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대부속고교

출처 - <슬램덩크 일러스트집>
카나가와현의 최강자인 해남대 부속고교(海南大附属高校)는 사가미 공과대학 부속고교(相模工大附属高校)를 모티브로 했다.
슬램덩크가 연재를 시작하기 직전인 1990년, 학교명을 개칭하여 현재의 명칭은 쇼난 공과대학 부속고교(湘南工大附属高校)이다. 쇼난(湘南)의 상(湘)자를 해(海)자로 바꾸고, 공과대학을 일반대학으로 바꿔서 이름을 만들었다.
이 학교는 실제 80년대 카나가와현에서 앞서 살펴본 송양고교와 함께 2강 구도를 이루었던 학교다. 송양고교는 전국 규모의 대회에 출장은 많이 했으나 유의미한 성적을 거둔 적은 없는데, 사가미 공대 부속고교는 70년대부터 4강에도 자주 들고 준우승도 여러 번 했다. 특히 <슬램덩크> 연재 직전인 1989년도에 인터하이와 윈터컵 모두 전국 3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작중 해남대 부속고가 전년도 인터하이 3위(4강)인 것은 이 사실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 틀림없다.
카나가와현은 인구비례 상 2교가 출장한다. 이 학교 외 1교는 매해 다른 학교가 출장하는 것을 보면 작중 해남처럼 실제 왕자(王者)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다 연재가 한창이던 1995년에 또다시 전국 3위를 한다. 해남이 종국에 전국대회 준우승을 하는 것은 이노우에 나름의 축하이자 다음 회 우승 기원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싶다.
다만, 작중 해남대 부속고는 17년 연속으로 카나가와현을 제패한 것으로 설정되었지만, 이 학교는 그 정도는 아니었다. 내가 자료를 확인한 1973년부터 1995년까지 23년 사이에 20회 인터하이 출장하긴 하지만, 연속으로는 11회(1973~1983)가 최장 기록이다.
한편, 이노우에가 직접 “이 학교가 해남의 모델이 맞다”고 밝혔다는 썰도 있다. 1991년도 카나가와현 고교 남자농구 결승리그에서 이노우에가 객원 해설자로 참석했다. 그때 직접 해남의 모델이 쇼난 공대 부속고라고 밝혔다고 한다. 다만, 인터넷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이라 이야기만 구전되고 증거는 없다.
카나가와현 결승리그는 6월 중~하순이므로, 1990년 10월에 <슬램덩크> 연재를 시작한 지 1년도 안 되었을 때다. 작중 해남은 이름조차 등장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 설은 정설은 아니고 소수설 정도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다.

작중 해남대 부속고교의 교사(校舎)는 딱 한 차례 나온다. 생뚱맞게도 카나가와현이 아닌 저 멀리 토호쿠(東北)지방의 미야기현에 있는 토미자와중학교(仙台市立富沢中学校)를 모델로 했다.
상성고교

북산과 여름방학 합숙 훈련을 같이하는 시즈오카현의 상성고교(常誠高校). 일본어 독음은 죠세이(じょうせい)다. 시즈오카현의 코세이 고교(興誠高校, 한국식 독음은 흥성고교)를 모티브로 했다. ‘상성’의 두 번째 글자인 성(誠)은 이 학교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학교명을 개칭하여 하마마츠학원 고등학교(浜松学院高等学校)이다. 이 학교는 야구와 농구의 명문으로 시즈오카현에서는 일찍부터 유명했다. 특히 남자 농구는 통산 인터하이 19회, 윈터컵 14회 출장한 시즈오카현의 강호로, 80년대에 거의 매년 인터하이에 출장했으며 8강에도 여러 번 들었다. 작중 상성고교도 전국 8강이라고 언급된다.
인터하이에 처음 출장하는 북산은 이런 상성고교를 본인들보다 위로 여겼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비등비등한 실력이었다. 게다가 인터하이 2회전에서 김판석의 명정공업에 더블스코어에 가까운 점수 차(56-102)로 처참하게 패하고 퇴장한다. 전국 8강이면 풍전고교와 동급인데, 김판석의 들러리 역할만 하고 용도폐기되어 버린 셈이다. 내가 코세이고교의 농구부원이었다면 상당히 기분이 나빴을 것 같다.
상성고교의 이름 중 첫 번째 글자인 상(常)은 토코하 학원 고교(常葉学園高校, 한국식 독음은 상엽)에서 따왔다. 지금은 이름을 개칭해서 토코하대학부속 토코하고등학교(常葉大学附属 常葉高等学校)이다.
이 학교는 중고 일관의 사립 여학교로, 여자농구의 초명문이다. 2002년에는 3개의 전국대회(여름 인터하이, 가을 국체, 겨울 윈터컵)를 전부 우승하는 기염을 토했다. 여자 프로농구선수도 상당수 배출했다. 일본어 위키피디아의 이 학교 항목 중 ‘출신 유명인’에는 프로 농구선수 이름이 즐비하다. 슬램덩크 연재 당시에도 인터하이에 단골 출장했기 때문에 이노우에가 이름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정리하면, 상성고교의 이름은 시즈오카현에서 스포츠로 이름난 두 학교의 이름을 섞어서 작명했다. 시즈오카 현민들은 작중 상성고교를 보자마자 위 두 학교의 이름을 땄다는 것을 바로 알아보았다고 한다.
지학고교

아이치현 대표이며 작년도 4강에 빛나는 지학고교의 원작에서의 이름은 아이와가쿠인 고교(愛和学院高校, 한국식 독음은 애화학원 고교)이다.
지학고교의 농구 전력상 모티브는 아이치 공업대학 메이덴 고등학교(愛知工業大学名電高等学校)가 유력시된다. 1980~90년대 아이치현 고교 농구의 최강자이며 전국구로 이름을 날리는 강호였다. 전국대회 출장은 매년 했고, <슬램덩크> 연재 직전인 1989년과 연재중인 1992년에는 인터하이에서 준우승, 윈터컵에서는 우승을 했다.
4강에 든 적도 많다. 작중 지난해 인터하이 전국 4강인 지학과 성적 상으로 비슷해 보인다. 이런 무시무시한 학교에서도 에이스인 마성지의 별명이 ‘아이치(현)의 별’인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한국어판에는 어쩐 일인지 스케일이 대폭 축소되어 ‘지학의 별’로 번역되었다. 인구 700만이 넘는 광역의 별에서 일개 학교의 별로 강등된 셈이다.
이름의 모티브는 당연히 아이치학원 아이치고등학교(愛知学院 愛知高等学校)이다.
이것을 알고 나서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일본인들도 한자 모양이 비슷한 걸로 헷갈리거나 장난을 치는 건지, 화(和, わ)자와 지(知, ち)자의 생김새가 아주 비슷한 걸 이용해서 아이치(愛知)를 아이와(愛和)로 스리슬쩍 바꾼 것이다.
그걸 다시 한국 편집자가 원래의 이름인 아이치학원(愛知学院, 애지학원)에서 가운데 두 글자를 따서 지학이라고 번역한 것으로 전해진다.
명정공업고교

전국을 충격에 빠뜨리며 혜성같이 등장한 김판석과 명정공업고교. 원래의 명칭은 메이호 공업고교(名朋工業高校), 한국식 독음은 명붕공업고교이다. 발음의 어감 때문에 ‘명정’으로 번역한 것으로 보인다.
이 학교는 딱히 모티브가 있다기보다는 작가의 순수한 창작인 것 같다.
아이치현의 최강자인 (지학고교의 모티브이기도 한) 메이덴 고등학교(愛知工業大学名電高等学校)를 모델로 거론하는 사람도 있다. 둘 다 이름에 명(名, めい)자가 들어가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연재 당시 메이덴 고교는 20년 넘게 아이치현의 강자로 군림해 왔다. 김판석이라는 괴물 신인의 등장으로 급부상한 명정공업과는 결이 너무나 다르다.
이름인 명붕(名朋)에서 붕(朋)자는 나고야시에 있는 도호고등학교(同朋高校)에서 한 글자를 따왔다는 설이 그럴듯하다. 여기에 아이치현의 대표 도시 나고야(名古屋)의 머리글자인 명(名) 자를 붙여서 작명한 것으로 생각된다.
풍전고교

인터하이 진출하여 가장 처음 만나는 풍전고교. 딱히 뚜렷한 악역이 없는 이 작품에서 그나마 빌런으로 여겨지는 팀이다.
풍전고교의 원래 이름은 토요타마고교(豊玉高校)로, 한국식 독음은 ‘풍옥’이다. 오사카시의 북쪽에 위치한 토요나카(豊中)시의 지명에서 따온 이름이라는 게 일본 네티즌들의 주된 의견이다. 풍(豊)자가 들어가고 발음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내용상 모티브로 거론되는 학교는 두 곳이다.
한 곳은 오사카 시내에 위치한 히가시 스미요시 공업고교(東住吉工業高等学校, 현재의 이름은 히가시 스미요시 종합고교)로, 실제로 오사카부 대표로 인터하이에 단골로 출장한 학교다. 90년대 말에는 4강에도 여러 차례 올랐다.

그런데 이 학교가 풍전고교의 모티브로 거론되는 주요 근거는 농구 실력도 있지만, 양키(*당시 일본에서 불량청소년을 이르는 말)가 많은 학교 분위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른 한 곳은 킨키대학 부속고등학교(近畿大学附属高等学校)로, 70년대 오사카부의 강자였다. 이 학교는 당시 런&건 농구 스타일로 유명했다고 하며 유니폼도 풍전과 같은 파란색이다.

출처 - (링크)
풍전고교에 대한 소수설을 하나 소개하자면...
대마도에 토요타마 고교(長崎県立豊玉高校)라는 학교가 실제로 존재한다. 이노우에의 친구 중 한 명이 이 학교 출신이라 이 이름을 따왔다는 썰이 있다. 이 친구는 (연재 당시)고등학교 교사이며, 학교에서 농구부 지도교사를 한다는 둥 비교적 구체적인 떡밥까지 있는데, 근거는 찾을 수 없고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
대영학원고교

별로 비중 없는 떡밥 중 하나였던 대영학원고교(大栄学園, 일본어 독음은 다이에이가쿠엔).

풍전고교의 런&건을 박살 내고 오사카 1위로 인터하이 출장한 팀이다.
다이쇼학원고교(大商学園高校)를 모티브로 했다. 큰 대(大), 장사할 상(商). 이름에서부터 상업과 물류의 지역 오사카의 기상이 팍팍 느껴지는 이 학교는, 실제로 오사카의 유서 깊은 사립 상업학교이다(참고로, 현재는 보통과도 있다).
농구 전력으로 봐도 80년대와 90년대 오사카 지역의 고교농구를 씹어 먹었다. <슬램덩크>가 연재 중이던 1990년부터 1995년 사이에 인터하이와 윈터컵에 매해 출장하였으며, 1994년도에는 인터하이 3위(4강), 윈터컵에서는 우승까지 했다. 산왕공고의 모델인 노시로공업고교가 이 시기 최전성기였음을 감안하면 대단한 성과다.
산왕공업고교

본작의 최종 보스인 산왕공업고교(山王工業高校). 일본어 독음을 음독하면 ‘산노’이다. 백호는 산(山)자를 훈독으로 ‘야마오’라고 읽어서 매번 정대만에게 핀잔을 듣는다.
산왕공고의 모티브는 이제 너무나 유명해졌다. 아키타현의 노시로공업고교(秋田県立能代工業高校). 지금의 이름은 노시로 과학기술고교(能代科学技術高校)이다.

노시로공고와 산왕공고의 유사성은 유니폼 디자인, 올코트 프레스를 특기로 하는 경기 형태, 응원 방식, 비교적 젊은 감독, 대회 전 OB와의 연습 시합 등 여러 가지가 있다. 노시로공고 출신이자 일본 최초로 NBA에 진출한 타부세 유타(田臥勇太) 선수의 인터뷰에 따르면, 고된 연습을 견디지 못하고 합숙 중에 부원이 도망치는 에피소드도 실제 있었던 사건이라고 한다.
다른 학교들은 이름, 농구 전력 등에서 모티브를 따오는 정도에 그치는데, 산왕공고는 모티브 정도가 아니라 그대로 모델로 삼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유사성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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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중 신현필은 노시로공고를 1988년도에 졸업한 세키구치 사토시(関口聡史) 선수를 모델로 했다. 이노우에가 인정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일본에서는 선수 본인을 포함하여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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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의 실력과 명성에 비하면 비교적 젊은 도진우 감독(堂本五郎, 도모토 고로)은 당시 노시로공고의 감독인 카토 미츠히코(加藤三彦)를 모델로 했다고 알려져 있다. 외양이 아닌, 지도 스타일 등을 모델로 한 것 같다. 바닥에 쭈그려 앉는 포즈도 실제 습관일지도 모른다.
카토 감독은 1987년 노시로공고에 코치로 부임한 후, 전임 감독인 카토 히로시(加藤廣志)의 뒤를 이어 1990년에 감독이 된다. 1962년생이니 서른도 채 되지 않은 나이에 감독이 된 것이다. 두 사람 모두 노시로공고 출신인 선후배 관계이면서 사제지간이기도 하다(혈연관계가 아니다).
카토 히로시 감독이 노시로 공업고교 농구부의 초석을 닦고 일본 정상의 자리에 올렸다면, 카토 미츠히코 감독은 전성기를 이끈 감독으로 평가받는다. 카토 히로시 감독은 능남고교 유명호 감독의 모티브인 오키나와의 아사토 유키오(安里幸男) 감독의 스승이기도 하다.

노시로공고 농구부는 1967년에 창립됐다. 약 20년 후인 1989년도에 전국대회 우승 30회 기념비가 설립된다. 10년 후인 1999년도에는 전국대회 우승 50회 기념비를 제막했다고 하니, <슬램덩크> 연재가 한창이던 90년대 넘사벽의 고교농구 최강자였다고 할 수 있다.
전국적 규모의 대회가 인터하이(여름), 국체(가을), 윈터컵(겨울), 이렇게 3회 있다. 90년대 10년간 20회 우승하려면 연중 3 대회 중 두 개를 우승했다는 말이다. 놀라운 업적이다. 특히 1996년부터 1998년에는 3년 연속으로 연중 3 대회를 모두 우승하는 9관(冠)을 달성했다. 일본인 최초로 NBA에서 뛴 타부세 유타(田臥勇太) 선수가 딱 이 시기 3년을 노시로 공고에서 학창 생활을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시기가 노시로 공고 농구부의 최전성기였다. 2000년대 들어 내리막을 걷게 된다. 이에 대해 여러 가지 분석이 있다.
1998년 9관 달성 이후, 선수와 감독 모두 12관의 압박에 크게 시달렸다고 한다. <슬램덩크>에도 나온 “패배가 허락되지 않는 산왕 선수들이 받는 중압감도 굉장히 클 것이다.”라는 이 문장이 사실이었던 것이다.
더욱 현실적인 이유로는, 공립고교로서 한계에 다다랐다는 분석이 많다. 사립학교는 재단(학교법인)에서 전략적인 자원 투자가 가능했다. 2000년대 일본 프로농구(BJ 리그) 출범 이후 사립학교로 농구 유망주가 몰리는 경향이 가속화되었다. 결국 2004년 윈터컵 우승, 2007년 인터하이 우승을 마지막으로 노시로공고는 전국구 패자(覇者)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다.
산왕(山王, 산노)이라는 이름은 아키타 시의 산왕 중학교(秋田市立山王中学校)에서 따왔다.
노시로 공업고교에 일본 전국에서 농구 유학생이 몰려들며, 자연스럽게 인근 중학교들의 농구 수준도 올라갔다. 이 중학교는 중학 농구로 상당한 수준이며 노시로 공고로 진학하는 선수가 많다. 이노우에가 노시로 공고에 취재차 갔다가 우연히 산왕 중학교와 노시로 공고의 연습 시합을 보게 되었는데, 그때 깊은 인상을 받고 산왕공고라고 작명했다는 썰이 상당히 유력하게 전해 내려오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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