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지구적 위기인 코로나19 위기를 지나면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 사람들이, 자국 정부의 과도한 통제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망자가 나오지만, 자기들처럼 강한 통제를 하지 않으면서도 일상을 잘 이어가는 한국에 대한 소식이 전해진 덕분인지, 넷플릭스 덕분인지, 아니면 원래 그냥 그렇게 될 일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한국에 대한 인식과 이미지가 아주 좋아진 것은 사실이다.
최근 유튜브를 포함해 외국인들이 출연하는 많은 방송에서는 주로 한국인들이 듣기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콘텐츠로 장사를 한다. 그중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것이 밤에 돌아다녀도 안전한 한국의 치안이나, 카페에 물건을 두고 자리를 비우더라도 훔쳐 가는 사람이 없는 한국인의 시민의식에 놀라는 선진국 사람들 같은 것들이다.
그런데 한국인의 시민의식 훌륭해서…라고?
소매치기 고복수
한일월드컵이 있던 2002년에 나온 MBC 드라마 중에 ‘네 멋대로 해라’라는 드라마가 있었다(엊그제같이 생생한데, 벌써 22년 전 일이다). 그 무렵 MBC는 ‘만나면 좋은 친구 MBC’라기 보다는 ‘드라마 왕국 MBC’이기도 했다.
‘네 멋대로 해라’의 내용을 아주 거칠게 요약하자면, 가난한 인생을 어둡게 살아가는 양동근이 공효진이랑 사귀다가, 록밴드 멤버인 부잣집 딸 이나영이랑 이렇게 저렇게 해서 사귀게 되고, 당연히 부모는 반대하고, 양동근이 어두운 세계를 벗어나 스턴트맨으로 살아보려고 하는데, 뇌종양에 걸리자, 양동근은 병을 알리지 않고 헤어지자 하고, 오해도 하고 이러쿵저러쿵하다가 수술하고 울고불고 웃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부잣집 딸 이나영이 가난뱅이 오징어 양동근이랑 사귀고 막, 어? 솔직히 이게 말이 되냐?
이 드라마에서 양동근이 연기한 주인공 ‘고복수’가 어두운 세계에서 살던 초반의 직업은 ‘소매치기’였다.
2000년대 중반까지, 소매치기는 영화나 드라마뿐만 아니라 뉴스, 재연 프로그램, 사회고발 프로그램 등에서 자주 등장했다. 저녁 뉴스에서는 조직적인 ‘소매치기단’을 검거했다는 소식도 자주 나왔다. 지금의 유럽처럼 가방을 등에 메고 다니면 안 될 정도로 소매치기가 득시글거리는 건 아니었지만, 주변에서 소매치기를 당한 적이 있다는 사람들이 가끔 있을 정도였다. 아마도 일본말에서 왔겠지만, "쓰리 당했다"는 표현은 누구나 알고 있었고.
출처 - 경찰청 사람들(1993~1999)
그뿐만 아니라 1995년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508명이 죽거나 실종되고 937명이 다친 아수라장 속에서도 백화점 상품을 훔쳐 가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랬던 나라에서 시민 의식이 20여 년 만에, 도서관이나 카페의 컴퓨터를 펼쳐 놓고 스마트폰과 지갑을 두고 다녀도 가져가지 않는 나라가 되었다.
이것은 아마도 신용카드 사용 증가로 지갑 속의 현금이 줄어든 것이나, 카드 추적, CCTV, 블랙박스로 인해 추적감시가 빨라진 덕분일 수도 있고, 소매치기보다 보이스피싱의 가성비가 좋으니 그쪽으로 몰려갔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유야 어찌 됐든 소매치기나 좀도둑이 줄어들어 우리가 공공장소에 물건을 두고 다녀도 잃어버릴 걱정을 덜 하게 된 것은 좋은 일이다. 또한, 도시에 국한된 일이겠지만 밤에 혼자 돌아다녀도 큰 위협을 느끼지 않고 다닐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는 것도 좋은 일이다.
사회적 자본의 고갈
사람들이 상대방을 속이거나 피해를 주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어야 교류도 하고 관계망을 형성해 원활한 거래가 가능하다. 만약 이러한 신뢰가 없어서 거래할 때 상대방을 믿지 못하면, 거래할 때마다 안전한 거래를 보장하기 위한 각종 수단이 필요하고 그에 따른 비용이 들어가게 된다. 모든 거래가 이런 식으로 이루어진다면 사회적으로는 큰 비용이 들 것이다.
예전에 치안이 극단적으로 나빴던 외국의 어느 도시를 방문한 적이 있다. 사무실뿐만 아니라 심지어 아이스크림 가게에도 소총으로 무장한 사설 경비원이 있었다. 만약 어느 지역의 치안이 불안해서 편의점마다 무장한 경비가 있어야 하고, 물건을 살 때마다 직원이 열쇠로 창고 문을 열어서 직접 꺼내야 한다면, 그 업체는 치안이 좋은 지역에 비해 훨씬 큰 비용을 개인적으로 지불해야 한다.
잠시 자리를 비울 때도 모든 물건을 챙겨서 들고 다녀야 한다면, 그것을 챙기고 다시 자리를 잡고 펼치는 데까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또 택배를 받기 위해 집에서 기다리거나 별도의 보관함을 집마다 설치해야 한다면 그것도 다 비용이고, 인터넷 쇼핑몰에서 저렴한 여행상품을 살 수 없어 여행사에서 직접 사거나 항공권을 항공사에서 직접 사야만 한다면 그것도 다 비용이다.
사회 규범과 시스템이 잘 작동한다면 각종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되니, 잘 만들어진 사회 시스템과 그 시스템이 잘 작동할 것이라는 믿음은 사회적 자본이 된다. 대한민국이라는 집단이 수십 년간 투입한 자원은 '안전한 치안 환경'과 '그 환경에 대한 신뢰'라는 자본으로 쌓여 있었고, 그동안 우리는 그 풍부한 자본의 혜택을 누리고 있었다.
한국 사람이 다른 나라 사람보다 특별히 착하거나 시민의식이 훌륭하다는 증거는 없다. 따라서, 이러한 안전한 치안 환경을 누리게 된 것은, 민생 치안을 담당하는 공권력이 ‘도둑질하면 반드시 잡히게 되어 있고, 잡히면 벌을 받는다’는 사회적 역할을 적절히 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수십 년간 많은 사건·사고를 겪으며 얻은 교훈과 제도를 통해 만들어 온 사회적 신뢰의 아주 기초적인 부분인, ‘죄지은 놈은 벌을 받는다’는 믿음에 대해 의심하게 만드는 사건이 자꾸 벌어지고 있다. 누군가는 주가 조작해도 처벌받지 않고, 누군가는 증거를 조작하고 증인을 협박해도 처벌받지 않고, 누군가는 음주 운전을 하고 운전자를 바꿔치기해도 처벌받지 않는다면, 더 이상 ‘죄지은 놈이 벌을 받는다’는 아주 단순한 원리가 작동하지 않게 된다.

쟤도 했고, 쟤도 했으니, 나도 하지 뭐...
사회 시스템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면, 죄를 짓고 벌을 받는 건 그건 그냥 운이 나빴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사회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훼손하도록 만드는 공권력의 행위는,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사회가 그동안 공들여서 만든 사회적 자본을 깎아 먹는 결과를 초래한다.
기술 발전 속도보다 빠른 퇴행 속도
작년부터 나왔던 이야기다. 경찰이 민생 치안의 가장 앞에 있는 치안센터를 폐지하고 있다. 그게 경찰력을 효율적으로 배치하기 위해서든, 국가 파괴적 감세에 따른 세수 부족을 메꾸기 위한 것이든 이유가 뭐든 간에 결과적으로 치안 서비스가 줄어들 것이라는 건 누구나 예측 가능하다. 민생 치안에 투입해 만들어 낸 '안전한 치안 환경'이라는 사회적 자본에 대한 투자를 줄이면, 치안이 불안해지는 건 당연한 이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더 이상 ‘늦은 밤에 여자 혼자 다녀도 안전한 한국’ 같은 건 다 옛날얘기가 된다. 그렇게 망가진 이후에는 우리 모두가 그런 세상을 만드는 것에 동의하더라도, 그런 세상을 다시 만드는 데는 수십 년 이상 꾸준히 많은 자원을 다시 투입해야 한다. 아마, 지금, 이 순간이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가장 좋은 치안 환경일 수도 있다.

전국 치안센터의 60%가량을 폐지하겠다고 한다
출처 - (링크)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서 얼마 전에 CCTV를 늘리고 경비원을 줄이자는 취지의 투표가 있었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그걸 잘 지켜보고 있는 CCTV가 있으니, 나중에 법적으로 처벌할 것’, 또는 ‘CCTV가 있으니, 범죄자들이 처벌이 두려워서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범죄는 우발적인 경우가 많고 계획범죄라면 CCTV가 없는 곳에서 벌어질 것이기 때문에, CCTV는 사후적인 대응 방안이지 예방효과는 적다.
범죄가 벌어지게 놔두고 나중에 처벌하기보다는 범죄가 벌어지지 않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 사회적으로 이득이라는 것은 당연하다. 경비원을 늘리고 순찰을 자주 하면 당장 눈에 보이는 비용은 늘어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주민들은 밤에도 안심하고 돌아다닐 수 있는 '무형의 편익'이 생기므로 실제로 우리에겐 더 이익이 된다.
이 범주를 사회로 확장해서 생각해 보자. 경찰력이 구석구석 배치되어 치안을 유지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더 큰 이득이 될 것이란 건 분명하다. 위의 아파트 사례를 보아도 쉽게 이해된다. 하지만, 2년 전 대한민국 국민 중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0.74% 정도 더 많았다. 그리고 그들이 선택한 정책 보따리에는 치안센터 폐지가 포함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우리의 사회적 자본은 서서히 줄어드는 중이고, 우리의 치안은 붕괴하는 중이다.

나는요, 완전히 붕괴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