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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에 그림으로 그려진 <슬램덩크>지만, 등장인물의 귀나 입을 통해 노래가 들려올 때가 있다.

※ 이 글에 나온 곡들은 이곳(링크)에 모아두었습니다.

 

나 완전히 새됐스

 

가장 먼저 등장하는 곡은 소연이의 백호 따위에겐 1도 없는 마음을 확인한 후 부르는 애달픈 노래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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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에게 차인 후 부르는 노래라면 여윽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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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 - <새>

출처 - (링크)

 

𝅘𝅥𝅯 이랬다가 저랬다가 왔다 갔다~ 나 갖다가 너는 밤낮 장난하나~♪

𝅘𝅥𝅯 나 한순간에 새됐스~당신은 아름다운 비너스~♪

𝅘𝅥𝅯 너만을 바라보던 날 차버렸어~나 완전히 새됐어~♪

 

슬픈 내용이지만 웃겨서 더 슬픈 노래, 싸이(Psy)의 데뷔곡인 <새>는 2001년에 나왔다. 이때 정말 충격적이었지. 백호가 소연이한테 차인 건 1990년이라서, 엄밀히 따지자면 고증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노래가 너무나 찰떡이기 때문에, 이 정도는 만화적 허용으로 충분히 용인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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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2001년 발행한 완전판 이후 판본에 수록되어 있다. 이전에 출판된 구판에는 신승훈의 <보이지 않는 사랑>이 수록되었다. 짝사랑의 아픔을 절절하게 표현한 발라드곡으로, 90년대 초반 큰 인기를 끌었다. 이보다 더 애절할 수 없는 신승훈의 목소리와 가사가 백호의 쓸쓸한 뒷모습에 오버랩되어, 슬픈 장면이지만 웃참이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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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훈 - <보이지 않는 사랑 (1991年)>

출처 - (링크)

 

이 곡 역시 1991년 하반기에 발표된 곡이라 작중 시점(1990년)과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한국어판 단행본이 번역/출간된 1992년 시점에서는 내용으로 보나, 시의성으로 보나, 여러모로 초월 번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선곡이었다.

 

원서의 이 장면 BGM은 한국어판과는 결이 약간 다르다. 대중가수의 유행가가 아닌, 인터넷 밈 같은 노래가 실려있어서 코믹 만화의 정체성에 충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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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판에서는 감히 글로벌 대박 가수 싸이의 데뷔곡을 '이런 이상한 노래'로 치부하지만, 원서에는 양호열과 노구식이 어떤 곡인지 얘기해준다. 도나도나(Dona Dona, ドナドナ)라는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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昼下がり 市場へ 続く道

荷馬車が  ごとごおと 子牛を乗せて行く

悲しそうな 瞳で 見ているよ

 

한낮 시장으로 이어진 길 

짐마차가 털털거리며 송아지를 태우고 간다

슬픈 듯한 눈동자로 보고 있네요

 

여기에 강백호 작사의 독자적인 가사도 덧붙어 있다.

 

哀れ花道 振られてゆくよ

フラフラフラフラれっぱなし またフラれたの

フラフラフラれっぱなし 51人目

 

불쌍한 강백호 차이고 가요

차차차차이고 또 차였네

차차차이고 또 차여서 51명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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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나도나>라는 노래는 2차대전 중 유대인의 슬픈 운명을 도살장에 끌려가는 송아지에 빗댄 곡이다. 짐마차에 실려 시장으로 팔려 가는 (사실은 죽으러 가는) 송아지의 눈망울을 노래한 매우 애처로운 노래로, 미국에 정착한 유대인 숄롬 세쿤다(Sholom Secunda)와 아론 자이틀린(Aaron Zeitlin)이 1940년 이디시(Yiddish)어로 발표하였다. 60년대에 미국 가수 조안 바에즈(Joan Baez)가 영어로 부른 후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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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an Baez - <Donna, Donna>

출처 - (링크)

 

그런데 이유는 모르겠으나, 일본에서 이 노래와 제목인 도나도나가 인터넷 밈(넷슬랭)이 되어버렸다. 범죄자가 체포되어 연행되거나, 공공장소에서 난동 부리다가 보안요원으로부터 끌려가는 등 의지에 상관없이 강제로 끌려가는 대부분의 상황을 도나도나 당하다(ドナドナされる)라고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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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파생되어, 원치 않는 지방 근무지에 부임할 때, 괴로운 일이 기다리는 장소에 어쩔 수 없이 가야 하는 상황에도 사용하게 되었다. 차량이 견인되는 상황에도 차를 송아지에 빗대어 ‘도나도나 된다’고 말한다.

 

의미는 점점 확장되어, 어떤 형태로든 이별하는 상황도 도나도나라고 일컫게 되었다. 백호가 소연이한테 차인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에 도나도나 노래가 삽입된 것도 이런 연유로 보인다. 이 만화가 연재된 게 인터넷이 존재하지 않던 90년대 초반인 걸 생각하면, 인터넷 밈이 되기 전부터 속된 관용어로 일본에서 널리 쓰였던 것 같다.

 

현재는 의미가 더욱 확대되어, 월요일 아침 직장에 억지로 출근하는 자신의 모습을 자조적으로 말할 때, 이유를 불문하고 트럭 짐칸에 사람이 타고 가는 상황,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을 카트에 태워서 소풍 가는 모습도 도나도나라고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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桜木花道の歌 ひゅるりら- <sakuragi hanamichi's heartbreak song>

출처 - (링크)

 

한편, TVA의 이 장면에서는 중후한 목소리의 남성 가수가 백호의 슬픔을 절절하게 노래한다. 일본어 원판과 한국판(대원동화)에 동일한 곡이 삽입되었다. 가사는  ‘ヒュルリラ~ チュルリラ~(휴루리라~ 츄루리라~)’의 반복으로 추정된다. 쓸쓸하게 바람이 부는 소리 ‘휘이잉~’을 표현한 음성상징어이다. 한국어라고 생각하고 들으면 얼추 ‘ㅇㅇ주리라~ 흐르리라~ 시간이~ 스르르르~’로 들리기 때문에, 일본 대중문화에 대한 규제가 있던 90년대에도 무리 없이 삽입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곡은 TVA 오리지날인데, 아쉽게도 OST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아무도 적확한 가사와 전체 곡 생김새를 모른다. 다만 라틴계 팬들이 TVA에 흘러나오는 노래의 조각조각을 짜깁고 빈틈을 창작하여 만든 곡이 유튜브에 떠돌아다니므로, 한 번쯤 찾아서 들어보면 매우 웃길 것이다. Sakuragi Heartbreak Song 따위의 키워드로 검색하면 많이 나온다.

 

어느 비 오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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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은 유도 사나이가 보낸 정예 요원들을 해치우고 라면 먹은 날이다. 완벽하게 지각한 주제에 (이때 시각은 오전 10:38)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는 강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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あめあめ ふれふれ かあさんが         

비가비가 내려내려 어머니가 (뒤에 다른 가사 이어짐)

あめあめ ふれふれ もっとふれか?

비가비가 내려내려 더 오려나?

 

일본의 동요 아메후리(雨降り)이다. 우리나라 독음으로는 '강우'로, 글자 그대로 비가 온다는 뜻이다. 뒷부분은 백호가 멋대로 바꿔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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あめふり(可愛い童謡)

출처 - (링크)

 

유튜브에서 검색하면 이런 분위기의 썸네일이 주로 나온다. 척 봐도 비 오는 날이면 온 국민이 흥얼거리는 국민 동요라는 걸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빨간 우산 파란 우산 찢어진 우산♪♬’ 정도 될까? 강백호처럼 가사를 내키는 대로 바꿔 부르는 점도 똑같다.

 

이것을 한국어판에서는 뭐라고 번역했는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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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사람 𝅘𝅥 ♪

언제나~ 말~이 없는 그~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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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수봉 - <그때 그 사람(1978)>

출처 - (링크)

 

심수봉의 <그때 그 사람>이다.

 

가사에 ‘비’가 들어간다는 점 때문에 이 곡으로 번역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90년대에 16세 고교생이 트로트 느낌의 70년대 유행가를 흥얼거리는 게 영 어색하다. 번역가가 사심을 듬뿍 담아 무리수를 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New Power Generation

 

서태웅은 작가 이노우에가 가장 애정하는 캐릭터라 그런지, 본인의 이상과 취향을 많이 투영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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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공원에 연습하러 가는 서태웅이 듣고 있는 노래는 Prince의 <New Power Generation>이다. 가사 We are the new power generation, We want to change the world가 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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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nce - <New Power Generation>

출처 - (링크)

 

전설적인 싱어송라이터 Prince가 1990년 8월 발표한 곡이다. 이즈음 프린스는 Nude Tour라는 이름의 콘서트 투어를 했는데, 일본에서 대흥행하였다. 이 콘서트로부터 약 한 달 지난 1990년 10월 <슬램덩크> 연재가 시작되므로, 서태웅의 트렌디한 음악취향에 프린스가 녹아든 것은 매우 개연적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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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Power Generation>은 노래 제목이기도 하지만, 프린스의 백 밴드 이름이기도 하다. 일본 콘서트 때도 함께했다. 이노우에는 제14화의 제목도 New Power Generation으로 짓고, 이 에피소드가 실린 단행본 구판 2권의 표지 부제목도 New Power Generation으로 하여 밴드에 대한 팬심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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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웅은 어지간히 프린스를 좋아하는지, 다음 해 발매된 앨범도 구입했다. 인터하이 현 예선이 시작되기 직전, 소연이가 북산의 라인업을 소개하는 장면에서는 <Diamonds and Pearls(링크)>를 듣고 있다.

 

이 곡이 수록된 앨범 <Diamonds and Pearls>는 1991년 10월 발매되었다. 이 장면이 나온 제73화는 1992년 초에 나왔으므로, 발매되자마자 이노우에가 한창 꽂혀 있을 때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

 

마이클 조던을 모티브로 하여 나이키 트레이닝 셋업을 즐겨 입고, 파나소닉 로드바이크를 타며, 소니 워크맨으로 당대 최고의 팝 프린스를 듣는, 잘생긴 고교생 서태웅의 모습은 이노우에가 고교 시절 동경했던 모습을 집대성한 것이 틀림없다.

 

서태웅의 음악 취향에 공감한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에도 서태웅이 자전거 타며 들었을 법한 목록을 만들고 있다.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서태웅 플레이리스트, 流川カセットテープ, Rukawa Mix 따위의 키워드로 검색하면 많이 나오는데, 구성은 대동소이하다. 개인적으로는 ‘플레이리스트’라는 말보다는 ‘카세트테이프’로 제목을 달아둔 것이 더욱 신뢰가 간다.

 

나도 서태웅에게 빙의하여 목록을 만들어보았다. 90년대 히트곡들을 들으며 추억여행을 해보자.(➤ 바로가기 링크)

 

1. New Power Generation - Prince

2. Remember the Time - Michael Jackson

3. Smells Like Teen Spirit - Nirvana

4. Even Flow - Pearl Jam

5. Fantastic Voyage - Coolio

6. You - Radiohead

7. Girls and Boys - blur

8. Give It Away - Red Hot Chili Peppers

9. Ready or Not - Fugees

10. So What'Cha Want - Beastie Boys

11. Diamond and Pearls - Prince and N.P.G.

12. The Fly - U2

13. Creep - T.L.C.

14. When Doves Cry - Prince

 

<더 퍼스트 슬램덩크> OST에서도 이노우에의서태웅의 음악취향이 일부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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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irthday - LOVE ROCKETS(映画『THE FIRST SLAM DUNK』オープニング主題歌)

출처 - (링크)

 

너무 멋있어서 충격적이었던 연필 드로잉 오프닝. 등장인물이 한 명씩 등장할 때마다 악기가 하나씩 더해지는 연출로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이 장면의 음악은 일본 록밴드 The Birthday의 <LOVE ROCKETS>로, 이노우에가 이 밴드를 좋아하여 의뢰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 개봉일에 공개되었고, 이 곡이 수록된 앨범도 개봉 4일 후에 발매되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정작 밴드 리더인 치바 유스케는 의뢰를 받기 전까지 슬램덩크를 본 적도 없고, 슬램덩크의 이미지도 잘 몰랐다고 한다. 의뢰를 받은 후에야 슬램덩크를 봤다고 하며, 곡을 만들 때는 ‘질주감’에 가장 중점을 두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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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FEET – 第ゼロ感(映画『THE FIRST SLAM DUNK』エンディング主題歌)

출처 - (링크)

 

우리나라에서는 엔딩 타이틀곡인 제0감(第ゼロ感)이 큰 인기를 끌었다. 이 곡을 비롯하여 영화 전체의 음악을 담당한 밴드 10-FEET는 한국에서의 인기 상승으로 내한 공연까지 했다.

 

10-FEET는 농구 경기의 박진감, 공격적인 느낌을 담는 데 주력하였다고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영화 제작 초기에 작업 의뢰를 받은 탓에 정지된 그림만 보고 곡을 만들어야 했다. 어떤 이미지가 어울릴지 몰라 요구된 양보다 많은 곡을 작업해 놨다고 한다. 다행히(?) 영화 제작이 길어지면서 음악 작업기간도 한없이 길어져서 2년 넘는 기간 동안 수많은 곡을 만들어 둘 수 있었고, 영화에 채택되지 않은 곡은 본인들의 정규앨범에 수록했다.

 

이들의 앨범 コリンズ(Collins)도 영화 개봉 약 10일 후에 발매되었다. 들어보면 서태웅의 취향보다는 송태섭의 정서를 표현했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 팽팽한 경기장 분위기보다, 어린 시절 형과의 추억이나 오키나와의 바다를 떠올리게 하는 서정적인 곡이 많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90년대풍이라 귀에 착 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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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원작으로 돌아오면, 서태웅이 음악 들으며 자전거 타는 장면은 한 번 더 나온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듣는 곡이 무엇인지 도저히 모르겠다.

 

말풍선에 가사는 We can H____ the Night 라고 쓰여 있는데, Prince의 노래 중에 이런 제목이나 가사를 가진 곡은 없다. H로 시작하는 동사가 저기 들어갈 만한 게 뭐가 있을까? Hide? Have? Hold? 다 찾아보았지만, 그런 가사가 들어가는 곡은 없었다. 있더라도 2000년대 이후 발매된 곡이었다. 그래서 아예 verb start with H로 검색해서 나오는 동사들을 하나씩 넣어가며 찾아보았다. 그 결과, 그나마 ‘이건가?’ 싶은 것이 Bob Dylan의 <Visions of Johanna(링크)>이다.

 

밥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되기도 하는 곡이다. 제목의 Johanna는 당시 그의 연인이었던 Joan Baez인 것으로 팬들은 추정하고 있다. 위에서 살펴본, 백호가 애절하게 불렀던 도나도나(Donna Donna)를 히트시킨 그 조안 바에즈가 맞다.

 

이 노래의 가사에 We can hear the night watchman clicks his flashlight라는 문장이 나온다. 밥 딜런은 프린스 못지않게, 아니 프린스보다 훨씬 더 유명한 음악가이니 이노우에가 인용했다 해도 이상할 것은 없긴 하다. 그렇지만 프린스와는 분위기가 너무 달라서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과연 서태웅이 프린스 듣다가 밥 딜런을 들었을까? 트렌디한 90년대 고교생이 60년대 노래를 들었다고?

 

일본 네티즌도 이 말풍선에는 별로 주목하지 않는지, 떠도는 루머조차 없다. 이노우에에게 직접 묻지 않는 이상 알 수 없을 것 같다.

 

내가 그렇게 나쁜 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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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하이 개막식 날 밤, 히로시마의 한 료칸. 송태섭은 풍전고 녀석들과의 기싸움을 떠올리고 울컥한다.

 

이때 부른 노래는 보이그룹 Checkers(チェッカーズ)의  <ギザギザハートの子守唄>(까칠한 마음의 자장가)라는 노래다. 송태섭이 부른 부분은 노래의 첫 소절인 小っちゃな頃から悪ガキで~♪ (어릴 때부터 말썽꾸러기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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ギザギザハートの子守唄

출처 - (링크)

 

Checkers는 80년대 아이돌 보이밴드로, 이름에 걸맞게 항상 체크무늬 의상을 입고 등장하는 것이 특징이다. <ギザギザハートの子守唄>(까칠한 마음의 자장가)는 이 밴드의 데뷔곡이다. 1983년 데뷔하여 90년대 초반까지 인기가 대단했다고 한다. 몇 곡 들어보면 90년대 우리나라 가요와도 분위기가 일부 닮아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송태섭은 왜 이 노래를 불렀을까.

 

서태웅은 갓 출시된 최신 팝을 즐겨 듣는데, 송태섭은 나온 지 10년도 넘은 곡을 흥얼거린 이유가 뭘까. 힌트는 노래의 가사에 있다.

 

이 곡은 불량청소년의 방황을 노래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말썽꾸러기였던 주인공은 15세에 ‘불량’이라고 찍히게 된다. 항상 예민하여 건드리는 모든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여자 친구와 가출을 시도했다가 잡혀 와서 맞기도 한다. 세부 내용은 좀 차이가 있지만, 처음부터 문제아 딱지를 달고 등장한 송태섭과 상통하는 면이 있다.

 

단편 <피어스>와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에서 그의 행적을 고려하면 더 그럴듯하다.

 

<피어스>에서 초등학생 송태섭은 해안의 바위 동굴에 아지트를 마련하거나, 안전핀으로 귀를 뚫는 등 얌전한 아이와는 거리가 멀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에서는 형의 실종 이후로 엇나가며 문제아 노선을 타기 시작한다. 그러면서도, 자기 행동으로 엄마가 괴로워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는 등 완전히 글러 먹은 상태는 아니다.

 

あーわかってくれとは 言わないが そんなに 俺が悪いのか

이해해 달라고는 하지 않겠지만, 내가 그렇게 나쁜 놈일까

 

이 곡의 후렴은 위 가사가 반복된다. 스스로를 납득하지 못해 괴로워하는 송태섭의 심정과 비슷하다.

 

가사 중에는 친구가 오토바이 사고로 죽었다는 내용도 나온다. 가사를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면, <더 퍼스트 슬램덩크>에서 송태섭이 거칠게 오토바이를 모는 장면을 보고 철렁했을 것 같다. 노래의 주인공은 졸업식 날, 꿈이 없어졌는데 졸업은 해서 뭐하나 하는 회의감을 표한다. 다행히 우리의 송태섭은 농구를 통해 내적 갈등을 극복해 내고, 노래의 주인공과는 다른 결말을 맞이한다.

 

30년 전 이노우에가 이 노래를 말풍선에 써넣을 때, 이런 결말까지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다만 <슬램덩크>에서는 전혀 드러내지 않았지만, 이 시점에 이미 이노우에가 송태섭의 개인적 서사를 어느 정도 구상해 둔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 가능하다. <피어스>에서 드러나는 말썽꾸러기 어린 시절, <더 퍼스트 슬램덩크>에서 보여주는 불량청소년 서사를 일부 염두에 둔 복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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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만남 (Wrongful Meeting)

출처 - (링크)

 

한국어판 구판에는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의 한 소절이 수록되었다. 이 단행본이 한국에 번역/출간된 1995년 상반기 최고의 히트곡이라 별 고민 없이 번역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번역가가 <잘못된 만남>을 의도한 것은 자명해 보이나, 작은 오류가 있다. 원래의 가사는 ‘너와 내 친구는 어느새 다정한 연인이 돼 있었지~♪’인데, 송태섭은 교묘하게 ‘다정한’을 빼먹고 흥얼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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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서 2집 PETSDNS(1993) - 그래도 이제는

출처 - (링크)

 

2001년 새로 출간된 판본 완전판에는 김종서의 <그래도 이제는>으로 바꾸어 수록하였다. 앞서 구판에 번역한 곡이 너무나 맥락을 무시했다는 점을 깨달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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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는 삶의 무게에 허덕이는 청춘의 아픔을 노래하는 내용이다. 첫 소절의 가사에 원서와 동일하게 ‘어리다’는 단어가 들어간 점이 십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원서의 노래와 달리, 후렴구에서 ‘그래도~ 이제는~ 앞만 보며 가는 거야~날 기다릴 세상이 있으니♪’라고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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