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바닷가에 붙어 사는 나는 여름만 되면 곰팡이와 사투를 벌인다. 숨쉬기 힘든 더위에도 시시때때로 난방을 틀어야 하고, 전기세가 겁나지만 거의 하루 종일 제습기를 틀어 놔야 까만 곰팡이 습격을 피할 수 있다. 잘 쓰지 않는 공간은 여름만 가까워지면 까만 곰팡이 천국이 된다. 까만 곰팡이 습격은 냄새로 먼저 알게 된다. 인류 진화의 과정에서 까만 곰팡이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던지, 까만 곰팡이 냄새를 맡는 순간 거부감과 혐오감에 치를 떨게 된다.
나처럼 오래된 시골집을 고쳐 살면 까만 곰팡이는 해롭지만, 어쩔 수 없이 한 지붕 아래 살아야 하는 식구가 된다. 냄새는 나는데 보이지 않으면 벽지를 떼어내 새로 붙이고, 결로 방지 페인트를 구석구석 다시 칠하는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그렇게 해도 까만 곰팡이는 집주인의 찰나 같은 게으른 순간을 호시탐탐 노린다. 아무리 먹고살기에 바빠도 내 건강에 치명적이지 않은 수준으로 까만 곰팡이를 관리하려면 항상 환기하고, 제습하고, 마스크 쓰고 락스로 박박 닦아내는 수고를 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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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갑자기 모습을 환히 드러내는 소위 '뉴라이트'들을 보면 이 까만 곰팡이가 떠오른다. 윤석열 정권이 집권하자 이명박, 박근혜 시절에 이어 뉴라이트가 기생...증식하기 정말 좋은 환경이 마련되었다. 설마 했지만 절대 피어서는 안 되는 수도꼭지, 베갯잇, 숟가락 같은 곳에 피기 시작했다. 아무리 봐도 일본 제국주의자 같은 뉴라이트가 한국학 연구원, 국사편찬위원회, 동북아역사재단, 심지어 독립기념관에도 까맣게 피어 있다.
까만 곰팡이를 박멸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고 손을 놓을 수는 없다. 길거리에 벌거벗고 튀어나와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포자를 퍼뜨리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더 강력한 돌연변이가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평소에도 락스와 걸레를 들고 세심하게 관리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내 건강뿐만 아니라 내 식구, 내 이웃, 내 동포의 건강도 지킬 수 있다.
자, 그럼 뉴라이트 박멸용 락스를 제조해 보도록 하자.
어떤 명칭이 좋을까, 뉴라이트? 일제 라이터? 친일 토착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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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식민지 근대화론이라는 까만 곰팡이를 박멸하기 전에 용어 정리가 필요해 보인다. 21세기 한반도에 기생하는 기괴한 생명체에 어울리지도 않는 ‘뉴라이트’ 말고 대한국민 모두, 듣자마자 단박에 정체를 파악할 수 있는 명징한 이름을 붙여야 한다. 글 좀 읽었다는 사람의 눈에 '뉴라이트'라는 명칭은 전혀 이들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대한민국에서는 '민족', '문화', '공영'을 최우선 가치로 두셨던 김구 선생이 암살당한 이후, '보수'는 멸종했기 때문이다.
이승만 독재 정권 이후 보수라 참칭하는 이들은 대부분 권력 독점과 시장 독점을 지키려는 파시스트들이 이름을 바꾼 것인데, 한편으로 이들은 전통적 파시스트와는 결이 다르다. 이들에게는 파시즘의 중요한 핵심 가치인 민족이나 민족국가라는 개념이 없다.
이들은 권력층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전 계층에 걸쳐 적어도 30% 가까이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권력이든 재력이든 독차지해야 직성이 풀리는 이들이다. 자기에게 이익만 된다면 나라를 팔아먹어도 한나라당이라는 명언(?)을 남기는 시장 상인이 목격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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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남의 식탁 밑에 떨어지는 빵 부스러기로 연명하는 처지에 있어도 내일은 식탁을 독차지하리라 꿈꾸는 이들이다. 한껏 부족한 파시즘적 욕망을 채울 수 있다면 누가 봐도 360도 다면 무식한 윤석열을 자기 당 대통령 후보 삼고, 일본인 제국주의자가 아니라면 생각도 못 할 식민지 근대화론을 배설하는 이를 서울대 교수에 임용하고, 자동차 배기 소음보다 못한 패설, 식민지 근대화론을 기계적 중립입네, 새로운 학설입네 하며 매국 수구 언론들이 확장하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민족도, 동포도, 나라도 없다. 새로운 보수라는 의미의 '뉴라이트'는 이들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다음,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회자되는 '일제 라이터......'같은 생활 용어의 변주도 적합한 것 같지 않다. 물론 기발하고 해학이 넘쳐 기억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긴 하다. '일제 라이터'의 '일제'는 일본 제국주의의 약어일 테고 ‘라이터’는 ‘가스라이팅’과 연결되니 말장난도 좋다. 하지만 맥락이 없으면 혼동하기 쉽고 무엇보다 용어가 너무 무표정하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선호하고 강력하게 추천하는 용어는 자주 쓰고 있는 '토착 왜구'다. 이 용어는,
1. 역사성
일제의 강제병탄(1910년)이 감행되기 전인 1908년, 대한매일신보 기사에도 발견될 정도로 오래전부터 쓰였다. 더구나 1945년 해방된 이후에도 사용되었다. 이 용어는 전우용 박사가 잘 정리한 것처럼 친일 매국을 한 조선인을 멸칭하기 위해 사용했다. 이완용이나 송병준처럼 대한제국의 권력가뿐만 아니라 먹고 살기 힘들고 어쩔 수 없다는 핑계로 일제에 부역했던 고만고만한 일제 앞잡이 조선인들에게도 사용했다. 따라서 21세기 자주독립 민주국가 대한민국에서 친일 반민족-반국가 반역 행위를 자행하는 윤석열과 그 추종 세력, 뉴라이트를 지칭하기에 이보다 더 적합한 용어는 없다.
2. 직관성
말할 것도 없이 세 살 먹은 어린애도 들으면 단박에 알아챌 수 있을 만큼 직관적이다. 맥락이 필요 없다. 심지어 들으면 정동(affect), 격한 감정의 요동까지 촉발한다. 현대 뇌과학에서도 하나씩 밝혀지듯, 인간의 기억은 호르몬 분비처럼 물질적 반응이 동반된 느낌이나 감정을 수반하지 않으면 효과적으로 지속되지 않는다. 논리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다른 해석의 여지가 없을뿐더러 '친일 토착왜구'는 식민지의 피지배 민중이 가질 수밖에 없었던 어두운 감정과 분노까지 선명하게 소환한다.
3. 확장성
심지어 '친일 토착왜구'는 의미 확장성까지 갖추었다. 일본 제국주의에 부역하는 조선인만이 아니라 일제가 패망하자 도주 기회를 놓쳤거나 숨겨 놓은 재산이 아까워 한반도에 남아 국적 세탁을 하고 눌러앉은 일본인 제국주의자까지도 확대 지칭할 수 있다. 토착화된 왜구, 정신세계와 지향하는 바는 완전히 황국신민이면서 한반도에만 기생하는 살아 있는 화석에게 이보다 더 맛깔난 용어는 없다.
'친일 토착왜구'는 이렇듯 정치-사회학적 개념어로서 갖춰야 하는 기본 조건을 거의 완벽하게 갖추었다. 더구나 ‘토착왜구’의 원형인 ‘토왜’는 랩핑에 가까운 말소리 장난도 가능하다. ‘토왜’에 약간 스웩(swag)을 넣어 힙하게 발음하면 구토 유발을 하는 부작용이 좀 있긴 하지만 ‘토왜액~~~’ 이런 것도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간첩이나 밀정은 더 이상 사용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자신 신분을 숨기고 활동을 해야 간첩이나 밀정이지 대놓고 친일 반민족-반국가 반역을 하는 이들을 밀정이나 간첩으로 부를 수는 없다. 잘못하면 도리어 우리가 무식하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 그냥 '친일 토착왜구', ‘친일 토왜’, 혹은 ‘친일 토왝’이라고 하면 된다. 명료하고 군더더기 없다.
![정말 독립기념관장 맞나_ _피가 거꾸로 솟을 판_ [뉴스.zip_MBC뉴스] 0-36 screenshot.png](https://img-cdn.ddanzi.com/files/attach/images/977701/324/113/818/ae43611fcb95121db1d18affb54efa6d.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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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근대화론의 근간, 합법성과 근대성
'친일 토왝'이 목 놓아 떠드는 식민지 근대화론은 두 가지 전제가 떠받치고 있다.
‘합법성’과 ‘근대성’
이들은 일제 강점이 불법적 강제 침탈이 아니라 대한제국이 자발적으로 일제에 흡수되기로 결정한 합법적 합병이라고 주장한다(합법성). 또 한편으로 대한제국은 자력으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근대적 민주주의를 구현할 수 없었던 구제 불능의 전근대적 군주제 국가였다고 주장한다(근대성). 따라서 합법성과 근대성, 이 두 가지만 무너뜨리면 식민지 근대화론을 폭삭 무너뜨릴 수 있다.
먼저 친일 토왝이 우겨대는 ‘합법성’부터 부숴보자. 어렵지 않다.
토왝이 말하는 '합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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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토착왜구들은 1910년 일제의 대한제국 불법 강제병탄을 합법적이라 주장한다. 대한제국의 주권을 독점했던 황제 순종이 일본 제국의 흡수 합병에 동의했고 합법적으로 조약을 맺었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되면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제 병탄한 1910년부터 패망한 1945년까지 한반도는 합법적인 일제 영토가 되고 대한제국 백성은 자동으로 일본 천황의 신민, 즉 일본 국민이 된다. 따라서 일제 강점기 동안 조선인의 독립운동이나 무장 투쟁은 반란이나 폭동이라 우길 수 있게 된다. 이 주장에는 한 입으로 두말하냐는 식의 빈정거림도 섞여 있다.
1910년 경술국치의 불법성은 일제와 대한제국의 합병을 추인하고 백성에게 공포하는 순종 황제 칙어에 순종의 어새가 아닌 고종의 도장이 찍혔다는 사실과 순종 유조에서 자신은 한일합방을 반대했다고 밝힌 점 등으로 이미 확인되었다. 설사 당시 유일한 주권자였던 순종이 친일 매국노들과 일제 제국주의자들의 기만술에 넘어가 세계 지도와 국제 외교 무대에서 국권도, 국호도, 영토도 모두 지웠다 해도 한일합병조약이 당시에도 불법인 것은 변함이 없다.
필자 주변에도 친일토왝이 아님에도 한일합방이 합법적이고 우리가 힘없고 못나서 당한 거라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친일토왝들이 증거 자료라며 옛 한국어, 한자, 일본 글이 잔뜩 적힌 사료 더미를 던져 놓으니, 주눅이 들어 그럴 수도 있겠다 넘어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 친일토왝들이 들이미는 그 어떤 사료도 일제 강점의 합법성을 보증하지 않는다. 고종, 순종이 자의로 을사늑약과 한일합병 문서에 도장을 찍었더라도 일제 강점은 당시도 지금도 불법이다.
이 불법성을 증명하기 위해 산더미 같은 사료 증거 따위는 필요 없다. 한국이와 욱일이가 등장하는 간단한 비유 하나면 된다. 필자는 이 비유를 사용해서 일제 강점의 불법성을 설명하는 데 실패해 본 적이 없다.
강도로 변한 이웃, 욱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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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는 인터넷도 쓰지 않고 종이 통장을 들고 은행에 가서 대면 거래를 고집하는 고지식한 인물이다. 그 옆집에는 욱일이라는 조폭 이웃이 살고 있었다. 예전부터 막무가내로 한국이 집에 들어와 난동을 부리며 물건을 훔쳐 달아나곤 했던 정말 질 나쁜 이웃이었다. 예전 기억이 너무 안 좋아 한동안 왕래가 없었는데, 어느 날 욱일이가 한국이 집 문을 두드렸다. 옛날 같지 않게 발로 차지 않고 문명인처럼 손으로 얌전하게 노크했다. 한국이는 일단 문틈으로 염탐했다. 예전처럼 온몸에 문신하고 소매 없는 난닝구 차림의 동네 조폭, 양아치 모습이면 문을 안 열어줄 작정이었다.
웬걸, 욱일이는 예전과는 다르게 넥타이까지 맨 양복 차림에, 포마드를 잔뜩 발라 머리도 단정하게 넘긴 모습으로 서 있었다. 좀 느끼하긴 했지만, 옛날 동네 조폭 모습보다는 나았다. 난닝구 차림에 나무로 만든 쪼리를 찍찍 끌고 막무가내로 문을 부수고 집에 난입해서 칼을 휘두르는 광질(제주도 말로 정신이 나간 채 하는 폭력을 동반한 미친 짓)과 노략질을 일삼았던 때와는 완전 딴판이었다.
사람처럼 꾸미고 찾아왔길래 한국이는 속는 셈 치고 욱일이에게 문을 열어 주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들어오자마자 품속에서 육혈포를 꺼내 예전과 똑같은 강도가 되었다. 한국이의 예금을 손쉽게 빼돌리기 위해 한국이 명의로 인터넷도 깔고 노트북을 갖다 놓았다.
한국이 집에서 쓸 만한 물건을 자기 집으로 옮기기 위해 벽을 헐고 쿠팡 물류센터에서나 볼 수 있는 상품 이송 레일도 깔았다. 한국이가 신고하지 못하게 일단 휴대 전화를 뺏고 방마다 CCTV를 달고 집 밖에는 드론을 띄웠다. 그것도 모자라 아예 인공지능으로 작동하는 로봇 감시견을 한국이 옆에 풀어 놓았다.
여기서 질문 하나.
한국이는 경찰에 욱일이를 강도로 신고할 수 있을까, 없을까?
한국이가 욱일이를 신고할 수 없다고 하는 대답 사람은 욱일이가 한국이 집에서 하는 짓은 합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반면, 욱일이가 하는 짓이 강도질이라고 생각하면 당연히 불법이 된다. 욱일이를 강도로 신고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게 친일토왝이다. 원래는 일제 극우가 했던 소리다. 한국이가 자의로 욱일이에게 문을 열어줬으니 욱일이는 합법적으로 한국이 집에 초대받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일제 극우와 친일토왝은 욱일이는 한국이 집에 인터넷을 깔아 불편하게 은행에 직접 가서 대면 거래하던 한국이에게 온라인 거래의 편리함을 알려 줬고, 이웃과 편리하게 중고 거래를 할 수 있게 담을 허물어 이송 레일도 깔아 줬으며1, 쓸데없이 자리만 차지하는 75인치 OLED TV를 자그마치 5,000원이라는 엄청난 금액을 한국이에게 지불하고 사주는 대신 한국이 집에 걸맞는, 빈티지한 14인치 LCD TV를 10,000원이라는 엄청나게 싼 가격에 팔았다고 주장한다.2 CCTV나 로봇 경비견 같은 첨단 감시 시스템으로 불법 침입과 절도를 예방하고 있다고도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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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유를 듣고 욱일이가 한국이네 집에서 한 모든 짓이 서로에게 득이 되는 좋은 일을 했다고 주장하는 것이 친일토왝들이다. 일제는 이를 ‘대동아공영’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이 비유가 이해되었다면, 친일토왝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이 산더미처럼 쌓아 놓은 조선총독부 생산 자료에 현혹되지 말라는 내 주장을 이해할 것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이 태산처럼 사료를 쌓아 놓는 것은 자기주장의 합리적 근거를 보여주려는 게 아니라 물량 공세로 상대 기를 죽여 자기주장의 비합리성과 몰상식을 덮으려는 수작일 뿐이다.
1919년 이후, 더 분명해진 일제 강점의 불법성
이 잔혹 동화를 염두에 두면, 1919년 이후 일제 강점의 불법성은 이론의 여지 없이 명약관화해진다. 1919년 한반도 조선인들은 남녀노소, 빈부귀천과 상관없이 스스로 주권자로 자각하고 3.1 만세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통해 대한민국의 주권자인 조선 민중은 한일병합을 원치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3
주권자가 황제에서 국민으로 바뀌었고, 주권자인 대한민국 국민이 조약의 원천 무효를 주장했기에 일제는 한반도에서 물러났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버티는 것은 변명의 여지 없이 불법이다. 역사가 증언하고, 우리가 기억하고 양심적인 일본인들도 동의하듯 일제 강점은 한반도 주권자인 조선 민중의 의지에 반한 불법 강점이었다.
헤이그 특사 3인
(왼쪽부터)이준, 이상설, 이위종 열사
사실 이보다 앞서 고종도 1905년 을사늑약의 불법성을 국제 사회에 고발하고 시정하려 했다. 그래서 1907년 헤이그에서 열렸던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를 보냈다. 하지만 일제와 동맹관계에 있었던 대영제국의 방해와 다른 서구 열강의 외면으로 불법적인 을사늑약 문제를 국제사회에서 공식적으로 해소할 수 없었다.
만국평화회의의 주된 목적은 서구열강이 제국주의 팽창 과정에서 발생하는 국제 분쟁에서 서로 간 피해를 최소화하며 가급적 평화롭게 해결하기 위한 국제 규약을 만드는 것이었다. 당시 을사늑약이 대한제국의 주권자 고종의 외교권을 제한하고 있었지만, 만국평화회의 참석 목적이 애당초 외교권이라는 주권을 제한하는 을사조약의 불법성을 고발하는 것이었다.
즉, 만국평화회의에 대한제국 특사가 참석하겠다고 하는 것은 대한제국의 주권자 고종이 일제와 국제 분쟁(혹은 갈등) 상태에 놓였음을 선포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회의의 목적을 생각하면 만국평화회의의 회원국이기도 했던 대한제국의 특사가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했어야 하고, 이 문제를 만국평화회의의 의제로 상정했어야 마땅했다. 하지만 대한제국의 주장을 만국평화회의의 공식 의제로 올리면 관리도 못할 만큼 엄청난 규모의 식민지를 운영하고 있던 서구 열강은 식민지 불법성을 자인하며 스스로 제국주의의 존립 기반을 무너뜨리는 꼴이 된다.
어이없지만 만국평화회의를 구성했던 서구 열강들은 을사늑약이 이미 국제적으로 인정된 조약이기 때문에 대한제국은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할 권리가 없다며 참석 요청을 묵살했다. 만국평화회의는 약소국이나 식민지 피지배 민중에게는 빛 좋은 개살구였다. 이 회의는 무력을 독과점했던 서구 열강이 세력 확장 과정에서 다른 열강과 경쟁하다 입게 될 자기 손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서구 열강만을 위한 자기방어 조치였다. 그러니 식민지로 전락할 위기에 처한 힘 없는 약소국가나 이미 식민지가 된 국가의 피지배 민중의 목소리는 자기 이익이 되지 않는 한, 서구 열강은 전혀 들을 생각이 없었다.
일제의 불법 강제 병탄 전까지 맺었던 모든 대한제국(조선)과 일제의 조약은 시대와 상관없이 누가 보더라도 불평등 조약이었다. 일제는 자신이 1858년 처음 미국과 맺었던 통상조약도 불평등 조약이었기에 누구보다 이 점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일제도 대한제국만큼이나 자신이 서구 열강들과 맺었던 불평등 조약을 파기하려고 애썼다. 일제가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려는 대한제국의 특사를 막으려 발악했던 것도 자신의 불법성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4
국제간 불평등 조약의 불법성을 고발하고 시정하려는 노력은 주권을 가진 국가의 정부라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다. 그 정부가 무도한 타국에 영토와 주권을 빼앗긴 망명정부라면 영토와 주권을 회복하는 일에 더 매진해야 한다.
일제의 폭력과 위압에 맞서 선열들이 목숨을 초개처럼 버리며 독립을 쟁취했던 것도, 그 덕분에 독립된 나라에서 번영과 자유를 향유하는 후예들이 선열을 잊지 않고 해마다 모여 기리는 것도 자연스럽고 마땅한 일이다. 일본에 과거 반성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일제에 붙어먹은 친일 매국노들과 부역자들을 한 명씩 호명하며 단죄하는 것은 다시는 같은 역사를 반복하지 말자는 다짐이자 우리도 일제처럼 무력에 기대 패권에 목매는 광포한 파시스트 국가가 되지 말자는 자기 성찰이다. 이는 현대 문명국가라면 자연스럽게,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런 마땅한 일을 일제 불법 강점기의 대한제국이나 대한민국에는 마땅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이 21세기 대한민국 각처에서 까맣게 모습을 드러낸 모지리 '친일 토왝(뉴라이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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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패망 전, 국제사회가 인정한 일제 강점의 불법성
역사에서 보듯 일제는 1919년 이후에도 관동이나 난징에서 벌인 대규모 학살, 위안부로 포장한 집단 강간, 징용과 일자리 공급으로 가장한 강제 노역과 노동 착취, 정상 거래인 수출로 가장한 수탈 등 온갖 불법적이며 폭력적 방법을 동원하여 조선인의 기본권을 압살하고 재산권을 침해했다. 1907년 만민평화회의에서는 일제의 불법 행위를 고발할 수 없었지만, 1943년 카이로 회담에서 미국, 영국, 중국은 일제 강점으로 조선 민중이 자유인이 아닌 노예 상태에 놓여 있다고 선언하며 1945년 일제가 패망하기 전에 일제 강점의 불법성을 국제적으로 확인했다.
앞서 말한 세 열강은 한국의 민중이 노예 상태에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적절한 때에 한국이 자유롭게 되어 독립할 것임을 결정한다.
(The aforesaid three great powers, mindful of the enslavement of the people of Korea, are determined that in due course Korea shall become free and independent.)
-Kairo Declaration, 1945
이 구절은 일제의 아시아 팽창 전략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안중근, 김좌진, 홍범도 같은 선열들의 끈질긴 무장 투쟁이 없었다면 삽입될 수 없었다.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척살에 크게 감명받았던 장개석은 일찌감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정부로 인정하며, 항일 투쟁에서 대한민국의 지대한 역할을 인지하고 있었다.
카이로 회담에 참석했던 미국, 영국, 중국이 대한민국을 국가로 임시정부를 망명정부로 인정하고 있었다는 것은 ‘한국 민중(the people of Korea)’이라는 표현이 잘 보여준다. 한반도에 사는 민중(the people of the Korean peninsula)이 아니라 ‘한국 민중’이라고 국호만 사용해서 표기했다. 1943년 카이로 회담이 열리기 전에 김구 선생과 임시정부 인사들은 장개석을 만나 대한민국의 독립을 카이로 회담의 의제로 삼길 주문했고, 위의 인용문처럼 국제사회는 카이로 선언을 통해 대한민국의 독립을 공식적으로 확인했다.
따라서 친일 토왜들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국제사회가 인정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헛소리다. 오히려 선언문에서 보는 것처럼 미국을 위시한 연합국들은 일제를 나치의 독일 제3 제국과 마찬가지로 불법 폭력 불량배 집단으로 규정하고 국제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안타깝게 대한민국은 카이로 선언처럼 일제 패망과 동시에 주권 국가로서 독립하지 못했다. 이후 열린 얄타 회담(1945년 2월)부터 대만으로 쫓긴 장개석 대신 스탈린이 들어오고 포츠담 회담(1945년 7월)에는 루스벨트 사망으로 소심하고 겁 많은 트루먼이 들어왔다. 처칠은 남아 있었지만, 트루먼, 스탈린, 이 세 정상은 대한민국을 한 번도 국가라는 것을 가져 본 적 없는 양 다뤘고 어처구니없지만 한반도 민중이 자치능력을 가질 때까지 신탁을 하기로 결정했다. 조선 500년 역사로만 따져도 미국이나 영국보다 더 체계적인 관료 조직을 더 오랫동안 운영했던 한민족을 아주 미개한 원시 부족 정도로 치부한 것이다.5

신탁 통치 반대 플래카드를 들고 거리로 나온 시민들
한반도 신탁통치 준비를 전혀 하지 않은 미군정의 무능, 친일 부역 세력이 뒤섞인 우익의 폭력성, 이승만의 교활함에 잘 대처했다면 우린 신탁 없이 친일 토왜들을 청산하고 한반도에 하나 된 대한민국 제헌 정부를 세울 수도 있었다. 그 정부는 송진우 같은 인물들이 걱정하듯 김일성이 주도한 공산주의 사회가 될 가능성은 매우 낮았다. 이런 추측은 단순한 짐작이 아니다. 당시 대한민국 민중의 마음 지형이 양극단에 서 있던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모두 배척하고 있었다.
1946년 7월, 한반도 해방 공간에서 미군정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대한민국 민중이 가장 선호했던 체제는 자본주의(13%)도, 공산주의(10%)도 아닌 사회주의(70%) 체제였다. 자신을 우익이라고 응답한 사람 중에 69%가 사회주의를 선택했다.6 자유주의, 자본주의, 민족주의, 공산주의 등 온갖 이념의 세례를 받았던 해방 공간에서 스스로를 ‘우익’이라 규정하며 선택한 체제가 ‘사회주의’였던 것이다. 이런 성향은 스스로를 ‘좌익’이라고 답했던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좌익의 64%가 ‘사회주의’를 택했다.
이렇게 균형 잡힌 마음 지형이었으니 한반도에서 대한민국 단일 정부가 수립되었더라면 대한민국은 북유럽 3국보다 훨씬 앞서 세계에서 가장 앞선 평등하고 자유로운 사회 민주주의 국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애석하게도 국제정세가 미국과 소련의 양대 패권 구도로 바뀌고 쟁패에 눈먼 소련과 미국, 교활한 이승만, 우익의 탈을 뒤집어쓴 파시스트 친일 토왝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바람에 단일 정부 수립은 실패했다. 대신 4.3 항쟁, 보도연맹, 여순사건 등에서 보듯 민중의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여겼던 일제만큼이나 간악하고 무도한 이승만 독재 정권이 들어섰다.
다시 말하지만 친일 토왝들이 주장하는 일제 병탄의 합법성은 한마디로 구토 유발 헛소리다. 이 주장이 유일하게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일제 강점이 합법적이라는 식민지 근대화론은 일본인과 친일 토왜만이 할 수 있는 주장이라는 사실뿐이다.
지난해 5월, 도쿄 긴자의 오므라이스 노포에서 만남을 가진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
지금이 일제의 불법 강점기이고 무도한 니혼진 폭도들이 제복을 입고 총칼을 휘두르며 종로 바닥을 헤집고 다니던 시절이었다면 황국신민이 되자, 내선은 일체다, 천황을 위해 가미카제에 타자, 내지 가서 부자 되자 소리치는 친일 토왜들이 출몰해도 하나도 이상할 게 없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세상이 아니다. 세계 어딜 가나 대한민국 여권만 보이면 ‘안녕하세요’ 한국말로 인사하는 출입국 관리 직원들이 수두룩하고, 물가 싸다고 일본인들이 줄지어 우리나라에 여행 왔던 것처럼 이제는 한국인이 일본 물가 싸다고 줄 서서 여행가는 세상이다.
소득과 임금으로 두 나라의 우열을 가리는 것은 무의미해지고 일본이 20년 앞섰네, 30년 앞섰네 하는 말도 하기 멋쩍은 세상이 되었다. 모든 분야에 K를 붙여도 국뽕처럼 느껴지지 않는 세상이 되었는데 일제의 불법 강점이 합법이라 주장하며 용산, 대전, 부산 전국 곳곳에서 출몰하는 친일 토왝들을 목격하는 게 그냥, 그냥 어이가 없고 신기하기까지 하다.
피지 말아야 하는 곳에 핀 까만 곰팡이가 맞을 운명은 닿으면 몸뚱이가 터지는 락스 걸레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랑가 모르겠다.
<계속>
주
1) 친일토왝은 일제가 식민지 한반도에 건설한 철도망, 도로망, 전력망 같은 사회간접자본과 전범 기업의 시설은 결과적으로 조선인을 위한 한반도 근대화였다고 주장한다.
2) 이영훈은 일제가 한반도에서 생산한 쌀을 한반도에서 내지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수출한 것이지 수탈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이 주장은 일본인 중에서도 양심은 흔적조차 남지 않은 일본 제국주의자 입장에서만 맞는 주장이다. 일제의 식민지 시장 경제구조는 다른 서구 열강과 마찬가지로 식민지 피지배 노동자 착취를 통해 부를 축적하는 이중 구조다. 일제 입장에서 합법적인 경제활동이라 기술하는 ‘수출’은 데칼코마니처럼 식민지 피지배층인 조선 농민의 입장에서는 정확히 낮은 임금으로 노동력을 착취한 ‘수탈’이 된다. 조선 농민의 노동력만 수탈한 것이 아니다. 식량도 수탈했다. 한반도에서 생산한 쌀을 일본에 대량 수출하다 보니 한반도 조선인은 늘 식량부족에 시달렸다. 식량 부족을 메우기 위해 조나 기장을 수입하는 이중고에 시달렸다.
3) 2012년 대한민국 대법원은 파기 환송 판결에서 같은 취지로 일제 강점기를 불법 강점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대한민국 제헌헌법은 그 전문에서 “유구한 역사와 전토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상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 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 독립 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라고 하고, …… 또한, 현행헌법도 그 전문에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 이념을 계승하고”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대한민국 헌법의 규정에 비추어 볼 때, 일제 강점기 일본의 한반도 지배는 규범적인 관점에서 불법적인 강점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1965년 박정희 정권이 일본과 얼렁뚱땅 한일 기본 협정을 맺고 단돈 5억 불에 한일 청구권을 해소하는 바람에 강제 동원된 피해자들이 대한민국 최고 법원인 대법원까지 가서 힘들게 얻어낸 판결이었지만 실제 내용은 대한민국 국민에겐 상식적 내용이다. 일본 정부가 주장하듯 19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는 일본 극우들의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는 윤석열 정권과 친일토왝은 대한민국 최고 법원인 대법원의 판결도 부정하는 일본 제국주의와 의식을 같이 하는 동일체다.
4) 일제 잔존세력과 극우세력이 장악한 일본 정부가 소녀상을 철거하고 사도 광산 같은 강제노동의 흔적을 지우며 역사 세탁을 하려는 것도 과거 일제의 행위가 불법 행위임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윤석열도 자기가 지금 하는 짓이 어떤 짓인지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변했거나 백지상태인 윤석열 주변에서 밀정들이 속삭여서 도자기 박물관의 비싼 도자기를 깨부수는 코끼리가 된 게 아니다. 좋은 술과 음식에 몸이 반응하는 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윤석열 대통령이 때와 자리에 맞춰 반응을 통제 못 하는 경향이 있다는 건 인정한다.) 인간이 보이는 자연스러운 생물학적 반응이다. 윤석열이 친일 행각을 아무렇지 않게 벌이는 것은 일본 문부성의 장학금을 받은 일본 유학생 아버지를 따라 일본 여행을 하며 맛있는 음식을 먹고 깨끗한 거리를 보며 평소에도 선진국 일본을 선망하고 동경한 나머지 정신적, 심리적 돌연변이를 일으키며 성장했기 때문이다. 그는 무지하지 않다.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윤석열의 친일 성향을 주변 사람들이 몰랐던 건 친일 성향을 드러낼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5) 현대 민주주의 관점, 민중 일반이 주권자라는 관점에서 조선을 비판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하지만 조선이 창업했던 15세기를 기준으로 조선이 가졌던 국가 경영 조직을 다른 나라의 조직과 비교하면 조선은 가장 선진적인 조직을 갖고 있었다. 당시 명나라를 제외하면 이런 국가 운영 갖춘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 당쟁, 세도정치, 사화로 빛이 많이 바랬지만 조선 조정은 당시 유럽이나 미국은 가져보지 못한 합리적인 집단 의사결정 체계였다.
6) 미군정청, ‘미래 한국정부의 형태와 구조’ 19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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