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시작 1시간 전, 복도에 앉아 있던 방조범 김O헌을 만나다
이날 오전 10시에 시작된 선고공판은 재판 시작 후 30분이 채 되지 않아 끝이 났다.
평소 일찍 다니는 습관을 지닌 김O헌. 재판 시작 1시간 전, 불 꺼진 컴컴한 법정 앞 복도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졸고 있었다. 검은색 모자에, 짙은 회색 티셔츠, 검은색 바지에 로퍼를 신은 차림이었다. 재판 시작이 오전이라 아무래도 집이 충남인 그는 새벽 일찍 집을 나선 듯싶었다. 김O헌은 인기척에 잠시 고개를 들었으나 이내 다시 눈을 감았다.
핸드폰 충전을 핑계로 김O헌이 앉은 자리로 옮겨 앉았다. 몇 분 동안 눈치를 보다 그에게 말을 걸었다(그와 대화를 나눈 장소는 부산지방법원 301호 법정 앞. 이날 선고공판은 이전과 달리 351호 법정에서 열렸다).
"구속될 것 같아서 전화기랑 전부 집에 두고 왔다"
아래는 그와 10여 분간 나눈 대화 내용이다. 김O헌은 귀가 잘 들리지 않는지 질문에 여러 차례 반문했고, 질문에 상당히 적극적으로 응답했다.
헤르메스아이(이하 '헤'): "오늘 일찍 오셨네요."
김O헌(이하 '김'): 첫차를 타야 하니까 일찍 왔어요. 안그럼 재판 시간을 못 맞추니까.
헤: 그러면 아침에 한 6시나 7시쯤 나오신 거예요?
김: 집에서 나오기는 4시에 나왔어요.
헤: 변호사가 오늘 재판 결과 어느 정도 나올 거 같다는 이야기 안 하던가요?
김: 그런 얘기 안 했어요.
헤: 다른 이야기 없었나요?
김: 네, 뭐 국선변호인이니까.
헤: 한 달 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살이 좀 빠지신 거 같아요.
김: 아무래도 좀 신경이 쓰이죠. 그러니까 한 4~5kg 빠지더라고. 근데 왜 이렇게 일찍 나오셨어요?
헤: 저도 오늘 아침 일찍 재판이 있어서 어제 미리 내려왔어요.
김: 나도 어제 내려와서 여기 여관에서 자고 나올까 생각했는데, 굳이 그럴 거 있나. (차) 시간 보니까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오늘) 새벽 6시 차 타니까 부산은 8시 15분에 도착하더라고요. 그리고 (부산역에서 법원까지) 전철 타니까 금방 오지.
헤: 지금 심경은 어떠세요?
김: 뭐, 그냥 착잡하죠. 그래서 전화기 같은 거 안 가져왔어요. 혹시 구속되면 뭐 (가족한테) 전해달라고 누구한테 부탁해야 하잖아요. 그러니까 아예 안 가져왔지.
헤: 가족들은 같이 안 오셨어요?
김: 챙피스럽게 뭐 하러 데리고 와요. 그냥 혼자 와야지.
헤: 아침 식사 못 하셨죠?
김: 예, 커피 한잔 먹고 그냥 왔어.
그는 반말과 경어를 섞었다.
헤: 선생님은 그렇게까지 이재명이 미웠던 건 아니죠?
김: 저는 그 사람하고 상관도 없어요. 이렇게 마음으로 많이 미워하지 않았고. 미워할 이유가 없죠. 내가 지지를 하면 하는 거고, 안 하면 안 하는 거고 그렇지. 내가 뭐 이념이나 사상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싫으면 더 안 보면 되는 거니까. 아무 생각 없어요.
이때 대화를 듣고 있던 자원봉사단 잼잼기사단 부산 단장 오재일 씨가 물었다. 참고로, 그는 재판정에서 김O헌 씨에게 “내 눈을 한번 봐주실랍니까?”라고 말했다가 법정 경위에게 제재를 당한 바 있다(관련 기사: 김진성 첫 공판, 심리분석 결과와 남은 의문(링크))
오재일(이하 '오'): 그럼 하나 여쭤볼게요. 두 사람이 법정에서 손을 꼭 잡은 그 이유는 뭡니까?
김: 인사죠. 말을 못 하게 하니까 인사하는 거.
오: 보통의 인사가 아닌 것 같았어요. 그걸 뛰어넘은 어떤 결의, 우리는 살아남았다. 이렇게 하자 같은 거.
김: 아니, 그런 건 절대 아니에요. 이 수사받는 과정도 다 그렇습니다. 짜놓고 (형량을) 얼마 줄 것이다 하고 거기에 맞춰서 (저의 수사 과정에서 신문도) 이렇게 유도하는 거예요. 시간을 끌면서. 그런 걸 내가 많이 느꼈어요. 난 처음에는 이 사람(김진성)이 미웠어요. 미웠는데, 내가 나이도 한 10년 더 먹었고 이왕 벌어진 일을 미워하면 뭐 할 거예요? 내 마음속에 갈등만 생기지. 그러니까 그러지 않기로 하고, 그냥 보면 인사하고. (법정에서는 서로) 말을 못 하게 하니, 그냥 이렇게 (김진성과) 손잡고.
오: 구형 3년이면 (실제 선고는) 징역 1년 2개월에서 1년 5개월 떨어집니다. 징역을 살 정도의 각오 같으면 그건 대단한 사이라고 생각되거든요. 엄청난 비장한 결의가 있거나 어떤 보상이 없으면 하기 힘든 일입니다. 무슨 독립운동하는 것도 아니고.
김: 그건 아니에요. 나는 국민이고, 사법기관에서 1년 5개월을 살아야 한다고 한다면 살아야지 내가 무슨 힘이 있어요? 거기 무슨 반론을 제기한다? 이 사람들(사법부)한테는 안 먹혀요. 변호사 (선임을) 안 한 것도 굳이 변호사를 사 가지고 뭐 죄가 있다는 놈이 그걸(형량을) 깎을 이유도 없는 거고. 그러니까 싫은 거예요.
김O헌 씨는 다시 설명을 이어갔다.
김: 김진성이도 그렇게 생각했어. 내가 김진성하고 대질심문할 때 그런 얘기를 했어요. 처음에 딱 보고 "변호사를 어떻게 할 겁니까?" 하니 "안 해요"라고 해요. 그래서 나도 "구접스럽게 (변호사 선임)하고 하지 맙시다" 그렇게 얘기를 했어요. 그러니까 자기도 안 하겠다고 하더니 변호사를 샀더라고.
헤: 김진성 씨는 이재명 씨의 어떤 점이 싫었을까요? 정치적 입장이 달라서?
김: 단적으로 얘기하면 김진성은 정치에 관심이 많아요. 보수다 진보다 뭐 이런 거. 난 관심이 없어요. 아니, 먹고살기 바빠 죽겠는데 내가 신경 쓴다고 그대로 굴러가는 것도 아니고 신경도 안 쓰여. 그래서 그 사람하고 나는 정치 얘기할 게 없었어요. 나는 정치에 관심이 없고 상식도 없으니까. 근데 친한 관계였을 때 편지 들고 와서 부쳐달라고 해서 "알았어!" 이렇게 된 것이지.
헤: 가족들이 걱정 안 하세요?
김: 난 애가 하나 있는데 그놈하고도 전화를 안 한 지가 한 6~7년 됐어요.
헤: 사모님은 김진성 씨 원망 안 하세요?
김: 내 앞에서는 얘기를 안 해요. 내 성격을 아니까. 난 누가 내 앞에서 다른 사람이 누군가를 험담하는 걸 싫어해요. 못 하게 해. 김진성이랑 15년 동안 친분이 있는 걸 마누라가 알잖아요. 그러니까 김진성이가 어쩌니저쩌니 일절 얘기를 안 해요.하고 싶겠죠. 그러나 못하지. 내 성격이 그러니까.
재판 시간 15분 전, 법정 경위가 오늘 재판이 열리는 561호 문을 열고 나와 피고인들의 이름을 순서대로 불렀다. 김O헌씨는 세 번째로 불렸고, 그는 경위의 안내에 따라 법정으로 입장했다.
수많은 취재진이 법정 문 앞에서 카메라를 세우고 기다렸다. 법정 안에 들어온 취재진만 30여 명에 가까웠다.
재판부가 입장하기 전, 김O헌씨는 자신과 친한 유튜버에게 “나 오늘 구속되면 집사람에게 전화 좀 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러자 그 유튜버는 “구속 안 되실 거예요”라고 답했다.
“헌법과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부정”

법정에 들어서는 김O헌 씨
9시 55분, 검사들이 법정에 들어서 착석하고 피고인 김진성도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다. 한 달 전 공판 때와 변함없는 모습이다. 재판부가 입장하고 김진성과 김O헌에 대한 이름, 생년월일, 주소지 확인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선고가 진행되었다.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한 김진성보다 방조 혐의를 부인하는 김O헌의 주장에 대해 ‘김O헌의 공동정범의 고의가 있었는지, 김진성의 범행을 예견했는지’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 이유를 먼저 밝혔다.
재판부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김O헌의 방조 혐의를 인정했다.
①피고인 김O헌이 김진성이 평가한 정치적 상황에 대해 입장을 공유하고 있었고
②김O헌의 주장처럼 자신이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김진성이 이 메모(우편물)를 건네주며 이재명을 찾아가겠다고 말했고
③김진성의 부탁대로 살인 기수에 이르면 언론사를 포함해, 미수에 이르면 가족에게만 우편물을 보내달라고 요청한 점
④실제로 김O헌이 김진성의 번행결과에 따라 김진성의 가족에게만 우편물을 보내 우체국에 이를 접수한 점 등에 비춰 보면 피고인 김O헌이 두 차례 우편물 응답을 부탁받고 승낙할 당시 김진성이 피해자를 살해할 것임을 충분히 인식했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자기 범행의 정당성을 강변하는 김진성에게 있어 ‘남기는 말’을 외부에 공표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이었기에 이를 실현해 준 김O헌의 행위는 김진성의 범행을 도운 것이라고 보았다.
즉, 김진성이 범행 계획 과정에서나, 범행 실행 후 수사 과정, 법정에서 증언을 통해 이재명 암살 의도를 밝혔고, 여러 차례 김O헌에도 이와 같은 의사를 밝혔고, 김O헌이 귀도 안 들리고 눈도 잘 보이지 않는다지만, 김진성이 김O헌에게 전달해달라고 부탁한 ‘남기는 말’ 우편물 제목을 보면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고, 김O헌이 김진성을 여러 차례 말렸지만 “김진성이 공범을 통해 매우 중요한 메모를 외부로 공표하는 행위에 도움을 준 김O헌의 행위는 방조 행위에 해당하고, 방조의 고의 역시 인정된다”라고도 밝혔다.
다만, 김O헌이 김진성의 범행을 도와 “죄책이 가볍지 않지만, 김진성의 범행에 직접 관련된 실질적 이유라고 보기 어렵고 그 기여도가 매우 크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하였다. 김O헌이 전과가 없는 초범인 점도 양형의 사유로 고려하였다.
김진성에 대해서는 “보통 살인이 아닌 비난 동기 살인”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피해자를 비인격화하고 자신의 범행 대외적으로 정당화하는 데만 몰두하고 있는 모습을 보였고, 피고인에게 피해자에 대한 살인 이외에도 공직선거법 그다음에 고의와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를 ‘공직 살인’으로 판단하였다”고 밝혔다.
선거의 자유도 방해하였다고 보았다.
구체적인 양형 이유에 대해서는 “(살인은) 비록 미수였다 하더라도 죄책이 매우 무겁다”며 “이 사건 범행은 단순히 피해자 개인에 대한 생명권을 박탈하려는 시도에 그친 것이 아니라 공적으로는 국회의원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견해가 다른 후보자를 향하여 극단적인 공격을 가함으로써 선거의 자유를 방해한 것으로써 우리의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신뢰를 심대하게 파괴하는 행위이기도 하다”고 판단했다.
또한 “피고인 김진성이 자신과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외부의 공식 행사 장소에서 다수의 시민이 있는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의 대표이자 현직 국회의원이고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후보자가 되려고 하였던 피해자에 대하여 이 사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헌법과 법률적 절차에 따라 국민들의 자유로운 의사에 의해 결정되어야 할 선거제도와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부정이자 이를 파괴하려는 시도”라고 규정했다.
재판부는 피고인 김진성이 피해자인 이재명 대표를 “철저히 객체화, 비인격화, 악마화했다”고 보았다. 그리고 “사망에 이르지는 않았으나 상해의 부위 등에 비춰볼 때 자칫하면 사망에 이를 수 있는 매우 위험한 결과가 발생하였고,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들이 입은 정신적 고통 역시 상당하였을 것으로 보이고, 피해자로부터 용서도 받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김진성이 최후진술에서 ‘자연인 이재명에게 미안하다’고 했던 발언에 대해서는 “진지한 반성으로 평가할 수 있을지는 매우 의문이 든다”고 사실상 진정성 있는 사과나 반성으로 판단하지 않았다.
다만, 김진성이 전과가 없고 초범인 점, 또 김진성이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범행을 모두 인정한 점을 들어 징역 15년에 검찰이 압수를 청한 위험한 물건 모두를 압수 결정을 내렸다.
검찰이 청구했던 전자장치부착명령(10년)에 대해서는 기각하고, 다만 재범의 위험성이 상당하다고 보아 '5년간 보호관찰 명령'을 내렸다.

법원 경위들의 호위를 받으며 법정을 나서는 김O헌 씨
선고가 끝나자, 취재진은 급히 노트북과 가방, 필기도구를 챙겨 법정을 나갔다. 집행유예로 구속되지 않은 김O헌의 한마디를 듣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법정 밖으로 나온 김O헌을 취재하기는 어려웠다. 법원 경위 두 명이 그를 호위해 청사 밖으로 안내했고, 법원 청사 내에서는 어떤 촬영도 금했기 때문이다.
청사 정문 밖으로 나오는 동안 취재진은 “피해자에게 미안하지 않으세요?”, “방조 혐의 인정하십니까?”, “항소하실 겁니까?”, “피해자에게 하실 말씀 없습니까?”라고 물었지만, 그는 묵묵부답이었다. 그러다 김O헌 씨는 "고맙습니다" 한마디 하고는 길을 건넜다.
재판이 끝나고 취재진에 둘러싸인 김O헌
지금까지 이재명 전 대표 암살미수범과 방조범에 대한 재판을 모두 방청, 기록했다. 분명한 점은 민주주의에서 정치적 견해가 다른 상대는 경쟁해야 하는 '적수'이지 물리적으로 죽여야 하는 '적'이 아니라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