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도널드 트럼프 대선후보는, 본인이 대통령이 되면 미국에서 대학교를 졸업한 모든 외국인에게 영주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발언했다.

'트럼프 = 반이민 정책'이라는 이미지가 워낙 강하기 때문에(재임 시절 불법 이민을 막기 위해 멕시코 국경 지역에 장벽을 설치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한국 언론에서는 이번 발언을 대서특필하는 모양새였다.
사실, 트럼프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비슷한 발언을 한 바 있다.
“하버드, 스탠퍼드 같은 명문대를 다니는 외국인들도, 졸업하고 나면 곧바로 미국에서 쫓겨나는데, 이게 맞냐?”(2016년)
“야 씨, 똘똘한 애들이 미국 대학에서 공학 박사까지 받았으면 그냥 여기서 살게 해줘야지(2019년).”
하지만, 정작 2020년에는 취업비자 발급 수를 제한하는 행정 명령에 서명해버리기도 했다. 말과 행동이 전혀 달랐던 셈이다. 트럼프는 심정적으로는 미국에서 잘 교육받은 외국인들이 좀 불쌍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정치적 자산을 희생해가면서 도울 생각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곧 치러질 올해 미국 대선에서, 이민정책은 가장 핫한 정치적 떡밥 중 하나다. 후술하겠지만, 현재 미국은 늘어나는 불법 이민자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그리고 트럼프는 그 책임을 바이든에게 전가하면서 계속 거래를 넣고 있다.
게다가 대부분의 트럼프 지지자들은, 불법이건 합법이든 이민자 자체가 늘어나는 상황을 싫어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트럼프가 합법적 이민자들에게 유화적인 몸짓을 취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니까 트럼프는 늘 그래왔듯이, 합법이 민자확대 떡밥을 한번 던져본 것일 뿐이고, 아마 반응을 보고 자기 뜻을 철회할 것으로 보인다.
유학 : 빛 좋은 개살구
복잡한 이민 과정을 밟아봤던 당사자로서, 나는 이민 문제에 대해서 관심이 많다. 그리고 화도 많다. 나는 지금의 미국 이민 시스템이 매우 불합리하고, 사실상 제대로 기능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처음에는 이게 정치적으로 너무 복잡한 문제라서 정치인들이 이 못 고치는 건가 싶었다. 근데 수십 년째 아무것도 바뀐 게 없다. 이미 내가 대학교에 들어갈 때부터 큰 문제였는데, 졸업하고 10년이 지나는 동안 문제는 점점 더 커질 뿐이다.
영주권을 받고, 나 자신이 어느 정도 먹고 살 만해지고 나서야 깨달았다. 아 이민 시스템이 이렇게 망가진 채로 방치되어 있는 게, 미국인들에겐 최선이었구나. 이 자식들, 못 고친 게 아니라 안 고친 거구나. 이번 트럼프의 발언 또한, “문제인 건 알지만 안 고칠 것 ㅇㅇ”이라는 기득권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완전히 이해할 수가 있다.
우선은 내 얘기(합법 이민)부터 해보겠다.
나는 2000년대 중반, 한국에서 외고를 다녔다. 당시 외고에서는, 미국 유학을 준비하는 게 나름 인기였다. 유학반이라는 걸 따로 만들어서, 방과 후 미국 유학을 준비시켰을 정도였다.
연고대갈 정도로 열심히 공부하면, 미국에서도 명문대를 갈 수 있다! -> 미국에서 명문대를 졸업하면 수억 원 받는 직장에 취직할 수 있다! -> 미국에서 취직 못 하더라도, 국외파는 한국에서 대접받을 수 있다!
이런 근거 없는 풍문에 낚여서, 나와 아버지는 덜컥 미국 유학을 결정한다. 위에서 말한 기준에서 보자면 나의 미국 유학은 완전히 실패했다.
나는 명문대에 들어간 것도 아니고, 화려한 직장에 취직한 것도 아니니까. 무엇보다도 내가 지금 한국에 귀국한다면, 아무런 경력도 인정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한국에는 미국 대학 학위 소유자가 이미 너무 많다. 미국 아이비리그를 포함한 명문대 졸업생들은 학부, 석사를 나눠서 매년 한국 동창회를 개최할 정도이다.
나는 내가 한국에 귀국할 시 우습게 될 것을 감지하고, 무조건 현지에서 취직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내가 입사 지원을 했던 회사의 입사 담당자들은 나의 비자 신분부터 물어보더라. 외국인 학생이라고 밝히자, 미안하지만 우리 회사는 외국인을 뽑지 않는다는 답변이 곧바로 돌아왔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미국이 이민자들에게 관대한 나라이고,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를 부여한다는 건, 내가 등록금을 낼 때까지만 적용된다는 것을 말이다.
취업 시장에는 엄연히 신분이 존재하고, 이 신분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외국인은 취업 시장의 최하층일 뿐이다.

출처 - <EPA>
헬난이도, 아메리칸 드림
외국인이 합법적으로 미국에서 취업하려면 (H 1b)라고 불리는 취업비자를 발급받아야만 한다. 이 취업비자를 신청하는 건, 비자를 요구하는 ‘내’가 아니라, 나를 고용하겠다는 후원자다. 그리고 이 후원자는 ‘나’라는 외국인 학생을 구제해 주기 위해 각종 수수료와 변호사비 등으로 최소 천 만 원 이상을 지출해야 한다.
아직 회사에 아무것도 이바지한 바가 없는 취업지망생을 위해서 이만한 비용을 써야 한다는 것 자체가 기업으로서는 엄청난 비용이다. 게다가, 이 비용을 지출한다고 해도, 그 직원을 실제 고용할 수 있는 확률은 지극히 낮다. 취업비자는 추첨을 통해서 발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 대학에 등록한 유학생의 수는 백만 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해마다 새로 발급되는 취업비자 수는 학사 6만 5천 명 석사 이상 2만 명을 더해, 고작 8만 5천 명 밖에 되질 않는다. 유학생의 숫자와 외국인 인력에 대한 수요를 생각하면 턱없이 낮은 숫자이다. 참고로 우리나라가 올해 설정한 외국 인력 쿼터는 비숙련 16만 5천, 숙련기능인력 3만 5천 명을 더해 20만 명에 달한다.

출처 - <링크>
우리나라 같은 소국도 매년 20만 명에 취업비자를 발급하는데, 세계 최대의 경제 대국이자 이민의 국가라는 미국에서 발급하는 취업비자가 그 절반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 미국에서 올해 H1-B 비자에 신청한 지원자는 부려 78만 명에 달한다. 참고로 이 78만 명은, 단순히 미국 취업을 희망하는 지원자가 아니라, 모두 현지에서 이들을 고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후원자까지 구한 사람들이다. 미국에서 취업까지 성공한 외국인이라고 하더라도(78만 명 중 한 명), 실제 취업비자를 발급받을 확률 (8만 5천 명)은 고작 10%밖에 되질 않는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천만 원을 투자해서 외국인을 후원해 주더라도, 90%의 확률로 신청비만 날리고, 그 외국인은 채용도 하지 못하게 된다. 이렇다 보니, 대부분의 정상적인 기업들은 외국인 학생을 고용하는 것 자체를 꺼리게 된다.
그런데도, 현재 외국인을 채용하는 기업들은
1) 이러한 복잡한 절차, 비용을 무시할 만큼의 고급인력을 채용하려는 극소수의 기업 (중요한 기술, 법무법인, 펀드들)과
2) 힘들어진 취업 발급 제도를 악용하여, 싼값에 외국인들을 오래 부려먹으려는 절대다수의 기업들
로 양분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H1-B 제도의 현실
출처 - <링크>
위 자료는, 미국 이민청이 발표한 해외 비자 신청을 많이 승인받은 후원 기업들의 명단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애플 같은 메이져 기술 기업들의 이름을 상위권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런데 그들 사이로, 인포시스, 타타컨설팅, 코그니전트 (2위~4위) 같은 좀 생소한 기업의 이름들이 눈에 띈다. 얘들은 대표적인 인도 IT 회사들이다. 지난 2019년 자료를 보면, H1-B 지원자 전체 42만 명 중에, 인도 출신자가 무려 30만 명이라는 공식 발표가 있다. 그러니까 H1-B를 통해 취업하는 외국인의 절대다수는 인도계라는 얘기다.
참고로 2위는 중국인으로 채 5만 명이 되지 않으며, 3위 캐나다인과 4위 한국인은 각각 채 4천 명이 되질 않는다. 왜 이렇게 인도 애들은 미국에서 취업을 잘하는 걸까?
H1-B 제도에 대한 현실을 말하자면 이렇다. 미국 중요한 기술 기업들과 앞서 말한 인도계 IT 회사들은 이미 인도에서 엄청나게 많은 수의 전문 IT 인력을 고용하고 있다. 미국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한 명을 고용할 돈이면, 인도에서 최상위권 인재로 분류되는 IIT 졸업생을 5명쯤은 고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인도 정보통신업계의 이직률이 살벌하게 높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 업무를 인도 사무실에서 처리할 수 있다고는 해도, 미국 현지에서만 진행할 수 있는 프로젝트라는 게 또 있을 것이다.
그래서 미국 중요한 기술 기업들의 인도지사와 인도 IT 회사들은, 현지 엔지니어 중 똘똘해 보이는 애들에게 H1-B를 신청해 주고 있다.
H1-B가 승인되면, 회사는 뛰어난 인력으로 미국으로 데려와서 비교적 저렴한 급여 (인도에 있을 때보단 많이 주고, 미국 현지보단 좀 적게 주는 수준)로 오랫동안 부려먹을 수가 있다. 완전한 신분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취업 영주권까지 받아야 하는데, 기업으로서는 이걸 무기로 H1-B 신청자를 오랫동안 회사에 붙잡아둘 수가 있다.
H1-B가 승인되지 않더라도, 이 인력들은 이미 인도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있으므로 회사에는 아무런 타격이 없다. 오히려, “야 내가 널 미국 보내주려고 후원자까지 해줬는데, 이직할 거야? 내년엔 진짜 미국 보내준다”라고 다독여서 우수 인력들을 계속 회사에 붙잡아둘 수 있다.
핵심은, H1-B 신청 결과와 무관하게 이들 회사는 이득(직원을 오래 붙잡아둠)을 본다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인도에서 미국 H1-B에 지원하는 지원자의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H1-B라는 제도를, 특정 국가의 일부 기업들이 독점하는 게 과연 맞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믿을 건 운빨이다
미국은 교육 대국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교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으며, 이들 대학교 재정의 상당 부분은 정부 보조금과 재단 지원금 등으로 운영되고 있다(우수한 대학일수록, 내가 내는 등록금보다 재단으로부터 지원받는 돈의 비중이 훨씬 크다). 전 세계에서 미국 대학으로 유학 온 학생 수만 해도 백만 명이 넘는다.
그런데 이 100만 명들은 현재 미국에서 취업하는 것이 너무나도 어렵다. 이들이 미국에서 합법적으로 취업하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취업비자를 받는 것이다. 그런데, 취업비자를 발급받을 확률은 10%밖에 되지 않는 데다가, 이런 상황을 인지한 대부분 미국 기업이 외국인 고용 자체를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굉장히 간단한 방법이 있다. H1-B 지원자 중에 미국 현지 대학 졸업자에게 가산점을 주거나, 지원자의 급여/교육 수준에 따라 발급되는 비자 수의 차등을 두는 것이다. 이미 영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에서는, 고급 전문 인력의 비자 발급을 우대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그딴 게 없다. 하버드 졸업생이건, 인도 공과대 졸업생이건 똑같은 확률로 취업비자 추첨을 돌린다.
내 얘기로 돌아와서, 나는 대학교를 졸업하기 직전 나를 후원해 줄 기업을 찾았다. 내가 엄청나게 요건이 좋았다거나 취업 준비를 엄청 철저히 해서 그런 건 아니었고, 대학교 인맥을 통해서 그냥 취직이 돼버렸다.
나를 딱하게 여긴 교수가 한 명 있었는데, 그 교수의 제자였던 회계법인 임원이 그냥 얘 뽑아주라고 해서 나는 낙하산으로 뽑혔다. 내 인생의 최대 난관은 허무하게도 전화 몇 통으로 해결되었다.
그렇게 회사에 취업하고, H1-B 추첨을 돌렸는데, 당시 30%밖에 되지 않는 확률을 뚫고 덜컥 취업비자에 당첨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나는 미국에서 6년간 취업할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되었고, 취업비자 기간 회사에서 노예처럼 붙어있어야만 했다. 그즈음 시민권자와 결혼해서 영주권 문제가 자연스레 해결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돈 더 준다는 다른 회사로 런을 쳤다.
지금은 이렇게 담담하게 얘기하지만, 당시에 내가 받은 스트레스는 어마어마했다. 내 신변에 관한 모든 결정을 확률과 타인(후원 기업, 이민청 등)에게 맡긴다는 기분은 매우 엿 같은 것이었다. 어쨌든 나는 운으로 살아남았다.
한국에서 나와 함께 유학 온 친구가 13명이 있었다. 이중 나를 포함한 3명만이 현지 취업에 성공했고(대략 H1-B 당첨 확률과 비례한다), 나머지 친구들은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 3명 중 나머지 2명은, 한국에서 더 좋은 기회를 만나서 역시 귀국했다. 그래서 현재는 나만 미국에 남아있다. 다른 기수들도 보면 비슷한 것 같다. 10명 정도 유학을 오면 그중 한 명만이 미국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것 같다.
한국으로 돌아간 친구들은 모두 나보다 좋은 대학교를 졸업했을 뿐만 아니라, 더 똑똑한 친구들이라서 다들 잘 살고 있다. 꼭 학벌이 좋거나 머리가 좋은 애들이 미국에 취업하는 게 아니다. 그냥 운 좋은 놈이 어쩌다 보니 미국에 남게 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굳이 미국에서 취업하는 것이 성공한 것이라고 볼 수도 없다.
다만, 당사자인 유학생은 본인에게 선택권이 없다는 지금의 상황 자체가 매우 답답한 것이다.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하고, 다음 글에서는 왜 이렇게 취업이민제도가 막혀있는지를 알아보도록 하겠다.
(계속)
추신
딴지스 여러분 덕에, 『재무제표가 만만해지는 회계책』이 출간되었습니다. 이전에 쓴 딴지 연재물을 확장하여, 이때다 싶어 열쒸미 공부, 정리하여 낸 책입니다. 아마, 현직 회계사 중, 저만큼 회계공부를 싫어했던 회계사는 거의 없지 않을까 추측해봅니다(저만큼도 공부를 안 했다면 못 붙으셨을 테니까요). 회계 공부를 싫어했던 제가 스스로 비슷한 감정을 가지고 계실 독자분들 상정해 쓴 책이다 보니 재밌습니다(아마도...). 그동안 회계 공부가 하기 싫었다거나, 회계에 관심이 없었던 독자분들(사실상 전원)에게 추천합니다.

[재무제표가 만만해지는 회계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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