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으로 날아간 이탈리아 총리

지난 29일,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멜로니 총리와 시진핑 주석이
악수하고 있다.
출처-<한국일보>
약 2주 전 일이었다.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중국을 공식 방문했다. 멜로니 총리가 2022년 10월 취임한 후로 첫 중국 방문이다. 멜로니의 이런 행보는 조금 의아하다. 그간 중국에 적대적인 모양새를 취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는 2019년 당시 총리이던 주세페 콘테가 중국의 일대일로(One belt, One road) 계획에 들어가기로 한 이후 일대일로 사업에 참여해 왔는데, 멜로니는 총리로 취임하며 이 결정을 ‘엄청난 실수’라며 비판했었다. 급기야 2023년 12월 3일, 중국의 일대일로 계획에서 탈퇴하기로 공식 발표까지 했다.
또한 이탈리아가 속해있는 유럽도 중국과 거리를 두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얼마 전부터 ‘나토 정상회의’에서도 유라시아 대륙 동쪽 끝에 있는 중국에 대한 견제 목소리가 나오는 형국이다.
나토가 한국을 초청하는 이유
그런데 멜로니가 중국까지 날아가 시진핑 중국 주석과 정상회담을 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국제 사회가 주목하고 있다.
멜로니는 왜 그랬을까?
멜로니를 이해하려면 지난 100년의 국제 정치를 봐야 한다
멜로니가 중국까지 가서 시진핑을 만난 직접적인 이유를 말하지 전에, 이들의 만남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는지를 먼저 이야기하는 게 순서일 것 같다.
‘세계는 변하고 있다’
라는 말이 있다. ‘밥을 먹으면 배부르다’만큼이나 진부한 클리셰(cliché, 진부하거나 틀에 박힌 생각 따위를 이르는 프랑스어)다. 하지만 그만큼 지금의 국제 정세를 잘 대변해 주는 말이기도 하다.
‘국제정치학’(International Relations)이 체계적인 학문으로 자리 잡은 것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 국제정치학은 불과 100여 년 전 영국 웨일스에 위치한 ‘Aberystwyth University’ 대학에서 시작되었다.
국제정치학이란 학문이 자리 잡은 이후의 국제 정치를 살펴보면, 대략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20세기 전반은 유럽에서 발발한 두 차례의 전쟁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국제 정치의 중심은 유럽에서 미국과 소련으로 옮겨갔다. 이후 약 45년간 세계는 미국과 소련(자유주의와 공산주의) 중심의 두 진영으로 나뉘었다.
유럽이 중심이었던 시기와 미·소가 중심이었던 시기 모두 국제 정치에서 그 무엇보다 중요한 행위자는 바로 ‘국가’(State)였다.

2007년 6월,
‘역사의 종언’을 집필한 후쿠야마(왼쪽)가
러시아 모스크바를 찾아
고르바쵸프(오른쪽)에게
자신의 저서를 전달하고 있다.
출처-<게티 이미지>
영원히 지속될 것 같던 냉전은 갑작스럽게 사라졌다. 1991년 소련의 붕괴와 함께 막을 내린 냉전, 이에 대해 일본의 정치학자 후쿠야마(F. Fukuyama)는 ‘역사의 종언’이라는 평가까지 내렸다.
탈냉전 시기가 도래하자 국제 정치는 근본적인 질적 변화를 맞이했다. 이제 국가 간 관계에서 더 중요한 건, 이념보다 경제적 상호 의존이 되었다. 노태우 정부가 1990년에는 러시아, 1990년에는 중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했던 것도 국제정치가 변화한 산물이었다.
경제적 상호 의존이 중요해지고 각 국가가 경제로 더욱 얽혀지며 국가를 뛰어넘은 다양한 형태의 지역주의(지역통합)가 가속화되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1993년 11월 창설된 유럽연합(EU)이다. 전통적인 국가의 경계를 뛰어넘는 초국가 기구의 가능성이 구체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와중에 미국에서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했다. 이후 국제 정치는 테러와의 전쟁으로 변모해 버렸다. 이 반작용으로 각종 테러 집단이 성행하며 IS같이 엄청나게 성장하기도 했었다.
즉, 탈냉전 이후 불과 약 20년 사이에 국제 정치에서 유럽연합과 테러 집단같이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형태의 비국가 행위자들이 등장한 것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그 이전보다 국가의 중요성이 감소했고, 감소한 만큼 그 자리는 다양한 형태의 비국가 행위자가 차지했다.
(예를 들어, 유럽연합이 등장하면서 유럽연합에 속한 국가들은 그 전처럼 국가별로 자유롭게 활동하는 게 힘들어졌다. 유럽연합이 정한 정책과 룰을 지키는 선 안에서 활동을 해야 했다. 이런 면에서 국가 자체가 발휘할 수 있는 파워나 중요성은 그 전보다 감소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러는 사이, 중국은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었다. 소련이 붕괴하고 약 20년간 국제정치는 미국의 일극 체제였다. 그런데 2010년대 들어 ‘자신의 재능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인내하면서 때를 기다리던’(도광양회) 중국이 미국을 향해 발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미국을 대적할 국가로 등장한 것이다.

그 반증이 바로 오바마 행정부가 대외정책 기조를 아시아로 선회하기 시작한 ‘Pivot to Asia’다. 미국의 중심 무대가 소련이 있던 유럽에서 중국이 있는 아시아로 옮겨진 것이다.
비슷한 시기 유럽에서는 ‘극우 정당’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바로 ‘국가’다. 그것도 민족주의에 기반한 강력한 국가. 그 대표적인 인물들이 프랑스의 르펜, 헝가리의 오르반, 네덜란드의 빌더르스, 그리고 이탈리아의 멜로니 총리다.

유럽의 대표적인 극우 정치인들
(왼쪽부터) 헝가리의 오르반,
이탈리아의 멜로니,
프랑스의 르펜,
네덜란드의 빌더르스
출처-<20minutes>
이것이 지난 100년 간의 국제 정치의 흐름이다.
최근에 나타나는 특징은 크게 2가지다.
1. 국제정치의 질적 변화 주기가 매우 짧아졌다.
2. 다시금 ‘국가주의’로 회귀하고 있다.
특히 2번의 경우, 국제 정치에서 다시 개별 국가 사이의 양자 외교가 중요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과거의 양자 외교 시대와 차이점이라 한다면, 과거 이념적으로 가깝지 않던 국가들 사이에서 양자 외교가 더욱 활발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시진핑과 멜로니의 만남은 이런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멜로니가 시진핑에게 날아간 이유
여러 외신 보도를 종합해 보면, 이번 중국-이탈리아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는 경제 관련 내용으로 보인다.
지난 28일, 멜로니는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를 만나 '3개년 행동계획'을 체결했다. 이는 전기차, 조선, 인공지능, 항공·우주 등의 분야에서 경제 협력을 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 28일,
멜로니 총리와 리창 총리
출처-<신화통신>
다음날인 29일, 멜로니는 시진핑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는 전날보다 광범위한 주제들이 논의되었다. 이탈리아 총리실에 따르면, 두 정상은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 현안부터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위기까지 광범위한 글로벌 의제들에 대해 논의했다고 한다.
출처-<EPA>
그렇다면, 이번 정상회담을 두고 두 국가의 의도, 즉 국가이익은 무엇이었을까?
먼저, 중국은 자국의 일대일로 구상에서 탈퇴한 이탈리아를 재가입시키는 것이다. 2013년 중앙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순방하면서 발표한 이 계획은 여전히 중국의 최우선 대외전략이다. 그리고 이탈리아는 서유럽 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이 구상에 가입했던 나라다.

노란색 선은
중앙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육상 실크로드, 파란색 선은
동남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를 잇는
해상 실크로드다.
출처-<세계은행>
위 지도에서 알 수 있듯이, 이탈리아는 해상 실크로드에서 중국이 유럽으로 가는데 매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다. 그래서 시진핑은 멜로니와의 회담에서 중국과 이탈리아가 실크로드 정신을 계승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탈리아도 경제적 이익을 위해 정상회담을 했다.
멜로니는 시진핑에게 양국의 투자 및 무역 불균형 해소를 요구했다. 지난 2019년 이후 이탈리아가 대중 무역에서 보는 적자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 통신(링크)에 따르면, 2019년 약 140억 달러이던 무역 적자는 2022년에는 329억 달러까지 증가했다. 중국의 일대일로 계획에 참여하면 경제적 이득이 클 것으로 예상했지만, 오히려 손해만 늘었던 것이다. 이런 경제적 문제를 멜로니는 이번 회담을 통해 해소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멜로니의 다른 속셈도 있다.
그녀는 이번 방중을,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극대화하는 카드로 활용할 듯하다. 최근 BBB 보도(링크)를 보면, 유럽연합이 유럽 내 전기차 시장에서 중국 정부의 보조금을 받는 중국산 전기차에 대해 37.6% 추가 관세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유럽연합과 중국 사이에 갈등이 심화되었는데, 이 시점에서 멜로니가 둘 사이의 조정자로 나서며 영향력을 과시한 것이다.
현재 멜로니는 유럽연합 내에서 자신의 기대보다 입지가 좁아진 상황이다. 지난 6월 초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 정당이 많이 당선되며 그 주축인 멜로니가 부상했었다. 그리하여 한 달 뒤에 있었던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유럽연합 행정부의 수장) 선거를 거치며 유럽연합 내 입지가 더욱 높아질 것으로 기대했다.

멜로니 총리와
폰 데어 라이엔 집행위원장
그러나 집행위원장에 재선에 성공한 폰 데어 라이엔은 멜로니와 극우 정당 대신 녹색당을 선택했다. 이로 인해, 유럽연합 행정부 구성에서 멜로니 세력이 사실상 배제되며 멜로니의 상승세가 주춤했다(관련 딴지 기사 링크).
멜로니는 이번 방중을 통해, 다시금 유럽연합 내 입지를 높이려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번 중국과 이탈리아의 정상회담은 노골적으로 개별국가의 정치·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외교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유럽연합이 중국과 전면적인 교역 갈등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유럽연합 주요 회원국인 이탈리아가 중국과 정상회담을 가진 것은 다시금 국제 정치의 형태가 바뀌는 흐름으로 볼 수 있다.
최종 정리, 그리고 한국의 외교...
자, 지금까지 내용에 구체적인 내용을 좀 더 추가해서 최종 정리해 보자.
탈냉전 이후 국제 정치는 이념보다 경제적 상호 의존이 중요해졌다. 외교의 방식도 변해갔다.
국가 중심의 양자 외교(bilateral diplomacy)
↓
다양한 국제 및 지역 기구를 통해서 하는 다자 외교(multilateral diplomacy)
(다자외교란 셋 이상의 국가들이 동시에 서로를 상대하여 특정 의제에 대한 이해조정과 협력 방안을 찾아가는 외교 방식을 말한다)
구체적으로, 지난 2004년 반기문 당시 외교부 장관은 경향신문(링크)에 기고하면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이념이 배제된 채 세계화와 지역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새로운 역사가 전개되고 있다 ... (중략) ... 다자간 정상외교가 중요해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유럽연합이다.
유럽연합은 소련이 붕괴하고 1992년 마스트리히조약을 체결하면서 이전의 경제공동체에서 내무·사법 분야와 대외정책을 추가하며 질적으로 통합을 심화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과거 공산권이던 동유럽으로 양적 통합하며 확대되었다.
1995년 3개국(스웨덴, 핀란드, 오스트리아)이 가입했고, 2004년에는 무려 10개국(폴란드, 헝가리, 라트비아, 슬로바키아, 리투아니아, 체코, 에스토니아, 슬로베니아, 사이프러스, 몰타)이 가입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2007년 루마니아, 불가리아가, 2013년에는 크로아티아가 가입하며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유럽연합이 되었다.

연도별 유럽연합의 확장세
<사진 클릭하면 확대>
과거 공산주의 진영에 속하던 국가들이 자유주의 진영의 선봉이라고 할 수 있는 유럽연합에 가입한 이 장면은, 개별 국가의 외교에서 이념보다 경제적 상호 의존이 중요한 기준이 되었으며, 개별 국가의 양자 외교보다 셋 이상의 국가들이 동시에 벌이는 다자 외교가 국제정치에서 중요해졌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위의 중국-이탈리아 정상회담에서 살펴봤듯, 이 같은 기류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규범과 제도화된 지역 기구에서의 다자외교보다는 양자 외교로의 회귀 되고 있다.
냉전 시기에는 미국과 소련 중 하나를 선택하는 외교였고, 탈냉전 이후 약 2-30년간 이념을 떠나 다양한 국제 및 지역 기구에 가입해 다자외교의 틀 속에서 국가 이익을 도모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특정 지역 기구에 속하면서도 자국의 정치·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양자 외교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생기고 있다.

지난 5일,
헝가리 오르반 총리(왼쪽)가
러시아 모스크바를 방문해
러시아 푸틴 대통령(오른쪽)과
악수하고 있다.
출처-<세계일보>
지난 7월부터 오는 6개월간 유럽연합 순회의장국(Council of the EU presidency)을 맡은 오르반 헝가리 총리의 최근 행보도 이런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의장이 되자마자 지난 5일 현재 유럽연합과 외교적으로 심각한 대립을 하고 있는 러시아를 전격 방문하더니, 8일에는 중국까지 방문했다.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와 오르반 헝가리 총리의 공통점은 두 정상 모두 유럽연합이라는 지역 기구의 회원국 수장이면서 동시에 극우적 정치 성향을 지닌 지도자라는 점이다. 현재 유럽 내에서 극우 세력이 급속하게 부상하고 있는 걸 고려하면, 향후 이 같은 양자 외교의 움직임은 더욱 두드러질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변화하는 국제 정치의 현실 속에서 현재 한국은 어떤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는가?
지난 2년간 한국 외교는 철저하게 1970년대 데탕트도 아닌 1980년대 냉전 시기로 회귀했다. 시대를 역행하고 있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입으로 ‘자유’만을 외치고 있으며, 과거 공산주의 이력을 가지고 있는 국가와의 외교는 담을 쌓고 있다. 단순히 자유주의 진영에 속하면 외교가 끝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3년 연속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하고 있는 것이다. 역대 한국 대통령 가운데 3년 연속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한 것은 윤석열 대통령이 유일하다.

지난 2022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 처음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이
흐뭇한 표정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출처-<한겨레>
지금은 단순한 다자외교보다 다양한 국제 및 지역 기구에 속해 있으면서도 각각의 개별 국가와 양자 외교를 펼쳐야 하는 시대다. 냉전 시기 외교보다, 탈냉전 후 2-30년의 외교보다 훨씬 복잡한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시대다. 다시 말해, 내가 속한 다자외교의 규범과 제도를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그 다자외교에 속한 국가뿐만 아니라 속하지 않은 다른 국가와도 양자 외교를 펼쳐 최대한 국익을 얻어야 한다. 어느 때보다도 섬세한 외교가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안타까운 사실은 윤석열 정부는 이런 외교를 할 실력도, 할 마음도 전혀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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