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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링크)

 

아침 출근길, BBC 라디오를 듣는다. 매일 아침 어김없이 등장하는 소식.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이야기다.

 

걸프전이나 사담 후세인을 처단하기 위한 미국의 이라크 전쟁, 그리고 20세기 전쟁은 누군가가 죽게 되거나 혹 나라의 수도가 점령당하면서 마무리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21세기 전쟁은 양상이 다르다. 둘 중 하나는 죽어야만 끝날 것 같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도 마찬가지다. 끝날 줄을 모른다.

 

지정학적으로 중동과 유럽은 우리와 거리가 멀다. 그래서 정서적으로 혹은 심리적으로 불안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이들의 분쟁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래서 이어간다. 이-팔 전쟁 시리즈 그 여섯 번째 이야기다.

 

다윗을 기점으로 뒤바뀐 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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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승리(마테오 로셀리 작)

 

비록 다윗이 자신과 가문에 어떤 이득이 있을 것인지 계산하고 골리앗과의 전투에 참여했다고는 하나, 또 유부녀를 탐해 충신 중의 충신이었던 부하를 전장의 최전선으로 내몰아 죽게 해 윤리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이 있다고는 하나, 그는 이스라엘의 전설적인 장수이자 왕이긴 했다.

 

사실, 그 정도 욕심 없는 인간이 어디 있겠으며, 모든 권력을 쥐고 있는 왕인데 무슨 일이든 못 하겠나. 과거 우리나라 조선시대 역사만 봐도 다윗보다 더 한 짓을 한 왕들도 잘 먹고 잘산 경우가 많으니, 지금의 잣대로 그때를 평가하는 것도 무리가 있다.

 

게다가 솔로몬은 다윗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다. 비록 부하의 아내였지만 후궁 하나쯤으로 여기지 않고 아내로 맞아 왕권을 넘겨줄 자녀까지 낳은 것을 보면, 다윗이 밧세바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것은 사실처럼 보인다(참고로, 밧세바는 다윗이 전장으로 내몰았던 장수의 아내이자 훗날 솔로몬의 어머니가 된다).

 

이런 다윗이 왜 이스라엘의 전설적인 왕일 수 있었을까?

 

이유는 하나다. 다수의 전쟁에서 승리했고 이스라엘 왕국의 기초를 다졌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역사상 이렇게 많은 승전보를 올린 왕도 없다. 성경은 승리의 기록만 전하지 않는다. 그 속에는 인류의 온갖 추악함도 낱낱이 기록되어 있다(예수의 조상 중에는 며느리와 시아버지의 관계로 태어난 이도 존재할 정도다).

 

그런데, 성경에는 다윗이 전쟁에서 패했다는 기록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특히, 블레셋과의 관계에서도 확실한 우위를 보였다. 다윗 이전, 이스라엘은 블레셋의 지배를 받고 있었지만, 다윗이 왕위에 오른 뒤 지배구조가 뒤바뀐다.

 

블레셋, 이스라엘의 보물을 빼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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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셋이 이스라엘에 가장 큰 모욕을 준 대표적인 사건이 ‘언약궤 탈환’이다. ‘언약궤’는 유대인의 신 야훼 하나님이 모세에게 준 십계명 돌판이 담긴 보관함이다.

 

이스라엘 왕국이 있기 전까지 이스라엘은 제사장(신에게 제사를 드릴 때 이를 집행하는 사람이자 지도자)에 의해서 움직이는 민족 단위의 부족이었다. 유대인이라 불리는 이들의 기원은 사실상 야훼를 섬기는 이들이 모여 민족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제사장의 역할이 가장 중요했다.

 

참고로, 성경에서는 제사장을 ‘사사(士師)’라 칭하고, 이들의 활동을 사사기에 기록하고 있다. 다만, 우리말 ‘사사’는 여러 가지 뜻이 있어 헷갈릴 수 있다. 스승으로 섬긴다는 뜻의 사사(師事), 절이나 사원을 가리키는 사사(寺社), 관청의 서기관인 사사(司事)라는 단어가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사사’는 제정일치 사회에서 통치자 겸 형벌에 관해 판단하는 재판관 역할을 담당하는 이들을 뜻한다.

 
그렇다면, 제사장에게 그리고 유대민족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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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에게는 자신들이 믿는 신 야훼가 최초의 제사장이라 불린 모세에게 직접 준 십계명(돌판)이 가장 중요하지 않았겠는가? 민족을 통치하기 위해 가장 기본이 되는 법을 신께서 직접 돌판에 새겨 주었으니, 이보다 값진 건 없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이 돌판만은 절대 사수해야 하는 것이 제사장들과 유대인들의 사명이었다. 그래서 이를 금박을 입힌 나무상자에 넣어 보관했고, 하나님과 인간의 언약이 담겨있다 하여 언약궤라 불렀다.
 
그런데, 유대인에게 목숨만큼이나 소중했던 이 언약궤를 빼앗긴 적이 있다. 지금의 팔레스타인이라 불리는 땅의 이름을 뜻하는 블레셋, 이들이 처음으로 이스라엘의 언약궤를 빼앗았다.
 
고대에는 전쟁에서 승리하면 이긴 쪽에서, 단순히 전리품을 챙겨오는 것을 넘어 패배한 이들이 가장 소중히 여기던 무언가를 빼앗아 오는 일이 흔했다. 블레셋도 그랬다. 민족 간의 영토 싸움이 한창이던 때, 블레셋은 유대인들과의 전쟁에서 승리 후 언약궤를 빼앗았다. 전쟁에서 승리해 타민족을 통치하고 땅을 얻는 정도로 그쳤다면 별문제 없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언약궤를 빼앗은 건, 이스라엘 입장에서 선을 넘어도 단단히 넘은 일이었다.
 
우리네 역사만 봐도 비슷한 일들이 많다. 굳이 안 해도 될 일인데, 만용을 부려 종국엔 보복을 당하거나 망하는 일이 한두 가지인가. 히틀러가 유럽을 통일하기 위해 벌인 2차 세계 대전에서 유대인들을 그렇게까지 학살하지만 않았어도, (러시아만 안 건드렸어도) 일본의 진주만 습격, 그러니까 굳이 미국을 건드리지만 않았어도 인류의 역사가 어떻게 뒤바뀌었을지 모른다.
 
블레셋은 이스라엘의 언약궤를 빼앗은 처음이자 마지막 상대였다. 이 사건은 아주 오래전 일이기는 하나 유대인들이 ‘블레셋’(팔레스틴)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치를 떠는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물론, 지금의 팔레스타인 땅에는 과거 블레셋의 후손이라 불릴 만한 이들은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흔적이 남아있지 않다. 남은 거라곤 지역 이름 정도? 하지만, 팔레스타인이라는 명칭만으로 이미 유대인은 거북함을 느낀다. 그러고 보면, 유대인들이 참 뒤끝 있는 민족이다.
 
위대한 이스라엘 왕국의 시작, 다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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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욕스럽게 빼앗긴 언약궤를 다시 찾아 준 장본인이 바로, 다윗이다.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대부분 승리했고, 블레셋이 차지하고 있던 땅도 이스라엘의 영토로 만들었다. 종국엔 유대인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야훼 하나님이 친히 기록해 주신 언약궤까지 되찾았다.
 
사실, 이집트에서 탈출한 이후 가나안 땅에 들어선 뒤, 유대인들이 가장 오랜 기간 적으로 두고 싸웠던 민족이 블레셋이다. 성경에도, 이스라엘 왕국 역사 중 블레셋과의 전투가 다수 할애되어 있다.
 
이전 시리즈에서 언급했던 삼손과 데릴라, 다윗과 골리앗과 같은 상징적인 이야기들이 전해져 내려온 것도 이 때문이다. 얽히고설킨 관계. 유대인과 블레셋,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기원전부터 질긴 인연을 맺고 지금까지 이어져 온 셈이다.
 
유대인은 왕국의 형태가 아닌 민족 단위의 부족사회로, 제사장을 중심으로 모여 있었다. 그래서 발붙인 이 땅이 내 땅도 아니고 남의 땅도 아닌 상태로, 떠돌이 생활을 해왔다. 이들은 블레셋의 통치 아래 조공을 내며 머리를 조아리고 살았다. 억울하고 분하지만, 제대로 된 군대 조직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당하고 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윗의 등장으로 모든 게 바뀌었다.
 
성경에도 자주 언급된다.
 
“다윗은 우리를 블레셋 사람과 다른 원수들로부터 구했다.”
 
다윗 이후, 이스라엘은 왕국의 면모를 갖추고 근접 국가들과 전투해 영토를 명확히 했다. 대부분의 블레셋 영토를 차지했고, 블레셋과의 관계에서 완벽한 우위를 점했던 시기였다. 솔로몬의 시대, 이스라엘이 태평성대를 이룰 수 있었던 것도 다윗이 블레셋과의 관계를 정리해 기반을 잘 다져 놓았기에 가능했다.
 
다윗은, 죽을 때까지 40여 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리며 사실상 무패의 신화로 블레셋을 비롯해, 현재 이스라엘과 가나안 지역 일대를 지배해 패권의 우위를 가져왔다. 지배를 받았던 작은 민족 형태의 이스라엘이 왕국으로 거듭나 부국강병을 누리게 된 그 시작점에는 다윗이 있었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인물이지 않겠는가.
 
왜 아직 팔레스틴으로 불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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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5년, 존 멜리쉬가 완성한 현재의 중동지역 지도

'가나안'이라는 명칭이 표기되어 있다

 

솔로몬 시대 이후, 이스라엘은 남유다와 북이스라엘, 이렇게 남과 북으로 갈라져 두 왕국이 된다. 블레셋은 다윗이 죽고 난 뒤, 다시 세력을 일으키지 못하고 부족 국가로서의 면모를 유지하다 바빌론에 멸망 당한다. 이스라엘도 바빌론에 점령당하고 상당수의 유대인이 바빌론의 포로로 잡혀간다.
 
이후, 가나안 지역은 여러 시대를 거치며 앗수르(앗시리아), 페르시아, 바빌론, 로마 등 제국들에 점령당하며, 민족 단위로 지역에 거주하며 삶을 이어간다.
 
그런데, 특이한 점이 있다. 바빌론 제국에게 멸망 당하기 전까지 가나안 일대 지역에서 가장 강한 외교력과 군사력을 가지고 있던 건 이스라엘이었다. 그러니 추후에 해당 지역을 유대, 혹은 이스라엘이라 명명해도 무관했다. 그런데, 기원전 5세기경 해당 지역을 팔레스틴(블레셋)이라고 불린 이후, 지금까지도 그 지역을 팔레스틴이라 부르고 있다. 도대체 왜?
 
해당 지역에는 이스라엘 이외에도 모압이나 암몬, 소바, 다마스커스 등 수많은 부족 국가들이 있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다른 이름도 아닌 블레셋의 이름을 딴 팔레스틴이라 명명하게 되었을까? 이름만 들어도 민족의 역적이었던 팔레스틴. 유대인들에게 그 땅은 어떤 의미로 남아있을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