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 정신력은 체력에서_ 미생 명대사로 알아보는 직장인이 운동을 시작해야 하는 이유^_ㅜ 0-48 screenshot.png](https://img-cdn.ddanzi.com/files/attach/images/977701/437/479/814/ab32164d720da12b4fc84ee020178067.png)
출처 - <미생>
빠빠~빠빠빠~빠빠라빠빠~빠
기상벨이 울린다. 현재 시각 6시 정각. 11월의 아침은 해가 짧아 아직은 밖이 어둑어둑하다.
첫 출근일. 두근거림은 없었다. 방학이 끝난 첫날 학교에 가는 기분이랄까… 같은 21세기를 살지만, 그 시절의 아침은 지금의 현대인과는 많이 달랐다. 스마트폰이 없는 아침이었다.
주임 시절에 처음으로 스마트폰이라는 기계를 보았다. 현장 인원들이 스마트폰을 가져와 휴식 시간에 ‘앵그리 버드’라는 시대 초월적인 게임을 하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니까 나의 첫 출근 날 아침에는 스마트폰이 없었다. 어플로 출석 체크를 하고 유튜브 알람을 보거나 증권 앱을 확인하는 등 손바닥만한 기계 하나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지금과는 많이 다른 일상이었다.

출처 - <미생>
첫 출근이라 정장을 입었지만(우리 회사는 사복 출근이다), 넥타이는 잘 맬 줄 몰랐다. 거울을 보고 미리 준비해 둔 반자동 지퍼식 넥타이를 주-욱 올린다.
음! 멋있군.
왼손에는 커피 한 잔을 들고 오른손에는 신문을 든다. 다리를 꼬고 입에는 블루베리 잼이 발린 토스트를 입에 물었다. 어디 보자... 오늘 뉴스는 어떤 게 있나.
뻥이다. 중소기업 신입사원 첫 출근에 모닝 브런치 따위는 없다. 신문은 찢어진 부분 대충 주워서 읽고, 부산에서 엄마가 보내준 얼린 곰국을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어젯밤 먹다 남은 햇반에 대충 말아 먹고 집에서 나온다.
자취방 계단을 내려가는 길에 할머니에게 인사한다.
“다녀오겠습니다.”
“아이고, 총각 출근하는 거여? 잘 댕기와.”
내 차는 아버지가 주신 97년식 아반떼, 속칭 구아방. 아들이 취직했는데 차가 없으면 안 된다고 엄마에게 연락하자 귀신같이 나타난 아버지가 던져 놓고 가셨다. 사원에서 대리 시절까지 8년을 나와 함께한 소중한 차다.

추억의 구형 아반떼
왼손으로 창문 왼쪽 위의 바를 잡고 몸을 기대어 오른손으로 열쇠 구멍에 키를 꽂는다. 시동을 걸고 호기롭게 출발한다. 회사로 가는 길을 주말에 몇 번이나 연습했지만, 아침 출근길의 다른 차들이 이리저리 밀고 들어오니 정신을 못 차리게 되었다.
15분 뒤, 회사에 도착했다. 회사와 가까운 곳에 자취방을 잡았기에 비교적 출퇴근 시간은 짧다. 회사 건물 앞에 가만히 섰다. 하얀 페인트가 칠해진 공장 벽을 쳐다보고 있으니, 마음 한구석에서 왠지 모를 불안함을 느낀다.
출입 카드가 없어 밖에서 서성이고 있으니, 경리 누나가 나타났다. 당시 직책은 서 주임님. 아직도 함께 일하고 있는 분이다.
“여기 카드키 받아요. 들어올 때 여기다 찍으면 되고.”
신발장 오른쪽에 있던 기계에 카드를 찍으니 “출근입니다” 하고 기계음이 들린다.
“퇴근할 때도 꼭 찍어. 아직도 안 찍는 인간들이 있어. 내가 그 사람들만 수기로 관리하기 얼마나 힘든지 몰라.”
사무실로 올라가는 동안 회사의 역사를 짧게 풀어준다. 70% 정도 반말을 섞어서. 싫지 않은 느낌. 친근감이 들었다.
“아, 근데 정장은 안 입어도 돼.”
큰 소리로 “예! 알겠습니다.”하고 대답하자 경리 누나는 호호호 웃으며 사무실로 들어갔다.
탈의실로 들어가니 내 이름이 붙은 사물함이 보였다. 사물함 안에는 회색 계열의 공장 옷이 놓여 있었다. 작업복으로 갈아입은 내 모습을 간이 거울로 가만히 쳐다 보았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는 “할 수 있어, 파이팅!” 이렇게 추임새를 넣지만, 이날은 뭔가 주눅이 들었다. 후회 가득한 눈빛.
낯선 작업복 탓에 어색해진 보폭을 느끼면서 탈의실을 나왔다. 탈의실 바깥에는 인사 팀장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고 오셨네요. 나는 오늘 출근 안 하는 줄 알고! 하하하.”
뭔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미소를 지으며 외쳤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허허 들어와요 들어와. 이쪽이 사무실이고 저쪽 계단이 현장 가는 길이에요.”

출처 - <미생>
생각보다 조용한 사무실. 분주한 키보드 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운다. 내가 사무실로 들어가자 일제히 동작을 멈추고 나를 쳐다보았다. 대인기피 성향이 있는 내게는 그다지 즐거운 상황은 아니었다.
인사팀장(변 팀장)은 나를 사무실 제일 구석 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데려갔다.
앗. 면접 때 내게 질문했던 일본인이다.
“오… 키타노까이?”
(오… 왔어?)
틀림없는 보스다. 신입 사원인 나에게 인사를 하려고 일어난다. 순간 옆자리에 있던 나이가 많아 보이는 할아버지도 갑자기 벌떡 일어선다.
“고레까라 요로시쿠네”
(앞으로 잘 부탁하네)
보스와 어색하게 악수하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인사하자 방금 벌떡 일어났던 할아버지가 웃으며 다가온다.
“아이구 우리 회사에서 신입 사원을 다 보네. 나는 여기 공장장이야. 앞으로 잘 부탁하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일본인이 최고 사령관이고 그다음이 공장장이다. 소위 말하는 ‘경영진’ 두 명에게 인사를 시킨 뒤, 변 팀장은 나를 데리고 각 부서를 돌았다. 관리팀, 품질보증, 생산관리, 생산기술, 제조까지. 총 5개의 부서로 나뉘어 있었다. 한 부서에는 3~4명의 사원이 앉아 있었고 부서별 팀장이 1명 있었다.
규모가 있는 중견 기업이나 대기업은 팀 내에도 세부 부서가 있다고 들었건만 현장직을 제외한 20명 남짓의 사무직 인원들로 이 정도 부서 구성이면 나름 체계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훗날 지원 나간 소규모 공장에선 3명이 물건을 만들고 포장하고 세금 처리, 수출까지 하는 것도 본 적이 있다.
![[#미생] EP1 _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네._ 낙하산 신입 장그래의 첫 출근! 그리고 고난과 역경의 시작💦 _ #신입미생세끼 0-47 screenshot.png](https://img-cdn.ddanzi.com/files/attach/images/977701/437/479/814/aa62fb9fadb98914e401db92a0c33df3.png)
출처 - <미생>
모든 사무실 직원에게 인사를 끝내고 앞으로 내가 일할 자리에 앉는다.
‘품질보증팀’
일본어 전공자인 나를 뽑은 이유는 심플했다. 나름 일본인 상무가 매일 보고를 받는 일본계 자회사인데, 품질팀에 팀장을 비롯해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그를 만난다… 훗날 15년 동안 내 영혼을 털어먹고 가스라이팅하여, 육체와 정신 건강을 극도로 망친 인간. 1부에서 소개했던 5살 많은 선임, 정태수 과장이다.
당시, 그는 사원이었다. 현장에서 사무실로 복귀했는지 마스크를 벗으며 내게 웃으며 다가왔다.
“와 우리 회사에 신입 사원이 들어오네. 아따 반갑네.”
악수를 청한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내 귀에 대고 조용히 말한다.
“그래 있다가 따로 이야기 좀 하자고. 술은 좀 먹나?”
“넵. 한 병 정도 마십니다!”
“요즘 애들은 다 한 병이라 하네? 하하하.”
“잘 부탁합니다!”
“그래그래.”
모든 신입 사원과 마찬가지로, 나는 사람을 볼 줄 몰랐다. 그가 친근하고 소탈하다 생각했다. 지금 와서 돌아보니, 그날은 나의 회사 생활 중 가장 한가롭고 평탄한 날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