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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해병 사건

     

 
 
 
 
 
 
 
 
 
 
 
 
 
 
 

 

 

28장. 어떤 힘이 작용하고 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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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3일, 임성근 前 사단장이 명예전역을 신청했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故 채상병 유가족이 경북경찰청의 임성근 사단장 무혐의 처분에 반발해 이의신청을 한 날이다.

 

임성근은 어쩌면 2023년 7월 28일로 돌아가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임성근은 어쨌든 ‘장군’의 모습이었다.

 

“책임을 통감한다. 사단장으로서 모든 책임을 지겠다.”

 

이날로 돌아간다면, 아마 사건에 관계된 모든 이들이 임성근의 발언에 수긍하고 사건은 정도(正度)대로 갔을 터다. 임성근 역시 일정 수준의 처벌을 받거나, 전역하는 걸로 정리가 됐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어떤 ‘힘’은...그러니까 대통령실로 추정되는 곳에서 시간을 다시 1년 전으로 되돌리려 하는 힘을 말한다.

 

임성근 사단장이 계속 언급되면서 가장 불편한 곳은 어디일까? 대통령실이다. 임성근 사단장이 언급되면서 김건희 여사가 거론되고, 김건희 여사가 거론되면서 도이치 모터스 주가조작 사건과 그 배후였던 이종호 씨의 이야기가 나왔다. 임성근의 로비라고 생각했던 사건 초기의 추측이 어느 순간 정권의 핵심인 대통령 배우자 문제까지 번졌고, 한발 더 나아가 정권의 구심점이 대통령이 아니라 영부인이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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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정권의 국정운영 동력을 갉아먹은 모든 것이 김건희 여사로 귀결되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정권은 권력을 포기해도 김건희 여사만은 지키겠다는 자세를 보인다(이 정도면 찐사랑이 맞다).

 

임성근이 등장하면, 김건희가 연상되는 상황.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임성근을 털어내야 한다. 이때 임성근이 명예전역을 신청했다. 하필이면, 경북경찰청이 무혐의 처분을 하자마자 임성근은 기다렸다는 듯 명예전역을 신청했다.

 

“경찰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이 타이밍에 빨리 전역해 버려!”

 

라고 누군가가 등을 떠미는 느낌이다. 자연인 임성근이라면, 자기에게 결정권이 없음을 진작에 깨닫고 있었을 것이다. 이제 임성근은 정권의 아이콘이 되어 버렸다.

 

사건이 터진 직후, 대통령실은 그를 전비태세 검열실장 자리에 앉힐지 고민했다. 대통령이 격노했으니, 임성근은 죄가 없는 것이고 그렇기에 임성근은 좋은 자리로 가서 대통령의 ‘격노’가 옳았음을 증명해야 했다. 그러나 여론 때문인지, 아니면 개인의 양심 때문인지 임성근은 무보직 상태로 9개월간 정책 연수를 받는다. 그 사이에 여론은 악화되고, 국회에 끌려다니면서 지금의 정국(政局)을 만들어졌다.

 

임성근 본인도, 대통령실도 부담이다. 결국 전선을 축소할 수밖에 없다.

 

정치에 꿈이 있고, 대통령으로서 하고 싶었던 일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임성근이라는 이름은 부담, 아니, 악몽과 같다. 대통령의 국정운영 동력의 대부분을 이 이름 하나를 막기 위해 사용했다. 대통령으로서 가장 힘이 강했던 집권 2년 차에 들어가던 무렵 임성근이 등장했다.

 

100여 명이 넘는 투 스타 중 한 명일 뿐이었던 이 이름 하나를 지우기 위해 대부분의 국정운영 동력을 쏟아부었다. 만약 뭔가를 하고 싶었던 이라면 억울할 것이고, 대통령으로서 뭔가를 이루고 싶었던 거라면 분노했을 것이다.

 

대통령실에서 김건희 여사에게 불똥이 튀었고, 단순한 구명 로비로 보였던 사건이 국정 농단으로 번져갔다. 김건희 이름 아래로 수많은 특검과 국정 조사가 이어지는 것을 보면서, 대통령실의 누군가는 사안을 수습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았을 것이다.

 

“일단 전선을 축소해야 한다. 정리할 건 정리하고, 털고 가야 할 건 털고 가야 한다.”

 

출구전략이라고 해야 할까? 우선 임성근을 전역시키고 하나씩 정리해 나가려고 하는 듯 보였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다. 하지만, 이 사건을 정리해야 할 사람들에게는 늦어도 해야 할 일이었다.

 

임성근의 입장이라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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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19일, 국회 법사위원회 청문회 증인 선서 중인 임성근 전 사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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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개월간 연수 받는 동안, 임성근 자신도 이미 ‘늦었음’을 깨달았다. 이제 그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정권의 자존심 문제이고, 결국 정권의 운명이 걸린 문제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터다.

 

군에서 20년 이상 근속한 군인이 정년이 되기 전에 명예 전역을 신청한다. 이 경우에는 정년까지 남은 개월 수만큼의 월급 중 절반을 일시불로 받는다. 물론, 지금 이 ‘돈’은 큰 문제가 아니다. 지금 상황은 어쨌든 임성근을 무사히 전역시키고, 넓어진 전선을 축소해야 하는 게 급선무다.

 

사건의 얼개만 본다면, 그러니까 정권이 임성근을 지켜야 하는 상황만 본다면 이 사건은 수지 킴 사건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임성근의 죄를 알지만(그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인다 해도, 지휘관으로서 최소한의 도의적 책임은 있다), 정권의 체면을 생각해 끝까지 임성근은 죄가 없어야 한다. 임성근을 살리기 위해 박정훈을 비롯한 수많은 다른 해병들이 죽어야 하는 상황이다.

 

수지 킴을 죽인 윤태식은 자기 아내 뿐만아니라 아내의 여동생들과 그 가족들까지 불행이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여동생 4명 중 3명은 이혼당했고, 그 자녀들도 간첩의 가족이라며 왕따를 당해 자퇴했다. 수지킴의 큰 언니는 동생이 간첩 누명을 쓴 뒤 다니던 전매청에서 해고 되고 정신병에 걸려 떠돌다 객사했고, 그 남편도 술로 세월을 보내다 뇌수술을 받고 결국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수지 킴을 죽이고, 간첩으로 몰아간 범인은 윤태식이란 걸 ‘정권’은 안다. 하지만, 정권의 체면과 권력 유지를 위해 수지 킴은 간첩이고, 윤태식은 간첩을 때려죽인 ‘영웅’이어야 했기에 정권은 계속해서 윤태식을 지켜야 했고, 수지 킴과 그 주변인들을 ‘죄인’으로 만들었다. 한 명을 살리기 위해, 그리고 정권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죄 없는 이들이 죄인이 되었다.

 

[ENG] 아내가 간첩이었다_ 누가 그녀를 죽였나, 수지김 간첩조작사건 _ 그알 캐비닛 11-33 screenshot.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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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보니 임성근이 그러하다. 박정훈 대령이 말하지 않았던가?

 

“한 사람의 격노로 모든 게 꼬이고, 수많은 사람이 범죄자가 됐다.”

 

전두환 정권이 수지 킴을 죽인 윤태식을 끝까지 비호했던 것처럼, 윤석열 정권도 끝까지 임성근을 지켜야 한다. 윤석열 정권의 아이콘이 되어 버린 임성근은 정권의 향방을 좌우할 인물이 되었다. 여기서 임성근이 죄인이 되면, 이제는 정권 자체가 부정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리고 무리수를 뒀다. 군인사법 제35조의 2를 보면,

 

“비위(非違)와 관련하여 형사사건으로 기소 된 때”

 

에는 전역 할 수가 없다. 이미 임성근은 검찰과 공수처에서 수사를 받는 피의자이다. 이런 상황에서 해병대 사령관인 김계환은 전역 지원서를 받아 심사위원회에 넘겼다(임성근의 경우 해병대 소속이기 때문에 상관인 해병대 사령관에게 신청서를 제출하고, 사령관은 다시 해군본부 심사위원회에 회부 최종 결정을 하는 과정을 거친다). 분명, 법률적으로 문제가 있는 행위이다.

 

오죽하면 신원식 국방부 장관조차 이런 발언을 했을까?

 

“명예전역은 쉽지 않을 것 같다.”

 

말이 곧이곧대로 들리지는 않는다. 정권 차원에서 명예전역을 한 번 찔러봤는데, 명예전역 반대 서명자가 2만 명이 넘어가자 상황이 여의치 않다고 판단, 여지를 남기며 1보 후퇴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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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라고 우길 수도 있지만, 애초에 기소된 사람을 전역 심사에 올린 것부터 특혜다. 이 모든 과정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 김계환 사령관이 명예전역을 시키려 한다는 것 자체가, 이 과정에는 어떤 ‘힘’이 개입되었다는 걸 알 수 있다.

 

김계환 사령관의 심정이 궁금하다. 처음에 임성근 사단장을 다그치며 앞으로 어떻게 처신할지를 물었고, 그 자리에서 책임지겠다는 답변을 들은 뒤 후임 인선까지 정리한 후에 국방부 장관을 만나지 않았던가? 이때가 정확히 1년 전이다.

 

1년 사이 정권이 흔들릴 정도로 사건은 커졌고, 1년 전에 책임져야 할 부하가 명예전역하겠다고 전역 지원서를 들고 왔을 때의 기분은 어떠했을까? 만시지탄(晩時之歎)의 감정이었을까? 결국 한 사람이 용퇴를 결정하지 못해 1년 동안 수많은 사건사고들이 이어졌다는 회한이 들었을까?

 

권력의 입장에서는 무리해서라도 전역을 시키고, 임성근을 정리해야 한다. 그래야 온전히 김건희 여사만의 사건으로 전선을 정리할 수 있다. 하지만, 임성근을 무리해 전역시키기…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임성근 하면 윤석열, 윤석열 하면 임성근. 임성근은 윤석열 정권의 쉽게 잊기 어려운, 강렬한 아이콘이 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