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와 시아버지가 함께 쓰는 화장실
시간은 다시 흘러, 2017년이 됐다. 큰아들 주성이 베트남에서 아내 데려온 시점이다. 당시 24평 정림동 아파트 구조는 이랬다. 동분이 혼자 쓰는 널찍한 안방, 주방 옆 큰아들 주성이 쓰는 중간 방, 그리고 현관문 바로 옆 작은방(작은 아들 주홍이 아주 잠깐 썼고, 그 뒤로 줄곧 송일영이 머물렀다), 거기에 적당한 거실과 주방까지.
“얘기했지만, 엄마는 처음부터 니네 형한테 따로 살라고 했었어. 근데도 굳이 굳이 같이 살겠다고 하더라고. 그래가지고 안 되겄어. 그래도 신혼인데 니네 형 혼자 쓰던 중간 방에서 신혼생활하라고 할 수 있냐? 그래서 니네 형수 한국 오기 전에 형한테 안방 내주고, 엄마가 중간 방으로 간 거지. 그러고 나서 봤더니, 안방에 붙박이장이 떡하니 버티고 있잖어. 아무래도 옹색해 보이더라고. 그래서 또 부랴부랴 붙박이장 다 뜯어내고, 새하얀 옷장 작은 거랑 화장대랑 침대까지 엄마가 다 사줬지. 니네 형수가 베트남에서 왔으니까 무슨 혼수를 해올 수 있었겄냐. 몸만 왔지. 그러니까 내가 친정엄마 역할까지 다 해준거여. 호호호.”

2017년, 큰아들 주성 결혼식날
주성은 결혼한 후에도 동분, 송일영과 함께 살았다
그렇게 어떻게든 24평에서 살아보려 했다. 그러던 2018년 3월, 첫 손주 요섭이 태어났다. 유모차에, 장난감에, 베란다 짐은 자꾸만 늘어나지, 큰아들 주성은 둘째, 셋째까지 계획하고 있으니, 도무지 답이 안 나왔다. 대책 없이 그저 한숨만 푹푹 내쉬던 2018년 11월이었다. 큰아들 주성이 동분을 따로 부르더란다.
“니네 형 한다는 말이,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하자는 겨. 자기가 다 알아봤는데, 자기랑 아빠는 개인사업자라(길바닥 이불장사, 택배기사 모두 개인사업자다) 대출이 쉽지 않고, 엄마가 직장 다니니까(2018년 5월부터 대학병원 청소 시작) 대출이 될 거라는 겨. 엄마 명의로 대출 이빠이 땡겨서 아예 넓은 집으로 이사하고, 대출금이랑 이자는 자기가 전부 갚겠다고. 엄마는 그때까지 담보대출만 알았지, 직장인 담보대출이 뭔지도 몰랐어. 제대로 된 직장 생활을 한 번도 안 해봤잖어. 호호호. 그래서 ‘주성아, 엄마가 겨우 대학병원에서 청소하는 사람인데 대출을 해줄까?’ 했더니, 다 알아봤댜. 무조건 되니까 걱정 말라는 겨. 그래가지고 그때부터 또 집 보러 다니기 시작한 거지. 처음에 대략 훑어보니까 어설프게 이사할 거 같으면 안 가느니만 못하고, 어차피 갈 거면 적어도 34평으로는 가야겠더라고.”
그해 겨울, 동분은 참으로 고생을 많이 했다. 다시 얘기하겠지만, 작은아들 주홍이 2018년 여름 이혼했다. 추석 즈음, 동분에게 문자 한 통 보내 이혼 사실을 통보했다. 그 뒤로 1년간 연락 두절이었다. 작은아들 주홍이 어디서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일 끝나면 집 보러 다니랴, 집 오면 집안일하랴, 살이 쪽쪽 빠졌다.
“엄마가 그때 58kg 정도 나갈 때였는데, 쪽 빠져가지고 나중엔 50kg 밖에 안 나가더라니까? 니 걱정 때문에 밥은 안 넘어가는데 그 와중에 또 이사는 해야 하니까 집 보러 다니느라 진짜 정신이 하나도 없더라고. 그리고 엄마만 마음에 든다고 덜컥 결정할 수 있냐? 니네 형이랑 아빠는 둘째 치고, 니네 형수가 마음에 들어야 하잖어. 아휴, 그래서 진짜 계룡시부터 대전까지 수십 군데를 뒤지고 다닌 거 같어. 엄마가 마음에 쏙 들면 니네 형수가 싫다고 하고, 니네 형수가 좋다고 하면 엄마가 괜히 찝찝하고.”
2018년 1월, 작은아들 주홍이 이혼하기 전
그러니까 동분(당시 58세)이 58kg 정도 나갈 무렵.
정림동이여, 안녕
우여곡절 끝에 결정한 곳이 복수동 34평 아파트였다. 동분은 2019년 1월, 24평 정림동 아파트를 1억 3,200만 원에 처분했다. 2011년 1억 4,700만 원에 매입했으니, 앉은 자리에서 1,500만 원을 손해 봤다. 8년간의 물가 상승률을 고려하면 손해는 더 컸다. 24평에 깔려있던 대출금 7,000만 원을 갚고 동분 수중에 떨어진 돈은 6,200만 원. 그것이 59살 동분과 65살 송일영이 평생 피땀 흘려 모은 전 재산이었다.
손해도 손해지만, 동분은 정림동 아파트를 떠나는 것도 어쩐지 섭섭하게 느껴졌다. 큰아들 주성이 중학교 1학년이던 1996년 처음 정림동 아파트로 왔다. 그때 동분 나이 겨우 36살이었다. 늘 다녔던 단골 슈퍼와 정육점, 미용실, 저녁 먹고 이따금 걸었던 천변 산책길, 작은아들 주홍이 졸업한 정림초등학교, 오가며 늘 인사 나눴던 이웃들. 동분에게 정림동은 그런 동네였다. 발길 닿는 곳곳마다 추억이 깃든 곳, 가는 곳마다 ‘아는 얼굴’이 있어, 반갑게 안부 주고받다 보면 어느새 10분이 후딱,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할 수밖에 없던 동네, 그렇게 두 아들 키우며 인생의 절반을 함께 한 동네였다. 그러는 사이, 어느덧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2000년 동분 40살 때
작은아들 주홍 정림초등학교 졸업식에서
그럼에도, 더 이상 이사를 미룰 순 없었다. 대출금 3,000만 원에 벌벌 떨던 41살의 동분이었는데 말이다. 세월이 켜켜이 쌓여 며느리를 보고, 손주까지 보더니 대담해졌던 걸까. 아마도 장성한 큰아들을 믿었기 때문이리라. 동분은 직장인 담보대출로 1억 5,000만 원을, 그야말로 ‘이빠이 땡겼다’. 그렇게 34평 복수동 아파트를 2억 200만 원에 매입했다. 단칸방에서 시작해 마침내 34평까지 오고야 만 거다.
“24평 살 때 니네 형수한테 제일 미안했던 게 화장실이 하나밖에 없는 거였거든. 그러니까 며느리랑 시아버지가 거실 화장실을 같이 쓰는 거 아녀. 니네 아빠야 무슨 상관이었겠냐만, 니네 형수는 여러 가지로 불편했겄지. 34평으로 이사하니까 다른 것보다도 그게 제일 좋더라고. 니네 형이랑 형수가 쓰는 안방에 화장실 따로 있는 거. 그리고 24평 살 때는 신혼 방이랍시고, 엄마가 혼수를 몇 가지 해주긴 했어도 옛날 아파트라 아무래도 옹색했거든? 근데 복수동 아파트는 안방이 진짜 운동장 같더라고. 안방이랑 안방 화장실 사이에 붙박이 화장대도 따로 있고. 애들 뛰어놀 수 있을 정도로 거실로 널찍하고. 그러니까 이래저래 엄마 입장에서는 마음이 놓였던 거지.”
부동산 폭등과 분가
그렇게 영혼까지 끌어모아 매입한 34평 복수동 아파트는,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동분 가족에겐 신의 한 수가 됐다. 그렇다. 2020~2021년 부동산 단기 폭등이 시작된 거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2021년 전국의 아파트값 상승률은 13.25%를 기록했다. 2020년(7%)에 이어 2배 가까이 오른 거다. 이는 2006년(13.95)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이었다. 주택 공급 부족과 시장 불안심리에 확산에 따른 추격매수, 전세시장 불안 등이 이유였다.
“지난번에도 얘기했지만, 복수동 34평 살 때가 엄마 인생에서 체력적으로 제일 힘들 때였어. 2020년에 둘째 민설이가 태어났잖어. 그때 엄마가 딱 60살이었는데, 새벽부터 나가서 병원 청소하고, 집 와가지고 니네 형수랑 교대로 애들 보고, 저녁 밥 차리느라 정신없었지. 퇴근하고 집에 와서도 5분을 못 앉아있었다니까? 그런 와중에 2021년 되자마자 니네 형수가 셋째 임신한 거 아녀. 엄마도 이젠 할머니가 다 됐는데, 셋째까지 임신했다는 얘기 들으니까 진짜로 덜컥 겁부터 나더라고.”
그런 와중이었으니, 안 그래도 그쪽으로 어두운 동분이 집값 오르는지 어쩌는지 알 리가 없었을 터. 어느 날 슈퍼 갔다 온 송일영이 동분을 붙들고 그러더란다. 담배 하나 사 가지고 나오면서 옆에 부동산을 우연히 봤는데, 집값이 상당히 올랐더라는 것. 그때까지도 동분은 그런가 보다 하고 말았다. 그런 데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그러고 또 한 달이나 지났을까. 송일영이 동분에게 집값이 더 올랐다며 호들갑을 떨더라는 것. 평생 “돌 굴러가유~”만 하던 충청도 양반이 웬일인가 싶었다. 동분도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상가 오갈 때마다 부동산 한 번씩 봤지. 그랬더니 하루가 멀다고 집값이 폭등하는데, 와 진짜 무섭게 올라가데? 2019년 1월에 2억 200만 원 주고 매입한 아파트가 딱 2년 만에 2억 9,500만 원까지 올라간 겨. 안 그래도 니네 형수 셋째 임신했다는 얘기 듣고부터 걱정이 태산이었는데, 무슨 돈이 있어야지 따로 살든가 말든가 할 거 아녀. 그런 참에 잘 됐다 싶더라고. 그래가지고 니네 형한테 딱 얘기한 거지. 엄마가 너무 힘들어서 도저히 안 되겄다, 집값 올랐을 때 얼른 팔아서 절반으로 나눠가지고 따로 살자. 그때 집값 안 올랐으면 여태 니네 형이랑 같이 살았을 겨. 생각만 해도 삭신이 쑤시는 기분이여. 호호호.”
2021년 5월, 동분은 34평 복수동 아파트를 2억 9,500만 원에 팔았다. 대출금 1억 5,000만 원을 제하고 남은 돈은 1억 4,500만 원. 동분과 큰아들 주성은 정확히 절반으로 나눴다. 동분은 그 돈에 대출금 1억 원을 보태, 지금의 21평 관저동 아파트를 매입했다. 큰아들 주성은 그 돈에 전세자금을 일부 대출받아 옆 동네 27평 아파트로 들어갔다. 현재는 다자녀 1순위로 34평 아파트 청약에 당첨돼 열심히 돈 모으는 중이다.
“그래가지고 니네 아빠가 지금도 맨날 그 소리 하는 겨. 자기가 개인택시 번호판 양도한 돈으로 우리 가족이 먹고산 거라고. 니네 형 7,250만 원 준 것도, 다 자기가 준 거나 다름없다고. 그때마다 엄마가 어이없어서 콧방귀를 뀐다는 거 아니냐. 호호호. 니네 아빠 말대로 그 2,500만 원 종잣돈 삼아 여기까지 온 건 맞지. 근데 뭐, 그게 그냥 알아서 굴러온 거냐? 고비 고비마다 엄마가 다 결정하고 발품 팔아서 이사 다니고, 주변 사람 도움받아 가지고 여기까지 온 거지. 복수동 아파트 팔았을 때 1억 4,500만 원 남았잖어. 그게 딱 그거여. 개인택시 번호판 2,500만 원에다가, 21평 팔 때 한 4,000만 원, 34평 팔 때 한 9,000만 원 이득 본 거. 그거 세 개 합치면 딱 그 돈이여. 그러니까 니네 아빠나 엄마나 머리가 나빠 가지고 죽어라 일만 했지, 평생 100원도 못 모으고 그냥저냥 먹고만 산 겨. 호호호. 그러다가 이렇게 다 늙어버렸다?”

송일영은 요즘도 자신이 개인택시 번호판 양도한 돈으로
우리 가족이 먹고 살았다고 우긴다
사진은 송일영의 유일한 자랑이자 재산이었던
로얄프린스 앞에서 찍은 사진
당시 37살이었던 송일영과 작은아들 주홍(5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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