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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에 심은 메주콩으로 된장을 담그기까지

 

산골 살림의 기본은 장 담그기였다. 장을 담글 줄 알아야, 비로소 살림한다는 소릴 들었다. 과정이 제일 복잡하고 까다로운 건 역시 된장이었다.

 

“서당 집이 산을 등지고 있었거든. 집 뒷마당이랑 산의 경계가 말하자면 메주콩 밭이었어. 5월쯤, 날이 푹해지기 시작할 때 메주콩을 뿌리는 겨.”

 

지력이 좋아, 뿌려만 놓으면 그런대로 자랐다. 11월이면 수확해 마당에 늘어놨다. 가을 햇볕 받은 콩대는 이틀이면 넉넉히 말랐다. 타작은 시아버지 담당이었다. 시아버지가 도리깨질할 때, 동분은 달달한 설탕물을 타다가 드렸다.

 

골라낸 메주콩은 커다란 가마솥에 넣어 반나절 동안 삶다가 두어 시간을 더 뜸 들였다. 나중에 발로 밟았을 때 어지간히 으깨질 정도로 삶아야 했다. 너무 푹 삶아도 안 되고, 덜 삶아도 안 됐다. 그걸 가늠하는 건 역시 시어머니였다. 뜸까지 들인 메주콩은 자루에 담고, 다시 비닐로 감싸 발로 꾹꾹 밟아가며 으깼다.

 

“그러고 나면 이제 다라이에 쏟아서 네모 모양으로 빚는 겨. 산골에 틀이 어딨냐? 손으로 탁탁 두드려가면서 적당하게 빚는 거지. 그런 다음에 뒷방 윗목에 지푸라기를 도톰히 깔고 그 위에 올려. 아직 말캉말캉하기 때문에 바로 매달면 안 되고 딱딱해질 때까지 며칠 바닥에 말려두는 겨. 많이 안 했어~! 농사지어서 타작하면 메주콩이 딱 한 말 나왔고, 그걸 메주로 만들면 5~6개 정도 나왔어. 여덟 식구 1년 먹을 거니까 그 정도면 적당한 양이었지.”

 

새벽부터 메주콩 삶기 시작해도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겨우 일이 마무리됐다. 메주콩을 삶든 말든, 삶은 메주콩을 네모 모양으로 빚든 말든 어김없이 끼니는 찾아왔고, 빨래와 청소를 거를 순 없었다. 밥하고 설거지하는 틈틈이 가마솥을 들여다보고 아이들을 씻기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짬짬이 삶은 메주콩을 발로 밟아 으깨고 모양을 빚었다. 그런 날, 동분은 자신의 코 고는 소리에 놀라 깨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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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여름, 서당에서 한창 고생하던 시절

동분(당시 24살)과 큰아들 주성

 

메주를 일주일가량 윗목에 두면 겉에 곰팡이가 어슴푸레 피면서 적당히 말랐다. 그러면 지푸라기로 잘 여며 처마 밑에 매달았다. 겨우내 얼었다, 녹았다, 말랐다 반복한 메주는 이듬해 봄, 속까지 바싹 말랐다. 된장은 따뜻한 기운이 돌기 전에 담가야 맛있다고 했다. 하여, 보통은 1~3월 사이에 담갔다. 동분의 시어머니는 3월부터 메주 상태를 수시로 살펴 가며 마땅한 시기를 잡았다. 어쨌든 3월을 넘기지 않았다.

 

“메주 겉에 먼지랑 곰팡이가 잔뜩 쌓였을 거 아녀. 그러니까 메주를 물에 담가서 솔로 살살 씻어내는 겨. 그렇게 물로 씻어내도 이미 딱딱하게 굳어서 으스러지지도 않어. 깨끗이 씻어낸 메주를 다시 소쿠리에 담아서 반나절 말려. 물기가 남아있으면 된장이 맛없는 법이거든. 그런 다음 단지에 메주를 차곡차곡 넣고, 소금물을 한가득 붓는 겨. 그 위에 숯이랑 홍고추 말린 걸 잔뜩 뿌리고. 그렇게 해놓고 뚜껑 딱 닫아서 석 달 정도 더 숙성시키는 겨.”

 

5월에 메주콩 심고, 11월에 수확하고 타작해 삶고 메주로 빚어 겨우내 말리고, 3월 단지에 넣어 소금물로 절인 메주가 숙성되는 동안 다시 5월이 되어 새로운 메주콩을 심었으니, 어지간한 인내와 수고로움으로는 될 일이 아니었다. 어쨌거나 산골에서 찌개를 끓이고 나물을 무치고 생선을 조리자면 된장과 간장이 필요했다. 그래야 밥상을 차릴 수 있었다.

 

6월이 되면 단지 속에서 메주를 건졌다. 새카맣게 변한 소금물은 그것대로 체에 걸렀다. 조선간장이다. 건진 메주는 ‘다라이’에 놓고 조물조물 치댔다. 치댄 걸 다시 단지에 꾹꾹 눌러 담고, 그 위에 굵은소금을 소복이 뿌렸다. 시어머니는 그래야 구더기가 꼬이지 않았다고 했다.

 

“6월에 건져서 치대면 그게 된장이여. 바로 먹어도 상관없는데 깊은 맛이 덜해. 그래가지고 뚜껑 대신 망을 씌어 다시 햇볕 좋은 곳에서 보름 정도 숙성시키는 겨. 그렇게 7월은 되어야 비로소 깊고 부드러운 된장이 완성되는 거지. 그러니까 니가 한 번 생각해 봐라. 지난해 5월 심은 메주콩으로 된장 담그기까지 얼마나 걸렸나. 장작 1년 하고도 2개월이여. 그러니 그게 어디 보통 일이었겄냐.”

 

된장에 비하면 고추장은 소꿉장난이었다. 여름에, 시장 가서 마른 고추 사다가 방앗간에서 고운 고춧가루로 빻아왔다. 엿기름과 메줏가루, 소금까지 준비해 ‘다라이’에 한데 넣고 물을 부어가며 두어 시간 계속 치대면 완성이었다. 동분의 시어머니는 음식 단 걸 싫어해 고추장 만들 때도 설탕이나 물엿은 넣지 않았다. 하여, ‘서당표’ 고추장은 간간하고 칼칼하면서 뒷맛이 텁텁하지 않고 깔끔하게 딱 떨어졌다.

 

“워낙 오래 전이라 다른 음식은 별로 생각 안 나는데, 니네 할머니가 감자랑 호박 숭덩숭덩 썰어 넣고 끓이던 고추장찌개는 가끔 생각난다? 엄마가 나중에 똑같이 해봐도 영~ 그 맛이 안 나더라고. 아마도 고추장 차이겄지? 칼칼하게 딱 떨어지는 맛이 참 일품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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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분의 시어머니, 故 김동춘 여사(당시 71세).

그녀는 생전, 무엇 하나 설렁설렁 처리하는 법이 없었다.

 

산골에서 된장만큼 중요한 건 김장이었다. 된장과 김치만 있어도, 겨우내 그럭저럭 한 끼를 또 해결했다. 7월에 씨 뿌린 배추는 9월부터 알이 차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예쁜 놈은 놔두고 못난 놈부터 속아다가 겉절이 담가 먹는 겨. 작년에 담근 김장 김치가 그때까지 있겄냐? 봄이면 벌써 끝나지. 산골 겨울엔 먹을 게 없잖어. 그러니까 겨우내 김장 김치만 파 먹는 겨. 그냥도 먹고 찌개나 국도 끓여 먹고 전도 부쳐 먹고 볶아서도 먹고. 봄부터는 미나리로 김칫국물 담가 먹고, 여름에 열무김치 좀 먹다가 가을에 못난 배추 속아 먹다 보면 또 김장철이 되는 겨. 아무튼 한 100포기 정도만 남겨놓고 속아 먹다가 10월 초면 배춧속이 차올라. 그러면 니네 할머니랑 지푸라기 갖고 가서 일일이 묶어줬지. 그러다 11월 초에 싹 수확하는 겨.”

 

더 추워지면 배추가 싱거워진다고, 시어머니는 강조했다. 하여, 11월 중순을 넘기진 않았다. 서당의 김장은 2박 3일이나 이어졌다. 시어머니는 언제나 그랬듯, 무엇 하나 ‘설렁설렁’이 없었다. 첫날 오전, 배추를 수확해 겉잎을 훑어내고 소금물로 꼼꼼하게 씻어내면 점심이었다. 밥 먹고 오후부터 들통에 배추를 한 포기 한 포기 쌓아가며 층층이 소금을 뿌려 절였다. 저녁 먹고 나면 맨 위의 배추가 맨 밑으로 가도록, 다시 모든 배추를 다른 들통에 한 포기 한 포기 옮겨가며 소금을 뿌려 쌓았다.

 

다음날, 다시 소금물에 세 번 헹군 배추를 소쿠리에 줄줄이 늘어놨다. 물기 빼는 사이, 전날 저녁 미리 준비한 무, 쪽파, 고춧가루, 풀 등을 ‘다라이’에 한 데 섞어 양념소를 준비했다. 음식에서 냄새나는 걸 질색했던 시어머니는 멸치액젓 같은 건 일절 넣지 않았다.

 

준비한 양념소로 배추를 치대 단지에 한 포기씩 차곡차곡 쌓고, 맨 위에 억센 겉잎을 꼼꼼히 덮어 감싼 후에야 뚜껑을 닫았다. 그렇게 커다란 단지 서너 개를 배추로 가득 채우면 어느새 저녁이었다. 그다음 날, 동치미까지 담가야 서당의 2박 3일 김장이 끝났다. 집안에 장정이 둘(남편 송일영과 시동생)이나 있었건만, 김장은 오직 시어머니와 동분의 몫이었다. 그다음 날에도 시어머니는 어김없이 새벽에 일어나 마당을 쓸었고, 동분 또한 하릴없이 무거운 몸을 일으켜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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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현지답사로 서당 갔을 때 찍은 사진. 왼쪽부터 동분, 송일영, 작은아들 주홍(본인). 주홍은 서당 살 때 태어나긴 했으나, 동분 가족이 이듬해 바로 신탄진으로 이사 나오는 바람에, 서당 집에 대한 기억이 없다. 하여, 꼭 눈으로 보고 싶었으나, 옛집은 진작에 허물어져 집터와 담벼락 일부만 남은 상태였다.

 

남편이 결혼하고 처음으로 해준 요리

 

딱 한 번 있었다. 남편 송일영이 오롯이 동분을 위해 앞치마 두른 ‘사건’이. 불과 몇 개월 전 일이다.

 

“일 끝나고 집에 왔는데 암만 봐도 지독한 몸살감기 같더라고. 그대로 쓰러지듯 소파에 누워 있었어. 문득 따끈한 콩나물국 한 그릇 먹었으면 싶은 겨. 그래가지고 ‘에라 모르겄다~’ 하는 마음으로 니네 아빠를 불렀지. 호호호. 주성 아빠~! 나 꼼짝도 못하겄으니까 콩나물국 좀 끓여봐, 하고.”

 

평소 같으면 뭐가 이러니저러니 하면서 여러 소리 붙였을 양반이 그날따라 웬일로 군말 없이 냉장고를 뒤적이더란다. 그러고는 어렵사리 콩나물 한 봉지를 찾아 동분에게 와서 한다는 말이.

 

“이거 콩나물을 어떻게 해?”

 

“어떡하긴! 일단 물로 헹궈.”

 

“…….”

 

또 군소리 없이 콩나물 들고 싱크대로 간 송일영이 어설픈 손놀림으로 콩나물을 헹구고, 찬장을 한참 뒤져 적당한 냄비를 찾아서는 또 동분에게 어기적어기적 오더란다.

 

“콩나물 다 헹궜는데, 냄비는 여기다가 하면 돼? 물은 얼마나 넣어?”

 

“어, 그 냄비에다가 물을 반만 넣고 일단 물부터 끓여. 물 끓으면 콩나물 넣고 소금이랑 새우젓이랑 다진 마늘 좀 넣어. 간장 반 숟갈만 넣고.”

 

“…….”

 

또 어설픈 손놀림으로 한참이나 국을 끓이던 송일영이 다시 어기적 어기적 동분에게 오더란다.

 

“간장이 두 갠데? 큰 거랑 작은 거. 어떤 거 넣어?”

 

“큰 거. 국간장이라고 쓰여 있는 거.”

 

“넣었어. 다 된 거 같은데, 어떻게 할까?”

 

“간을 봐야지. 간 한 번 봐봐.”

 

“…….”

 

팔팔 끓는 국을 살짝 떠먹어 본 송일영이 이번엔 흡족한 표정을 짓더란다.

 

“괜찮은 거 같어.”

 

“그럼 파 좀 썰어 넣고, 불 꺼.”

 

“…….”

 

어설픈 칼질로 파를 썰어 국에 넣은 송일영이 또다시 동분에게 오더란다.

 

“또 왜?”

 

“다 된 거 같어.”

 

“그럼, 상을 차려. 밥도 푸고. 냉장고에서 김치만 꺼내봐.”

 

몸살감기 때문에 몸은 아파죽겠는데, 시키는 대로 어기적거리며 분주한 남편 모습이 한편으론 우습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좀 있으면 칠순인 양반이 콩나물국 하나를 못 끓이나 싶어 괜히 얄미운 마음도 들었다. 이러나저러나 저 양반보다 하루만이라도 더 살아야지 싶은 마음도…….

 

“그런대로 맛이 괜찮더라고. 하긴, 엄마가 일러준 대로 끓인 거니까. 어쨌든 그거 한 그릇 후루룩 먹고 감기가 싹 나았다는 거 아니냐. 근데 기막힌 게 뭔 줄 아냐? 그 콩나물국이 니네 아빠가 처~음으로 해준 요리여. 아이고, 그 뒷모습이 어찌나 우습던지. 호호호. 니네 아빠도 이제 늙는가 보다 싶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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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들을 건강하게 키워내고

둘만의 노년을 보내는 동분과 송일영 부부.

사진은 2017년 속리산 갔을 때 작은아들 주홍이 찍어줬다.

 

동분은 여전히 그렇게 살아간다. 콩나물국 하나 못 끓이는 남편 밥 굶을까, 끼니마다 밥을 챙기고, 함께 식사한 후엔 바로바로 설거지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이불을 거둬 탈탈 털어 개어 놓는다. 저녁엔 청소기를 돌리고, 손걸레를 빨아 방바닥을 훔친다. 그날의 빨랫감은 그날그날 세탁해 널어놓고, 전날 널어둔 빨래는 곱게 접어 수납장에 넣어둔다. 여전히 명절이나 기념일엔 큰아들 주성이 좋아하는 잡채를 한 ‘다라이’ 준비한다. 연례행사처럼 어쩌다 작은아들 주홍이 찾아올 때면 김치찌개를 끓이고, 호박전을 부쳐 낸다.

 

“요즘이야 남자가 요리도 하고, 집안일도 같이 하지만, 그때는 남자가 부엌 들어가면 꼬추 떨어진다고 말하던 시절이었잖어. 살림은 당연하게 여자가 하는 걸로 알았지. 니네 아빠나 엄마나 그냥, 그런 시대를 살아온 겨. 이제 와서 니네 아빠한테 밥하고 설거지하라고 할 수 있겄냐? 뭘 제대로나 할 줄 알아야 시키지. 우리 시대는 이렇게 끝이 난 거고……. 앞으로는 니네 몫이겄지. 그래도 니네 형은 밥 먹고 나면 꼭 자기가 나서서 뒷정리하고 설거지하더라. 너도 니네 형 보고 좀 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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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2024년 7월, 송일영(70세) 은퇴식 현장에서 작은아들 주홍(38살)과 함께. 26살이었던 1980년부터 회사택시 굴리기 시작해, 1996년까지 개인택시를 몰았고, 그때부터 이불장사 시작해, ‘길바닥 이불장사꾼’으로 고달프게 밥벌이를 했던 송일영이 두 아들의 은퇴 종용을 못이기는 척 받아들였다. 마지막으로 기록될 은퇴식 현장에서 작은아들 주홍은 처음으로 송일영에게 돈을 주고 이불을 샀다. 송일영은 이제 콩나물국뿐 아니라, 삼시세끼 차려 동분을 보필(?)해야 할 형편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