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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많았던 파리 올림픽

 

올림픽 폐막식.png

 

친환경 올림픽을 표방한 2024 파리 올림픽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여러모로 말이 많던 올림픽이었다. 친환경이라는 명분하에 선수촌과 선수 셔틀버스 등에서 에어컨을 사용할 수 없었고, 골판지로 선수 침대를 만들어 자고 일어나면 온몸이 베기는 상황을 만들었다. 선수촌 음식마저도 비건식으로 한다며 고기를 빼버렸다(이에 대해 비판 받자, 며칠 뒤 고기를 메뉴에 넣기도 했다).

 

생선에서 벌레 한국경제.png

출처-<한국경제> 링크

 

이뿐 아니다. 파리올림픽 조직위원회는 ‘센강’의 수질을 보장한다며 철인 3종 경기와 마라톤 수영 종목 같은 경기를 ‘센강’에서 치르도록 했는데, 실제로 센강의 수질은 굉장히 안 좋았다. 무려 2조 원을 넘게 투자하며 센강의 수질을 회복했다고 했다지만, 현실은 그야말로 ‘똥물’ 그대로였다. 2급수인 한강과 비교했을 때, 100배나 많은 대장균이 검출되었을 정도였다.

 

구토 10번.png

출처-<X>

 

캐나다의 한 선수는 센강에서 철인 3종 경기를 한 이후에 10번이나 구토를 했고, 벨기에의 한 선수는 경기 후 대장균에 감염됐다. 각국의 여러 선수는 이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미국의 ‘세스 라이더’ (철인 3종)

 

“파리에 온 후 일부러 손을 씻지 않았다. 대장균에 익숙해지기 위해 화장실을 다녀온 후에도 손을 씻지 않고 있다.”

 

스페인의 ‘미리암 카시야스’ (철인 3종)

 

“대회 주최 측이 센강이 무대라는 이미지를 우선했고, 선수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

 

여러 감염 이슈가 터지자, 벨기에팀은 철인 3종 혼성 경기를 아예 기권해 버리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운동선수에게 올림픽이 얼마나 꿈의 무대인지 안다면, 기권까지 하는 것을 볼 때 선수들이 센강의 수질에 대해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했는지 짐작 갈 것이다.

 

벨기에 포기.png

출처-<한국경제> 링크

 

말 많았던 파리 올림픽이지만, 희망적인 장면도 꽤 나왔다. 

 

기후 위기가 우리를 위협하고 있고, 전쟁이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 세상이다. 이 모든 것의 원흉은 인류지만, 그럼에도 희망을 걸 곳 역시 인류뿐이다. 이번 파리 올림픽을 보며, 그 희망을 봤던 순간이 있었다. 인류애를 느낀 순간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파리 올림픽 폐막과 함께, 그 순간들을 소개해 보려 한다.

 

 

파리 올림픽에서 희망을 봤던 장면 3 

 

장면 1.

 

신유빈 서울신문.jpg

출처-<서울신문>

 

파리올림픽 여자탁구 단체 16강전에서 대한민국과 브라질이 만났다. 경기 시작 전 한국 언론의 관심은 신유빈 선수의 활약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러나 막상 경기가 시작되자 전 세계인의 이목을 끈 선수는 브라질의 브루나 알렌산드로였다. 

 

브라질 선수 사진1.png

 

경기는 대한민국의 승리로 끝났지만, 현장에서 가장 큰 박수를 받은 선수는 팔이 한쪽이 없는, 아니, 한 팔로도 멋진 드라이브를 날린 브라질 탁구 선수 브로나였다. 

 

그녀는 생후 6개월 만에 백신 부작용으로 인한 혈전증으로 팔을 절단해야 했다. 그러나 팔 하나가 없어도 삶은 계속되어야 했고, 이어지는 삶의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무언가를 찾던 중 탁구를 만났다. 

 

10살에 탁구를 시작한 그녀의 실력은 계속 성장했고 결국 패럴림픽에서 메달까지 따내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결심했다. 이제는 패럴림픽뿐 아니라 일반 올림픽까지 노려보기로 말이다.

 

그렇게 그녀는 2024 파리올림픽 출전권을 따냈고, 역대 두 번째로 올림픽과 패럴림픽에 출전하는 탁구 선수가 되었다.

 

탁구는 서브로 시작된다. 오른손이 없는 그녀는 왼팔로 탁구채를 쥐고, 채 위에 공을 올려놓고 서브를 넣는다. 

 

브라질 선수 연합뉴스.jpg

탁구채 위에 공을 올려놓고

서브를 넣으려 공을 띄운

브로나 선수  

출처-<연합뉴스>

 

경기가 시작되고 끝날 때까지 보여준 그녀의 모든 움직임이 경외 그 자체였다. 중국이 너무 압도적이라 가려진 부분이 있지만, 한국은 탁구 강국 중 하나다. 세계 랭킹 3위다(브라질은 10위). 이런 한국의 선수와 긴 랠리 끝에 점수를 따냈을 때는 경기장의 모든 관중이 일어나 기립 박수를 보냈다. 

 

패배 환호 연합뉴스.jpg

관중들이 박수를 보내자

브라질 선수들이 

웃음으로 화답하고 있다.

출처-<연합뉴스>

 

사실 한국과 브라질의 탁구 경기는 한국과 브라질의 축구 경기보다 결과가 예상되는 경기였다. 그러나 브로나 선수가 등장함으로써 이 경기의 승패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그럼에도 어떤 박빙의 경기보다 많은 울림을 주었다. 

 

우리는 왜 육체적 핸디캡이 있는 탁구 선수의 도전에 박수를 보냈을까? 

 

모두가 다양한 핸디캡이 있지만, 그것을 감춘 채 살아간다. 그러나 브루나는 감출 수조차 없는 육체적 핸디캡을 안고 경기에서 최선을 다했고 정정당당하게 맞섰다. 필자는 우리가 그녀에게 박수를 보냈던 건, 이런 그녀를 통해 인생이라는 경기를 치르는 자신이 보였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장면 2.

 

배드민턴 여자 단식에서 가장 주목을 받았던 건 뭐니 뭐니 해도 안세영이었다. 압도적인 실력으로 결승전에서 승리하며 결국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러나 안세영 외에도 주목받은 또 한 선수가 있었다. 은메달을 목에 걸은 중국 선수 허빙자오였다. 그녀는 시상대에서 작은 배지를 하나 꺼내 들었다. 

 

뉴시스 시상식.jpg

출처-<뉴시스>

 

허빙자오는 시상식 내내 그 배지가 잘 보이는지 신경 썼다. 메달 시상을 마치고 셀카를 찍을 때도 배지를 신경 썼다.

 

허빙자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png

배지를 들고 있는 허빙자오

출처-<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그녀가 손에 들고 있던 것은 다름 아닌 스페인의 ‘팀 배지’였다. 중국도 아닌 스페인의 팀 배지를 들고 있던 거다. 

 

왜 그랬을까. 이유는 이랬다.

 

허빙자오는 준결승에서 2016년 리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스페인의 ‘카롤리나 마린’을 만났다. 그리고 마린은 허빙자오를 이기고 있었다. 

 

당시 세트 스코어는,

 

1 : 0

 

2세트마저 ‘10 : 5’로 마린이 압도하고 있었다. 

 

2024 파리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 준결승ㅣ카롤리나 마린 vs 허빙자오 [습츠_파리올림픽] 7-26 screenshot.png

출처-<스브스스포츠>

 

그 순간이었다. 허빙자오의 공격을 수비하던 마린의 무릎이 꺾이며 그녀가 코트에 쓰러졌다. 

 

쓰러짐1.png

쓰러짐2.png

쓰러진 마린

 

마린 걱정 허빙자오.png

마린을 걱정하는 허빙자오

 

부상에도 불구하고, 마린은 경기를 이어 나가 보려 했으나 무리였다. 결국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게임을 포기했다. 

 

허빙자오는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절대로 일어나지 말아야 했을 일”이라고 상대 선수의 아픔에 깊게 공감하더니, 스페인 대표팀을 찾아가 배지를 직접 받아왔다. 

 

그리고 마린을 존중하고 그의 정신을 결승전까지 가져간다는 의미로 그 배지를 갖고 시상대에 올랐다. 시상식이 끝난 후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뛰어난 선수인 마린에게 미안하다. 시상식에 선 내 모습을 마린이 보길 바랐다. 그녀가 곧 회복하기를 기대한다.”

 

서로를 존중하는 진정한 스포츠맨십과 인류애를 보여준 순간이었다. 

 

지금, 이 순간 세계는 혐오와 갈등이 퍼져나가고 있는 듯하다. 여기저기서 큰 전쟁이 터졌거나 터지려 하며, 한 나라 안에서도 극렬한 대립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허빙자오가 보여준 상대에 대한 진실한 공감과 존중은, 스포츠를 통해 세계의 평화와 화합을 추구한다는 올림픽 정신을 제대로 보여준 장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장면 3. 

 

파리올림픽 비치발리볼.jpg

출처-<뉴스1>

 

에펠탑을 배경으로 야외에 만들어진 비치발리볼 경기장은 개막전부터 화제였다. 이 경기장에서 마지막 결승전을 장식할 국가는 캐나다와 브라질이었다. 

 

존 레넌 떼창한 결승전 브라질 vs 캐나다 하이라이트 [비치발리볼 여자 결승] 0-45 screenshot.png

캐나다와 브라질 결승전

 

결승전은 여타 종목처럼 팽팽한 긴장감 속에 열렸다. 올림픽 금메달이 걸린 만큼 양 팀의 신경전이 상당했는데, 급기야 네트를 사이에 두고 양 팀의 선수들이 격렬한 언쟁을 시작했다. 몸싸움이 없는 비치발리볼 경기에서 흔치 않은 장면이었다. 그만큼 올림픽 금메달이 주는 압박감이 대단했다. 

 

비리발리볼 싸우는 거.png

출처-<연합뉴스>

 

주심이 선수들에게 경고를 주었지만 선수들은 악수를 하면서도 상대를 노려보며 거친 말을 이어갔다. 경기가 과열되자 관중들까지 흥분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캐나다 선수가 서브를 넣기 위해 호흡을 가다듬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어디선가 낭만적인 음악이 흘러나왔다.

 

존 레논의 imagine(이매진)이었다.

 

비치발리볼 경기는 해변의 분위기를 내기 위해 경기 중간중간 DJ가 음악을 트는 형식을 취했다. 그 음악은 보통 흥겨운 음악 위주였다. 그런데 분위기가 험악하게 과열된 순간, DJ가 ‘존 레논의 imagine’을 튼 것이다.   

 

(imagine은 반전 가요의 상징이며, 평화주의의 대명사 격인 노래다. 그래서 올림픽 개폐막식에서도 단골로 사용되곤 한다)

 

캐나다 웃음.png

 

imagine이 나오자 격양되었던 캐나다 선수의 표정에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그의 웃음은 상대팀인 브라질 선수들에게 전염되었고, 느린 노래의 볼륨을 높이자, 관중들은 급기야 떼창을 하기 시작했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4년의 시간과 노력을 걸고 펼쳐진 단두대 매치가 갑자기 콘서트장으로 변했다. 어쩌면 천재 공연기획자 탁현민도 그 짧은 순간에는 떠올리지 못했을 풍경이 에펠탑을 배경으로 펼쳐졌다. 

 

imagine이 흘러나오는 순간 영상

 

극단으로 치닫던 갈등이, 어쩌면 별거 아닐 수 있는 노래 하나로 인해 평화와 화합으로 바뀐 것이다. 그렇게 ‘미드나잇 인 파리’에는 사력을 다해 자신의 일을 하는 청춘과 결승전의 품격에 걸맞은 낭만 넘치는 관중, 그리고 위대한 음악이 있었다. 

 

 

청춘들의 몸짓이 보였다

 

30년간 비교적(!) 평화로웠던 시대가 가고, 전쟁과 대립의 시대가 다가오는 듯하다.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의 선수들은 개인중립선수(AIN)라는 해괴한 명칭으로 이번 올림픽 경기에 참가는 할 수 있었으나, 조국의 이름을 달고 참가할 순 없었고 개막식에도 초대받지 못했다. 경기에서 조국을 침공한 러시아의 선수들을 만난 우크라이나 선수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도 두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 

 

악수 거부.jpg

경기를 마치고

악수를 청하는 

러시아 선수에게

펜싱 검을 내밀며 

거리를 유지한 채

악수를 거절한

우크라이나 선수

 

그 외에도 12개 종목 36명의 선수단으로 꾸려진 '난민 대표팀'이 있었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으로 인해 지구상에는 1억 명에 가까운 난민과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이들이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이런 처지에서도 치열한 노력 끝에 36명이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었다. 

 

난민대표팀.jpg

난민 올림픽팀이라는 팻말을 들고 있다.

출처-<연합뉴스>

 

은감바 연합뉴스.png

난민팀 사상 첫 올림픽 메달을 딴

카메룬 출신 난민

은감바 선수

출처-<연합뉴스>

 

갈등과 대립, 혐오의 시대가 이대로 더욱 증폭된다면 결국, 인류 역사상 가장 상업화된 스포츠 대회인 올림픽은 결국 소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벌써 필자의 나이도 반백살이 되었다. 선수들과 비슷한 나이 때 보았던 올림픽은 단순한 스포츠 종합 세트였지만, 선수들의 부모 나이에 이르러 본 올림픽은 탐욕스러운 어른들이 망친 세상을 되돌리려는 무해한 청춘들의 몸짓처럼 보인다. 

 

대립의 시대에서, 올림픽 정신을 잊지 않고 보여준 선수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그리고 그중 극히 일부인 ‘세 장면’을 개인적으로 꼽아 소개했다. 독자 여러분도 이 글을 읽으며 자신만의 올림픽 명장면을 떠올려보고, 그에 대해 지인들과 이야기도 나눠보며 이번 올림픽을 마무리할 수 있길 바란다.

 

<끝>

 

 

덧붙이는 음악

 

올림픽을 일주일 앞두고 어른들의 어른이자, 무대 위 청춘을 빛나게 하는 뒷것을 자처한 아침이슬의 김민기가 세상을 떠났다. 어른 김민기가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 못한 이들을 위해 만든 노래 '봉우리'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