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AP>
바이든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를 사퇴했다. 지금 분위기로는 부통령인 카말라 해리스(Kamala Devi Harris)가 후보가 될 것으로 보인다. 클린턴 전 대통령, 펠로시 전 하원의장 등 민주당 출신 대통령, 원로, 사회 유명 인사들의 지지가 이어지고 있다. 조만간 오바마 전 대통령도 지지 선언을 할 것 같다.
코로나 격리에서 돌아온 바이든도 자신의 사퇴를 공식화하는 대국민 성명에서 해리스에 대한 지지를 분명하게 선언했다. 백악관 집무실에서 생중계된 그의 성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문장은
"There's also in a place for new voices fresh voices yes younger voices..."
(새로운 목소리, 신선한 목소리, 보다 젊은 목소리 차례입니다)
이다. 아마 이 구문은 잘 다듬으면 클린턴의 선거 구호였던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t's the economy, stupid)"만큼이나 유권자들에게 선명하게 각인되는 좋은 선거 구호가 될 것이다.
운명의 여신이 던진 주사위
권력의 정점에 서 있는 바이든이 어지간하면 실패하지 않는다는 미 대통령 집권 2기 선거를 포기한 것은 두 가지 사건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아무도 예상할 수 없었던 바이든의 코로나 감염과 트럼프 피격.
이 두 가지 사건 중 어느 하나만 벌어지지 않았어도 바이든은 사퇴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 트럼프와의 토론 이후 사퇴 압박이 거세지기는 했지만, 바이든도, 그의 가족도 바이든이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데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여기고 있었고 사퇴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출처 - <AP>
운명의 여신은 늘 하던 대로 인간이 전혀 예측하지 못하는 순간에, 주사위를 굴렸다. 지난 7월 13일, 트럼프가 유세 도중 피격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총 8발의 총알 중 한 발이 트럼프의 귀를 스치고 지나갔다. 유세장 청중 한 명이 숨졌고 두 명이 중태에 빠졌지만 트럼프는 무사했다. 연설 도중 차트를 보려고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면 시뮬레이션한 탄도는 트럼프의 후두부를 관통했을 것으로 예측되었다. 그는 현장에서 죽을 수도 있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그는 외젠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La Liberté guidant le peuple)'이 연상되는 매우 인상적인 사진 한 장을 남겼다.
외젠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운명의 여신이 던진 주사위는 트럼프에게 이런 역사적인 사진을 선물했지만, 바이든에게는 코로나 감염에 따른 격리를 선물했다. 바이든에게는 정말 잔인한 극강 대조였다. 누가 봐도 게임은 끝난 것으로 보였다. 하얀 붕대를 훈장처럼 귀에 붙인 트럼프는 더욱 기세등등해졌다. 무적 영웅과 병약한 노인이 싸우는 판이 된 이상, 2024년 미국 대선의 향배는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결정적 두 개의 사건을 겪고 바이든은 사퇴를 결심한다. 그의 결정을 용퇴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은 권력의 정점에 서 있는 미국 대통령으로서 미국 대통령 집권 2기 선거(다시 말하지만, 어지간하면 실패하지 않는다)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그 결정은 인간적으로 볼 때, 생존본능과 결부되어 용암처럼 터지는 자기 욕망을 억누르며 해야 하는, 아무나 할 수 없는 정말 힘든 결정이다. 지난 2020년 대선에 패했던 던 트럼프는 아예 선거 결과를 부정하며, 그의 지지자들을 선동해서 폭도들이 총을 들고 의회에 난입하는 사건을 조장하기도 했다.
바이든(혹은 민주당)은 대선판을 새롭게 짜기 위한 빌드업을 무적 영웅과 병약한 노인의 구도에서 무적 영웅과 희생하는 백전노장의 구도로 바꾸며 시작한다. 귀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주먹을 불끈 쥔 트럼프의 시각적 영웅 이미지는 어지간한 이미지로는 대항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피격 이후, 트럼프가 눈에 확 띄도록 붕대를 귀에 어설프게 붙이고 등장하는 것도 행운의 여신처럼 찾아온 영웅 이미지를 어떻게든 오래 유지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렇게 강력한 시각 이미지에 대항하려면 다른 감각 이미지가 필요하다. 바이든은 대국민 성명에 선명한 메시지를 담아 언어(텍스트) 이미지로 트럼프의 시각 이미지에 대항했다.
같이 가자, 트럼프
지난 24일, 백악관에서 대국민 연설 중인 바이든 대통령
바이든의 "새로운 목소리, 신선한 목소리, 보다 젊은 목소리에게 기회를!"이라는 대국민 성명을 들으며, 나는 왜장을 안고 절벽 아래로 몸을 던진 논개를 떠올렸다. 바이든은 트럼프를 안고 이제는 함께 레테의 강(그리스 저승의 강 중 하나로, 망각의 강이라고도 한다)에 몸을 던진 것으로 보였다. 이 말은 바이든이 국민에게 보낸 희망의 메시지이자 동시에 트럼프에게 보낸 초혼(招魂)의 메시지였다.
'어이, 트럼프. 우리의 시대는 끝일세. 같이 가지?'
바이든은 트럼프에게 미국의 미래를 위해 더 이상 미국을 분열시키는 분탕질을 하지 말라고 저격한 것이다. 직설적으로 트럼프를 대놓고 저격한 것은 아니지만 누가 들어도 저 말을 들으면 트럼프의 이미지 중 노욕에 가득 찬, 스크루지 같은 심상을 강화한다.
당연히 이 메시지가 논개의 반지처럼, 트럼프가 바이든의 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고 트럼프에 대한 고품격 욕이 되려면 메시지 수신자인 미국 국민의 마음 지형이 중요하다. 바이든뿐만 아니라 트럼프도 대통령 하기에 너무 늙었다고 생각하는 미국인이 많다면, 이 메시지는 매우 강력한 선거 구호가 될 수 있다. 트럼프와 바이든 기껏해야 세 살 차이다. 누가 더 늙었네, 젊네를 따질 만한 나이 차가 아니다.
지난 2월, ABC 방송의 여론조사에서 미국 국민들 대부분(59%)이 바이든도 트럼프 모두 대통령직을 수행하기에 늙었다고 응답했다. 특히 어느 정당도 지지하지 않는 국민의 91%는 바이든이 대통령을 수행하기에 늙었다고 응답했고, 71%가 트럼프도 마찬가지라고 응답했다.
이런 국민의 마음 지형에서는 바이든의 메시지는 트럼프의 영웅 이미지를 파괴할 만큼 강력하게 작동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트럼프도 이 메시지가 자신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메시지가 될 거라는 것을 감지한 것인지, 해리스에게 이전보다 더 독한 말을 더 많이 쏟아내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으면 그의 유세 연설은 그가 아는 육두문자의 향연이 될 가능성이 높다. 거기에 러닝메이트인 밴스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막말까지 더해져 지상 최대 막말 대잔치가 스테레오로 벌어질 공산이 매우 크다.
21세기 니케(Nike)의 둥지
출처 - <AFP>
이번 2024년 미국 대선 결과를 예측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이기기 위해 가야 할 길, 지지 않기 위해 피해야 할 길은 거의 정해져 있다. 백중세 맞수의 싸움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대개 누가 더 비기(祕技)와 우세(優勢)를 가졌냐보다는 누가 더 실수하고 과욕을 부렸냐가 결정한다.
2022년 우리 대선이 그랬다. 윤석열이 대통령이 된 것은 국민의힘이 잘해서 된 것이 아니다. 경선 후보로 나선 인사들이나 입심 좋고 편 가르기 좋아하는 이들이 각자도생과 민주당 분열의 길을 간 덕분에 국민의힘이 이긴 것이다. 대통령 후보 경선부터 가짜 뉴스로 만든 마타도어로 대통령 후보가 된 이재명을 압박하는 못난 짓을 일삼고, 국민의힘에 대선에서 싸울 빌미를 스스로 제공했기 때문에 진 탓이 크다.
물론 기울어진 언론판, 여론 조사 가스라이팅, 국민의힘에 붙어 있는 검찰과 사법부 등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는 데 유리하게 작용한 외생 변수가 있었다. 하지만 이런 요인은 대한민국 정치판에 주어진 상수 같은 것이라, 민주당이 직접 조정하거나 관리할 수 있는 변수가 아니다. 민주당 스스로 단일대오를 갖추고 흐트러지지 않는 것만이 민주당이 조정하고 관리할 수 있는 유일한 변수다. 2022년 대한민국 대선의 승부는 여기에서 갈렸다(참고로 2022년 대선 이후, 김어준이 설립한 '여론조사 꽃'은 민주당과 상식과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이들이 기성 여론조사의 왜곡과 가스라이팅에 적게 흔들리며 단일대오와 결속을 유지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 결과가 지난 총선이다).
미국의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현재까지는 지지 않는 길을 빠르게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이 사퇴 선언을 하자마자 민주당은 전광석화로 해리스를 후보로 결정했다. 민주당 공식 후보를 선출하고 지명하는 법적 절차가 남아 있지만 요식행위가 될 것이다. 때맞춰 오바마의 지지 선언도 나올 전망이다. 내가 기억하는 한, 지금까지 보아온 미국 민주당의 모습 중에 가장 스마트하고 조직적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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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스의 뒤에서 든든한 뒷배가 될 전직 대통령이라는 정치적 자산도 민주당이 공화당에 비해 압도적이다. 민주당은 2명의 전직 대통령과 1명의 현직 대통령이 해리스 뒤에 포진하고 있다. 클린턴, 오바마, 바이든의 후광에 가려 해리스의 존재감이 위축될 위험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무색무취, 거의 눈에 띄지 않는 부통령으로 지냈기에 더 그렇다. 하지만 대중의 신망이 여전한 전직 대통령이나 민주당의 힘 있는 원로들이 지난 대한민국 총선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전 비대위원장이 보여준 것처럼 지역 후보를 돋보이게 하는 대신, 스스로 주인공이 되어 무대를 독차지하거나 후보를 깎아내리는 바보짓만 하지 않으면 그럴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이들 세 명의 전직 대통령, 민주당 원로들, 셀럽의 후원과 지지는 해리스에게 대통령 당선이라는 태양까지 날아오를 수 있는 녹지 않는 이카루스의 날개가 될 수 있다.
안타깝지만 이런 날개를, 트럼프는 기대하기 힘들다. 트럼프 뒤에 서 있는 이는... 젊었을 때도 감자 철자가 가물가물했던 조지 W. 부시 한 명 정도인데, 부시는 트럼프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제까지 부시는 트럼프를 공식적으로 지지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퇴임 후 부시는 공개된 정치 모임에는 가급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번에도 그럴 것 같다.
늘 그랬던 것처럼, 트럼프는 러닝메이트인 J.D. 밴스와 함께 앞으로도 무대 위에서 혼자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1인 쇼를 이어갈 것이다. 애초에 공화당 내 조직이나 유명 인사의 도움을 받아 트럼프가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대통령이 된 것은 오로지 자기가 평소 TV 프로그램이나 뉴스를 통해 한껏 올려놓은 대중 인지도와 재벌이라는 배경으로 스스로 만든 결과였다.
트럼프가 해리스를 상대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트럼프가 가는 길은 어째 오르막이 아니라 내리막으로 보인다. 트럼프도, 밴스도 막말이 많아지고 행동이 더욱 거칠어진 걸 보니 그런 생각이 든다. 21세기 니케는 독불장군 트럼프와 전직 대통령과 민주당 유력인사들과 단일대오를 이룬 해리스 중 누구의 둥지에 내려앉을까?
윤석열 대통령은 어쩌지?
2022년, 나토 정상회의 전야 만찬 현장
현대 외교의 본령은 강대국의 등에 업히는 것이 아니라 강대국 사이에서 몸을 부대끼며 우리 자리를 넓히고, 운신의 폭을 키워 우리 국익을 키우며 국민의 안위를 확고히 하는 데 있다. 물론 윤 정부는 이런 본령을 들어 본 적도 없는 것 같다는 게 문제다. 그래서 필자는 미국 대통령이 누가 되건 관심 없다. 어떤 이가 대한민국에 더 유리한 지도 관심 없다. 윤석열이 대통령인 한, 미국 대통령이 누가 되건 대한민국엔 무조건 밑지는 장사고 재앙이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며 대놓고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를 해체했다. 바이든은 트럼프가 해체한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를 복구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안타깝지만 트럼프의 시도는 매우 성공적이었던 반면, 바이든의 시도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원래 재조립하는 것보다 분해하는 것이 쉽다. 특히 트럼프처럼 분해하다 나사 한두 개 잃어버려도 눈 한번 깜빡하지 않는 인간이라면 분해보다 쉬운 일은 없다.
트럼프 덕분에 중국도, 러시아도 서로 중심으로 자처하는 다극 체제로 분열되기 시작하자 일본조차 지역 분할을 통해 동아시아의 맹주가 되려는 야욕을 숨기지 않았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윤석열 대통령은 그런 일본의 하수인이 되기 위해 머리를 조아리고 있다.
미국이 중심이 된 세계 질서로 복귀하려 했던 바이든 정부의 계획은, 트럼프의 무계획한 분해보다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았다. 예상과 달리 러시아도, 중국도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세계 정세에서 외교 좀 한다는 나라 중 그 어떤 나라도 러시아와 중국을 동시에 적대시하는 나라는 없다. 내일 아침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기 때문이다. 유럽이 우크라이나 때문에 러시아에는 매우 적대적이지만, 러시아와 보조 맞추는 중국에 대해선 상당히 부드러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국과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중국과의 관계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중국이 여전히 세계 경제를 돌리는 세계 공장이고, 유럽이 직면한 인플레이션 국면을 여전히 중국에서 공급되는 상품으로 진정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과 늘 원수로 지내는 베트남조차 경제 문제에 있어서는 중국을 적대시하지 않는다. 대만은 중국과 특수 관계이니 논외로 하면, 오직 윤석열 정권의 대한민국만 미국이나 일본의 등에 찰싹 붙어 러시아와 중국 모두에게 가운뎃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급변하는 외교 환경에서 바이든과 기시다 등짝에 오르락내리락했던 윤석열 대통령은(사실 바이든에게는 업히지도 못했다) 미 대선이 다가오면 올수록 도저히 풀 수 없는 딜레마에 빠져들 것으로 보인다. 해리스가 대통령이 되어도,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어도 그 누구의 등에 업힐 수 없는 딜레마 말이다. 해리스는 해리스대로, 트럼프는 트럼프대로 등에 업히려는 윤석열 대통령을 질색할 것이다.
해리스가 아니라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더 골치가 아프다. 그동안 쌓아 온 한미일 동맹의 근간을 뿌리째 흔들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윤석열 대통령은 겁박과 홀대를 넘어 무릎을 꿇고 트럼프를 태우는 임마... 아니 인마(人馬)가 되어야 할지 모른다. 평소 걷는 걸 보면 무릎 관절이 안 좋은 것 같은데 이래저래,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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