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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멀라 해리스는 어떤 사람일까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됐다. 현직 대통령인 조 바이든이 재선을 포기하면서, ‘존재감 없는 2인자’였던 해리스는 하루아침에 ‘미국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넘보게 됐다.
출처-<게티 이미지>
그런데,
‘해리스가 누구지? 뭘 했지?’
라고 물어보면 속 시원하게 대답하는 사람이 없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부통령’이라는 것 말고 잘 아는 사람이 없다.
사실 그럴 만도 하다. 해리스는 2017년 상원의원에 당선되어, 워싱턴DC 중앙 정치권에 진출한 지 7년밖에 되지 않는다. 그나마 4년은 서열만 높고 실속은 없는 ‘부통령’이란 자리에 머물면서 자기 정치를 펼칠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요즘 더욱 이런 궁금증이 나오고 있다.
‘해리스는 어떤 인물일까?’
‘어떤 인생을 살아온 인물일까?’
함 알아보자.
2017년 ‘중앙 정치인’이 되기 이전, 해리스는 뭘 했을까?
해리스는 ‘27년 차 검사’였다
카멀라 해리스는 검사였다. 부통령과 상원의원이 되기 전, 27년 동안 평검사, 검사장을 거쳐 캘리포니아주 검찰총장까지 했다. 말 그대로 해리스의 인생은 ‘검사 인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캘리포니아주 검찰총장 시절
카멀라 해리스
출처-<게티 이미지>
해리스 현재 나이가 59세(64년생)니까, 인생의 거의 절반(27년)을 검사로 살았다. 말 그대로 ‘검사 인생’이다.
해리스의 검사 인생은 UC헤이스팅스 로스쿨을 졸업한 1990년부터 시작된다. 아주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990년 캘리포니아 알라메다 카운티 평검사
-1998년 샌프란시스코 검찰청 특수범죄부 부검사장
(살인, 강도, 성폭행 전담)
-2000년 샌프란시스코 시청 아동학대 전담 검사
-2002년 샌프란시스코 검사장 선거 승리하여 취임, 2006년 선거 재선 성공
-2011년 캘리포니아주 검찰총장 선거 승리
2014년 선거 재선 성공
2017년 상원의원 당선될 때까지 재임
한 마디로, 8년 동안 평검사로 온갖 잡다한 형사 사건을 기소한 후, 2년 동안 살인, 강도 성폭행만 전담했고, 2년 동안 아동학대 사건을 전담했다.
이렇게 12년 동안 잔혹한 범죄만 다룬 후, 선출직 검사장의 길을 선택해 9년을 재직했다.
미국의 판검사 제도를 다룬 이전 기사(링크)에서도 소개했듯, 미국의 검사장, 검찰총장은 선거로 뽑는다. 따라서 절반쯤은 정치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거 운동도 하고, 일반 유권자도 만나고, 정치자금 기부도 받는다. 일부 검사장은 정당 공천도 하고, 공약도 내세운다.
2008년 샌프란시스코 검사장 재직 중
선거 운동을 하는 카멀라 해리스
출처-<게티 이미지>
엄벌주의에 반기를 든 검사
해리스는 이른바 ‘진보 검사장’으로 유명했다. 기존 미국 검찰청의 원칙인 ‘엄벌주의’를 정면으로 거슬렀기 때문이다.
미국은 ‘엄벌주의’로 유명한 나라다.
출처-<KBS>
그동안 미국 법조계는 ‘관용은 없다’(제로 톨러런스)라는 원칙하에, ‘엄벌주의’를 취했다. 일부 범죄에 대해서는 수백수천 년 징역을 예사로 선고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검사장들도 선거철이 되면
“범죄자에게 최대한 가혹한 처벌을 내리겠다.”
“내 재임 기간 중 수천, 수만 명을 감옥에 처넣었다.”
며 선거운동을 벌였다.
특히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가 ‘마약과의 전쟁’(War on Drug)을 펼치면서, 마약 사범에 대해서는 미성년자도 용서치 않고 징역 등 엄벌을 가했다.
출처-<NYTimes>
1980, 90년대 아케이드나 컴퓨터 게임을 즐겼던 사람은 ‘승리자는 마약을 하지 않습니다’라는 무시무시한 FBI 경고문을 기억할 것이다. ‘마약’이 뭔지도 모르는 초등학생 어린이들에게 ‘마약 하면 인생 망친다’라고 경고할 정도로, 법조계는 가혹한 엄벌주의와 공포를 조장했다.
해리스는 이런 ‘엄벌주의’에 반기를 든 검사장이었다.
그는 자신의 검사 경험에 기반해, 모든 범죄는 똑같지 않다고 주장한다. 범죄에는 이른바 ‘범죄의 피라미드’(the Crime Pyramid)가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피라미드의 꼭대기에는 ‘살인, 강도, 성범죄, 아동 대상 범죄’가 있다. 소수지만 폭력적이고 심각한 범죄다.
출처-<연합뉴스>
이런 범죄자는 검찰청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시켜야 한다고 해리스는 주장한다.
그러나 피라미드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맨 아래쪽’은 비폭력적인 경범죄이다. 이에 대해 해리스는 이렇게 말한다.
“검찰청 인원과 예산의 절대다수는 비폭력, 경범죄 기소에 쓰이고 있다. 좀도둑 미성년자, 노상방뇨, 노숙자 1,000명을 잡아서 기소 실적 올리고, 검사장 선거 재선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그러면서 해리스는 ‘마약과의 전쟁’에 대해 매섭게 비판한다.
출처-<게티 이미지>
“길거리에서 마약 파는 좀스런 딜러 1,000명을 감옥에서 1-2년 보내는 것보다, 마약 중간책과 보스 등 ‘거물’을 검거하는데 검찰청 역량이 집중돼야 한다.”
그리고 길거리 마약 딜러에 대해 기회를 주자고 한다.
“길거리 마약 딜러의 절대다수는 교육받지 못하고 생계 수단이 없는 젊은이들이다. 이들을 감옥에 넣는 대신, 집행유예 상태에서 검정고시 등 재활 프로그램을 받게 하자. 특히 어린 자식이 있거나 공부하려는 범죄자들은 재활과 개선의 가능성이 좀 더 높아진다.”
해리스가 길거리 마약 딜러에게 관대한 처분을 하는 것은 착하거나 순진해서가 아니라 ‘돈’이 문제였다. 해리스의 계산에 따르면 이렇다.
“초짜 길거리 마약 딜러를 기소해 징역 2년을 선고한다고 가정해 보자.
기소에 따른 검사 인건비 1만 달러
범죄자 교도소 수감 비용 1년에 4만 달러
따라서, 국민 세금 10만 달러가 든다.”
재판과 기소, 수감도 모두
국민 세금이 든다.
출처-<게티 이미지>
“하지만, 젊은 비폭력, 경범죄자를 집행유예하고 검정고시 과정에 보내면, 예산 단돈 5,000달러만 든다. 게다가 재범률이 훨씬 줄어든다.”
출처-<게티 이미지>
해리스는 이렇게 주장한다.
“범죄자에게 가혹한 검찰은, 결국 납세자들에게도 가혹하다. 국민 세금을 절약하고 검찰청 인력을 효과적으로 운영하는 방법이 과연 ‘엄벌주의’뿐인지 묻고 싶다.”
“검사의 직무는 범죄자를 잡아넣는 것, 그 이상이어야 한다. 검사의 궁극적 직무는 우리 사회를 더욱 안전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는 또 범죄자 양산을 막기 위해 검정고시 등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미성년자 성매매를 적발해 포주와 성 매수자를 감옥에 잡아넣으면 검사 할 일이 끝나나? 풀려난 미성년자들이 가정폭력과 가난을 못 이겨 다시 가출하고, 다시 포주를 찾아 성매매를 하는 악순환을 나는 너무 많이 지켜봤다.”
그래서 해리스 검사장은 ‘결석 방지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애들이 학교만 제때 가도 가출과 범죄가 줄어든다. 애들이 결석하면 학교가 조치를 취하고, 학부모들이 애들 학교를 안 보내면 당국이 나서는 예방조치를 해야 한다. 애들 학교 졸업시키고 범죄의 길에 빠지지 않게 하는 것도 검사가 할 일이다.”
해리스의 이러한 진보적인 기소 방침 및 범죄자 재활 프로그램은 전국적 주목을 받았고, 결국 그녀를 캘리포니아 검찰총장까지 오르게 했다.
샌프란시스코 해안가의
한 노숙자 모습
출처-<게티 이미지>
(물론 해리스식의 경범죄자에 대한 관대한 조치가, 캘리포니아의 노숙자 문제 등을 부추긴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미국식 ‘엄벌주의’가 교도소 관련 사업만 배부르게 한다는 해리스의 지적도 사실이다. 기회가 되면 이 문제에 대해서도 다시 의논해 보고 싶다)
결론적으로, 해리스는 검사지만, 그냥 사람만 잡아넣는 검사는 아니었다. 아니, 인력과 예산 배분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사회적 역량의 우선순위는 어디여야 하는지, 여러 가지 문제를 결정하는 ‘진보 성향 검사’였다고 할 수 있다.
해리스의 중앙정치 경력은 짧지만, 그녀는 캘리포니아 검사 생활 중 상당 기간 사실상 정치인이었다. 특히 사회적 약자, 범죄 등 사회 문제 등에 대해 ‘진보적 아젠다’를 실행해 왔다고 할 수 있다.
해리스의 ‘검사 본색’
그렇다고 해서 ‘검사 해리스’가 범죄에 대해 유약하지만은 않다. 전술했듯, 해리스는 살인, 강도, 성폭행, 아동 범죄 담당 검사였고, 이런 재판 수백 건을 직접 해본 사람이다.
미국의 검사는 실제 재판에서 피고인이나 증인을 증언대에 세워놓고 ‘조져버리는데’ 아주 익숙하다. 피고인/증인의 모순점을 잡아내 집요하게 파고드는데, 여기 한번 걸리면 아주 사람이 ‘멘붕’ 해버린다.
해리스가 캘리포니아를 벗어나 중앙 정치 무대에서 처음으로 유명해진 것도 바로 ‘검사식 조지기’ 덕분이었다.
출처-<게티 이미지>
위 사진은 해리스가 상원의원 시절 청문회에서,
“예, 아니오로 대답하시오.”
라며 법무부 장관을 ‘조지고 있는’ 모습이다.
초선의원이었던 해리스는 트럼프 행정부의 고위 관료를 청문회에 세워 무섭게 몰아부쳤다. 자기 질문에 대답 안 하면 밀어붙이고, “예 아니오로 대답하시오!”라며 몰아붙였다.
해리스에게 당했던(?) 고위 관료는 다음과 같았다.
법무부 장관 제프 세션스
FBI 국장 크리스토퍼 레이
대법원 판사 후보 브랫 캐버노
출처-<게티 이미지>
워낙 매섭게 조졌던 터라 해리스는 트럼프 지지자의 반발을 샀고, 한 트럼프 지지자는 2018년 10월 해리스에게 폭탄 우편물을 보내기도 했다. (당시 범인은 해리스 외에도 여러 민주당 의원들에게 폭탄 우편물을 보냈었고, 배우 로버트 드 니로에게도 폭탄 우편물을 보냈다. 범인은 결국 체포됐다)
해리스가 받았던 폭탄 우편물
출처-<FBI>
바이든도 당했던 검사식 조지기
해리스의 ‘검사식 조지기’는 민주당 정치인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2020년 해리스는 대선에 출마했다. 그리고 민주당 경선에서 조 바이든과 맞붙었다. 해리스는 ‘거물 선배’ 조 바이든을 매섭게 몰아붙였다.
바이든이 1970년대 ‘초짜 의원’ 시절에 ‘인종차별 법안’에 찬성표를 던진 ‘흑역사’를 꼬집은 것이다.
출처-<게티 이미지>
“당신(바이든)이 인종차별주의자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캘리포니아주에서 2등 국민 취급받았던 소녀, 백인 학교에 못 다녀서 버스를 타고 먼 거리를 통했던 소녀가 있었다. 그 소녀가 바로 나다.”
한마디로 해리스는 대선배 바이든 앞에서
‘그 애가 커서 된 게 나다’를
시전한 것이다.
출처-<영화 ‘강철중:공공의 적’>
해리스의 ‘조지기’에 바이든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고, 토론회 직후 해리스의 지지율은 8%가 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 알고 있듯 민주당 대선 레이스의 최종 승리자는 조 바이든이 됐다.
여기서 반전이었던 점은, 바이든이 민주당 최종 대선 후보가 된 후 해리스에게 보복하기는커녕, 부통령 후보로 발탁했다는 것이다.
“나한테 이런 건 네가 처음이야”
였을까.
출처-<KBS>
바이든은 대선배인 자신을 조져버린 해리스의 배짱을 높이 샀다. 그는 해리스를 부통령 후보로 지명하며 이렇게 말했다.
“해리스는 내가 아는 한 최고의 공직자(검사)다.”
‘트럼프 vs 해리스’의 중요 포인트
이전 기사(링크)에서 언급한 대로, 해리스는 바이든이 대통령에 당선된 후 4년 동안 ‘2인자’로 머물면서 비교적 조용히 살았다. 그러나 얼마 전, 바이든이 대선 후보에서 사퇴한 후, 해리스는 달라지고 있다. 그동안 숨겨왔던 ‘검사 본색’을 보여주기 시작하고 있다.
해리스는 공개적으로 트럼프를 향해 외쳤다.
“우리는 자유를 위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덤벼라. 한 판 붙어보자(Bring it on)”
해리스는 7월 30일부터 본인을 주제로 한 TV 정치 광고도 전국적으로 방송하기 시작했는데, 여기서 ‘검사 경력’을 적극 부각하고 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TV 광고를 볼 수 있다.
출처-<해리스 유튜브 ‘Fearless | Harris 2024’> 링크
TV 광고에서 해리스는 “20년 이상 검사 경력”을 강조하면서, 뇌물 무마 혐의로 법정에 출두하는 트럼프의 모습을 대비하고 있다. ‘해리스 대 트럼프’ 선거전을 ‘검사 대 범죄자’ 대결로 만들겠다는 의도다.
‘검사 본색’을 되찾은 해리스의 앞으로 최대 과제는 ‘대선 후보 토론회’다. ‘말빨과 쇼맨쉽’으로는 최강이라고 할 수 있는 트럼프를 상대로 ‘한방’을 먹일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트럼프는
리얼리티 쇼’ 어프렌티스’를 통해
생방송으로 닦아온
‘말빨’과 ‘순발력’으로 유명하다.
출처-<NBC>
‘타임지’에서 ‘차세대 대권주자’로 꼽히던 거물 정치인들도 트럼프 앞에서는 초전 박살이 났다. 이런 사람들 말이다.
공화당 상원의원 마르코 루비오
공화당 상원의원 테드 크루즈
민주당 전 대선후보
힐러리 클린턴
출처-<타임지>
가장 최근에 깨진 한 명이 더 있다.
출처-<게티 이미지>
‘바이든’이다.
위 사진은 얼마 전 있던 대선 후보 토론에서 바이든이 트럼프에게 깨지는 모습을 보고 환호하는 트럼프 지지자들의 모습이다. 이 토론 패배는 바이든이 대선후보에서 사퇴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힐러리와 바이든 등 정치 거물들도 말빨로는 한 번도 이기지 못했던 트럼프다. 이런 트럼프를 상대로 만약, 해리스가 토론에서 몰아붙인다면, 민주당에게 승산이 있을 것이다.
지금 트럼프와 부통령 후보 JD밴스의 망언(!)이 화제인 데다가 폭스 뉴스를 제외하고는 언론들도 트럼프는 아니라고 있는 상황이다. 여러 여론조사에서 나오는 지지율도 대체로 해리스가 높게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해리스가 토론에서 트럼프를 몰아붙일 수 있다면 제대로 굳히기에 들어갈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바이든이 트럼프에게 토론회에서 깨졌듯, 해리스도 무참하게 깨진다면 공화당과 트럼프의 기세는 다시금 치고 오를 것이다.
과연, 해리스는 트럼프를 앞에 두고도 ‘검사 본색’을 맘껏 드러낼 수 있을까. 트럼프는 해리스도 꼼짝 못 하게 할 수 있을까.
앞으로 미국 대선 국면이 더욱 흥미진진해지는 이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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