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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김 여사가 하지도 않은 사과를 놓고 집권 여당은 물론 국내 언론이 난장판이 되었다. 전당 대회 후, 당 내 권력 구조가 바뀔지 몰라 당사자 국민의힘이나 권력의 애완견 노릇을 하고 있는 언론에게는 정말 중요한 뉴스이긴 하다.

 

평소 동물원 침팬지 무리의 권력 다툼에는 관심이 많아도 국민의힘 권력 다툼에는 크게 관심이 없던 터라 처음 이 뉴스가 불거졌을 때 그러든가 말든가... 쳐다 보지도 않았다. 이전투구에 튀는 흙탕물로 옷을 버릴까봐 근처에 가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당의 미래를 논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랄 텐데 당 대표 후보 토론회 내내 김 여사 문자 메시지로 싸움질을 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도대체 5개의 문자 메시지가 뭐길래 저 난리인가 싶어 공개된 문자의 전문을 읽었다.

 

오호... 이것 봐라...

 

재밌다. 읽을수록 지적 호기심이 발동한다. 이런 문자를 김 여사가 한동훈에게 보냈다고? 그리고 한동훈은 읽씹 했다고? 이럴 땐 문자 메시지를 분석할 수단이 좀 필요하다.

 

문서 비평을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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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경전처럼 오랫동안 여러 사람 손을 거쳐 편집되어 전승된 텍스트를 연구하는 문서 비평(textual criticism) 방법론 중 대표적 방법으로 양식 비평(form criticism)이 있다. 간략히 설명하면, 사용한 단어와 빈도, 어법, 문서 양식 등을 분석하여 유형화하고 그 유형들이 어떤 시대, 어떤 ‘삶의 정황(Sitz im Leben)’에서 쓰였고,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의 모습이 되었는지 추적한다. 19세기 말~20세기에 걸쳐 인문학에도 실증과 환원 같은 자연 과학적 방법이 도입되면서 본격적으로 연구되었다.

 

특히, 실존주의의 영향으로 역사적 예수(Historic Jesus)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런 방법들은 신약 성서 연구에 아주 적극적으로 도입되었다. 마치 키를 쳐서 쭉정이는 날리고 알곡만 거두 듯 문장을 일일이 분해해 분석하다 보면, 예수 당대 혹은 직후에 생성된 기록이나 문서의 원형을 찾고 역사적 예수에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을 거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런 양식 비평의 결정적 단점은 텍스트를 저자 개인의 성과물로 여기고 작품의 미학적 가치, 작가의 문학적 감수성, 사상적 독창성에 치중하게 된다는 점이다. 게다가 종교 경전이 연구 대상이라 텍스트의 내용을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나 유효한 보편적 가치를 가진 것으로 간주하는 단점도 있다. 이런 단점은 다른 인문 사회 과학 분야와 마찬가지로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해소되었다. 자본주의 구조적 모순이 날로 심화되고 실존주의의 지평이 개인을 넘어 사회 구조에까지 확장되자, 1970년 이후에는 사회학적 방법론으로 성서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저자나 편집자(들)이 어떤 사회적 정황에 처했길래 지금의 신약 성서 같은 텍스트가 나오게 되었는지 사회구조적 원인과 환경도 탐구하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믿음, 소망, 사랑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라는 구절로 유명한 고린도 전서는 사도 바울이 코린토스 초기 교회 공동체에 보내는 편지다. 바울은 이 서신에서 자신이 전해 들은 코린토스 초대 기독교 공동체가 직면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여기서 바울이 사랑을 힘주어 강조한 덕분에, 바울은 사랑의 전도사,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자구 해석에 치우쳐 텍스트를 읽은 결과다.

 

사회학적 방법론은 고린도 전서를 바울이 코린토스 초대 기독교 공동체가 직면한 구체적인 공동체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으로 보고, 당시 코린토스 초대 기독교 공동체가 어떤 사회적 문제를 가졌는지 구체적으로 구축한다. 이를 위해 해당 텍스트뿐만 아니라 인접 자료들, 당대에 생산된 각종 기록 자료와 고고학적 자료를 입체적으로 검토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구축한 사회적 맥락에서 텍스트를 다시 읽으면, 사소한 개인적 일탈로 보이던 사건이 사회 구조적 결과로 해석되고 왜 바울이 고린도 전서에서 사랑을 그렇게 강조했는지 좀 더 명료하게 이해하게 된다.

 

코린토스 초대 기독교 공동체는 인간 사회에서 흔히 목격되는 순혈주의에 입각한 공동체 분열이라는 사회적 갈등이 바탕에 깔려 있었다. 대표적 대립이 유대인과 이방인의 대립이다.

 

사회학적 해석은 바울이 코린토스 공동체를 괴롭히는 이런 사회적 갈등 문제를 사랑이라는 기독교적 가치로 해소하려 했다고 이해한다.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기독교적 가치관 중에서 사랑을 얼굴 생김새가 다르고, 성장한 문화 환경이 다르고, 세계관이 달랐던 이들을 하나로 묶는 구체적 처방으로 제시한 것이라고 본다.

 

음란 마귀를 뒤집어쓴 이들은 사랑이라는 단어만 나오면 괜히 볼이 붉어지지만, 기독교의 '사랑'이라는 가치를 현대 사회심리학적 용어로 치환하여 사회적 맥락에서 이해하면, 타자에 대한 배려와 차이를 인정하는 자세를 의미하는 매우 고결한 가치다. 이렇게 성서를 읽으면 성서는 시대와 장소를 뛰어 넘은 보편적인 메시지일 뿐만 아니라 구체적 시간과 장소을 가진 생동감 있는 메시지가 된다.

 

물론, 이런 전망이 실제 일어났던 일과 부합한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잠정적일지라도 사도 바울이 이 말 했다 저 말 했다, 믿음, 소망, 사랑 다 중요한데, 왜 사랑만 유독? 같은 의문들에 제법 합리적인 대답을 얻게 된다. 김 여사의 문자 메시지에 이런 연구 방법들을 적용하면, 그냥 읽어서는 답이 나오지 않는 의문들에 적당하게 합리적인 대답을 얻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김 여사의 문자 메시지가 이런 고상한 결말에 도달할 가능성은 없다.

 

모두 다른 사건을 가리키는 문자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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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문자 메시지의 문서 양식은 편지다. 혼자 쓰는 일기가 아니라 수신자가 정해진 편지라는 소리다. 일단 다섯 개의 문자 메시지를 일별로 열거해 보자. 15일에 2개 문자를 보냈고, 19일, 23일, 25일 3개, 총 5개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문서의 양식은 정해졌고 글쓴이도 특정된 터라 양식 비평은 할 게 별로 없다.

 

문자를 읽다 보니 이게 정말 김 여사가 쓴 게 맞나 싶긴 하다. 이전에 공개된 김 여사의 논문이나 카톡을 보면 짧은 문장도 비문인 경우가 많았다. 이번 공개된 문자 메시지에는 다소 어색한 문장은 있어도 완전한 비문은 눈에 띄지 않는다. 비문이라도 남아 있으면 이전 문자나 저작들과 비교하여 김 여사가 쓴 것인지 아닌지 짐작하겠는데 그럴 수도 없다. 사용한 단어와 일관된 주제로 미루어 볼 때 원본 메시지 작성자도 한 사람이고 후에 편집하거나 교정한 사람도 한 명인 것으로 보인다.

 

용산도 한동훈도 부정하지 않으니, 김 여사가 원본 문자 메시지 작성자라 보기로 한다. 그리고 TV조선의 주장처럼 원본 문자 메시지의 문장을 맞춤법 정도만 고친 것인지 아니면 어의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대폭 수정한 것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원본 메시지의 취지와 분위기는 살아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문자 1] 2024년 1월15일

 

"요새 너무도 고생 많으십니다. 대통령과 제 특검 문제로 불편하셨던 것 같은데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 너무나 오랜 시간 동안 정치적으로 활용되고 있어 기분이 언짢으셔서 그런 것이니 너그럽게 이해부탁드립니다 ㅠㅠㅠ 다 제가 부족하고 끝없이 모자라 그런 것이니 한 번만 양해해 주세요. 괜히 작은 것으로 오해가 되어 큰 일 하시는 데 있어 조금이라도 불편할 만한 사안으로 이어질까 너무 조바심이 납니다. 제가 백배 사과드리겠습니다. 한 번만 브이랑 통화하시거나 만나시는 건 어떠실지요. 내심 전화를 기다리시는 것 같은데 꼭 좀 양해부탁드려요."

 

1월 15일 자 문자 메시지는 김 여사가 한동훈에게 사과하는 문자다. 김 여사의 대국민 사과와는 크게 관련이 없어 보인다. 김 여사 특검 문제를 놓고 윤 대통령과 한 비대위원장 사이에 한바탕 사달이 벌어지고 난 다음, 한동훈을 달래고 둘 사이를 어떻게든 회복해 보려는 의도로 한동훈에게 사과 문자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보인다. 1월 15일이면 김경율이 마리 앙투와네트를 언급하기도 전이다.

 

윤 대통령과 한동훈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한동훈의 태도가 평소와는 달랐던 거 같다. 내심 전화를 기다린다는 마지막 문장을 보면, 윤 대통령에게 된 통 깨진 한동훈이 평소처럼 윤 대통령에게 곧장 엎드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문자2] 2024년 1월15일

 

"제가 죄송합니다. 모든 게 제 탓입니다. 제가 이런 자리에 어울리지도 자격도 안 되는 사람이라 이런 사달이 나는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1월 15일에 보낸 또 다른 문자 메시지다. [문자1]과 [문자2]의 시간 순서는 모르겠지만 두 문자 사이에 또 다른 사건이 벌어진 것은 확실해 보인다. 이 순서대로라면 김 여사가 첫 번째 문자를 보내고 뭔가 사달이 난 모양이다. [문자2]는 [문자1]보다 더 저자세다. 문자 메시지 전체의 어투가 그렇지만 이 문자 메시지는 유독 김 여사가 한동훈에 대해 저자세로 읽힌다. 죄송하다는 사과로 문자 메시지가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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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3] 2024년 1월19일

 

"제 불찰로 자꾸만 일이 커져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제가 사과를 해서 해결이 된다면 천 번 만 번 사과를 하고 싶습니다. 단 그 뒤를 이어 진정성 논란에 책임론까지 불붙듯 이슈가 커질 가능성 때문에 쉽게 결정을 못하는 것뿐입니다. 그럼에도 비대위 차원에서 사과를 하는 것이 맞다고 결정 내려주시면 그 뜻에 따르겠습니다. 이 모든 것에 대해 책임이 저에게 있다고 충분히 죄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대선 정국에서 허위기재 논란으로 사과 기자회견을 했을 때 오히려 지지율이 10프로 빠졌고 지금껏 제가 서울대 석사가 아닌 단순 최고위 과정을 나온 거로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습니다. 사과가 반드시 사과로 이어질 수 없는 것들이 정치권에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모든 걸 위원장님 의견을 따르겠습니다.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19일의 이 문자 메시지도 김 여사가 윤 대통령과 한동훈 사이에 벌어진 또 다른 사달을 수습하려고 보낸 것으로 보인다. '제 불찰로 자꾸만 일이 커져'라는 구문이 이런 의심을 갖게 한다. 그 기간 중에 터진 큰 사건이라면 김경율의 마리 앙투와네트 발언이 있었다. 그런데 1월 23일에 보낸 [문자4]를 봐서는 이 문자 메시지는 김경율 발언이 있기 전에 보낸 것으로도 읽힌다. 그렇다면 김경율의 마리 앙투와네트 사건 이전에 대단한 사달이 한 번 더 있었다는 소리다.

 

그 사달을 겪고 난 뒤 김경률이 마리 앙투와네트를 언급하며 김 여사에게 사과를 요구한 것은 아닐까? 김경율을 국민의힘에 영입한 것은 한동훈이었으니 당시 언론은 그의 발언이 한동훈의 의중을 반영했다고 해석하였다. 당연히 김경율의 발언과 한동훈이 이에 동조했다는 소식이 용산에도 전해졌을 것이다. 그 뒤에 또 사달이 벌어졌다는 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 여하튼 이 메시지도 마지막 문장이 죄송하다로 끝난다.

 

[문자4] 2024년 1월23일

 

"요 며칠 제가 댓글팀을 활용하여 위원장님과 주변에 대한 비방을 시킨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너무도 놀랍고 참담했습니다. 함께 지금껏 생사를 가르는 여정을 겪어온 동지였는데 아주 조금 결이 안 맞는다 하여 상대를 공격할 수 있다는 의심을 드린 것조차 부끄럽습니다. 제가 모든 걸 걸고 말씀드릴 수 있는 건 결코 그런 일은 없었고 앞으로도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김경률 회계사님의 극단적인 워딩에 너무도 가슴이 아팠지만 위원장님의 다양한 의견이란 말씀에 이해하기로 했습니다. 전에 말씀드렸듯이 제가 너무도 잘못을 한 사건입니다. 저로 인해 여태껏 고통의 길을 걸어오신 분들의 노고를 해치지 않기만 바랄 뿐입니다. 위원장님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과'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시면 제가 단호히 결심하겠습니다.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여러가지로 사과드립니다."

 

[문자4] 역시 그냥 보낸 게 아니라 김 여사가 댓글팀을 운영하며 한동훈 까기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미안하다고 보낸 메시지다. 김경률의 마리 앙투와네트 발언을 콕 집어 언급하며 한동훈을 봐서 이해하겠다고도 한다. 정말 파악하기 어려운 문장은 '위원장님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과'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시면 제가 단호히 결심하겠습니다.'라는 문장이다.

 

여기서 사용된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이끈 상황이 무엇인지는 이 문자 메시지만으로는 짐작할 수 없다. 심지어 1월 23일은 윤 대통령과 한동훈이 서천 시장에서 만난 날이다. 그날 한동훈은 서천 시장 화재 현장에서 조폭이나 했을 법한 90도 폴더 인사를 했다. 이 문자 메시지 역시 마지막 문장은 김 여사가 한동훈에게 사과하는 것으로 끝난다.

 

[문자5] 2024년 1월25일

 

"대통령께서 지난 일에 큰 소리로 역정을 내셔서 맘 상하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큰 맘먹고 비대위까지 맡아주셨는데 서운한 말씀 들으시니 얼마나 화가 나셨을지 충분히 공감이 갑니다. 다 저의 잘못으로 기인한 것이라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조만간 두 분이서 식사라도 하시면서 오해를 푸셨으면 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문자5]도 또 무슨 사건인가가 벌어져서 김 여사가 쓴 것으로 보인다. 첫 문장이 대통령이 지난 일에 큰 소리로 역정을 냈다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아마 23일 이후 또 윤 대통령과 한동훈 사이에 또 사달이 난 모양이다. 큰맘 먹고 비대위까지 맡아 준 한동훈에게 윤 대통령이 또 서운한 소리를 한 모양인데, 윤 대통령이 서천 시장 만남 후에도 한동훈을 여전히 못마땅해 하며 역정을 낸 것으로 보인다.

 

김 여사가 보기에도 한동훈이 터무니없이 깨진 것 같다. 이 문자 메시지도 김 여사가 한동훈에게 사과하는 것으로 끝난다. 이번에는 이전까지 썼던 '진심' 대신 '정말'로 변주하여 사과의 진의를 담고자 했다.

 

김 여사의 딸랑이 장난감, 대국민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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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윤석열 당시 대선 후보의 부인 김건희 씨가 허위 이력 의혹과 관련해 입장문을 발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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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펴본 것처럼 5개의 문자 메시지가 사과의 메시지인 것은 맞는데, 이 문자 메시지는 한 사건을 두고 보낸 연속 메시지가 아니라 독립적으로 벌어진 사건에 개별적으로 보낸 사과 메시지로 보인다. 당연히 대국민 사과는 이 문자 메시지 시리즈의 주제가 아니다.

 

다섯 개 문자를 읽다 가장 불편했던 점은 김 여사, 윤 대통령, 한동훈의 삼각 권력 구도가 완전히 뒤집혀 역삼각형 구도가 된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김 여사는 다섯 개 문자 메시지에서 내내 한동훈에게 아주 깍듯이 존대를 하며 거듭 사과를 한다. 심지어 자신이 대국민 사과를 할지 말지, 그 결정을 한동훈에게 맡김으로써 한동훈의 권력이 윤 대통령의 권력을 넘어선 듯한 인상마저 준다.

 

문자 메시지로 읽히는 윤 대통령은 김 여사 특검과 관련해서 똑부러지게 일처리를 못하는 한동훈에 몹시 화가 나 있는데, 김 여사는 최고 권력자인 윤 대통령보다 한동훈에게 자기 거취를 의탁하는 아주 이상한 모양새다. 이 문자 메시지들만 보면 한동훈이 자기 진영의 정국을 풀어가는 최고 권력자로 보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것 같다.

 

이 문자 메시지에서 대국민 사과는 한동훈을 달래기 위해 김 여사가 흔드는 딸랑이 장난감으로 보인다. 정말 사과할 마음이 있었고 그게 국민의힘이 총선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면 한동훈의 허락을 받을 이유가 없다. 그냥 대통령실에서 일정 조정해서 사과하겠다고 통보하고 사과하면 된다. 김 여사는 계속 한동훈 앞에서 대국민 사과를 딸랑딸랑 흔들기만 했다. 김 여사는 애초에 대국민 사과를 할 맘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문자 메시지에서 김 여사가 거듭 잘못했다 뉘우치는 것은 몰카로 조만간 대통령 기록물이 등록 예정인 뇌물 수수 현장을 부주의하게 들켰다는 것을 후회한다는 의미이지(반성 아니다, 후회다) 300만 원짜리 명품백을 받은 걸 반성한다는 뜻이 아니다. 존대말을 쓰고는 있지만 기본 자세는 ‘그깟 백 하나 받은 게 뭐 큰 일이라고 이 난리냐, 한동훈이 예전처럼 잘 수습하고 처리해라’ 명령하는 자세로 읽힌다. 또한 ‘사태 수습에 필요하면(혹은 한동훈 네가 원하면) 대국민 사과도 해 줄 수 있으니까 잘 좀 하라’는 메시지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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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당 대표 후보로 나온 이들은 한결 같이 한동훈이 김 여사의 문자 메시지를 읽씹한 것을 공격포인트로 삼고 있다. 이들은 한동훈이 읽씹한 것 때문에 김 여사가 사과하지 못했고 그래서 총선에서 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한동훈은 문자의 내용과는 달리 김 여사의 본심은 사과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고 주장한다.

 

위의 문자 메시지가 모두 개별적인 사달이 난 뒤, 김 여사가 한동훈에게 보낸 사과 메시지로 보면 한동훈이 밝힌 읽씹한 이유, 김 여사는 대국민 사과를 원하지 않았다는 항변이 이해가 간다. 윤 대통령에게는 일 처리 제대로 못한다 계속 깨지는데, 보스의 부인은 그럴 때마다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사과문자를 계속 보낸 것이다.

 

검찰 시절 부하 직원 한동훈은 이럴 때 당연히 '괜찮습니다, 별 말씀을요'와 같은 의례적 답장을 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지금은 많은 국민이 자신을 알만큼 매일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셀럽이자 차기 대권 주자의 반열에 오른 거물이라는 자의식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인물이 되었다. 심지어 형식적으로 윤 대통령은 더 이상 자신의 보스도 아니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은 예전 검찰 때나 다름없이 부하 직원 대하듯 막무가내로 깨고, 조금 지나면 약 올리듯 사건 당사자 김 여사가 평소에 하지도 않는 공손한 존대로 저런 사과 문자 메시지를 계속 보내면 누가 답을 달고 싶겠는가? 한동훈은 자존심도 무척 상했겠지만 무엇보다 김 여사가 무서웠을 것이다. 그러잖아도 표정이 휴머노이드처럼 언캐니(uncanny)한 사람이 어투까지 바뀌면... 생각만 해도 오싹하다.

 

한동훈의 장난감 칼, 대국민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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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참패한 것은 전적으로 선거법도 모르고, 자기 당 후보자의 이름도 외우지 못하는 정치 초년병 한동훈 때문이었다. 한동훈을 지지하는 이들은 한동훈이 그렇게라도 선전한 덕분에 108석이라도 얻은 거라고 주장하고 싶겠지만, 총선 전 한국갤럽이나 NBS 조사를 상기하면 한동훈의 선거운동은 선거 운동이 아니라 뻘짓이었다. 이들 여론조사대로라면 이번 총선에서 폭망해야 하는 쪽은 민주당이었고 국민의힘 의석 수는 과반을 넘겨야 했다.

 

총선 전 여론 조사를 믿었다면 김 여사도, 한동훈도 대국민 사과가 굳이 필요 없었다. 대선 후보 당시 대국민 사과를 언급한 김 여사의 메시지 내용을 봐서는 김 여사나 용산은 대국민 사과가 총선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역효과를 우려했던 것 같다. 한동훈도 이런 생각에서 크게 벗어난 것 같지 않다.

 

마리 앙투와네트를 언급하며 대국민 사과를 요구하는 듯한 입장을 보인 것은 총선 전략이 아니라 차기 대권 주자 입지를 확고하게 다지려는 한동훈의 개인 브랜드 전략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당원과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마리 앙투와네트와 대국민 사과를 윤 대통령과 김 여사에게 장난감 칼처럼 휘두르는, 근육질 한동훈 모습을 심어 주려 했던 것 같다(개인적으로 한동훈이 벌거벗은 닭을 한동안 들고 있었던 것은 서민성을 드러내기 위한 계산된 행동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야성미와 남성성을 드러내려는 심리 때문이라고 본다).

 

윤대통령과 김 여사뿐만 아니라 한동훈에게도 이번 총선은 다음 대선보다 더 중요한 선거였다. 용산 내외에게는 퇴임 후 노년에 닥칠 리스크를 어떻게든 줄일 수 있는 총선이었고 한동훈에게는 다음 대선의 발판이 되는 총선이었다. 따라서, 김 여사의 대국민 사과가 총선 판세를 가를 만큼 중요한 사안이라고 여겼다면, 김 여사는 한동훈의 동의 여부에 관계없이 대국민 사과를 했을 것이다. 한동훈은 김 여사에게 문자 메시지이건, 통화이건, 인편이건 대국민 사과를 집요하게 압박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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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연합뉴스>

 

한동훈은 대신 언론사 카메라 앞에서 윤 대통령에게 조폭들이 할 만한 90도 폴더 인사를 했다. 이 인사는 한동훈이 윤 대통령과 이전 관계, 매우 긴밀한 직장 상사와 부하 직원 관계로 돌아가겠다는 다짐과 충성심을 공포하는 의식(儀式)처럼 보인다. 마치 일본 야쿠자들이 우두머리 앞에서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충성을 맹세하는듯.

 

보도에 의하면 1월 25일 이후, 한동훈은 김 여사에게 사과를 요구한 적이 없다는 태세 전환으로 다시 한번 충성을 확인한다. 덕분에 김경율만 물을 잔뜩 마신 채 쓸쓸히 무대에서 내려와야 했다. 이후 한동훈은 윤 대통령과 각을 세우며 힘과 근육을 자랑하는 대신, 지역 국회의원 후보의 마이크를 빼앗고, 연단에 누워 셀카를 찍고, 유세차에 오르자마자 국민의힘 유니폼을 벗어던지고 자신의 패션 감각을 뽐내는, 생전 듣도 보도 못한 희대의 선거 운동을 시전했다.

 

김 여사 문자 메시지가 주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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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에서 단언한 것처럼 김 여사 문자 메시지 텍스트를 비평한 결과, 우린 고상한 결말이 아니라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아주 고약한 결말에 이르렀다. 한동훈도 김 여사도 대국민 사과를 할 맘이 없었고, 반성도 없었으며 오히려 명품 백 받는 현장을 들킨 것을 후회한다는 사실 말이다. 이보다 정말 기가 막히고 역겨운 결말은, 이런 문자 메시지를 두고 김 여사의 진의가 뭐냐, 한동훈의 진의는 뭐냐를 따지고 있는 언론이다. 죽어라 기잡네 언론입네 우기면서 정작 다루어야 하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본체만체 한다. 사실 본체만체 하는 건지 아니면 무식해서 못 보는 건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 문자 메시지 사건에서 정말 심각한 문제는,

 

첫째, 김 여사가 대통령이 행사하는 권한으로 국정 운영에 개입했다는 것이다. 이는 명백한 국정 농단이다. 언론은 무엇보다 이를 지적해야 한다.

 

둘째, 백 번 양보해 그 간 세 사람의 관계를 생각해서 이번에 문제가 된 문자 메시지가 매우 사적인 의사소통이라 간주해도 김 여사도, 한동훈도 현대 정치인이 가져야 하는 정치 윤리를 전혀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언론은 이 두 가지 사실만 갖고도 불같이 일어나 따져 묻고 누구보다 이들의 탄핵에 앞장서야 한다. 적어도 대한민국의 망국을 바라지 않는다면 말이다. 이런 이들에게 대한민국을 맡긴다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고 사기꾼에게 회사 법인 인감을 맡기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퇴행과 부도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현대 대의 민주주의의 윤리적 토대가 자본주의에 많이 침식되었지만, 정치인에게 요구되는 정치 윤리는 여전히 존재한다. 설사 정치인 스스로 밥벌이 직업인이라고 자신을 비하한다 해도 정치라는 영역에 들어서면 요구되는 직업윤리가 있다. 현대 대의 민주주의 정체(政體)에서 정치인의 직무는 국가를 구성하는 구성원(혹은 이해집단) 누구도 자기만 손해를 보고 있다는 피해의식을 갖지 않도록 이해를 잘 조정하는 일이다.

 

이 직무를 잘 수행하려면 당연히 이해 조정 대상에서 정치인 자신은 철저히 배제해야 한다. 그 어떤 이해 조정에서도 자신을 철저히 배제하는 것이 현대 정치인에게 유일하게 요구하는 직업윤리다. 어려운가? 이거 하나 밖에 없는데 이게 어렵다면 정치인이 되지 말아야 한다.

 

여기에 앞서 언급한 고린도 전서의 기독교적 '사랑'을 현대 사회심리학적으로 해석한 자세, 대한민국 공동체 안에서 타자에 대한 배려와 차이를 인정하는 자세만 가지면 이 직업윤리를 실천하는 것은 껌 씹는 것보다 쉬운 일이 된다. 얼마든지 편견 없이 구성원 간 갈등을 최소화하며 이해를 조정할 수 있고 정치인에게 가장 큰 보상인 신뢰와 칭찬도 받을 수 있다.

 

국민의힘에는 이런 자세와 윤리를 가진 이가 없다. 이번 문자 메시지가 가진 사태의 심각성은 나 몰라라 하고, 김 여사와 한동훈의 진의 타령만 하는 국민의힘 당 대표 후보들을 봐도 현대 정치인에게 요구되는 자세와 직업윤리를 가졌다고 보기 힘들다. 그 나물에 그 밥이고, 누가 되건 국민의힘은 우리가 아는 국민의힘으로 남을 것이다.

 

호기심이 생겨 김 여사의 문자 메시지를 학문적으로 비평해 봤는데…

 

하고 나니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밥숟가락으로 똥을 푼 기분이다. 아주 드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