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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훈의 역사비평] 7. 나는 왜 건국절을..._ 7-18 screenshot.png

<반일종족주의> 저자 이영훈의 건국절 강의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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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절(建國節)'

 

고등학교는 물론 대학 졸업할 때까지 들어 본 적도 없는 '건국절'이라는 용어가 이제는 낯설지 않은 용어가 되었다. '건국', 나라를 세웠다는 뜻이다. '나라를 세운 사건 혹은 행위'를 가리키는 개념이라 특별한 가치 판단이 끼어들 여지가 없는 단어다. 그래서 이 용어를 쓰는 이의 정치적 입장을 알지 못하면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는 게 맞다는 주장이 일리 있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모든 언어 개념이 그렇지만 쓰이는 맥락과 쓰는 사람에 따라 의미와 쓰임이 달라진다. 잘 쓰면 한없이 따뜻한 위로가 되기도 하고 나쁘게 쓰면 무자비한 폭력이 되기도 한다. 때로는 자기 나라의 역사조차 호도하며 자기 동포를 자립, 자강, 자주의 능력이 없는 무능한 사람들로, 자기 나라를 강국의 발밑에 늘 복속해야 하는 무기력한 나라로 만들기도 한다. 사전적 의미로는 무미건조한 '건국절'이 그런 단어다.

 

2000년대 들어 식민지 근대화론을 들고나온 낙성대 연구소가 '건국절'이라는 용어도 본격적으로 대한민국에 유포하기 시작했다. 한때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였고 식민지 근대화론의 온상, 낙성대 연구소 수장이며 반민족-반역사적 요설(妖說), '반일 종족주의' 대표 저자인 이영훈이 '건국절' 주창자였다. 이영훈은 2006년 7월 31일 동아일보에 '우리도 건국절을 만들자'라는 글을 기고하며 1948년 8월 15일이 진정한 대한민국을 건국한 날이라며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꿔야 한다고 본격적으로 주장하고 나섰다.

 

미국에 건국기념일이 있다고?

 

“그러니까 진정한 의미의 빛은 1948년 8월 15일의 건국 그날에 찾아왔다. 우리도 그날에 국민 모두가 춤추고 노래하는 건국절을 만들자. 몇 년 전 미국 보스턴의 하버드대에 들른 그날은 우연히도 미국의 건국기념일이었다. 저녁이 되자 찰스 강 양쪽 강변에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였다. 강에는 수많은 요트가 떠다녔으며, 커다란 배 위에는 보스턴이 자랑하는 오케스트라가 펼쳐졌다. 국가가 울려 퍼지자 얼굴색을 달리하는 수많은 사람이 그렇게도 기꺼이 환호작약하였다. 그리고선 갖가지로 도안된 폭죽이 보스턴의 밤하늘을 끝도 없이 수놓았다. 그렇게 남의 나라의 건국절을 넋 놓고 구경하던 내 입에서 무심코 새어 나온 말이다. 우리에게도 한강이 있지 않은가.”

 

-2006년 7월 31일 동아일보 동아광장 이영훈

 

동아일보 기고문에서 그는 미국 보스턴에서 건국기념일을 경험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미국에는 건국기념일 또는 건국절이란 게 없다. 도대체 이영훈이 보스턴 찰스 강가에서 경험한 건국기념일이 무슨 날인지 알 수 없다. 독립 기념일(Independence Day)을 말하는 것 같긴 한데 '독립 기념일'을 '건국기념일' 또는 '건국절'과 혼동하다니 특별한 정치적 의도가 없었다면 엄밀하기로 소문난 이영훈의 학문적 자질은 허명일 가능성이 높다. 그는 뉴라이트 이전에 서울대 규장각이 소장한 고문서를 모두 섭렵했다고 알려진 한국 경제사 분야의 대표적 실증주의자였다.

 

전 세계적으로 '건국절' 혹은 '건국기념일'이라는 이름을 붙인 국경일을 가진 나라는 찾기 힘들다. 지도에 국경선을 그린 날이 분명한 이스라엘조차 '욤 하츠마우트(יום העצמאות), 독립 기념일'이라고 하지 건국기념일이라고 하지 않는다. 만주족인 청나라와 가능하면 역사적 단절을 하려는 한족의 속내 때문인지 중화민국(대만)이나 중화인민공화국 정도만 '개국(開國)'이라는 용어를 쓴다. 실제로 이들 국가도 구체제를 무너뜨린 혁명 기념일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20세기 들어 서구 열강으로부터 독립한 국가들도 대부분 건국기념일이 아닌 독립 기념일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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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건국 기념의 날 행사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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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건국(建国)'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쓰는 국가가 딱 하나 있다. 일본이다. 일본은 매년 2월 11일을 '건국 기념의 날(建国記念の日)'로 지정해 '건국'을 기념한다.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이영훈이 '건국'이라는 용어를 고집하는 이유가 이 때문일까?

 

재미있는 것은 이영훈이 자기 나라 대한민국에 적용하는 '건국'과 일본이 쓰는 '건국'의 시간 단위가 다르다는 점이다. 이영훈의 건국은 기껏해야 100년 단위인데 일본의 '건국'은 1000년 단위다. 일본이 기념하는 '건국'은 19세기 말 일본 제국주의의 첫걸음을 뗀 메이지 천황 즉위일도 아니고, 일본 최초의 근대적 헌법을 제정한 날도 아니다. 이날은 일본서기에 기록된 최초 천황인 '진무 천황'의 즉위일을 기념하는 날이다. 지금으로부터 2,600여 년 전에 일어난 사건(기원전 660년 2월 11일)이다.

 

메이지 정부는 막부 통치로 허수아비에 불과했던 천황이 1867년 대정봉환(大政奉還)으로 다시 실질적 권력을 회복하게 된 것을 기념하려고 초대 천황의 즉위일을 일본의 '기원일'로 삼았다. 일제가 패망하고 미군정 치하에서 폐지되었다가(1948년) 미군정이 끝나자 자민당을 중심으로 '건국기념일'로 다시 제정하려고 했다. 야당 일본 사회당이 반대하는 바람에 자민당의 '건국기념일' 제정은 번번이 실패했다. 9번에 걸쳐 발안과 폐기되는 우여곡절 끝에 결국 '건국을 기념하는 날'이라는 의미인 '건국 기념의 날(建国記念の日)'이 1966년 제정되었다.

 

'건국 기념의 날'도 초대 천황의 즉위일인 2월 11일이다. '건국 기념의 날'을 제정하기 위해 고려했던 후보 날짜 중에는 초대 천황 즉위일 외에 1,400여 년 전 쇼토쿠 태자가 헌법 17조를 공포한 날인 4월3일도 포함되어 있었다. 최종적으로 초대 천황 즉위일을 '건국 기념의 날'로 정하며 일본 국가 기원을 끌어 올릴 수 있을 만큼 끌어 올렸다. '건국'이라는 용어를 쓰려면 이렇게 써야 한다. 정신이 멀쩡한 국민이라면 이렇게 쓰는 게 당연하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굳이 건국절 혹은 건국 기념을 따로 필요가 없다. 단군 할아버지가 조선을 창업한 날을 기리는 '개천절'이 있기 때문이다. 열 손가락을 접어가며 세어본들 개천절의 연원이 일본 제국주의의 기원일보다 더 깊고 멀다. 이영훈이나 '건국절'을 주장하는 이들이 애써 개천절을 외면하고 '건국절'을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건국 435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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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8월15일, 정부 수립 축하식에 참석한 이승만 대통령

이날 그는 "대한민국 30년"이라는 연호를 사용했다

 

1910년 일제가 대한제국을 불법 강제 병탄하는 바람에 지도에서 대한제국이라는 국호와 국경은 사라졌지만, 그 시기 조선인 대부분은 오랫동안 만주와 한반도에 모여, 같은 언어를 쓰며 축적하고 공유한 역사-문화적 정체성에 더해, 서구 근대가 만든 '민족국가' 개념이 잘 융합된 근대적 자기 정체성을 갖고 있었다.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친일 토착 왜구들은 일제 강점이 스스로 근대성을 획득하지 못하는 미개한 '종족'인 조선인에게 꼭 필요한 것이고 역사 발전의 관점에서 정당한 것임을 강변하려고 무진장 애를 쓴다. 이영훈이 대표 편저자인 '반일 종족주의'의 책 제목에 '민족'이 아닌 '종족'을 쓰는 이유도 조선인 스스로 극복하지 못하는 전근대성을 부각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식민지 근대론자들은 몹시 안타까워하겠지만 서구 문물에 접했던 당대의 조선인들, 심지어 서당에서 공부하고 서구식 교육을 전혀 받지 않았던 조선인조차 19세기 제국주의로 만개한 서구의 근대성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고 그 중심에 놓인 '민족국가' 개념도 체득한 상태였다. 근대적 '민족국가' 개념으로 세례를 받은 '조선인'이라는 자기 정체성은 지식인뿐만 아니라 민중 일반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았다면 전 한반도 민중이 참여한 3.1 만세운동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3.1만세운동은 일제 강점 초기, 무단통치에 대한 단순한 반작용이 아니다. 3.1운동은 인도의 간디가 주도한 비폭력 저항운동보다 훨씬 앞선 현대적 비폭력 저항운동의 전범 (典範)이었다. 정말 한반도에서 근대성을 획득하지 못한 전근대인들은 을사오적, 정미칠적 같은 한 줌도 안 되는 친일 무리와 지금 와서도 이들을 열렬히 옹호하는 이영훈과 같은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이다.

 

일제 강점기가 폭력 일변도의 무단통치로 시작해 여전히 폭력적이긴 했으나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유화책, 내선일체 프로파간다로 옮겨가고 이마저도 실패작으로 귀결되었던 것도 조선인 스스로 몸 안에 키운 근대성 때문이었다. 일제는 결국 조선인을 황국 신민으로 만드는 데 실패했다. 시퍼렇게 날이 선 일본도로도 조선인에 내재한 '조선인'이라는 정체성을 도려낼 수 없었다. 이광수, 최남선, 백낙준, 백선엽, 김활란, 홍난파, 안익태, 박정희처럼 조선인의 정체성을 스스로 가슴에서 도려내어 친일 부역자가 되지 않는 한, 완력으로 조선인을 황국신민으로 만들지 못했다.

 

조선인이라는 근대적 정체성을 가진 이들은 당연히 일제 강점기를 나라를 잠시 잃은 것으로 생각했다. 이완용을 '매국노'라고 표현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나라를 팔아먹었다는 표현은 언젠가는 되찾겠다는 의지를 전제해야 가능한 표현이다. 그래서 당연히 나라를 되찾겠다, 독립하겠다는 사람은 있었어도 일제 강점기 한가운데서 나라를 세우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우리는 일제에 항거하며 무오독립선언서, 2.8독립선언서, 3.1독립선언서 등 독립선언서는 여러 번 작성했어도 건국 선언서를 작성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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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독립선언서

 
기미독립선언서의 말미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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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建國 四千二百五十二年 三月 日(조선건국 사천이백오십이년 삼월 일)'이 인쇄되어 있다.
 
조선건국 사천이백오십이년!
 
이 한 줄에서 일제에 나라를 강탈당했던 조선인이 가졌던 근대적 자기 정체성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일제 강점기 근대적 조선인에게 나라는 다시 찾는 것이지 새로 세우는 것이 아니었다.
 
1919년 상해에서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국호와 함께 제정한 임시헌장에서 이 점을 분명히 한다. 대한민국 임시헌장은 민주공화국이며, 일체의 신분제가 철폐된 평등 사회이고, 현대적 의미의 기본권을 인민에게 보장하는 현대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에 걸맞은 현대적 헌법이었다. 임시헌장에서 새 국호, 대한민국은 대한제국과 '대한'을 공유하여 국체 역사의 연속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제국(帝國)'을 '민국(民國)'으로 바꿔 20세기 새 시대에 부합하는 새로운 정체(政體), 국민이 주권을 가진 민주주주의 정신을 정확하게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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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임시헌장 1조는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한반도에서 조선인이 이어온 국체의 유구한 역사를 훼손하지 않으려는 의도는 ‘구황실을 우대한다’는 제8조로 더 분명해진다. 일제 강점기의 조선인들이 대한제국이나 조선과 철저하게 단절하려 했다면 이 구절은 삽입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1940년 충칭으로 거점을 옮긴 후, 작성한 건국강령에도 우리의 유구한 역사를 담아내려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총 3개의 장으로 구성된 건국강령은 대한민국을 삼균주의에 입각한 강고한 민주주의 국가로 만드는 실천 강령이다. 제1장은 총강, 제2장은 복국, 제3장은 건국으로 작성하여 민주주의 국가 건설 과업을 과정별로 정리했다.
 
건국 이전의 단계, 복국 단계가 있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임시정부는 국토를 완전히 수복하여 '복국' 단계를 완성하고 그다음 '건국' 단계로 이행하여 국가 건설을 지속할 계획을 세웠다. 임시정부의 요인들은 건국을 어느 순간 나라를 우뚝 세운다는 의미가 아니라 국권을 수복하고 온전한 민주주의 국가를 만들어가는 '하나의 과정'으로 이해했던 것이다.
 
해방 후 회복한 국토에서 실제 진행된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과정도 한 번에 벌어진 사건이 아니라 일정한 시간과 많은 땀을 요구하는 과정이었다. 1945년부터 1948년 3년간 미군정의 통치가 지속되었고 미군정 통치 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제헌의회가 구성되었다.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의 주장대로라면 나라가 제대로 서기 전에 만들어진 제헌의회는 부모 없는 고아다. 하지만 우리는 당시의 의회를 엄연한 대한민국의 제헌의회로 인식한다. 이때는 영토를 가진 대한민국에 어울리는 제대로 된 헌법을 만들기 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제헌의회를 우리는 '대한민국'의 제헌의회로 이해하는 것은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된 헌법이 그렇게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헌법 제정을 선포한 인물은 이영훈이 지독하게도 물고 빠는 독재자 이승만이었다. 아래의 인용문에서 보듯, 대한민국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이미 대한민국을 건립했고 이제는 민주 독립 국가를 재건, 다시 세운다고 천명하고 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며 모든 사회적 폐습을 타파하고 민주주의제제도를 수립하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케 하며 각인의 책임과 의무를 완수케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여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결의하고 우리들의 정당 또 자유로히 선거된 대표로써 구성된 국회에서 단기 4281년 7월 12일 이 헌법을 제정한다.
 
단기 4281년 7월 12일, 대한민국 국회의장 이 승 만
 
이런데도 자료, 자료를 입에 달고 사는 이영훈은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삼고,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꿔야 한다는 앞뒤 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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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경축식 취소와 뉴라이트 논란 관련 기자 회견 중인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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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관인 것은 여기에 홀린 용산 대통령실이 식민지 근대화론자인 김낙년을 한국학 연구원 원장에 앉히고 백선엽과 안익태 같은 반민족 친일 인사의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는 김형석을 독립기념관 관장에 앉혔다. 저게 가능한가 싶은데 대한민국이 자주독립 국가로 그나마 이 정도 먹고 살 수 있게 된 것도 '일제'의 하해와 같은 은혜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저들의 정신세계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엉망진창도 이런 엉망진창이 없다.
 
이영훈이 떠들고 국민의힘 의원들이 거드는 건국절, 아직 한반도에서 기생하고 있는 식민지 근대화론자, 친일 부역자, 한국 이름으로 창씨 개명을 하고 토착화한 왜구를 빼면 근대화된 조선인, 현대화된 대한국인에게는 전혀 쓸모없는 날이고 식민지 근대화론처럼 요설에 지나지 않는다.
 
요설은 한자에 따라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시끄럽게 계속 떠든다는 뜻의 '요설(饒舌)'과 요사스러운 수작이라는 뜻의 '요설(妖說)'.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은 요설(妖說)을 요설(饒舌)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 글에서는 나도 식민지 근대화론이 얼마나 엉망진창, 논리도 배알도 없는 쓸개 빠진 소리인지 요설(饒舌) 해보고자 한다.
 
<계속>
 
 
덧붙이는 글
 
‘조선인’이란 표현 때문에 오해가 있을까 싶어 한마디 덧붙인다. 이 용어는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朝鮮人’을 일본어 소리로 읽는 ‘조센징(ちょうせんじん)’이 아니다. 또한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이 사용하는 ‘조선인’도 아니다. 이 글에서 ‘조선인’을 언급할 때는 100여 년 전 조선 사람이 스스로 조선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드러내고자 할 때 사용했던, 기미독립선언서에 표기된 ‘조선인’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