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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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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를 처음 시작한 중1의 안경 선배. 기초 드리블 연습을 하는 표정이 영 밝지 못하다. 옆에서 공을 튕기고 있던 채치수에게 이렇게 말한다.

 

“농구, 재미없구나.”

 

카나가와현 예선 마지막 경기인 능남전 후반, 승부의 결정타가 된 3점 골을 넣은 후 안경 선배의 농구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며 등장한 기억이다. 마치 카메라로 찍어둔 것마냥 생생하게 떠오른 장면이라는 뜻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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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딴 얘기인데, 안경 선배의 농구 인생이 일본에서 건강한 생활 농구인이 육성되는 테크트리의 표본이라 생각된다.

 

일본의 중고등학교는 모든 학생이 1개 이상의 부활(部活)을 하도록 강력하게 권장하고 있다. 사실상 반강제인 학교도 있다. 부활은 ‘부 활동’의 약어로, 동아리 활동과 비슷한 개념이다. 운동부 계열과 문화부 계열이 있다. 부마다 다르지만, 매일 방과후에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3년간 열심히 하면 값진 경험이 되지만, 잘못 고르면 상당한 부담이 되기도 한다. 매년 활동부를 바꾸는 학생도 있지만, 대부분은 3년 동안 같은 활동을 한다.

 

분위기에 휩쓸려 억지로 하는 학생도 많을 것이다. 농구 경험이 전혀 없는 상태로 중학교 농구부에 들어간 권준호도 3년 내내 회의감과 싸우며 농구했던 것 같다. 채치수에게 재미없다, 힘들다,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한결같이 농구 전국 제패를 꿈꿔온 채치수가 이렇게 열정이 없는 권준호와 줄곧 친하게 지낸 것이 용할 지경이다. 어쩌면 그런 채치수가 옆에 있었기 때문에 그만두지 않고 3년이나 지속한 것인지도 모른다. 결국 농구가 좋아진 권준호는, 고등학교에서도 농구를 계속하기로 한다.

 

권준호가 농구 특기생의 혜택을 받아서 대학에 가거나 프로 농구인이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중고교 6년간의 농구부 활동으로, 농구는 권준호의 평생 운동이 될 것이다. 일본의 생활체육 문화는 이렇게 생겨나고 자리 잡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15. 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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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안경 선배의 농구 인생 파노라마. 중1부터 시작하여 고2까지 왔다. 신입 부원 15명보다 매니저(한나)가 더 기운이 넘치는 장면에서 티셔츠에 시계가 등장한다.

 

그동안의 시간을 쫘아악 펼쳐 보여줬는데 아직 오후 3시. 한낮은 살짝 지났지만 그래도 하루가 끝나려면 꽤 남은 시각이다. 안경 선배의 농구 인생이 아직 많이 남았다는 걸 보여주는 티셔츠일까? 이때가 고2 때이니 그의 농구 인생에서 가장 흥하는 때는 아직 1년이나 남았다.

 

갈수록 꿈보다 해몽이다.

 

16. 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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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나가와현 결승리그를 마무리한 후의 어느 날. 이날은 서태웅이 안 선생님으로부터 '우리나라 최고의 고교선수가 되어라'는 얘길 듣고 각성한 날이다. 연습 후에 정대만과 1on1을 하고, 그 후에 주제도 모르는 시건방의 아이콘 강백호의 도전에 둘이 처음으로 1on1을 하게 된다.

 

여기서 Q는 Question일 테다. 서태웅과 강백호의 1on1이라니, 이런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있나. 안경 선배를 비롯하여 모두가 결과를 궁금해하지만, 사려 깊은 정대만은 모두 내쫓고 체육관 문을 닫아버린다.

 

17. 깃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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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 합숙 훈련을 앞두고, 안 선생님이 채치수에게 백호의 훈련 계획에 관해 얘기하는 장면이다. 백호가 안경 선배를 제치고 레이업 슛을 하고, 안경 선배의 티셔츠에는 깃털이 그려져 있다.

 

깃털은 일본어로 羽(はね,하네)라고 하는데, はね(하네)에는 깃털이라는 뜻 외에 날개라는 뜻도 있다(다의어). 안 선생님은 백호에게 날개를 달아줄 계획을 세운다. 레이업 슛을 가르친 것이 깃털이 돋게 하는 것이었다면, 점프슛 2만 회 훈련은 날개를 달아주는 훈련이다. 점프슛하면 아주 잠깐 허공에 떠서 나는 것 같은 상태가 된다.

 

18. 우산

 

2만 번의 점프슛 합숙 훈련을 끝내고 백호가 히로시마로 떠난 다음 날. 양호열과 소연이가 왁자지껄했던 체육관을 떠올리는 장면에서 안경 선배의 옷에는 우산이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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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이라. 앞으로 시련(비)이 닥친다는 복선일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너무 진부한 해석이다. 산왕전 당일, 비가 오락가락하며 그 역할을 해주고 있기 때문에, 이 장면의 우산에 그리 많은 의미를 미리 부여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그보다는 모두가 땀을 ‘비 오듯’ 흘리고 있어서 우산을 그려 넣은 것으로 생각한다. 내가 만화가라면 그랬을 것 같다.

 

19. 암멜츠(アンメル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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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선배의 티셔츠 컬렉션에서 이것이 가장 난도가 높았다. 일본어 원어민이 아닌 나는 검색을 수백 건 하고서야 이해했다.

 

산왕전에서 거구 신현필이 백호의 매치업 상대로 등장한다. 백호보다 20센티나 큰 상대지만, 안 선생님은 빠른 움직임과 운동량에서 백호가 승산이 있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달재가 해설해 주는 장면에서 アンメルツ(암멜츠, Ammeltz) 티셔츠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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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처럼 1학년 대 2, 3학년으로 연습 시합을 하던 중, 1학년 이호식이 안경 선배의 수비를 제치고 강백호에게 패스한다. 강백호가 손을 뻗어 받으려는 찰나, 번개같이 나타난 송태섭이 공을 가로채고, 그렇게 강백호는 본인보다 20센티나 작은 송태섭에게 2콤보로 당하고 만다.

 

일본 의약품 중에 アンメルツヨコヨコ(암멜츠 요코요코)라는 제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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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링크)

 

액상 소염진통제로, 우리나라에서 물파스라 일컫는 그것이다. 현재는 여러 경쟁제품이 있지만, 70~80년대에는 이 제품이 독보적인 히트상품이었다. 마치 일회용 반창고를 대일밴드라고 하듯이, 가정에서 간편하고 저렴하게 쓰기 좋은 소염진통제의 대명사와도 같았다고 한다.

 

제품명 アンメルツヨコヨコ(암멜츠 요코요코)에서 암멜츠는 고유명사(브랜드명)이고, 요코요코는 가로로 바르기에 용이하다는 제품 특성을 어필하기 위해 붙였다. 요코(横, よこ)는 가로라는 뜻이다(가로 횡). 우리말로 굳이 옮겨보면 ‘가로가로’ 정도가 되겠다. よこ와 ヨコ는 둘 다 ‘요코’라고 읽으며, 각각 히라가나와 카타카나로 표기된 것이다.

 

이 제품은 1974년도에 출시 되었다. 이전의 액상 약품은 너무 묽어서, 도포하면 흘러내리는 점이 불편했다. 환부가 세로로 길면 윗부분만 바르면 되지만, 환부가 가로로 길거나 넓을 경우엔 난처했다. 그래서 제형을 개선하여 흘러내리지 않는 제품을 출시하고, 가로로 마구 발라도 좋다는 점을 어필하려고 이름을 ‘요코요코’라고 지었다고 한다.

 

그런데 요코(横,よこ)는 다의어로, 가로라는 뜻 외에 옆, 곁, 측면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앞서 안경 선배의 티셔츠를 여럿 살펴보니, 이노우에는 해당 장면의 맥락과 관계있는 그림을 그려 넣지만, 몇 수 앞을 내다본 심오한 복선보다는 즉흥적이고 단편적으로 그리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알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안경 선배의 옆(よこ)으로 패스’하는 상황에서 요코라는 단어에서 꼬리를 물고 アンメルツ(암멜츠)를 써넣은 것으로 추정된다. 옆(よこ)으로 패스 → 가로(よこ) → 암멜츠 요코요코 → 암멜츠(アンメルツ) 티셔츠의 흐름이다.

 

이쯤에서 한국인은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패스(pass, 구기에서 공을 건네는 행위)와도 상관있는 말장난일까? Pass의 일본어 발음은 파스(パス)이다. 이 제품처럼 생긴, 입구가 비스듬한 액상 제품을 일컫는 물파스와 발음이 같다.

 

안타깝게도 그것은 아닌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물파스라고 하지만, 일본에서는 바르는 형태의 약은 대부분 로션(Lotion)타입이라고 한다. 붙이는 형태의 진통제를 우리나라는 보통 파스(Pas)라고 하며, 물파스도 여기서 파생된 단어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붙이는 약은 습포(湿布)라는 단어가 가장 널리 쓰이며, 패치(パッチ)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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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라쿠텐>

 

파스(Pas, パス)를 브랜드명에 채용한 사론파스, 메타신파스라는 제품도 있으나, 말 그대로 브랜드명의 일부일 뿐이다. 한국에서도 유명한 사론파스는, 붙이는 타입의 제품이 주력이라 암멜츠 요코요코와는 아예 다른 카테고리로 인식된다.

 

20. 코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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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날판 29권 표지에 북산 고교 멤버들이 함께 달리기하는 와중에, 안경 선배의 티셔츠에는 코브라가 그려져 있다.

 

표지이기 때문에 내용이나 특정 장면과의 맥락은 없다. 단지 인도코브라의 일본에서의 별명이 안경코브라(メガネコブラ 또는 メガネヘビ)이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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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코브라(Indian Cobra)의 넓은 목볏(Hood) 뒷면에는 안경처럼 보이는 무늬가 있다. 코브라의 이미지가 주로 킹코브라로 전파된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주요 서식지인 인도 및 동남아 지역에서는 이 코브라의 별명이 Spectacled Cobra이며, 일본에도 그대로 번역되어 전해졌다.

 

21. 가지

 

완전판 1권 표지 안쪽 일러스트에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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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안쪽의 그림은 작가의 낙서나 습작이다. なんでもっとちゃんとかいてくれないんだよ(왜 제대로 그려주지 않는 거야), ふにゃふにゃ(흐느적흐느적) 따위의 말과 함께 그려져 있다.

 

가지는 일본어로 나스(茄子, なす)라고 한다. 마트 등 일상에서는 주로 가타카나 ナス로 표기한다. 옆에 그려져 있는 달재의 본명은 야스다 야스하루(安田靖春)인데, 애칭으로 야스(YASU)라고 불리며 티셔츠에도 YASU라고 쓰여 있다. 안경 선배 티셔츠의 가지(나스, NASU)는 옆에 그려진 달재의 YASU와 라임을 맞춘 것으로 생각된다.

 

22. 기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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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도 완전판 3권 뒤표지 안쪽 일러스트에 등장한다.

 

이 낙서들은 이노우에의 의식의 흐름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다. 입, 코, 귀 등 얼굴 각 부분을 그리는 연습을 하다가 고양이 귀를 그린다. 그러다 고양이, 여우, 여우로 변신한 서태웅을 차례로 그리고, 강백호가 육식계 늑대로 변신하더니, 안경 선배가 초식 동물계로 등장한다. 초식동물 기린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은 채, 달재, 이재훈, 오중식과 함께이다. 너무나 잘 어울리는 조합이라 피식 웃음이 나왔다.

 

기린 옆에는 珍(보배 진, めずらしい)자가 쓰여 있는데, 이것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23. 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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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새로 펴낸 신장재편판 8권 표지에 등장한다. 이 판본은 표지를 모두 새로 그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 풀떼기가 쑥이라는 근거는 밑에 쓰여 있는 YMG라는 글자에 있다. 쑥이 일본어로 よもぎ(요모기, YoMoGi)이기 때문이다. 왜 쑥을 그렸을까. 내용은 그대로지만 완성도 높은 새로운 표지 그림의 판본으로 독자들의 지갑을 쑥대밭으로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일까? (실제로 내가 당했다)

 

그건 아닐 것이다. 엉망진창이 된다는 뜻의 관용어 ‘쑥대밭이 되다’는 일본어에는 없고, 우리말에만 있는 표현이다.

 

24. 안경과 동그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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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재편판 16권 표지에 등장하는 안경 티셔츠. 옷의 주인이 누구인지 대번에 알 수 있는 이런 티셔츠는 굿즈로 만들어서 팔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5. 안경(MEG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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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쪽으로 갈수록 티셔츠 그림에 성의가 없어지는 느낌이다.

 

이 장면은 원작에는 없는, <더 퍼스트 슬램덩크> 오리지날이다. 송태섭 고교 입학 후, 농구부에 들어가서 농구를 하고 있긴 하지만 그다지 원만하지 않은 상황임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새로 만든 장면이기 때문에 안경 선배의 티셔츠 그림도 새로 그려야 했는데, 별 고민 없이 안경을 그려 넣은 것 같다.

 

위 신장재편판 16권 표지와 비교하면 너무 대충 그린 듯한 안경 티셔츠이다.

 

26. 밤(く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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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만이 ‘농구부 최후의 날’ 사건을 일으킨 후, 머리를 자르고 돌아와 고개 숙여 사죄하자 체육관에서 연습 중이던 안경 선배(를 비롯한 모두)는 깜짝 놀란다. 원작을 완전히 개변(改變)한 장면으로, 원작에서는 생선을 입고 있었으나 <더 퍼스트 슬램덩크>에서는 밤 세 알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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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티셔츠에 대한 해설은 영화 제작 과정을 담은 책 <The First Slam Dunk re:SOURCE>에 나와 있다. 그림 아래에 밤(栗)을 뜻하는 くり(쿠리)가 쓰여 있는데, 3개니까 삼(三)자를 접두어로 붙여서 びっくり(빗쿠리, 깜놀이라는 뜻)가 되도록 유도한 디자인이라고 한다. 三(삼) 자를 훈독으로 읽으면 み(미)인데, み(미)와 び(비)가 발음이 유사하여 비슷하게 들린다는 점에 착안한 말장난이다. 일본어를 모르면 이해하기 어려운 콘텍스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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