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 <링크>
80년대 초반까지 창경원은 서울의 대표적인 유원지였다. 창경원에 가면 온갖 신기한 동물을 볼 수 있었다. 특히 코끼리는 창경원을 대표하는 동물이었다. 창경원을 간다는 말은 동물원에 간다는 말과 동의어였다.
구경거리가 된다는 말을 '창경원 원숭이 꼴이다'라고 쓸 정도로 고유명사를 넘어서 보통명사화 된 유원지였다. 우리나라가 지금처럼 잘 살기 전이어서 별다른 엔터테인먼트가 없었기 때문에 주말이 되면 창경원은 사람으로 미어터졌다.
지금은 스마트폰 같은 온갖 IT 기기 덕에 거의 사라졌지만 당시 창경원에는 넘치는 인파로 인해 수많은 ‘미아’가 발생했고, 창경원에서는 oo동에서 온 o세 oo군/양을 찾습니다란 방송이 계속 들렸다.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출처 - <링크>
창경원은 다른 곳과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서울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장소였다. 그러던 창경원이 어느 날 갑자기 문을 닫았다. 그곳에 있던 동물들은 어디로 갔냐고 물으니 과천으로 갔다고 한다. 과천에 서울대공원이란 곳이 생겼다. 과천에 있는데 왜 서울대공원인지, 강남역에 있는 뉴욕제과 같은 것인지, 부산에 있는 LA 북창동 순두부 같은 것인지 잘 알 수는 없었지만 아무튼 그렇게 되었다.
이제 동물들을 보기 위해선 과천으로 가야만 했다. 과천으로 옮기면서 좋아진 것은 동물원도 있었지만 놀이동산도 있었다. 서울랜드란 곳이었다. 당시로썬 두 곳 다 파격적인 규모를 자랑하는 곳이었다. 아이들의 소풍 장소도 창경원에서 서울랜드와 서울대공원으로 바뀌었다. 그곳에 가서 코끼리 열차를 타봤느냐 아니냐가 앞서가는 힙한 어린이와 그렇지 못한 어린이를 가르는 기준이 되었다.

과천 서울대공원으로 이동하고 있는 창경궁 코끼리
출처 - <링크>
몇 년이 지나 창경원은 이름을 바꿔 다시 개장을 했다. 이름이 바뀌었다기보다는 명칭이 바뀌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거 같다. 창경궁. 새로 문을 연 창경원의 이름이었다. 창경궁은 덕수궁이나 경복궁처럼 옛날 왕궁이 되었다.

1984년 창경궁 정비 공사 안내판
출처 - <링크>
동물원이 갑자기 왕궁이 되다니 이게 무슨 일일까? 잘 알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먹어 사실과 그에 따르는 진실을 알게 되었다.
창경원은 원래 임금이 있는 왕궁이었다. 일제는 창경원을 강제로 동물원으로 바꿨다. 1909년의 일이다. 한일 강제 병합 1년 전이었다. 우울함과 걱정, 근심에 빠진 순종의 마음을 달랜다는 명분으로 창경궁에 동물을 들여온 후, 궁궐 안 전각 일부를 철거해 서양식 정원과 건물을 세우자고 순종에게 건의해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개명한다. 이후 창경궁은 왕족들만 출입하는 궁궐이 아닌 백성 누구나 방문 가능한 공원이 된다.

창경원 평면도
출처 - <서울역사박물관>
자기가 사는 집이 아무나 드나드는 동물원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다. 임금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순종의 마음을 달래려는데 왜 서양식 정원과 건물을 세우고 백성들에게 개방을 했을까? 그걸로 순종의 마음이 달래졌을까? 아니 애초에 순종의 마음을 달래려고 하긴 한 걸까?
창경원은 일제의 잔재를 없앤다는 이유로 1983년 폐쇄되기 전까지 동물원으로 활용되었다.
일제는 왜 임금이 사는 궁궐을 동물원으로 바꿨을까? 그것도 하필 한일 강제 병합 1년 전에. 많은 사람들이 지적한 바 있듯이 일제는 조선의 상징을 파괴하길 원했다. 조선의 상징은 임금이고 사직이고 종묘다.
곤도 시로스케는 이 왕궁 비사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한 바 있다.
“이토공은 궁중의 숙청을 단행함과 함께 한편으로는 (중략) 왕자의 은혜를 백성들이 우러러보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궁전의 영조와 창경궁에 박물관, 식물원, 동물원의 신설을 진언했다(중략)”
당시 임금인 순종은 일제의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운 입장이었기 때문에, 이토 히로부미의 건의는 사실상 명령이었다고 봐야 한다.
직전에 기술했듯이 종묘는 사직을 모시는 곳으로 조선 왕실의 가장 중요한 장소이며 창경궁은 종묘와 이어져 있었다. 일제는 창경궁과 종묘 사이에 도로를 내려고 했으나 다른 요구를 순순히 받아들인 순종도 이것만은 강하게 거부해 이 도로는 순종이 죽은 후 1932년에 뚫리게 되고 이후 복원되어 지금 창경궁과 종묘 간의 길은 복원되었고 도로는 율곡 터널이 되었다.

출처 - <링크>
조선총독부가 발간한 '경성도시계획 공원표'를 보면, 일제는 창경궁 외에도 대한 제국의 궁궐들을 각각 경복원, 창덕원, 덕수원으로 변경하여 대중에게 공개하려고 했다. 도심지에서 새로운 부지를 확보하는 것보다 이렇게 하는 편이 즉각적으로 공원을 조성시킬 수 있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사실 진짜 목적은 상징적 의미가 있는 궁궐을 유원지화시키고 대중에 공개함으로써 조선 왕조의 권위를 실추시키고 기존 질서를 부정시키는 효과가 있으며, 대외적으로도 해외에 일본이 대한제국 왕가를 융숭하게 대접하고 있다고 선전하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일제는 대한제국 식민지 정책을 펼침에 있어서 상징 자본을 파괴하는 데 공을 들였다. 지맥을 끊기 위해 박아 넣었다는 말뚝도 그런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창경궁을 첫 타깃으로 삼은 것도 우연이 아니다. 종묘와 이어져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조선은 예송논쟁에서 알 수 있듯이 임금이 상을 어떻게 치르느냐를 놓고도 나라 전체가 뒤흔들릴 정도로 싸운 나라다. 임금의 신주를 모신 종묘는 가장 신성한 곳일 수밖에 없다. 나라가 망한다는 표현 대신에 종묘사직이 무너진다는 말을 했다. 그 신성한 장소와 연결 지점인 궁궐을 동물원으로 바꾸고 궁궐과 종묘 사이에 길을 뚫으려고 노력해 결국 길을 만들었다는 게 일제가 얼마나 조선의 상징 자본을 파괴하는 데 공을 들였는가를 방증한다. 일제는 실제로 나라를 병합하기 전부터 상징 자본을 파괴하는 데 공을 들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된 후 가장 먼저 한 일이 무엇일까?

청와대 이전과 개방이다.
우리 팀 의열단은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바꾼 일과 청와대 이전은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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