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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해병 사건

     

 
 
 
 
 
 
 
 
 

 

 

역사는 어쩌다 채 해병 사건을 향해 달리게 되었나

 

18장. 검사동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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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연합뉴스>

 

검찰청법 제7조 (2003년 개정 이전)

 

① 검사는 검찰사무에 관하여 상사의 명령에 복종한다.

 

② 검찰총장, 각급검찰청의 검사장과 지청장은 소속검사로 하여금 그 권한에 속하는 직무의 일부를 처리하게 할 수 있다.

 

③ 검찰총장과 각급검찰청의 검사장 및 지청장은 소속검사의 직무를 자신이 처리하거나 다른 검사로 하여금 처리하게 할 수 있다

 

2003년 2월 개정 전의 검찰청법 제7조. 그 유명한 검사동일체(檢事同一體) 원칙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로 2003년까지 지켜져 왔던 유구한 전통과 역사의 원칙이다. 이 검사동일체가 나온 명분은 간단했다.

 

“검사의 기소권이 너무 강력하다.”

 

즉, 검사들의 힘이 너무 강력하니 조직의 통제에 따르라는 거였다. 이로 인해 검사들은,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하여 각급 검찰청의 검사장, 지청장, 소속 검사들이 피라미드식 상명하복 관계로 움직이게 되었다.

 

이 법의 핵심은 구속 및 기소 등 각 검사가 가지고 있는 검찰권이 ‘동일한 기준’으로 행사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정치 검사들이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 꼼수로 이 법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검사동일체 때문에, 검찰은 철저하게 직급에 따라 움직이게 되었고, 조직에 반하는 ‘조직원’에겐 기수열외 등 철저한 보복을 했다. 그 결과, 검찰은 군대와도 같은 극단적 상명하복의 보수적인 조직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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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청와대 사진기자단>

 

이 검사동일체 원칙이 사라지게 된 건 2003년 참여정부 때였다. 참여정부는 검찰청법을 개정하여 검사동일체 원칙을 제거했다. 그러나 완벽히 제거된 건 아니었다. 법조문 상에서는 제거됐을지 몰라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로 검사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그들만의 ‘룰’로서 존재해 온 관습의 힘은 상당히 컸다. 이 법이 개정된 지 2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검찰청과 검사들끼리는 이 원칙이 유지되고 있다.  

 

2020년 1월, 당시 검찰총장이었다는 대통령은,

 

윤석열 연합뉴스.jpg

 

"검사는 '검사동일체(檢事同一體)' 원칙에 입각해서 운영되는 조직"

 

이라고 발언했다. 

 

이 발언이 있고 며칠 뒤, 당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신임 검사 임관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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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동일체의 원칙은 15년 전 법전에서 사라졌지만, 아직도 검찰 조직에는 상명하복의 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중략) 여러분은 그것을 박차고 나가서 각자가 정의감과 사명감으로 충만한 보석 같은 존재가 되어 달라” 

 

며칠 전 검찰총장의 발언에 대한 대답을 내놓은 거였다. 

 

이 발언이 나오게 된 배경은 이랬다. 2019년 8월 당시 윤석열 사단을 중심으로 한 검찰은 문재인 정권을 향한 연성 쿠데타를 일으켰다. 우리는 그 쿠데타를 다른 말로 일명 ‘조국 사태’라고도 부른다. 이후 검찰은 문재인 정권과 본격적으로 대립했다. 그리고 조국 이후, 새 법무부 장관으로 추미애가 임명됐다. 

 

법무부 장관이 된 추미애 장관은 정권에 연성 쿠데타를 일으킨 검찰을 대상으로 인사 발령을 냈다. 이 인사 발령이 발표된 이후, 새 발령지로 부임하는 검사들을 보며 당시 검창총장이던 대통령은 ‘검사동일체’를 내세우며 검사들을 다잡았다. 그리고 며칠 뒤, 신임 검사 임관식이 있었고 이 자리에서 추미애 장관은 되치기 발언을 한 거였다.   

 

이 일화의 핵심은 검찰이란 조직이 검찰총장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있는 조직이라는 게 아니다. 핵심은 대통령이 이런 조직에서 26년간 살았으며, 그 조직의 정점에서 ‘왕’으로 군림했었다는 거다.

 

이미 사라진 법조문을 가지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조직. 이 법조문을 금과옥조처럼 말하며, 왕으로서 살았던 대통령. 

 

연합뉴스 윤석열과 부하들.jpg

출처-<연합뉴스>

 

대통령은 국민을 시민이 아닌 ‘신민(臣民)’으로 생각하고 있고, 국가 조직을 검찰 조직 운영하듯이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통령의 지난 2년을 뒤돌아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대통령은 거침이 없었고, 두려움이 없었다. 모든 일을 단편적으로 쉽게 생각했다. 

 

명령을 내리면,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무조건 실행하는 부하들이 있었다. 그러지 않는 검사에게는 ‘검사동일체’를 강요하며 조직에 충성하라고 윽박지르거나, 정 안 되면 기수열외를 시키면 됐다. 검사동일체의 위력은 굉장했다. 검사동일체의 위상이 시퍼렇던 20세기 때까지만 하더라도, 조직의 눈 밖에 난 검사들에게는 정문의 수위들조차 인사하지 않고 무시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지금은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굉장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고 대부분의 검사는 그로 인한 보복을 두려워한다.  

 

기수열외처럼 은밀하고 비합법적인 보복이 아니라도 반항(?)하는 검사들에게 보복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1. 일을 잔뜩 건네줘서 실수나 업무상 사고를 유도하거나

 

2. 지방이나 한직을 돌리는 것

 

3. 근무 평가를 낮게 주는 것

 

4. 인사 보복

 

등 무궁무진하다. 이런 보복을 통해 밑에 검사들을 얼마든지 합법적으로 길들일 수 있다. 

 

임은정 서울신문.png

이런 방법도...

출처-<서울신문> 링크

 

검사 출신 정치인 중 김웅이란 인물이 있다. 정치 좀 안다 하는 분 중에는 고발사주 의혹 당시 김웅 의원에 대한 신뢰가 깨져서, 그에 대해 이야기가 나오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분들이 꽤 있을 거다. 

 

그러나 잠시만 분노를 뒤로 하고, 그가 검사 시절 썼던 <검사내전>이란 책을 잠깐 이야기해 보자. 어쨌든 대중에게 ‘생활형 검사’들의 삶을 처음으로 영향력 있게 알린 책이기 때문이다.  

 

“아담과 하와가 금지된 과일을 먹은 죄 때문에 애꿎은 목수의 아들이 죽어야 했던 것처럼, ‘검사동일체’란 원칙하에 위에서 사고를 치면 아래에 있는 사람들도 모조리 욕을 먹어야 하는 기이한 상황으로 느껴졌다.”

 

- 김웅 <검사내전> 中

 

<검사내전>에서 등장한 검사들은 말 그대로 생활형 검사이지만, 그들도 검사동일체의 원칙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밖에서 본다면, 기소권이라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검사지만, 이들도 결국 ‘조직’의 구성원이다. 이 조직원들을 움직이게 하는 건 결국 ‘자리’다. 

 

대통령은 뼛속 깊이 검찰로 살았던 인물이며, 그걸 자랑스러워하는 사람이다. 그의 사고방식은 검사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그의 철학은 21년 전에 사라진 법조문인 검사동일체 원칙을 기반으로 형성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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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총장으로 행보에서 두려움은 없었다. 

 

문제가 생길 리도 없지만, 설사 문제가 생겨도 아래에서 다 해결해 줬다. 대통령이 돼서도 이런 행보는 계속됐다. 그가 보여준 무수한 실수나, 외교적 결례 등의 배경엔 검찰로서의 26년 인생이 있었다. 사고를 치더라도 수습이 됐고, 후배들이 목숨 걸고 자신을 보좌해 줬다. 

 

그렇지 않은 검사가 있다면? 

 

‘보복’으로 해결했다. 튀어나온 못은 힘으로 두드려서 집어넣었다. 

 

검사동일체 원칙을 염두에 둔다면, 대통령이 지금의 대통령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한마디가 다시 보일 거다. 

 

“조직을 사랑한다.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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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을 사랑하는 건 당연할 수밖에 없다. 검사동일체 원칙에 따라, 검찰은 한 몸과 같은 조직이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 이유? 충성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검찰총장을 기점으로 하나처럼 움직이는 4천여 명 검사들과 수사관들이 있지 않은가? 이런 조직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검찰총장의 입장으로 지금 채 해병 사건을 바라본다면, 이해가 너무 쉽다. 누군가 민원을 넣었을 것이란 추측을 하지만, 민원을 넣지 않았을 수도 있다. (어제 JTBC 보도를 보면, 영부인이 힘을 썼을 가능성도 생겼지만, 이 의혹을 사실로 확정 짓기에는 아직 증거가 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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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JTBC> 링크

 

암튼, 어떤 경로를 거쳐 대통령 자신이 채 해병 사건에서 임성근 사단장을 보호하기로 마음먹은 이후 대통령은 자신이 ‘법 전문가’임을 자처했을 거다. 

 

생각해 보자. 

 

대통령이 국정 전반에 대한 ‘지식’을 쌓을 수 있었겠는가? 평생을 법만 다루다가 갑자기 대통령이 된 사람이 경제를, 국방을, 문화를, 외교를 공부한 적이 있었을까? 국정 전반에 있어서 대통령은 조연 역할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약 1년 전에 자신의 전공 분야가 나온 거다. 당시 상황으로 돌아가 보면, 이런 시나리오로 흘러가지 않았을까.

 

그동안 ‘실제로’ 조연 역할만 주구장창 하던 대통령은, 이번만큼은 자신 있게 나서서 ‘실질적’ 주연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자신이 법을 잘 알고 있는데, 채 해병 사건은 법리 적용이 잘못되었다며 ‘격노’했다. 그 결과 예정됐던 브리핑이 취소됐다. 

 

아마, 이때 이후로 대통령은 별생각이 없었을 거다. 

 

“검찰 시절처럼 알아서 잘 해결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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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대통령실 제공>

 

원래 채 해병 사건은 국방부 장관 선에서 끝날 문제였다. 사건의 실체를 파악했고, 그에 따라 책임질 사람들이 책임지고, 유가족들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위로를 건네면 될 문제였다. 

 

그러나 8월 2일, 사건이 터졌다. 7월 31일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회의에서 대통령이 지시한 것과는 반대로 박정훈 대령이 해당 사건과 혐의자들을 면밀히 조사해서 그 결과를 경상북도 경찰청에 이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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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훈 대령

출처-<연합뉴스>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은 분노를 금할 수 없었을 거다. 검사동일체 원칙을 필생의 철학으로 알고 지냈던 대통령에게 조직에 반하는 ‘조직원’은 단죄의 대상이며, 처벌의 대상이었을 거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로 이 원칙은 꿋꿋이 지켜져 왔다. 참여정부 들어서 ‘노무현’이라는 별종이 이 검사동일체 원칙을 훼손하여 법조문은 사라졌지만, 그 정신은 끝까지 살아남아 2020년대까지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대통령의 사고방식을 지배하고 있는 검사동일체 원칙의 핵심은, 조직의 명에 따르지 않는 자들은 철저히 배제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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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KBS>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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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이데일리> 링크

 

대통령의 분노가 이해되는 시점이다. 대통령은 조직의 수장이 내린 명령을 거부하는 조직원을 절대 용납할 수 없었을 거다. 그게 그의 철학이었을 테니까.

 

이때부터는, 임성근의 문제도 해병대의 문제도 아니게 됐다. 이건 대통령의 통치 철학을 전면에서 거부한 국기문란 행위라 볼 수 있었다. 8월 2일 대한민국의 안보 라인에 비상이 걸려 수십 통의 통화와 문자를 날렸던 건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의 명령을 정면에서 거부한 박정훈 대령에게는 곧 ‘집단항명수괴죄’라는 무시무시한 죄명이 붙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