 소울류 게임에서 플레이어들은 보스에게 처맞아가면서 게임을 배운다. 와우같은 온라인게임에서도 유저들은 공대장에게 쌍욕을 들어가며 다양한 패턴과 기믹을 익히게 된다. 불가능해 보이는 과제를 달성했을 때, 그만큼 플레이어가 느낄 수 있는 성취감과 재미 또한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상에서는 대부분의 유저들이 극한의 효율을 추구한다. 내가 잡을 수 있는 몬스터 중 가장 강력한 놈을 사냥하는 게 아니라, 딜로 찍어 누를 수 있는 놈 중에 돈이나 경험치를 가장 잘 주는 놈을 골라 사냥한다.
여기서 효율은 전투시간으로 측정이되는데, 보통 두 부대를 13초 이내에 클리어할 수 있어야 효율이 나온다고 한다. 사냥에 그 이상의 시간이 소모될 경우, 그 몬스터를 잡을 수 있다 하더라도 잡지 않는다. 효율이 안 나오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거상에서 사냥은, 나보다 약한 놈을 반복해서 학살하는 것이다. 복잡한 패턴을 강제하거나, 잡기 빡센 몬스터가 있으면 웬만해선 그 몬스터를 사냥하지 않는다. 거상 유저들은 하루에도 수백, 수천 번에 반복 사냥을 해야 한다. 하루에 잡아야 하는 몬스터의 수가 많다 보니, 전투에 소모되는 시간과 피로도(복잡한 컨트롤을 하다 보면 손가락이 아프다)를 따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보다 약한 놈만 골라 잡다보니, 게임은 루즈해진다.
꿉꿉한 매력
게임이 또 한 가지 ㅄ 같은 점은 뭐냐면, 너무나도 힘든 컨트롤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한 가지 캐릭터 만을 조작하는 다른 RPG 게임과 달리 거상에서는 7-9마리의 용병을 동시에 컨트롤해야 한다. 돈 벌려고 작정한 게임 회사가, 계속해서 쎈 신규 캐릭터를 추가하다 보니 벌어진 참극이다. 기존 캐릭터를 곧바로 팽 시켰다간 민심이 나락 갈 것 같고, 더 좋은 신규 캐릭터는 출시해야겠다. 그래서 절충안이라고 내놓은 방법이, 지금까지 출시한 모든 캐릭터(전설장수)를 동시에 활용하는 것이다. 현재 메타에서는, 게임 시작과 동시에 7-9개의 캐릭터를 각각 컨트롤해서 스킬을 걸어줘야 한다. 그런데 앞서 말했다시피 거상의 전투 시간은 고작 10초 남짓이다. 피아노를 치듯이 키보드를 연타하지 않으면 도저히 따라 할 수 없는 수준의 컨트롤을 요구하게 된 것이다.
게임의 조작 난이도가 괴랄할 정도로 높아지다 보니, 대부분의 유저들은 손컨을 포기하고 매크로 마우스라는 외부 기기를 사용한다. 스크립트로 각 캐릭터가 취해야 할 행동을 미리 지정해놨다가, 매크로 버튼을 딸깍하고 누르기만 하면 모든 딜이 나가도록 세팅해놓는 것이다. 그래서 이 빌어먹을 게임을 남들만큼 하려면, 매크로를 쓸 줄 알아야 된다. 개발자가 짜놓은 고오급 스크립트는 돈을 받고 팔리기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조작 난이도가 너무나도 올라가버리니까, 게임이 아예 자동화돼버린 것이다.
출처 - <페이스북>
그래서 거상의 사냥이라는 것은 딸깍 딸깍, 클릭 한두 번으로 끝난다. 그것도 나보다 훨씬 약한 몬스터를 반복해서 잡는 것이다 보니까, 게임을 하면서 긴장감이랄 게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유저들은 거상을 하면서, 유튜브나 드라마를 틀어놓는다. 거상하면서 연타가 오는 것은, 사냥이 재미없어서가 아니라 (사냥은 원래 재미없었다), 재미있게 보던 드라마가 끝나서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남이 보기엔 이건 집중해서 게임을 하는 것도 아니고, 티브이를 보는 것도 아닌 굉장히 애매한 상태가 된다.
어쨌든 유튜브 보면서 딸깍딸깍 반복 클릭만 하는 게 그다지 자랑스러운 모습은 아니다 보니, 나도 내가 거상을 플레이한다는 사실을 주변에 알리거나, 절대 다른 사람에게 거상을 추천하진 않는다 ( ..) 앞에서 설명한 이유들 (후진 그래픽, 인터페이스 그리고 반복 막노동 사냥)로 인해서, 신규 유저 유입도 거의 되지 않는 형편이다.
그런데 말이다. 존망겜처럼 보이는 거상이지만, 출시된 지 2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잘 살아있다. 단순히 살아있다는 것을 넘어서, 대규모 패치가 출시되면 인기 게임 순위 20위까지 올라갈 정도로 꽤 잘 나간다. 어떤 게임이 이 정도로 롱런한다는 것은, 그 게임만이 갖고 있는 어떤 대체 불가능한 매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거상은 그러니까 나한테는 청국장 같은 게임이다. 분명히 구리고 꿉꿉한 똥겜냄새 나는 것 같지만, 거상만이 갖고 있는 매력이라는 게 있다. 현생이 바빠져서, 혹은 다른 게임이 더 재밌어서, 거상을 접었던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 또 시간이 지나면, 게임 생각이 나서 다시 복귀하게 만드는 거상만이 갖고 있는 묘한 매력이라는 것이 있다. 앞으로 이걸 설명해 나가다 보면, 프렌차이즈 가치 혹은 무형자산이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에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습관의 늪
현재 거상을 즐기는 유저 대부분은, 거상 출시 초기인 2000년대 초중반 거상을 즐겁게 플레이한 기억이 있는 사람들이다. 어렸을 때 거상을 재밌게 했던 급식들이, 아재가 돼서도 거상을 다시 찾은 것이다.
사실 대부분의 취향이나 습관은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다. 내 경우를 예로 들면,
1) 엘린이 출신으로 계속해서 엘지 트윈스를 응원하고 있고,
2) 아직도 2세대 아이돌 노래를 반복 재생하며 (참고로 미국 애들도 똑같다. 술 취하면 다 같이 브리트니스피어스니 엔싱크니 노래를 따라 부른다),
3) 자주 먹던 음식 (국밥, 돈까스, 제육)만 계속 사 먹는다.
나도 안다. 요즘 나오는 게임들이 그래픽도 훨씬 좋고, 작품성도 더 뛰어나단 사실을. 그런데도 결국은 예전에 재미있게 했던 게임으로 돌아가게 된다.
반쯤은 내 감수성이 점점 퇴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에는 내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의 폭과 다양성이 지금보다 훨씬 더 컸던 것 같다.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맛있게 먹었던 음식은, 하교하면서 친구들과 사 먹었던 분식 / 패스트푸드였다. 그 시절 나는 감자튀김을 삼키지도 않고 흡입했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누나가 인도 요리 전문점, 프랑스 식당 같은 델 데려다주면, 나는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있었다는데 놀랐고, 누나는 내가 너무 많이 처먹어서 놀랐다. 지금의 나는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그 자리에서는 맛있다고 느끼지만, 기억에 남는 경우는 거의 없다). 반면 좋아하지 않는 향신료나 음식의 가짓수는 해가 갈수록 늘어간다. 입맛이 졸라 까다로워지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맨날 먹던 음식만 계속 먹게 되는 것이다.
내 취향이 점점 편협해지는 또 다른 원인은, 귀찮기 때문이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무슨 옷을 입느냐부터, 어떤 일을 먼저 처리하거나 내일로 미룰지 등등. 새로운 선택을 하려면 머리를 써야 한다. 어떤 선택지가 존재하는지를 살펴보고, 그중 무엇이 가장 나은지를 비교해 봐야 한다. 꽤나 신경을 써야 하는 일이다.
문제는 하루에 내려야 하는 선택의 가짓수가 매우 많다는 것이다. 언제 침대에 눕고, 어떤 자세로 누울지와 같은 사소한 문제들까지 모두 신경을 써야 한다면, 아마 뇌 용량은 남아나질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뇌는, 자잘한 문제에 있어서 우릴 대신해서 선택을 내려줄 대리인을 선임한다. 그 대리인의 이름은 바로 “습관”이다.
습관은 매우 강력한 놈이다. 운전 같은 복잡한 업무라 하더라도 습관으로 만들 수가 있다. 그래서 운전 초보 때는 잠깐만 운전하더라도 기진맥진해지지만 (온 신경을 운전에 쏟았기 때문), 운전이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나면 장거리를 운전해도 괜찮아진다. 오히려 운전하는 게 지루해져서 라디오나 팟캐스트를 틀어놓게 된다.
습관은 매우 강력한 놈이지만, 동시에 합리적이진 않은 놈이기도 하다. 우리가 슈퍼마켓에서 더 비싼 가격을 지불하고라도 브랜드 제품 (코카콜라, 하인즈 케첩 등) 을 구입하는 이유 중 가장 큰 원인은 이러한 습관 때문이다. “아닌뒈 ! 콜라는 역시 코카콜라가 훨씬 맛있는뎅!”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탄산음료를 가지고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해보면 사람들은 대체로 당도가 더 높은 음료를 더 선호한다는 테스팅 결과가 있다. 코카콜라와 펩시의 맛을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콜라의 맛은 온도나 남아있는 탄산의 양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다 떠나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콜라를 벌컥벌컥 들이킬경우, 그 음료의 내용물은 그렇게 중요하지가 않다. 내가 마시는 콜라캔이 내가 평소 즐겨마시던 코카콜라 캔이라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다시 말해, 어떤 브랜드나 기업이 갖고 있는 프랜차이즈 가치 혹은 IP라는 것은, 얼마나 많은 소비자를 습관으로 붙잡아두고, 반복된 행동을 유도할 수 있느냐에 따라서 결정된다. 애플이 세계 최고의 기업 중 하나인 것은, 지금까지 출시한 제품을 거의 정가에 가까운 가격에 팔아(반면 안드로이드폰들은 대부분 할인된 가격에 팔려 이익이 거의 남지 않는다) 매우 높은 영업이익을 올리기 때문이다. 코카콜라, 하인즈 케쳡또한 전 세계 슈퍼마켓에서 매우 높은 반복 구매가 이뤄지기 때문에 가치 있는 브랜드로 인정받는다. 이처럼 IP라는 것은 만들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잘 만들어놓고 나면 습관적으로 소비를 유도하여 수익화하는 것이 가능하다.
출처 - <링크>
게임도 습관의 영역이다. 직장인들은 힘든 하루 일과를 마치고, 잠깐 쉬고 싶을 때 게임을 킨다. 아무리 재밌는 게임이 출시되었다고 하더라도, 여간해서는 많은 시간을 써서 새 시스템을 익히고, 맨땅에서 육성할 마음이 들지 않는다. 새로운 게임을 고르고, 그 시스템에 익숙해지기까지 무수히 많은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게이머들이, 자기가 어렸을 때 재미있게 했던 게임을 다시 찾는 경향이 있다. 2000년대 학창 시절을 보냈던 나한테 익숙한 장르는 MMORPG 게임들이다. 바람의 나라부터, 어둠의 전설, 리니지, 아이온, 메이플스토리까지.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국내 게임 개발사들은 야심 차게 신작 대형 온라인게임을 출시해왔다. 마침 우리나라는 벤처 붐이 불고 있었는데, 고속 인터넷의 보급과 컴퓨터그래픽 기술의 발전 등이 아우러지면서 국내 게임산업계도 급격하게 팽창하고 있었다.
호구 마케팅
당시 게임 개발사들은 지금 생각해 보면 무척 순수했던 것 같다. 어떻게 돈을 벌어야겠다는 명확한 계획 (BM – 비즈니스모델)도 없이, 일단 재밌는 게임을 만드는 것 자체에 집중했다. 당장의 매출보다는, 얼마나 많은 동시 접속자를 모았는지를 가지고서 게임 간의 서열이 결정되었다. 더 이상 서버비조차 감당하기 어려워진 게임 개발사가, 만 원짜리 신규 캐시 아이템을 출시하기라도 하면 유저들의 강력한 반발을 감내해야 했다 (대부분의 초기 캐시 아이템은, 인 게임 밸런스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 외변용 아이템이었다). 당시 게임회사들에게는 적어도 염치라는 게 있었다. 지속적으로 유저들한테 경제적인 부담을 지우는 사실에 본인들도 상당히 미안해했으며, 과금해 주는 유저들의 고충과 의견을 듣기 위해 성의를 보여줬었다. 십 년 전까지만 헤더라도, 개발자들이 직접 GM 캐릭터로 게임에 접속해서 여러 민원을 해결해 주거나 이벤트를 개최해 주는 게 드문 일이 아니었다.
따라서 당시 MMORPG는 돈이 많이 드는 취미가 결코 아니었다. 사실상 피시방비나 월 정액요금만 내면, 아무런 추가 비용도 없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게 가능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게임 내에서 레어 아이템을 획득하거나, 혐사짓 (혐오 + 장사가 합쳐진 말로, 싸게 매입한 급처아이템을 호구에게 비싸게 되팔아 수익을 버는 짓을 말한다)을 하면 오히려 게임을 플레이해서 용돈을 버는 것도 가능했다. 이는 게임회사가 유저 간의 거래에 개입하거나, 게임 밸런스의 영향을 미치는 아이템을 유저들에게 직접 판매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구조였다. 게임회사는 게임 운영의 필요한 최소한의 서버비 (정액제)만 벌고, 게임 내에서 만들어지는 대부분의 부가가치 (레어 아이템, 시세차익) 등은 유저들이 가져갔던 좋은 시절이었다.
이런 게임 개발사들의 선의가 있었기 때문에, 나 같은 중고등학생들도 온라인게임을 경제적 부담 없이 재미있게 플레이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 나 같은 무과금유저는, 게임 개발사 입장에서는 서버비만 축내는 쓸모없는 존재였을 것이다.
그치만말이다, 중고등학생도 나이를먹으면 아재가되고, 돈을 번다. 그중 몇몇은 자기가 좋아하는 취미를 위해서라면, 돈을 아낌없이 쓸 수 있을 능력도 있다. 게임 개발사 입장에서는 이들은 군침이 싹 도는 잠재적 과금러들인것이다. 그래서 수많은 대형 MMORPG들이 과거 게임을 재미있게 플레이했던 올드 유저들을 대상으로, 돈만내면 캐릭터를 빠르게 성장시킬 수 있는 모바일 게임을 잇따라 출시했다.

이러한 트렌드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바로 리니지 티비광고이다. 과거의 리니지게임을 재미있게 플레이하던 초딩이 어른으로 성장한 모습을 비춰주면서, 올드 플레이어들에게 새로워진 리니지 세계로 오라고 손짓하는 것이다. 게이머들도 안다. 저 손짓에 잘못 이끌려따라가면, 수 백, 수천만 원의 현금이 깨질 것이라는 것을. 그런데도 그 게임에 대한 진심 어린 애정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모른 척 넘어가 준 것이다. 이런 비합리적인 행동을 유도하는 것이 바로 리니지 같은 대형 IP가 갖고 있던 힘이었다.
하지만 선의로 속아주는 것도 한두 번이다. 지난 수년간 게임 개발사들은 유저들을 기만(확률조작)하고, 지갑으로밖에 여기질 않았다. 당장 게임 개발사들이 고객들의 컴플레인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만 봐도, 게임회사들이 유저들을 얼마나 막대하는지를 알 수 있다. 일 년에 몇천만 원을 쓰면, 백화점에 가서도 VIP 대접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같은 돈을 쓴 게이머들은 복붙된 응답만을 받는다.
단순히 불친절하다의 문제가 아니라, 게임이 거대해지고 산업화되면서 실제 게임을 개발하는 사람과 분노한 유저들을 상대하는 사람이 완전히 단절된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 전자는 유저의 반응도 살피지 않고, 회사에서 내려온 개발 일정에 쫓기듯이 패치를 내놓고 있고 (그래서 유저들은 니들 게임은 플레이 해보고 패치를 내놓은 거냐고 물어본다), 후자는 게임 개발 쪽 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당장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의미 없는 사과만 반복하는 느낌이다. 일부분은 어쩔 수 없는 부분 (콘텐츠 업데이트 속도가 과거에 비해 빨라지다 보니)도 있겠으나, 지나치게 게임사들 편리한 대로만 게임이 운영되는 느낌이다. 유저들이 과금을 엄청 많이 할 수 있게 BM을 짜놓고선, 고객지원을 외주 주듯이 남한테 떠넘기면 안됬단얘기다.
최근 리니지, 바람의 나라를 비롯한 모바일 게임들의 매출이 하락한 것에는 이런 맥락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대다수 유저들이, 신작 MMORPG 게임이 모바일로 출시되는 것 자체에 피로도를 느낀다. 또 리니지식으로 과금 유도하겠구나, 게임 운영도 개판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는 모바일 게임들의 매출이 단기적으로 하락한 것을 넘어, 자체 IP (브랜드 가치)의 가치가 영구적인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리니지 IP를 기반으로 한 게임이 다시 출시되더라도, 예전만큼 많은 유저들의 관심과 호응을 다시 받을 수 있을진 의문이다.
같이, 곱게 늙어가는 게임과 유저
지금까지의 얘기를 정리하면, IP라는 것은 높은 충성도, 습관, 취향, 게이머들의 기억 같은 무형적인 가치들이 오랫동안 축적됨으로써 만들어진다. 그리고 한번 만들어지면 꽤 오랫동안 달달하게 현금화하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한번 IP의 가치가 훼손되고 나면, 떡락한 민심을 다시 수습한다는 게 대단히 어렵다. 게임과는 좀 다른 얘기지만, 최근 마블 영화를 보면서도 나는 비슷한 생각을 했다. 지난 10년간 극장가를 점령해왔던 건 어벤저스를 비롯한 마블의 슈퍼히어로 영화들이었다. 하지만, 최근 몇 번의 실수(캡틴 마블을 비롯한 엉성한 영화)가 반복되고 나자, 마블 시리즈는 사람들의 관심에서 잊혀버렸다. 믿고 보는 마블이라는 신뢰가 완전히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마블 시리즈가 앞으로 엔드게임급의 기대치를 회복하긴 대단히 힘들 것이다.
다시 거상 얘기로 돌아와 보자. 거상의 IP가 지금까지 그나마 이 정도라도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거상의 IP가 한번 거하게 해먹을 만큼 크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과거부터 거상의 IP를 활용해서 모바일 게임이나 후속 게임을 출시하려는 시도들은 있었지만, 성공한 적은 없다. 그 근본적인 원인은, 거상 내 과금 유저 수가 그렇게까진 많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 대신 현재 거상을 운영하는 AK는, 봉돌이라고 불리는 캐시 아이템 구입을 강제하는 콘텐츠를 꾸준히 내어놓으면서 유저들로부터 달달하게 과금을 당기고 있다. 최초 게임을 개발하고 운영했던 벤처회사인 HQ와 조이온은, 거상 IP로부터 본격적인 수익을 발생하기도 전에 부도가 났다. 이를 인수한 AK는 모든 신규 게임 개발에 대한 야심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은 차기작이나, 모바일 게임 제작)을 접고, 오로지 거상 IP 운영에만 집중하고 있다.
이는 게이머로서는 안타깝지만, 투자자로서는 매우 훌륭한 선택이었다. AK는 거상으로 번 돈을 고스란히 부동산에 재투자하여, 최근 판교에 대형 건물을 인수하기도 하는 등 알짜 부동산 회사로써 성장해 나가고 있다. 다른 게임회사처럼 모바일 게임으로 대박은 치지 못했지만, 그만큼 적은 개발 인력만으로도 높은 효율 (과금 유도)을 달성했기 때문이다. 반면 거상, 조선의 반격과 같은 독창적이고도 걸출한 신작 게임을 개발해왔던 HQ / 조이온은 그 과실을 누리지도 못한 채 사라져버렸다. 과연 재주를 부리는 회사와 돈을 버는 회사는 다른가 보다.

유저 입장에서 거상은 무자본으로 가볍게 즐길 수 있는 갓겜은 결코 아니다. 그렇다고 1티어 MMORPG 게임들처럼 수천만원대의 과금이 필요한 게임도 아니다. 현재의 거상은, 수십만 원 정도 과금을 하면 꽤 쾌적한 상태로 몇 년간 천천히 게임을 즐길 수 있고, 백 단위로 현질하면 엔드 콘텐츠까지 체험하는 게 가능한 게임이다.
과금을 아예 하지 않거나 소과금만하더라도 엔드 콘텐츠를 체험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인 게임에서 획득한 아이템을 인 게임 화폐로 바꾸고, 그렇게 획득한 돈으로 모든 캐시 아이템을 다른 유저로부터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초보 때는 벌어들이는 수입도 적다 보니, 캐시 아이템을 사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도 무지막지하게 길다. 그렇다 보니 아예 무과금을하는것은 매우 효율이 떨어진다. 하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 아무리 낮은 가능성이라고 하더라도, 아예 불가능한 것과 가능하긴 한데 일어나기 매우 힘든 일 사이에는 엄청나게 큰 차이가 존재한다. 전자는 아예 0인 반면, 후자는 낮지만 어쨌든 가능은 하기 때문이다. 거상이라는 IP가 지금까지 살아있을 수 있던 결정적인 이유는, 모바일 게임을 비롯한 지나친 과금 유도는 하지 않으면서, 무과금유저들을 위한 배려를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실을 말하자면, 대부분 무과금이나 소과금으로 게임을 천천히 즐기겠다고 거상에 입문했다가, 답답해서 과금을 시작하는 게 대부분이다. 앞서 말한 대로, 거상을 먹여살리는 코어 유저들은 30대 이상의 아재들이다. 다들 귀찮은 거 싫어하고 어느 정도 구매력도 있다 보니, 가능했던 일이 아닌가 싶다.
추신
딴지스 여러분 덕에, 『재무제표가 만만해지는 회계책』이 출간되었습니다. 이전에 쓴 딴지 연재물을 확장하여, 이때다 싶어 열쒸미 공부, 정리하여 낸 책입니다. 아마, 현직 회계사 중, 저만큼 회계공부를 싫어했던 회계사는 거의 없지 않을까 추측해봅니다(저만큼도 공부를 안 했다면 못 붙으셨을 테니까요). 회계 공부를 싫어했던 제가 스스로 비슷한 감정을 가지고 계실 독자분들 상정해 쓴 책이다 보니 재밌습니다(아마도...). 그동안 회계 공부가 하기 싫었다거나, 회계에 관심이 없었던 독자분들(사실상 전원)에게 추천합니다.

[재무제표가 만만해지는 회계책]
검색어 제한 안내
입력하신 검색어에 대한 검색결과는 제공하지 않고 있습니다.
딴지 내 게시판은 아래 법령 및 내부 규정에 따라 검색기능을 제한하고 있어 양해 부탁드립니다.
1. 전기통신사업법 제 22조의 5제1항에따라 불법촬영물 등을 기재(유통)시 삭제, 접속차단 등 유통 방지에 필요한 조치가 취해집니다.
2. 성폭력처벌법 제14조, 청소년성처벌법 제11조에 따라 불법촬영물 등을 기재(유통)시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3.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11조에 따라 아동·청소년이용 음란물을 제작·배포 소지한 자는 법적인 처벌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4.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및 시행령에 따라 청소년 보호 조치를 취합니다.
5. 저작권법 제103조에 따라 권리주장자의 요구가 있을 시 복제·전송의 중단 조치가 취해집니다.
6. 내부 규정에 따라 제한 조치를 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