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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택배가 왜 곤지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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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당근마켓>

 

택배 시스템에 대해 잘 모르던 시절, 옆 동네지만 실제 거리로는 아주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과 중고 거래를 한 적이 있다. 원래 직거래를 하기로 했는데 상대가 약속한 날 못 나올 것 같다고 택배를 부탁하기에 택배비를 받고 물건을 붙인 뒤 운송장 번호를 알려주었다. 택배 조회를 할 줄 모른다는 말에 요즘은 검색 엔진에 택배 회사명과 운송장 번호를 치면 택배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있다고 설명을 해드렸다. 그것으로 끝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날 저녁, 황당한 메시지를 받았다.

 

“물건이 곤지암에 가 있다고 나오는데? 어떻게 된 일인가요? 거기가 얼마나 먼 곳인데...”

 

나는 처음에 이해를 잘 못하고 구매자의 질문에 뭐라 대답해야 할지 망설였다.

 

“택배를 부쳐 달라고 하시지 않았나요?”

 

“바로 코앞이잖아요. 그래서 오늘 올 줄 알고 택배비까지 따로 줬는데.”

 

같은 동네에서 택배를 보낸다고 당일 배송이 될 줄 알았다고? 구매자의 말에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었지만, 최소한의 설명을 해주었다.

 

“택배를 보내면 원래 그래요. 아무리 가까운 곳에 보내도 최소 하루는 걸려요.”

 

“아니 엎어지면 닿을 거리인데 곤지암까지 갔다 온다는 게 말이 되나요?”

 

곧이어 전화가 걸려 왔다.

 

“여보세요.”

 

수화기 너머 들리는 목소리는 카랑카랑하지만 나이가 느껴지는 할머니 목소리였다.

 

“하이고, 내가 이거 열무마켓인가 뭣인가를 손자가 깔아줘서 하긴 하는데... 잘은 몰라서.”

 

어떻게 말씀드려야 하나 생각하던 때, 때마침 등장한 손자가 상황을 해결해 줬다.

 

“할머니, 내가 통화 할게.”

 

전화기를 건네받고 대신 통화하면서 상황을 전해 들은 손자는 내게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할머니에게 잘 설명하겠다고 말했다. 통화가 끝난 후 할머니는 다시 연락 오지 않았다.

 

가까운 곳으로 보내는 택배인데 왜 곤지암 허브를 거쳐 가는 걸까?

 

한데 모아 내보낸다, 허브앤스포크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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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링크)

 

여기에 대해 알아보기 전 오해를 막기 위해 한 가지만 더 설명하고자 한다. 가까운 곳으로 보내는 모든 택배가 허브를 거쳐 가는 것은 아니다. 많은 택배 기사는 송장의 분류 코드를 보고 자기 관할 구역, 혹은 같은 영업소 동료 직원들의 관할 구역인지 알아본다. 그래서 일을 꼼꼼히 처리하는 기사의 경우 송장을 보고 자기 구역이나 동료 직원 구역으로 가는 택배면 미리 챙겨 놨다가 허브로 보내지 않고 바로 서브터미널에서 해당 구역의 기사를 찾아 택배를 넘긴다. 하지만 물량이 많아 그런 것 하나하나 신경 쓰지 못하는 경우, 가까운 곳이지만 해당 택배 기사와 연이 닿지 않는 구역일 경우, 어김없이 허브를 거친다.

 

그래도 가까운 곳이면 허브로 보내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닌가?

 

내 택배 한 건만 생각하면 당연히 이런 의문이 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택배는 음식 배달과 다르다. 가까운 식당에서 음식 배달을 시키면 빨리 배달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택배는 그와 전혀 다른 시스템으로 움직인다.

 

이 시스템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에게 너무 친숙한 그 이름, ‘곤지암 허브’와 ‘옥천 허브’의 ‘허브’가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한다. 허브는 ‘중간 물류센터’다. ‘HUB’라는 대문자 알파벳으로 표기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길고 긴 영어의 약자인 것 같지만, 무언가의 줄임말은 아니다. 영어단어로 ‘hub’ 무언가의 중심지를 뜻하며, 바퀴의 중간 부분을 뜻하기도 한다.

 

‘허브’란 여러 지역에서 보낸 택배 상자를 한꺼번에 모아놓는 ‘물류의 중심지’이다. 내 택배 하나만 생각하면 가까운 곳으로 보내는 택배는 어딘가를 거치지 않고 바로 배달하는 게 빠르지만, 전 국민이 각기 다른 곳에서 보낸 택배를 이르면 다음 날 배송 완료하는 거시적인 택배 시스템을 놓고 보면 그렇지 않다. 여러 지역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올 수 있는 교통의 요충지에 한꺼번에 모은 뒤 분류해서 한꺼번에 내보내는 게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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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 중인 프레데릭 스미스

출처 - (링크)

 

이렇듯 여러 지역에서 붙여진 택배를 한 곳에 모아 분류한 뒤, 각 지역으로 내보내는 시스템을 업계 용어로 ‘허브 앤드 스포크(HUB and Spoke)라고 한다. 이 시스템은 페덱스 창업자인 프레데릭 스미스가 고안한 시스템인데, 한 가지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때는 1965년, 그때까지만 해도 도시에서 도시로 화물을 운송하는 ‘Point to Point’ 물류 시스템을 사용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예일대 경제학부 학생이었던 프레데릭 스미스는 이런 시스템보다 훨씬 효율적인 방법이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리고 물건을 한곳(HUB)에 모아 분류한 뒤 미국 전역으로 내보내면 24시간 안에 화물을 운송할 수 있을 거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이 아이디어가 결국 우리가 물건을 주문했을 때 이르면 다음 날 받아볼 수 있는 현재 택배 시스템의 시초가 되었으니 얼마나 혁신적인가?

 

프레데릭 스미스는 이 내용을 담아 학기 말 리포트를 제출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결코 좋은 점수라고 할 수 없는 ‘C’를 받았다. 이 리포트를 읽은 담당 교수는 내가 이 글의 서두에서 예시로 쓴 할머니처럼 ‘가까운 지역에 배달하는데 멀리 있는 중간 터미널을 거쳐 가는 것은 비효율적’이라 생각했다. 나는 이 교수 이야기를 알고 나서야 앞서 언급한 할머니를 이해하게 됐다. 당시 최고의 브레인이었을 예일대 경제학부 교수도 이러한데, 택배를 이용해 본 적 없고 택배 시스템을 모르는 할머니가 ‘물건이 왜 그 먼 곤지암까지 갔는지’ 이해를 못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에겐 다행히도 프레데릭 스미스는 ‘C’를 받았다는 이유로 그 아이디어를 포기하지 않았고, 지금도 쓰이고 있는 ‘허브 앤드 스포크(HUB and Spoke) 시스템으로 발전시켜 석사 논문을 발표했다. 이는 훗날 전 세계 운송업계 1위라고 불리는 페덱스 창업의 기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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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브앤스포크 시스템

 

그렇다면 배송 조회에 나오는 ‘sub’는 무엇일까?

 

SUB는 지역중계터미널로 각 지역의 영업소에서 모은 택배가 HUB로 향하기 전 1차로 모이는 곳이자 HUB에서 분류된 택배가 고객에게 가기 전 들르는 곳이다. 한마디로 서브 터미널은 택배 기사의 근무처라고도 할 수 있다. 여기까지 알았으면, 이제 우리의 택배가 어떻게 오고 가는지 그 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

 

내게 오는 길

 

택배 기사는 아침에 서브 터미널로 출근해 허브에서 도착한 물건을 받아 들고 각 가정에 배송을 간다. 퇴근할 때는 관할 구역의 편의점, 상점 등의 집하처에서 보내는 택배를 수거해 서브터미널에 가져다 놓는다. 서브터미널에서는 택배기사가 가져온 물건들을 커다란 11톤 차량에 가득 실어 곤지암, 옥천, 대전 등의 허브 터미널로 보낸다.

 

그런데 이렇게 큰 차에 물건을 가득 실어 허브로 보내는 서브 터미널이 지역마다 있다. 어떤 지역은 한 지역에 여러 개의 서브 터미널이 있기도 하다. 그렇게 수많은 서브 터미널에서 오는 택배가 허브로 가다 보니, 허브에는 정말 많은 택배가 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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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링크)

 

이제 허브에서는 택배 상자가 어디에서 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택배 상자가 어디로 갈지, ‘받는 사람 주소’에 따라 택배 상자가 분류된다. 서울에서 보내는 택배도, 대전에서 보내는 택배도 목적지가 똑같이 김해의 어느 동네라면 같은 쪽에 분류되어 함께 그 구역의 서브터미널로 보내진다. 이 과정이 매끄럽게 진행되면 우리는 부산에서 서울로 보낸 택배도 바로 다음 날 받아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만약 이 과정이 지체되거나 도중에 사고가 일어나면 택배 속도가 느려진다.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만약, 내가 오늘 편의점에서 택배 하나를 보냈다고 치자. 이때 연락처나 주소 등 받는 사람 정보를 잘못 기재했을 경우, 받아야 할 사람이 택배를 받지 못했는데 ‘배송 완료’라는 문자가 가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받는 사람 정보를 잘못 기재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택배가 분실됐다’고 생각해 택배사에 연락한다. 택배사에 분실 신고 건 대부분이 알고 보면 이런 식으로 애초에 보낼 때 주소를 잘못 기재한 것이 많다.

 

그럼, 주소를 제대로 기재했는데도 분실되거나 느리게 가는 택배는 왜 그런 걸까?

 

나는 택배를 보냈는데 택배 기사님이 그날 사정이 있어 물건을 수거하지 않는다면 택배는 하루 늦어진다. 물건을 수거했다 해도 기사님이 이용하는 서브터미널의 배차가 원활하지 않다면 그날 허브 터미널로 가는 11톤 차에 택배를 싣지 못할 수도 있다.

 

배차가 원활하지 않은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날 본사 직원이 필요한 차량 숫자를 예상하지 못하고 부족하게 불렀을 경우, 혹은 명절 등의 이슈로 물량이 폭발해 실을 자리가 없어서 등이 있다. 이런 경우, 상하면 안 되는 물건들, 주로 ‘생물’로 분류되는 택배나, 신선식품들을 최우선으로 먼저 실어 보낸다. 또한 서브터미널에서 물건을 내리는 하차 과정에서 조그마한 물건 같은 경우, 커다란 마대에 담긴 작은 물건들을 분류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기사가 마대를 다 푼 줄 알았는데 물건이 귀퉁이에 걸려있어 누락되는 경우가 있어 늦어질 때가 있고, 서브 터미널에서 물건을 무사히 실어 허브 터미널에 도착한 뒤에도 택배 속도가 느려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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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 분류작업은 보통 레일에서 진행된다. 그러다 간혹 레일 아래로 물건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그걸 늦게 발견하면 그만큼 배송이 늦어지고, 발견하지 못하면 “**허브 간선 하차” 상태에서 배송 진행이 멈추게 된다. 또한 서브터미널과 마찬가지로 명절 등 이슈가 있어 물량이 폭발할 경우, 간선차는 물건을 실은 채로 대기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겨울철에는 운송장 스티커 부분의 접착력이 떨어져 운송장이 택배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에는 운송장이 사라진 택배의 출처를 파악하느라 배송이 지연되기도 하고, 최악의 경우 분실되기도 한다. 이런 상태가 그 유명한 C사의 ‘옥뮤다 삼각지대’ ‘곤뮤다 삼각지대’에 걸린 것이다.

 

하지만 택배사들은 허브 터미널을 증축하고 자동화로 인력 부족이나 작업 속도를 개선하는 등 계속해서 노력 중이다. 이 덕에 예전보다는 분실이나 파손 사고가 현저히 감소했다.

 

여기까지 가까운 곳으로 보내는 택배도 허브를 거쳐 배송되는 이유와 택배가 배송되는 전반적인 과정, 택배가 늦어지는 이유를 알아보았다. 그러면 쿠팡이나 마켓컬리 등, 하루 배송이 보장된 업체들의 비밀은 무엇일까? 이 역시 정답은 ‘허브’에 있다.

 

일반 택배의 경우, 개개인이 보내는 택배들이 먼저 서브에 모였다가 다시 허브에서 분류되는 과정을 거치지만, 하루 배송을 보장하는 업체들의 경우 이 과정을 생략할 수 있다. 판매하는 물건들을 미리 허브에 입고해 놓고 고객이 주문하면 바로 내보내기 때문이다.

 

즉, 한꺼번에 모아 분류 후 내보내는 ‘허브’는 ‘새벽 배송’, ‘하루 배송 보장’ 업체에도 꼭 필요한 것이다.

 

이렇게 다시금 허브의 역사와 그 기능을 살펴보았다. 허브란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버뮤다 삼각지대가 아니라, 지금의 빠른 택배 시스템을 있게 한 고마운 존재다. 언젠가 중고 거래를 하던 그 할머니 같은 분을 만나게 된다면, 택배가 왜 곤지암에 있는지 잘 설명해 드릴 수 있으면 좋겠다.

 

<계속>

 

 

편집부 주

 

 

본지 화제의 연재물 <29살 택배 기사입니다>가

 

독자님덜의 용광로 같은 성원에 힘입어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자고로 좋은 글은 또 봐도 좋은 것.

 

이 시대의 히어로 택배 기사의 삶을

 

이번엔 종잇장으로 느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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