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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국이 끝나고 난 후 이세돌은 동료기사들과 밤새 복기를 통해 패착에 가까운 실수를 찾아냈다. 그러나 그 실수가 아니어도 바둑을 이기기는 쉽지 않아보였다. 그 패착에 대해 자세히 풀어보고 싶지만 내용이 너무 어렵다. 이해하려면 거의 프로급은 되어야 해서 자세한 건 생략한다. 복기 후에 내린 결론은 패였다. 알파고가 패를 회피하는 것을 보고 패에 그만큼 자신이 없다는 걸로 판단했다. 2국에서 아쉬운 부분은 마지막에 패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냥 순순히 진 것이었다. 이미 진 바둑 패를 한 번 검증 해보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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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알파고는 어떻게 바둑을 두는가?


인간은 생각을 할 때 의식의 흐름을 통해 사유한다. 과거,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일관성과 논리체계가 잡혀있다. 미친놈도 나름대로 논리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알파고는 오직 현재만이 존재한다. 지금 이 순간을 생각하고 둔다. 몇 십수를 안 보고 단 한 수만 본다. 지금은 바둑이 스포츠지만 예전에는 예도였다. 바둑을 통해 선을 추구하고 도를 닦았던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인공지능인 알파고가 깨달음의 경지인 지금 바로 이 순간을 실천하는데 놀랐다. 알파고의 연동방식은 아래와 같다.


필자도 인공지능 잘 모르는데 어떻게 설명할지 모르겠지만 최대한 쉽게 설명해보겠다. 몬테카를로 기법을 써서 알파고가 플레이한다는 것은 조금만 관심있는 분이면 다 아실 것이다. 여기에 평가함수로 딥러닝을 사용함으로써 더욱 정교해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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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러닝으로 사람과 고양이를 구분하는 방식 (구글)


인간은 과거의 수를 통해 지금을 계산하고, 미래를 예측한다. 그럴 경우에는 RNN(recurrent neural network)를 쓴다. 2차원 데이터에 시간축을 넣어서 3차원을 만들고 정확도를 비약적으로 올리는 것이다.


그런데 알파고는 CNN이라는 방식을 쓴다고 한다.


CNN는(convolution neural network)로 2차원 데이터를 입체화 시키는 데 RNN은 시간축을 넣었다면, CNN은 평면에 무한한 레이어를 쌓아서 3차원을 만드는 방식이다. 주로 이미지에서 많이 쓰는 방식. 고양이랑 개를 구분하는 것도 이런 방식이다. 이런 방식은 데이터가 많으면 많을수록 정확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정확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는 것의 의미는 이길 확률이 높은 수를 그만큼 정확하게 찾는다는 뜻이다.


인간이 수를 읽을 때 알파고는 지금 이 순간에서 무한에 가까운 알파고들이 수를 찾아내고, 그 수 중에 가장 이길 확률이 높은 수들을 순위권으로 뽑는다. 그리고 그 순위권에 있는 수로 가장 안전하게 이길 확률이 높은 수를 둔다. 그래서 흐름이 없다. 마치 무술에서 말하는 무박자의 경지다. 리듬이 있고, 흐름이 있으면 감지를 할 수 있다. 빠르면 빠른대로, 느리면 느린대로, 변화무쌍하면 그런대로 규칙성을 찾아낼 수 있다. 하지만 무박자는 대처를 할 수 없다. 이세돌 같은 달인일수록 돌의 리듬과 살기에 민감하다. 마치 중력파를 검출하듯 아주 미세한 낌새에도 반응한다. 그런데 알파고는 리듬이 없다. 그리고 그것이 무섭다.




2. 바둑계 동향


흉흉하다. 초상집이 따로 없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바둑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반문한다. 어떻게 사람이 컴퓨터를 이기냐고. 하지만 바둑계 사람들의 실망감은 이만 저만이 아니다. 본인이 평생 바친, 그리고 끝이 없는 바둑의 세계가 왠지 유린당하는 기분일 것이다. 프로들은 프로대로, 아마들은 아마대로 괴로워한다. 괴로운 것을 둘째치고 지금 당장 문제가 되는 것은 프로 지망생들과 학부모들이다. 이거 바둑을 계속 해야 하는 거야? 말아야 하는 거야? 이런 고민에 휩싸여 있다고 한다. 프로들은 앞으로 사람끼리 두는 대회가 점점 줄어들 것 같아 고민이라고 한다. 바둑고등학교나, 바둑학과 학생들도 고민 될 것이다. 전반적으로 사람들이 바둑에 대해 많이 알기는 했지만 바둑의 신비감이 사라진 것 같다. 하지만 어찌 미래를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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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바둑과 패러다임


다들 인공지능과 인간의 대결이라고 보고, 이세돌의 심리상태라든가, 바둑의 몰락 등의 식으로 뉴스가 나오는데 필자는 바둑 패러다임의 진화로 본다. 알파고가 기존에 없는 수를 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가 잊고 있던 수를 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시대에 이런 대결을 볼 수 있어 영광이다. 바둑 배우기를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생중계로 보면서 알파고와 이세돌의 수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게, 그리고 프로들과 검토하며 이세돌과 알파고의 수를 분석해 볼 수 있다는 게 기쁨이다. 전설로만 내려오는 신의 한수를 3국, 4국에서 이틀 연속으로 그것도 실시간으로 보다니 세상에 이런 시대가 또 있었을까?


알파고는 기존 바둑의 패러다임을 바꾸었다. 바둑은 패러다임 변환의 역사다. 우리는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그리고 태양 주위를 돈다는 걸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이 당연한 걸 증명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고, 심지어는 죽기도 했다.


바둑의 패러다임 변천사에 대해 알아보자. 바둑의 탄생배경은 크게 2가지 설로 본다. 천체관측설이다. 바둑판은 총 19x19로 361칸이다. 이는 1년을 의미한다. 또한 19란 수는 궁극을 의미한다. 무한인 10과 10이 겹쳐서 생기는 숫자가 19인 것이다.(바둑판의 왼쪽 끝에서 열칸, 오른쪽 끝에서 열칸오면 가운데서 서로 만나는 수가 19다) 우주를 상징하는 바둑판에 별의 움직임을 기록하는 것이 천체관측설이다. 또 하나는 전쟁모형설이다. 초기 바둑을 전쟁모형을 기반으로 한 땅따먹기 게임이었다. 포석을 통해 부대를 배치한 후에 전투를 벌이는 게임이었다. 이외에도 천문+전쟁모형을 합친 우칭위엔 설, 인도기원설 등이 있으나 주류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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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AD 25~220) 말기로 추정되는 바둑판


바둑의 패러다임은 초기에는 전투만을 신경썼다. 전투하기 좋게 포진한 후에 상대를 공격하고 방어하는 게임이었다. 그래서 집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기원전부터 서기 1,500년까지는 이런 식으로 두었다. 바둑은 중국에서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전파되었다. 당시 중국이 바둑의 종주국이자 최강자였다. 일본의 고수들이 중국과 교류를 한 흔적들이 남아있는데 중국이 선에서 2점 정도 앞선 것으로 보인다. 진신두의 묘수라는 게 이때 나왔다는 전설이 있다.


그런데 일본에서 바둑의 패러다임 변화가 찾아왔다. 바둑에서 굳이 싸울 필요가 있는가? 결국 바둑이라는 게임은 집이 많은 사람이 이기는 것 아닌가? 전투라는 것도 목적은 집을 많이 차지하기 위한 건데, 집으로 이기는 길이 있으면 굳이 싸울 필요가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이후로 일본바둑은 비약적으로 상승해 중국보다 강해진다.


일본은 바둑을 국가적 차원에서 장려하였다. 4대 가문이라고 하여 바둑만 전문적으로 두는 가문을 지정하였고, 녹봉을 주었다. 또한 4대 가문 중 최고수에게 명인이라는 지위를 준다. 당시 명인에겐 일본 내 모든 바둑인들의 단, 급을 인정해주는 권한이 있었다. 어마어마한 권한이다. 아무리 잘 둬도 명인이 "너! 9급" 이러면 9급인 것이다. 그야말로 바통령에 가까운 권력이다. 명인과 친한 바둑애호가 중에 1명이 있었다. 그의 평생 소원이 1단인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해도 바둑이 늘지 않았다. 그걸 보다 못한 명인이 평생 바둑을 두지 않는다는 조건을 1단을 인허해준 일화도 있다. 물론 그 애호가는 약속을 지켜 평생 바둑을 두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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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사이 명인(왼쪽)


명인 중에 도사쿠라는 분이 계시다. 이 분으로 인해 일본 바둑은 한단계 발전하게 된다. 도사쿠는 수 나누기라는 걸 발견했다. 부분적으로 누가 유리한지 애매할 때 수순을 바꿔봄으로써 가치판단을 쉽고 정확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수 나누기가 가져온 것은 돌의 능률에 대한 개념이다. 당시 도사쿠의 상대들은 이세돌이 알파고한테 지듯이 도대체 잘못 둔 곳을 모르는데 바둑을 지는 사태가 벌어진 거다.


슈사쿠는 고스트바둑왕 사이의 모델이다. 신의 한 수를 둔 것으로 유명하지만 패러다임 발전에는 큰 영향을 못 미쳤다. 시간이 흘러 대륙의 천재 우칭위엔이 일본에 온다.


우칭위엔은 그의 라이벌 기타니 미노루와 함께 지옥곡이라는 옥천에서 침식을 몰두하고 연구를 한다. 그리고 나온 것이 바로 신포석이다. 기존 3선의 실리위주 포석에서 4선의 세력으로 돌이 고공비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신포석으로 당대 일본 고수들과 대결하여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다. 당시 10번기는 이세돌, 구리 대결하고는 비교할 수 없다. 바로 치수가 고쳐지기 때문이다. 10번기를 패배하는 순간 기사생명이 끝나는 것이다. 전투와 땅따먹기 위주의 고전바둑에서 실리로, 실리에서 고공비행으로 바둑의 역사는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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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칭위엔(오른쪽)과 기타니 미노루(왼쪽)


중간 중간 바둑의 천재들은 많았다. 후지사와 슈코, 사카다 에이오, 오다케 히데오, 가토 마사오, 이시다 요시오, 조치훈, 고바야시 고이치, 고바야시 사토루 등. 한국은 조훈현, 서봉수, 유창혁 등이 있었다. 중국은 녜웨이핑, 마샤오춘 같은 천재들이 많았다. 그들의 한 수, 한 수는 대단하였으나 패러다임까지는 바꾸지 못 했다. 그때 한 천재소년이 등장하였으니 바로 이창호다.


이창호의 별명이 신이 붙는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신이기 때문이다. 지금 알파고보고 이창호의 향기가 난다고 하는데 정말 전성기의 이창호처럼 알파고가 바둑을 두기 때문이다. 이창호는 아무도 생각지 못 한 계산의 영역에 특화되었다. 이기는 길이 보이면 부분적으로 손해 보더라도 확실한 길로 간다.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안 건너는 게 이창호다. 쓰다 보니 이창호를 알파고로 바꿔도 문제없다. 특히 이창호는 끝내기에 특화되어있다고 하지만 사실은 중반부터 이미 이기는 길을 알고, 그 길로 가는 것이다. 더구나 이창호의 별명 중 하나가 돌부처다. 알파고가 컴퓨터라서 답답하다면, 이창호는 바로 앞에 앉아있는데 도무지 알 수가 없어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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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알파고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우리가 기존의 안 좋다고 생각한 수, 이런 고정관념들을 모두 부셔버렸다. 부분적으로는 손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아닌 것이다. 우리의 대선배들이 두었던 수들도 다시 한 번 보게 되었다. 바둑인들의 고집 혹은 문제라면 자신보다 약한 사람의 의견은 안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 부분에서 그 수만큼은 자신보다 약한 사람의 의견이 정답일수도 있는데 말이다. 알파고 이후로 활발한 연구가 벌어질 것이다. 그리고 바둑은 한 단계 더 발전할 것이다.


이제 3국으로 들어가 보자.




알파고 vs. 이세돌 3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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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 신의 한수. 이 수를 본 사람들 모두 깜짝 놀랐다. 아니 세상에 이런 수를 둘 수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이세돌은 3국에 대한 전략으로 불확실성이 높은 초반과 패로 승부하고자 했다. 그러나 초반 전투에서 이세돌보다 더 창의적인 수로 대응한다. 이 수는 바둑역사에 남을 신의 한수다. 알파고가 이런 수를 둘 수 있게 만든 구글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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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이 흔든다. 좌변 백의 신의 한수에 바둑은 비세다. 하변 집이 많이 늘어나서 승부가 쉽지 않다. 그것을 타개하기 위한 흔들기지만 쉽지는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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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되는 흔들기에도 알파고는 잘 버틴다. 정말 말도 안 되는 곳에서 말도 안 되게 흔들고 있다. 마치 작두 위에 올라탄 무당이 강신무를 추듯 판을 흔든다. 퍼런 칼날 위로 춤추는 무당. 요란한 방울소리와 귀곡성이 들리는 듯 하다. 요기가 흘러 넘친다. 기가 약한 사람은 쓰러질 것이며, 어지간한 고수라도 정신을 차리기 힘들다. 그러나 상대는 알파고. 그저 모든 것을 계산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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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국 전 준비한 전략인 매우 복잡한 패가 성공하였다. 좌상귀 패맛과 하변의 늘어진 패는 정말 미친 듯이 복잡하다. 프로 레벨에서 봐도 머리가 아프다. 그러나 알파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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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우리만큼 냉정하다. 모든 상황을 단순화 시켜버린다. 사람이라면 흔들렸을 거다. 하지만 정확한 수읽기로 손을 빼버리고 판을 확실하게 좁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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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되어 승부는 끝났다. 알파고의 유일한 약점으로 패를 모두 꼽았는데 그 패마저 인간보다 더 정확하고, 더 강했다. 모두 멘붕에 빠졌다. 과연 알파고라는 괴물을 이길 수는 없는 것인가? 다들 망연자실했다. 그러나 3국을 통해 알파고의 약점이 일부 노출되었다. 바로 사람도 어려우면 알파고도 어려워 한다는 것이다. 이 단순한 사실을 알기까지 너무 힘들었다. 그러나 서로 어려우면 체력에 한계가 있는 인간이 불리하지 않을까? 이런 이야기를 할 때, 누군가 얘기했다. 하지만 우주류 라면 어떨까? 우! 주! 류!


중앙은 미지의 영역. 계산불가의 영역. 그래서 모두들 꺼려하는 곳이다. 우주류로 둔다면 자신보다 강한 사람도 이길 수 있지만 반대로 한참 하수한테도 질 수 있다. 하지만 알파고도 계산하기 힘든 영역에서 싸운다면 승산이 있지 않을까? 옛날에 다케미야 마사키 라는 분이 계셨다. 이분은 자유분방한 기풍으로 한 시대를 풍미하셨다. 한국의 조훈현 9단이 녜웨이핑 9단을 이기고 바둑황제로 등극한 후에 다케미야와 '효성에바리기'배라는 대회에서 3번기를 했는데 시쳇말로 발렸다. 조 9단도 빠른 행마도 우쥬류라는 거대 블랙홀에서는 맥을 못 추었다. 당시 세계 1인자인 조훈현 9단이었지만 다케미야한테 안 된 이유는 자신이 익숙하지 않을 전장이었기 때문이다. 재밌는 것은 다케미야는 녜웨이핑 9단한테 약하다. 결국 이 3명이 서로 물고 물리는 상황이었다. 다케미야는 자신의 기풍을 다들 우주류라고 하는데 불만이 있었다. 자신은 스스로 자연류라고 부른다고 한다. 돌이 그저 흘러가는대로 자연스럽게 두는 것이지, 의도적으로 세력을 키우는 게 아니라고 한다. 이 우주류가 해법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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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케미야 마사키와 조훈현 


3국을 보니 알파고는 오히려 균형을 맞춰가는 것에 능하지 부분 전투에서는 약간의 오류를 보여준 것이다. 하변만 봐도 쉽게 처리할 수 있었는데 굳이 어렵게 두었다. 이는 알파고가 완벽하지 않다는 느낌을 주었다. 과연 다음 판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세돌은 말했다. 내가 진거지. 인류가 진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결국 졌다. 바둑인들은 멘붕에 빠졌다. 프로들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바둑전공자들은 계속 바둑을 해야하는지 고민한다. 결정적으로 현재 프로가 되기 위해 공부 중인 연구생들은 계속 공부를 해야하나 낙담에 빠졌다. 미래에 바둑이 과연 어떤 모습일지 다들 두려워한다.




알파고 vs. 이세돌 4국


다음날 4국이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모두 체념했다. 결국 기계한테 안 되는 것인가. 이제는 5:0으로 끝나지 않으면 이상할 것 같았다. 역대 최고수들이 모두 이세돌과 두는 것 같았다. 후지사와 슈코의 감각, 이창호의 운영과 계산, 조훈현의 부분 전투력. 바둑의 끝인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놓친 게 있다. 그것은 바로 이세돌의 진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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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배우는 애가 이런 수 두면 혼난다. 일단 꿈밤 한 대 맞고 왜 안 좋은 지 얘기해준다. 그런데 알파고가 이런 수를 두니 할 말이 없다. 기존 바둑에 대한 관념이 깨지는 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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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이 흔들어 본다. 흑의 모양을 키우게 한 후 최대한 복잡하게 바둑을 두는 것이다. 3국에서의 대국으로 알파고의 약점이 스치듯 드러났다. 인간이 어려운 부분은 알파고도 어려워 한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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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수로 알파고는 계산서가 나왔다. 이겼습니다를 외쳤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알파고도 계산 못 한 신의 한 수가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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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한수다. 이 수로 흑은 나락에 떨어진다. 이 수를 보고 필자는 이런 느낌을 받았다. 알파고는 높은 곳에서 전장을 내려보며 모든 경우의 예측한다. 그리고 알파고의 명령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무적의 병사들이 명령대로 착실하게 상대를 학살한다. 그런데 태양이 꺼지듯 사라지고 칠흑같은 암흑 속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자신의 손조차 볼 수 없는 어둠. 그리고 갑작스런 폭우로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전황을 파악할 수 없다. 적과 아군이 혼재된 상황이다. 하지만 상대는 이런 상황에서 때를 기다려왔다. 세상에서 가장 어두운 어둠도, 귀를 찢는 듯한 폭우도 이미 익숙하다. 어느새 적장의 지척에 다가와 비수를 꺼낸다. 비수는 적을 베는 순간까지 뽑으면 안 된다. 고수는 예민하다. 살기에 본능적으로 반응한다. 가능하면 적을 베고난 후에도 살기를 비치면 안 된다. 그저 밥먹고, 차 마시는 일상처럼 늘 하던 일처럼 해야 한다. 이 신의 한수에도 알파고는 자신의 심장이 칼이 박혔는지 몰랐다. 한참 후에야 알았다. 자신이 이길 확률이 급격하게 떨어진 것은 신의 한수가 작렬한 후 10여 수 흐른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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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 사람이 멘탈붕괴가 오면 멘붕입니다. 그렇다면 컴퓨터는 뭐라고 할까요?

정답: 씨붕 (CPU 붕괴)


신의 한수에 알파고는 충격을 받았는 지 말도 안 되는 수들을 연달아 둔다. 우변을 보태주면서 죽이고, 지금도 자살하는 수를 둔다. 마치 버그가 일어난 것처럼 자폭을 하는 것이다. 예상치 못 한 상황에 놓이자 자멸하는 것이다. 인디펜던스데이에서 미대통령이 전투기 몰고 윈도우 깔아서 버그 심은 듯 한 신의 한수에 1202대의 알파고들이 자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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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으로 4국은 이세돌의 승리로 끝났다. 신의 한수를 봐서 영광이었다. 사활문제처럼 그 순간만 놓고보면 아주 어려운 수는 아니다(프로 레벨의 경우) 그러나 그 수를 내기 위한 사전작업은 그야말로 경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 4국에서 희망을 보았다. 그리고 놀라웠다. 알파고는 잘 두었다. 그러나 이세돌이 진화했다. 알파고와 싸우며 그 심연 속에서 빛을 찾은 것이다.


과연 5국은 어떻게 될 것인가? 흥미진진하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바둑은 한 단계 더 발전할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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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딴지일보 너클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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