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짓을 한 누구에게나 변명거리는 있기 마련이다. 나라를 팔아먹은 자들 또한 그렇다.
내가 돕지 않았어도 곧 망해 자빠질 나라였다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어차피 다른 나라에 넘어갈 운명이라면 그래도 일본이 낫다고, 썩어빠진 대한제국보다는 일제의 신민으로 사는 편이 백성들이 먹고사는 데에 더 도움 되는 길이라고 말이다. 저마다 무슨 변명을 하든 거기에 얼마만큼의 진실과 진심이 묻어 있든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결과’다.
결과적으로 이들에게 친일은 돈이 됐다. 그 쓸모와 적극성에 따라 일반 대중은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큰돈이 되기도 했다.
『친일파의 재산』은 일제 강점 전후 시기에 활약(?)한 친일파 30인의 행적과 친일의 대가로 받은 ‘돈’에 주목한다.
『친일파의 재산』: 친일은 돈이 됐다
1910년 10월에 촬영된 사진
뒷줄 맨 왼쪽이 이재면이다
국권을 일제에 빼앗긴 경술국치가 일어난 다음 해인 1911년 1월 13일, 일본은 ‘은사공채’라는 국채 증서를 발행하여 친일파들에게 지급한다. 해석하면 '일왕이 은혜로 하사한다'는 의미이지만, 결국 나라를 팔아먹고 받는 돈이다. 5년 거치 50년 상환 조건의 은사공채를 받은 자들은 6개월마다 연이율 5%의 이자를 수령한다. 일본이 대한제국의 국권을 강탈하는 데에 기여한 정도에 따라 액수는 차등 지급되었는데, 흥선대원군의 장남이자 고종의 형인 ‘황족’ 이재면은 그 위치의 상징성까지 인정받아 83만 원(현재 가치로는 166억~830억 원에 이른다)을 받았다. 참고로 을사오적, 정미칠적, 경술국적으로 매국 3관왕을 달성한 이완용은 은사공채로 15만 원을 받았다.
매국에 적극적으로 관여했거나, 이 과정에서 직간접적으로 일본을 도운 친일파들은 이렇게 일시불로 수고비를 받은 한 편 일제강점시기에는 일본의 식민 지배를 돕는 자리에 앉아 급여를 챙겼다. 이는 일제 강점 이후 두각을 나타낸 친일파들도 마찬가지였다. 독립운동가를 때려잡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경찰, 일제 식민 통치의 정당성을 알리는 스피커가 되기를 자처한 유력 인사, 식민지 통치와 수탈의 마름이 되었던 군수나 도지사까지. 각자의 자리에서 받은 급여는 곧 친일의 대가였다. 은사공채의 이자와 이러한 급여는 모두 조선총독부에서 나왔으므로 국토와 민족 수탈의 산물이다.
이렇게 얻어낸 자본과 관직을 바탕으로 더 큰 수익을 창출해 낸 친일파들도 있다. 일신의 영달을 위해서라면 민족을 배신하고 나라를 팔아먹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 자가 그 대가로 받은 관직에 앉아 청렴하게 직무를 수행할 리 없다.
따라서 친일은 그 자체로 자본 축적의 기회이자 재테크의 수단이 된다. 이유와 명분이 어찌 됐든 결국 친일은 돈이 됐다. 그리고 그 재산은 후손에게 이어졌다.
친일파의 쓸모 : 빼앗기는 것과 내주는 것
어차피 망해 자빠질 나라였으니 친일파가 아니었어도 대한제국은 망하고 말았을까. 제국주의가 횡행했던 당시 세계질서와 동북아 정세를 고려하면 틀린 말은 아닐지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어떻게’ 망했는지의 모습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1894년의 군대 출병으로 우위를 확보하기는 했지만, 일반 민중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대한제국을 멸망시켰다. 그래서 친일파들의 협력이 더욱 절실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협력을 받으려면 그들이 경제적으로 곤란해지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했던 것이다.”
-『친일파의 재산』 52p
아무리 국력 차이가 커도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무력으로 정복하고 적국의 국민을 완전히 복속시켜 지배하기 위해서는 꽤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
물론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에게 당시 대한제국의 모든 국민이 목숨을 내던져 일제의 공격에 결사 항전으로 맞서야 했다고 말할 자격은 없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친일파의 도움으로 일본이 대한제국을 너무나 손쉽게 집어삼켰다는 데에 있다.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빼앗을 때도, 정미늑약으로 사법과 행정권을 빼앗을 때도, 일본은 물밑에서 친일파를 움직이고 무력으로 황실에 겁을 주는 정도로 일을 해치웠다. 경술국치로 끝내 대한제국이 일제에 완전히 넘어갈 때도 일본은 표면상으로는 평화롭게 한반도를 식민지로 만들 수 있었다. 지배 계층에 있던 소수의 친일파가 나라를 ‘내주는’ 바람에 지금까지도 일본의 우익은 당시 맺었던 조약의 불법성을 부정하고 있다. 나라를 빼앗기고도 빼앗겼다고 인정받기 위해 싸워야 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위에서 인용한 책의 본문대로, 친일파의 쓸모는 일제의 식민 통치가 시작된 이후에도 여전히 유효했다. 권력을 가진 소수가 다수를 단순히 지배하는 것을 넘어 가혹하게 수탈하는 구조를 유지해야 하는 식민지에서 현지인 부역자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 때문에 일제는 친일파들에게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렀다. 비록 상하관계가 확실하긴 했지만, 일제와 친일파는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주고받는 ‘거래’를 했다고 볼 수 있다. 친일파들의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은 너무나 옹색하다. 우리는 일제 강점 당시 강압에 못 이겨 창씨 개명을 한 민초들에게 친일의 멍에를 씌우지는 않는다.
뉴라이트라는 신친일파
![[오늘 이 뉴스] _1945년 광복 인정합니까__..이것마저 _노코멘트_ 경악 (2024.08.26_MBC뉴스) 2-27 screenshot.png](https://img-cdn.ddanzi.com/files/attach/images/977701/557/824/818/93ff50b8f6a3b5e932c7b07cfe8afacc.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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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뉴라이트 역사관을 가진 인사들이 정부와 공공 기관 곳곳에 ‘꽂히고’ 있다. 일제 강점과 대한민국 건국에 대한 이들의 인식은 상당 부분 일본 우익과 결을 같이 하는데, 1945년 8월 15일 대한민국이 광복되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코멘트’할 수 없다는 자가 독립기념관장 자리에 앉았고, 일제강점기 위안부에 대해 논쟁적 사안이라 말할 수 없다는 자가 방송통신위원장 자리에 앉아 있으며, 일제 강점기 당시 우리 조상들의 국적은 일본이라고 당당히 밝히며 그것이 상식이라는 자가 장관 후보자가 되었다.
이들이 주장하는 바의 근거를 따지고 올라가면 대한제국이 나라를 빼앗기며 맺은 조약의 강제성과 불법성을 부정하는 데에 이른다. 1910년 한일병합조약을 인정해버리면 일제 강점 당시 우리 국민들의 국적은 일본이 되고 일본의 해외 강제 징용은 일본 자국 내 이동이 되며 독도 마저 한 때는 일본의 영토였던 것이 된다. 독립운동은 반역이며 독립운동 세력은 반국가 세력이 되고 만다. 친일파가 뿌려 놓은 씨앗이 현대에 와서 일본을 넘어 한국 내에서도 싹을 틔워 자생하고 있다는 증거가 뉴라이트다.
‘새로운 보수’를 주창하며 등장한 뉴라이트의 역사관은 그래서 일제 강점 당시 친일파와 일제의 입장을 그대로 이어받았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현재 이들의 정신적 형제는 일본 우익, 그중에서도 극우다. 그런 사람들에게 ‘뉴라이트’라는 지극히 멀쩡한 이름을 붙이는 건 모순이자 기만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점잖게 표현하려 해도 ‘신친일파’ 정도가 어울리는 이름이다. 현재 한국의 신친일파는 여러 측면에서 원조 친일파와 공통점이 있다.
친일파와 신친일파(뉴라이트)의 공통점

출처 - (링크)
가장 먼저 일본에 매우 필요한 존재라는 점이다. 앞서 이야기했듯 일제는 친일파의 도움으로 별다른 수고로움 없이 대한제국을 강제로 병합시킬 수 있었고, 표면적으로나마 정치적 명분을 챙겼다. 그 명분을 한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내세워 책임을 회피하는 중이다.
신친일파 또한 마찬가지다. 일본의 역사 왜곡과 일제 강점 시기 저지른 온갖 범죄의 책임을 회피하는 데에 있어 피해국인 한국 내 신친일파의 주장은 일본의 주장보다 더 값어치가 있다. 더군다나 이런 사람들이 정권을 잡고 국가 기관에 똬리를 틀고 앉아 목소리를 내준다니 이 정도면 한국 정부의 공식 입장이라 멋대로 해석해도 될 정도다.
일본에 있어 신친일파의 쓸모는 과거사를 넘어 현재 일본 우익이 가고자 하는 방향에도 큰 도움이 된다. 한 세기 전 친일파들이 국제 정세를 들먹이며 대한제국이 일본의 보호 아래 있는 것이 국가와 민족을 위한 길이라고 주장했던 것처럼 오늘날 신친일파는 북중러와 한미일의 대치 구도를 핑계로 한미 동맹에 슬쩍 일본을 끼워 넣고 있다. 국익을 위해 불가피하고 미국의 요구를 외면할 수 없다는 논리다.
일본 우익의 궁극적 목표는 전쟁할 수 있는 보통 국가로 일본을 돌려놓는 것인데 대통령실의 국가안보실 1차장인 김태효는 2006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유사시 일본 자위대가 한반도에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 사실상 일본 우익과 같은 목소리를 냈다. 그는 2009년 나카소네 야스히로상을 받았다. 나카소네 전 일본 총리는 일본의 대표적인 우파 인사다.
신친일파는 원조 친일파와 똑같은 짐을 나라에 지우고 있다. 일본에 훨씬 큰 이익이 될 일에 제멋대로 선뜻 나서 훗날 감당하기 어려운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아무리 미국이 한미일 군사동맹을 요구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외교의 기본은 협상을 통한 ‘기브 앤 테이크’일진데 신친일파 정부는 뭐 하나 얻어가는 것도 없이 두서너 발 먼저 다가가 일본의 필요를 다 들어줄 모양새다.
나라 팔아먹은 친일파들처럼 신친일파 또한 국민 전체를 놓고 보면 소수다. 문제는 과거의 그들처럼 현재의 이들 손에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중대사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쥐어져 있다는 점이다. 옛 친일파나 신친일파나 면면을 보면 이른바 ‘엘리트’라 불러도 좋을 만큼 능력 있고 똑똑해서 고위 관료가 된 자들도 있다. 국가적 차원에서 쓸모 있는 인재라 할 수도 있을 사람이 마음을 달리 먹으면 일본에 쓸모 있는 인재가 된다.
잘못된 선례를 남긴 대가
반민특위 재판 현장
『친일파의 재산』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상당수는 친일의 대가로 얻은 부와 작위를 후손에 그대로 물려줄 수 있었다. 스스로 향락과 도박에 빠져 탕진하지 않는 이상 친일로 마련한 판돈이 밑천이 되어 대대손손 떵떵거릴 수 있었다. 친일 재산 환수를 위한 노력이 있었지만 너무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여서 실효적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해방 후 반민특위를 통해 친일 부역자들을 제대로 처벌하지 못한 부분이 뼈아프다. 해방정국의 혼란 속에서 친일파와 그 추종자들은 친일파를 처단하려는 움직임에 색깔 공세로 저항하는 한편 빠르게 친미주의자로 변신해 책임을 면했다.
“해방 직후부터 친일파들은 극렬하게 저항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들은 친일 청산을 위한 반민족행위처벌법(반민법)을 ‘빨갱이 법’으로 몰아붙였다.”
-『친일파의 재산』11p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와 강제 징용 피해자에 대한 제3자 변제안 등 지극히 일본의 국익에 입각한 정부 결정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야당과 일부 언론, 시민 단체에 ‘반국가세력’ 딱지를 붙이는 뉴라이트, 신친일파 정부의 존재는 친일파와 그들의 재산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잘못된 선례를 남긴 결과물이다.
『친일파의 재산』이 보여주는 것
신친일파 학자들이 주장하는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논리적 반박을 굳이 이 글에 장황하게 늘어놓지는 않겠다. 효율적인 수탈을 위한 기반 마련이 결과적으로 근대화에 도움이 되었다는 해괴한 주장에 동의할 수도 없고, 일제 강점이 낳은 한국 전쟁으로 인해 그 알량한 사회간접자본이 다 파괴되어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했던 상황을 떠올려보면 그들에게 식민지 근대화론이란 연구와 논리의 산물이라기보다는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친일파들에게 나라 팔아먹고 민족을 배신하는 행위는 국가와 민족을 위함이라는 명분의 결과가 아니라 부와 권력을 손에 넣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던 것처럼 신친일파 또한 그렇다고 보아야 합리적이다. 일본의 국익을 위해, 일제 강점을 정당화하기 위해 피해를 부정하고 피해자를 욕보이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위는 결국 돈과 자리에 그 목적이 있는 게 아닐까.
『친일파의 재산』은 친일은 돈이 됐다는 걸 콕 짚어 보여주었다. 여전히, 친일은 누군가에게 돈이 되고 있을지 모른다. ‘신친일파의 재산’에 앞으로 주목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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