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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이 끝났다. 그리고 프랑스도 끝났다?

 

중세, 아니, 근대까지만 하더라도 유럽에서 문화와 철학, 예술이 살아 숨 쉬는 곳은 프랑스였다. 그중에서도 파리는 단연 으뜸가는 도시로 손꼽힌다. 수많은 미술관과 과학관 등은 프랑스가 과거에 어떤 위치였는지 한눈에 보여준다. 특히, 수 세기를 거치며 진화해 온 루브르는 고대로부터 흐르는 역사의 물줄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누가 어떤 이유로 기획했는지 알 수 없으나, 이번 파리 올림픽을 기점으로 프랑스에 대한 인식은 예전과 많이 달라질 듯하다. 그리고 앞으로 프랑스에 대한 기대 또한 크지 않을 것 같다.

 

사실, 올림픽 개막식을 보자마자 몇 자 적어보려 했다. 이토록 조악하고, 무질서한 올림픽 개막식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영원한 라이벌은 영국이라 했던가. 2012년 영국 개막식 영상을 보면 파리 올림픽 개막식 보다가 타고 넘어왔다는 댓글이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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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서도 만 천여 개의 ‘좋아요’를 받은 인기 댓글은,
 
"Who’s here after watching Paris 2024 opening ceremony"
(파리 올림픽 개막식 보고 온 사람 누구?)
 
331개의 답글이 달렸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파리를 보고 영국으로 넘어왔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래서 개막식을 비교 분석하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2012 런던 올림픽 개회식 _ 영국의 과거와 현재, 미래 20-33 screenshot.png

2012 런던 올림픽 개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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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런던 올림픽 개막식은 역대 올림픽 중 손꼽히는 개막식 중 하나로 여겨진다. 19세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산업혁명 이후 지구촌에서 누리는 문명적 혜택 중 다수가 영국에서 출발한 것들이고, 이를 개막식에 그대로 녹였다. 과거의 향수를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뿐인가. 엘리자베스 여왕과 007 제임스 본드, 비틀즈와 미스터빈, 데이비드 베컴, 그리고 산업, 문화(영화, 음악, 코미디까지), 스포츠 같은 다양한 영역에서 영국은 (좋든 싫든 간에) 세계인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충분히 큰 바운더리를 갖추고 있었다.
 
그런 측면에서 영국 vs 프랑스 구도의 올림픽 개막식 비교, 흥미롭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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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런던 올림픽 개회식에 등장한 미스터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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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선수 데이비드 베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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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적어도 그땐 뭔가… 조금 더 기다려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라도 폐막식을 멋지게 장식하기 위한 전조로서, 개막식을 나름 창의적(?)으로 꾸몄을 수도 있으니까 하는 조금의 기대가 있었다.
 
사실, 영국도 영국이지만, 프랑스의 혁명은 20~21세기를 살아가는 인류에게 큰 인식론적 깨우침을 주지 않았던가. 자유, 박애, 평등으로 대표되는 프랑스 혁명의 슬로건은 인간이 인간됨을 유지하며, 막연하기만 했던 삶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끼게 한 인류사적 사건이었다. 그래서 뭔가 연결고리를 만들어 큰 스토리 속에 전개되는 일부가 개막식에 표현된 것일 수 있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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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올림픽 폐막식의 톰 크루즈

 

폐막식을 보고 난 뒤, 나는 주저 없이 컴퓨터 앞에 앉았다. 다음 올림픽 개최지가 LA이기 때문에 톰 크루즈가 등장한 것은 개연성이 있다지만, 폐막식 OST를 마이웨이로 설정한 무리수는 정말 이해가 불가능이었다.
 
모든 이목은 할리우드 영화배우에게 쏠려 버리고, 결국 파리 올림픽 폐막식은 어떠한 메시지도, 의미도, 이야깃거리도 없는 조잡한 삼류 영화를 연상케 했다. 혁명을 주도하며 현대인들의 가치관을 새롭게 바꿨던 프랑스의 철학적 사조 역시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과욕은 화를 부른다, 졸리 VS 보일
 

[개막식 하이라이트] _모든 것이 예상을 깬 파격_...파리올림픽 개막식 20분 컷 _ SBS _ 2024 파리올림픽 7-41 screenshot.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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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식에서 배를 타고 선수들을 입장시킨 의도는 이해한다. 센강을 따라 펼쳐져 있는 파리 명소들을 전 세계인에게 소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이다.
 

[개막식 하이라이트] _모든 것이 예상을 깬 파격_...파리올림픽 개막식 20분 컷 _ SBS _ 2024 파리올림픽 9-58 screenshot.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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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 박물관만 제대로 관람하려 해도 일주일이 모자란다. 열흘이 주어져도 훑어볼 수 있을까 말까다. 그런데 오르세, 노트르담, 콩코르드 광장 등 역사적 장소를 몇 시간 내에 모두 소개하려는 급급함은 보는 이들이 어떤 것 하나에도 집중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선택과 집중 측면에서 원칙이 무너진 개막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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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올림픽 총감독 토마스 졸리

 

이번 파리 올림픽의 개/폐막식을 연출한 감독은 현재 프랑스의 배우이자 젊은 영화/연극 연출가로 이름을 알린 토마스 졸리(Thomas Jolly)다. 1982년 생이니, 올해 42살이다. 이번 파리 올림픽 감독직을 맡게 된 이후, 그는 “자신만의 독특함을 선사하고 싶다!”며 포부를 밝힌 바 있다. 애초에 계획 자체가 ‘독특함’에 맞춰져 있었기 때문에 자기만의 창의성을 마음껏 선보인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독특하다는 것 이외에는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이 없는 연출이었다.
 

[개막식 하이라이트] _모든 것이 예상을 깬 파격_...파리올림픽 개막식 20분 컷 _ SBS _ 2024 파리올림픽 5-15 screenshot.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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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반응만 본다면, 감독이 의도하고 계획한 대로 연출이 된 것이 맞다. 본인에겐 성공적인 개∙폐막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파괴적 창의성은 독특함보다는 오히려 기괴함을 선사했다.
 

[개막식 하이라이트] _모든 것이 예상을 깬 파격_...파리올림픽 개막식 20분 컷 _ SBS _ 2024 파리올림픽 5-0 screenshot.png

파리 올림픽 개회식의 마리 앙투아네트 퍼포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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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마리 앙투아네트의 잘린 목을 보이는 퍼포먼스는 졸리 감독이 얼마나 역사적 인식이 부재한가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물론, 왕가에서 나고 자란 마리 앙투아네트의 특수성이 있지만, 그녀가 프랑스-오스트리아의 외교적 우호 관계를 위해 루이 16세와 정략결혼을 했다는 점, 당시 프랑스의 적대국이었던 오스트리아의 공주였고 그래서 국민 정서가 좋지 않았다는 점, “빵이 없으면 케잌을 먹으면 되지 않느냐”라는 망언은 사실은 실제로 한 적 없는 날조된 야사에 불과하다는 점 등을 고려했을 때, 그녀의 목이 잘려 나간 단두대 처형이 얼마나 야만적이었는지 정도는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프랑스 혁명이 권력의 상징인 왕권을 무너뜨려 전 인류적 평등사상을 뿌리내린 위대한 업적임은 어느 정도 동의하지만, 그럼에도 이와 같은 과격한 퍼포먼스는 ‘역사 인식의 부재’가 자아낸, 비판받을 만한 엉터리 수준의 연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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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올림픽 총감독 데니 보일

 

반대로, 런던 올림픽의 개∙폐막식의 총감독을 맡은 데니 보일(Denny Boyle)은 2008년 슬럼독 밀리언에어(Slumdog Millionaire)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한 영국의 대표적인 영화감독이다. 인간애를 바탕으로 연출된 그의 작품들을 보면, 런던 올림픽 연출이 왜 전 세계인에게 감동을 선사할 수 있었는지 알 수 있다. 가장 영국적이면서도 보편성을 추구했다. 인류 발전에 있어 영국이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드라마로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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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런던 올림픽 개회식에 등장한 엘리자베스 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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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현재가 동시에 녹아든 정치제도(입헌군주제)는 여왕의 등장으로 보여주었고, 그들의 문화적 특수성(제임스 본드, 미스터 빈 그리고 스파이스 걸스와 폴 매카트니까지)은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담아, 마치 한 편의 연극무대를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생중계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헤이 쥬드의 "나~ 나나 나나나나~ 나나난 나, 헤이 쥬드"를 외치고 있었다.
 
보일은, 여왕을 배우로 활용하며 대담하게 연출했다. 영국이라는 이름으로 특화된 모든 인재풀을 사용해, 20세기 역사의 대서사극을 만들어낸다. 영국 특파원이라고 너무 편향된 시각으로 평가하는 것 아니냐는 핀잔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파리 올림픽 개∙폐막식은 2012년 런던 올림픽을 떠올렸을 때,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형편없었다는 것이다.
 
지금, 남 말할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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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평가는 개인의 몫이다. 대중의 반응이 모두 옳다고 볼 수도 없다. 그럼에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은, 많은 사람들이 파리 올림픽과 런던 올림픽을 비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런던과 비교했을 때, 파리 올림픽의 행사는 대중의 호응을 얻지 못했고, 크게 비판받았다는 점이다.
 
다만, 올림픽 행사로 프랑스 자체를 폄훼하는 것은 옳지 않다. 행사의 규모는 차치하고서라도, 하나의 행사만으로 해당 국가의 문화적 자산을 의심할 수 있겠나. 특히나 가슴 아픔 점은, 우리가 각박한 평가를 할 만한 수준에 있는지도 미지수라는 것이다.
 
여전히 프랑스는 한국은 아직 시도 조차해 보지 않은 우주 과학이나 핵융합 같은 첨단 산업의 선두 주자이며, 한국이 먼발치에서 프랑스를 따라가지 못한 영역이 분명히 존재한다. 더불어, 독일의 나치를 청산하고 과거를 깨끗이 정리하고자 애쓴 부분도 우리가 본받아야 하는 부분이다. 뉴라이트 출신으로 의심받는 독립기념관장이 임명되고, 광복절 행사를 취소하는 일이 벌어지는 한국에서 과연, 그깟 올림픽 행사가 엉망이었다고 손가락질할 입장은 아니라는 말이다.
 
만약, 친독 성향의 누군가가 프랑스 혁명을 기념하는 기관의 장으로 선출되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전국적으로 6월 항쟁 같은 시위가 벌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