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김선우(이병헌 扮)가 백상기획 대표 백대식(황정민 扮)에게 면전에서 대놓고 면박을 주자, 백대식이 ‘삼선교’ 오무성(이기영 扮)을 시켜 김선우를 제거하려 하는 장면이 나온다.
오무성은 김선우를 찾아가 이렇게 말한다.
출처 - 영화<달콤한인생>
“사과해라. 그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잘못했음. 이 네 마디야. 네 마디만 하면 적어도 끔찍한 일은 피할 수 있다. 잘.못.했.음. 딱 이 네 마디다.”
하지만 김선우는 “그.냥.가.라.” 이렇게 응수하고 영화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물론 결이 전혀 다른 이야기겠지만, 나는 살면서 ‘잘못했다’ 이 한마디를 구경하는 일이 대단히 드물었다. 이를테면, A라는 인물에 대해 어느 부정적 이슈가 터졌다고 치자. 그 흔한 SNS에서 장삼이사들이 A를 마구 비난한다. 하지만 알고 보니 A가 사실은 억울한 피해자임이 밝혀진다. A에게 온갖 욕지거리를 내뱉은 인물 중에 “내가 경솔하게 A 씨를 욕한 것에 대해 사과한다”고 한 줄 쓰는 사람을 나는 이제껏 보지 못했다. 나 빼고(내가 이렇게나 훌륭하다).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인지 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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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원은 대담의 첫마디로 ‘언론의 잘못’을 언급했다.
“저는 언론의 잘못한 점도 상당히 많이 있다고 봐요. 신뢰를 잃을 만한 일이 많이 있었다.”
모든 지표가 그렇게 나오니 당연히 이 자체를 부정할 순 없었으리라.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그 첫 단추를 토대로 반성적 성찰이 이야기의 큰 틀이었어야 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김희원의 발언은 유튜브의 극단적 정파성에 대한 문제 지적이었다.
“언론에 문제가 있긴 한데...”로 이야기를 꺼냈지만, 결국 언론의 여전한 존재가치를 옹호한 것이다. 우리는 보통 이러한 태도를 두고 “왜 이렇게 혓바닥이 길어?”라고 이야기한다. ‘언론엔 문제가 많아. 오케이. 인정. 하지만 유튜브가 대안은 아냐.’라는 김희원의 주장에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것은, 그 누구도 “기성 언론은 싹 다 문 닫아야 하고 유튜브만이 정답이다”라고 주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유튜브는 기성 언론에 문제가 많아서 대안 매체로 떠오른 것이지, 유튜브라는 대안매체가 생겼기 때문에 기성 언론에 없던 문제, 혹은 가려져 있던 문제가 불거진 게 아니란 말이다. 유튜브가 기성 언론의 대안으로써 ‘정답’이 아니라 한들, 기성 언론의 문제가 사라지진 않는다. 과연 기성 언론의 종사자로서 ‘성찰’은 어디에 위치해야 마땅한가.
‘질문이 잘못됐다’ 그리고 ‘질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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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원은 기성 언론이 사기업으로써 영리활동을 추구하며 생기는 하향평준화 와중에도, 기자들이 취재해서 단독을 내고 있다며 유튜브가 그러한 ‘취재’를 할 수 있겠냐고 의문을 제기한다. 바로 이 지점이야말로 김희원이 갖고 있는 ‘언론관’의 가장 큰 문제점이다.
대한민국에 ‘언론사’는 단 하나만 존재하지 않는다. 북한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 특정 언론사가 ‘특종’ 혹은 ‘단독’ 기사 하나를 냈다고 해서 그것이 곧장 ‘여론’이 되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이른바 ‘조국 사태’에서 극명히 드러난 바 있다.
A 언론사가 ‘특종’을 낸다. 그러면 다른 B, C, D 언론사들이 받아쓴다. 그리고 그 이슈에 대해 너도나도 ‘단독’을 하기 위한 레이스를 펼친다. 소위 ‘팔로우업’(follow-up)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짧게는 사나흘, 일주일, 길게는 한 달여 기간 동안 ‘후속 보도’가 쏟아지고 하루 종일 관련 기사가 도배된다. 이것이 바로 ‘취재 열기’이고 조국 자택 앞에서 중국집 배달원을 붙잡고 ‘짜장면을 시켰냐, 짬뽕을 시켰냐?’는 질문 세례의 형태로 드러나는 것이다.
기성 언론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은, 기자들이 조국 집 앞에서 “짜장면을 시켰냐, 짬봉을 시켰냐”로 질문한 것을 손가락질하는 것이 아니다. 윤석열 정부 관련 이슈에 대해선 왜 그런 치열한(?) 취재 활동을 보이지 않느냐고 묻고 있는 거다. 질문이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왜 상대에 따라 선별적인 질문을 하거나 질문 자체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유튜브가 기성 언론처럼 취재할 수 있겠냐고? <뉴스타파>가 수많은 특종을 터트렸을 때, 기성 언론은 “비 오는 날엔 소시지 빵” 같은 소리나 늘어놓고 있는 것이 현실 아닌가? 앞서 이야기한 여러 언론의 치열한 ‘후속보도’가 있었나? 유튜브 매체 ‘따위’라서 쌩깐 것이 진실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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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원은 유시민의 이러한 기성 언론의 ‘뭉개기 행태’ 비판에 대해 ‘규범’을 이야기했다. 언론사의 이해관계 때문에 보도를 뭉갠 것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그것은 엄청 비판받을 일이라고 했다.
잠시 뒤로 돌아가 보자. 박근혜 정권 당시 TV조선은 최순실 의상실 영상 등을 2014년에 이미 갖고 있었다. 하지만 한겨레, JTBC 등이 2016년 관련 내용을 보도하자 급하게 터트린다. 2년 동안 쥐고만 있었던 것이다. 사실로 확인된 해당 내용에 대해, 김희원이 화장실 변기 위에 앉아서 혼잣말로 뭐라고 궁시렁댔는지는 모르겠으나, 김희원 말마따나 <한국일보>가 TV조선의 행태를 “엄청 비판”했는가?
왜 김희원의 ‘언론관’은 본인의 ‘상식’ 내에서만 존재하고, 그에 따른 구체적인 행태는 지면 위에 전혀 실행되지 않는 것인가?
<한국일보>와 김희원의 ‘중립’이라는 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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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특정 정치인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행태 중에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에게 던진 기자의 질문을 문제 삼는 경우를 종종 본다. 곤란한 질문이 덮어놓고 나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정치인은 불특정 일반대중=유권자를 상대하기에, 정치인 본인에게 불리한 질문이라 할지라도 이를 자기 입장을 알리는 기회의 장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본질은, 그 ‘질문’이 품고 있는 ‘적의(敵意)(또는 악의(惡意))’의 여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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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질문들-유시민, 김희원 편>이 화제가 되면서 2년 전, 이재명 민주당 후보 초청 관훈토론회 영상이 덩달아 화제가 됐다. 거기에서 김희원 한국일보 논설위원은 이재명 후보에게 이러한 질문을 한다.
“이 후보는 대장동 의혹과 관련해서 1원이라도 이익을 취했다면 후보와 공직을 사퇴하겠다고 약속했다. 헌데 일각에서는 이득을 취하는 것이 돈만은 아니라는 의심을 갖고 있고, 공직선거법 무죄 확정판결에 참여했던 권순일 전 대법관이 퇴임 후에 화천대유 고문으로 가서 보수를 받았다는 사실이 논란이 됐다. 만약 의혹이 사실이라면 굉장히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에 여쭤본다. 권 전 대법관과 화천대유, 그리고 이 후보가 모종의 연관이 확인된다면 사퇴하고 책임질 것을 약속할 수 있나.”
권순일-화천대유-이재명의 커넥션이 궁금했다면 그냥 그 자체를 질문하면 되었다. “사퇴하고 책임지겠냐?”는 건, 본인이 본인 입으로 ‘확정되지 않은 의혹’이라 말해놓고 질문 자체는 확정된 사실을 전제로 한다. 이런 걸 전문용어로 ‘밑장빼기’라 한다.
돌고 돌아 결국 문제는 ‘동업자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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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원은 <질문들>에서 오바마까지 들먹이며 우리 사회에 언론을 격려하는 정치인이 없음을 한탄한다. 이에 대해 유시민은 외려 ‘질문하는 (미국) 기자들’이 부러웠다고 대꾸한다. 바로 이것이 김희원과 유시민 사이에 있는 ‘간극’의 핵심이다.
기자는 억울하다. 내가 A 기사를 썼을 땐 극찬을 하던 독자들이 B 기사를 쓰면 욕을 한다. <뉴스타파>의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 후보의 거짓말 논란. 이른바 윤우진 소개 사건 녹취 보도가 대표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윤석열 검찰총장 청문회였기에 국민의힘이 창, 민주당이 방패 역할을 했고 문재인-민주당 지지자들에게 당시 <뉴스타파>는 ‘공공의 적’ 취급을 받았다.
이런 뉴스소비자들 또는 정치 진영 지지자들의 극단적 행태를 결코 옳다고 할 순 없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그런 소비자들의 비이성적인 행태가 기성 언론의 면죄부 또한 될 순 없는 노릇이다.
즉, 어느 특정 언론사 하나, 어느 특정 기자 한 명만 파편화해서 분석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기성 언론이 ‘이심전심’으로 보이는 ‘집단적 행태’에 대한 분석과 성찰만이 유의미한 변화를 불러올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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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운 것은, 그래도 김희원이라는 인물이 우리나라 기성 언론에서 썩 괜찮은 인물이라는 점이다. 그보다 더 영향력 있는 매체와 언론인들을 떠올려 보라. <조선일보> 김대중과 양상훈, <동아일보> 김순덕, <중앙일보> 안혜리, <매일경제> 노원명 등 그야말로 기라성(?) 같은 인물들 틈바구니에서 김희원 정도면 매우(!) 귀한 인재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칭타칭 ‘중립지’임이 너무나도 자랑스러운 <한국일보>를 포함한, 이른바 ‘진보언론’의 가장 큰 문제점이 바로 그 빌어먹을 ‘중립’에 대한 강박임을 김희원은 죽었다 깨도 모를 것이다.
태양이 동쪽에서 떠오르는 것, 그 어디에도 ‘중립’이란 없다. 국민의힘이 하나를 잘못했으니, 민주당이 잘못한 점도 하나 지적해야 한다는 ‘양적 균형’은 그 잘난 ‘중립’이 아니다.
삼성전자가 엘지전자를 비판할 이유는 없다. 그저 엘지전자보다 더 나은 제품을 만들면 그만이다. 하지만 언론은 매체 비판도 고유의 나와바리 중 하나다. 굳이 <미디어오늘>이나 <미디어스>처럼 미디어 비평지만의 몫이 아닌 거다.
<조선일보>는 원래 그런 애들, <중앙일보>는 원래 그런 애들, <동아일보>는 원래 그런 애들, <문화일보>는 원래 그런 애들, <데일리안>은 원래 그런 애들, <한경>, <매경> 같은 경제지들은 원래 그런 애들이라며 웃어넘긴다면, 그것은 ‘언론’으로서 명백한 ‘직무 유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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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은 걸핏하면 ‘권력에 대한 견제와 감시’를 운운한다. 하지만 자기들끼리는 치열한 논쟁과 비판을 하지 않는다. 치열하긴커녕 보고도 못 본 척 책상에 앉아 혀를 끌끌 차는 것만으로 할 도리를 다했다고 치고 만다. 그러니 망하지 않을 재간이 없다.
뭐, 사실 이런 리뷰 쓰는 것도 다 부질없는 짓이다. 어차피 레거시 미디어는 망할 것이고, 자기들끼리 살아남으려 이합집산을 할 것이며, 지금은 대안매체라 평가받는 온라인 미디어가 주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시작되어 돌이킬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JTBC 봉지욱 기자가 퇴직 후 <뉴스타파>로, KBS 홍사훈, 이재석 기자가 퇴직 후 <딴지 미디어>로, KBS 최경영 기자가 퇴직 후 유튜브 <최경영 TV>와 <스픽스>로, KBS 박종훈 기자가 퇴직 후 유튜브 <박종훈의 지식한방>으로 새로운 둥지를 튼 것만 봐도 확연하지 않은가. 이제 새로운 방통위원장이 될 이진숙이 MBC를 장악하면 또 실력 있는 기자들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MBC를 무수히 쏟아져 나와 유튜브 등에 새 둥지를 틀 거다.
MBC <질문들>에서 선보인 김희원의 발언은, 대한민국 언론의 간소한 레퀴엠(장송곡)이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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