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조약 체결 기념사진
지난 글에서 친일토착왜구(또는 친일토왝)들이 주장하는 식민지 근대화론의 '합법성'은 허구임을 밝혔다. 1876년 강화도 조약을 필두로 조선(대한제국)이 1910년 한일병합조약 전까지 일제와 맺은 모든 조약은 그때나 지금이나 불법적 요소가 가득하거나 아예 불법이었다. 1876년 강화도 조약은 불평등 불법 조약이었고, 1905년 을사늑약은 고종이 주장하는 것처럼 외교권을 강탈한 주권 침탈 불법 조약이었다. 이 조약들은 일제 불법 범죄 행위의 절정, 1910년 한일합병조약에 이르기 위한 빌드업이었다.1
1910년까지 일제와 체결한 어떤 조약도 조약의 내용과 형식, 조약의 체결 방식과 공포에 이르기까지 합법적인 구석이라고는 한 군데도 찾아볼 수 없다. 그 무도한 불법 과정과 그 이후 36년 한반도와 동아시아에서 저지른 일제의 국제적 살인강도 행각을 지금 친일토착왜구들은 합법이라고 떠들고 있다(강제 침탈 과정에서 수많은 조선인이 죽었다. 조선의 법궁, 경복궁에 불법 난입한 일본 낭인들은 왕비 민비를 살해하고 불에 태웠다. 현대 기준으로도 일제가 조선인에게 한 짓은 연쇄살인범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반인륜적 살인강도 범죄다).
일제의 강제 병탄과 식민 지배가 불법임은 공교롭게도 친일토착왜구들이 신줏단지로 모시는 '근대성'으로 들여다보면 더 명확해진다. 식민지 근대화론의 '근대성'은 현대 여러 학문 분야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근대성(모더니즘)'과 같은 것이다. 낙성대연구소 뉴라이트 친일토착왜구들은 근대성을 근거로 식민 지배의 '합법성'을 연쇄적으로 강변하고 있고, 일제 강제 침탈을 인류공영을 위한 보편적 가치의 실천처럼 윤색한다.
아무리 두껍게 가부키 분장으로 역사를 분식해도 그 음험한 실체는 가려지지 않는다. 친일토왝들이 백옥처럼 순결한 선의를 가졌다고 떠받드는 일제가 일삼았던 행각은 전근대적이고 천인공노할 범죄 행위들, 살인, 강간, 절도, 학살, 강탈 같은 기록만 남아 있기 때문이다.2
공붓벌레 모범생이 일진이 되다
![[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진실 (12) ] 과연 성노예였던가 25-39 screenshot.png](https://img-cdn.ddanzi.com/files/attach/images/977701/593/846/818/89fd894a7093ebb83cda5a102e3faf18.png)
반일종족주의 저자 이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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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토왜세력의 당주이자 식민지 근대화론의 온상 낙성대연구소의 서울대 안병직 교수와 이영훈으로 대표되는 그의 문하생들은 1990년 소련 체제가 무너지기 전까지 좌파 경제학자들이었다. 이들의 역사관은 당연히 유물론적 역사관, 선형적 발전 사관이었고 역사의 최종단계는 공산주의라고 굳게 믿던 이들이었다.
미국과 힘겨루기에서 절대 지지 않을 것 같던 소련이 무너지고, 한때 남한보다 잘 살았던 북한은 세계 최빈국이라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심지어 김일성-김정일로 이어지는 세습 체제는 누가 봐도 전근대적 전제군주제와 하등 다를 바 없었다. 사상과 신념과는 달리 이들은 자기들이 탄 버스가 낭떠러지를 향해 마치 뒤로 가고 있는 듯 보였다.
낭떠러지로 후진하는 버스에 남아 있을 수는 없었다. 이들은 잽싸게 버스를 갈아탔다. 버스를 갈아타는 건 힘들지 않았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상당한 내적 갈등이나 실존적 고민을 했을 수도 있지만, 변태 과정이 오래 걸리지 않은 걸 봐서는 크게 힘들었던 것 같지 않다. 더구나 작은 숫자라도 서로 방패가 되고 위로가 되어줄 무리도 있었고 이들의 주장이 마치 합리적 이론인 듯 사회적으로 확성하는 조중동 같은 반민주 매국 찌라시도 있었다.
낙성대연구소의 대표인물 격인 안병직과 이영훈은 전범 기업인 토요타의 재정지원을 받으며 일본에서 연구도 하고 서울에 낙성대연구소를 설립해 일제 식민지 지배를 옹호하고 나섰다는 정도만 알려졌다. 그렇게 '식민지 근대화론'을 한반도에 살포하는 일본 우익의 출장소가 만들어졌고 서울대 출신 공붓벌레 모범생들은 희한하게도 대한민국 국민의 정신세계에 폭력을 일삼는 일진이 되었다.
용어만 현대 표현으로 바꾸었을 뿐 식민지 근대화론은 식민사관의 기본 골격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하위 범주의 이론이다. 식민사관은 19세기 메이지 유신의 주도 세력 사무라이들이 꿈꾸었던 '탈아입구(脫亞入歐)'라는 망상, 구닥다리 선형적 역사 발전론,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우생학과 문화인류학이 만든 일본인의 할루시네이션이 버무려져 있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식민사관의 시공간 범위를 근대 시기로 좁히고 핵심 가치로 '근대성'만을 흔들고 있을 뿐이다.
일진을 따라 했더니 우등생이 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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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은 생명, 특히 동물이 생존하기 위한 필수 방편이자 본능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그 어떤 동물보다 학습에 특화된 종이다. 인간 진화의 특수성은 높은 지능으로 학습 능력을 극대화하고 극대화된 학습 능력은 다시 지능을 높이는 긍정적 되먹임 과정이 지대한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현대 과학은 추정한다. 인간은 여기에 더해 개인 차원 생물의 본능적 학습을 더 복잡한 지적 추론 과정이 필요한 사회적 학습으로 확장하며 생존 확률을 급격히 높였다. 그 덕에 지구상에서 다른 동물들을 압도하며 최상위 포식자가 되었다.
개인 학습이건 사회 학습이건 학습은 모방에서 시작한다. 학습을 위한 모방의 대상은 말할 것도 없이 학습하고자 하는 분야에서 나보다 더 잘하거나 잘난 놈이다. 이 점이 인간의 학습이 다른 유인원, 침팬지나 보노보의 학습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다.
인간이 모방해서 학습하려는 것은 모방 대상의 실력이지 생김이나 겉모습이 아니다. 모방하려는 대상이 그저 거창하고 화려한 옷만 입고 호들갑을 떨어 타인의 시선만 끌고 정작 실력은 형편없는 놈이라면 그런 놈을 따라 했다간 십중팔구 인생이 고달파진다.
공부를 잘하고 싶다면 공부도 잘하고 설명도 상냥하게 잘 해주는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 우등생이 되고 싶다면 다른 친구 답안지를 빼앗아 보기 바쁜 포악한 일진이 아니라 우등생을 쫓아다녀야 한다. 일진 곁을 어슬렁거리다간 빵, 바나나 셔틀이나 당한다.
같은 이치로 일제가 대한민국 근대화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면 일제는 일단 정치적으로 근대적 국민국가(national state)였어야 한다.3 국민 일반이 자기 결정권, 주권을 갖는 민주정 국가였어야 한다.
오야붕-꼬붕 입헌군주제, 메이지 헌법
1889년(메이지 22년) 헌법반포약도
어느 한 국가가 성문 헌법을 갖고 있다면 헌법만 확인하면 그 국가가 전근대적 전제 군주제 국가인지 아니면 근대적 국민국가인지 알 수 있다. 물론 국가 통치가 헌법의 규정대로 국민들 실생활에서 잘 실현되고 있는지 꼼꼼하게 확인하면 더 좋겠지만,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헌법만 봐도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
대한제국을 불법 병탄한 일제의 헌법은 1890년 반포되어 1945년 패망까지 실효했던 일본의 첫 근대적 헌법이라 말하는 메이지 헌법이었다. 안중근 장군에게 척살당했던 이토 히로부미의 내각에서 만들었다. 메이지 헌법을 해설한 '헌법의해(憲法義解)'도 함께 출판했다. 근대적 헌법 기관, 주권자의 권리, 국민의 의무와 권리를 나열하고 있어 겉보기에는 제법 그럴듯한 근대적 헌법처럼 보이지만 만들어지고 공포된 과정과 밑에 깔린 사고방식을 보면 도저히 근대적 헌법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냥 전근대적이다.
일본 122대 메이지 천황
메이지 헌법은 일단 흠정헌법이다. 왕이 만들어 백성에게 선물하는 것을 '흠정'이라고 한다. 함무라비 법전처럼 천황이 만들어서 신민에게 하사했다. 헌법 규정에 따라 천황이 만든 법률은 제국의회의 협찬을 받아 공포하면서 입헌군주제인 척하지만, 제국의회의 협찬은 근대성을 포장하기 위한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이 문제는 뒤에서 실제 조문을 보며 더 자세히 설명할 것이다. 여하튼 실제 제헌의회는 바지 사장만큼이나 빙다리 핫바지였다.
근대적 국민국가에서 법을 만드는 주체는 당연히 주권자인 국민이다. 따라서 입법은 헌법이 정한 '입법기관'인 국회 또는 의회 같은 데서 만들어야 하고 근대 헌법은 대개 이를 보장한다. 그런데 헌법에서 법을 만드는 권한을 왕이 독점하고 그 헌법조차 왕이 만들어 국민에게 주는 것으로 되어 있다면, 그 국가의 주권은 국민이 아닌 왕이 가졌다는 소리다. 설사 왕이 있어도 근대적 국민국가라면 대영제국 빅토리아 여왕처럼 왕이 빙다리 핫바지가 되어야 한다. 격조 있게 표현하면 왕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아야 한다.
이런 근대적 국민국가의 철학적 기초는 토마스 홉스로부터 시작되었다. 일본이 메이지 유신을 하기 300여 년 전인 1558년 영국에서 태어난 홉스는 전제군주제를 좋아했으나 왕권신수설을 구리다고 거부했다. 대신 그는 군주도 사회 구성원 간의 사회계약을 통해 결정된다는 당시로서는 매우 힙한 생각을 했다. 사회계약론이다. 말할 것도 없이 영국의 왕과 왕당파들은 홉스를 싫어했다. 하지만 현대 학자들은 홉스의 사회계약론이 근대적 정치철학의 시작이라 본다.
만약 일제가 근대적 국민국가였고 메이지 헌법이 근대 헌법이었다면 천황과 함께 신민이라 칭했던 국민과 함께 주권을 잘 나눠 갖도록 설계되어야 했다. 법을 만든 절차가 비록 흠정이라도 그 내용은 어떤 상황에서도 천황 본인은 구경만 하고 국민 스스로가 통치하는 구조였어야 한다(이 구조는 1947년 미군정청 지배 시절 만들어진 평화헌법 때나 만들어졌다. 그것도 미국이 고안한 것이었다).
메이지 헌법에 따르면 주권은 오직 천황에게만 있었고 신민은 여전히 천황에 종속된 '백성'이다. 메이지 헌법으로 땡잡은 건 사무라이와 천황밖에 없었다. 메이지 헌법은 막부 기간 유명무실했던 천황, 일어나면 기도 외에는 딱히 할 일도, 권력도 없었던 천황에게 일본 열도를 넘어 홋카이도, 오키나와, 한반도까지 다스리는 강력한 주권을 보장했다. 막부 밑에서 칼싸움하던 (평화로운 에도막부 시절에는 거의 실업자 신세였던)사무라이에겐 천황의 명을 받들어 실력을 행사하는 권력자가 되는 길을 닦아주었다.
이렇게 말로만 하면 친일토왝들은 뇌피셜이라 공격할 터. 다음 편에서는 실제로 그러한지 메이지 헌법을 좀 뜯어보자.
<계속>
주
1) 한일합병조약을 보는 한일간 학자들의 입장 차이는 분명하게 갈린다. 한국 학자들은 대개 일제가 보호국에서 병합하여 식민지로 가는 합병을 애초에 계획했다고 보는 반면 일본 학자들은 병합은 계획에 없었던 것이었는데 환경의 변화에 따라 선택한 것이라 본다. 사실 사전에 계획을 했건 우발적 사태 전환이건 중요한 것은 당시에도 한일병합조약은 다른 서구 열강들이 불법 조약으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서구 열강의 입장은 다분히 자국 이익에 한일병합조약을 불법 조약으로 간주하는 것이 자국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이지 호혜평등, 자결권이라는 고상한 인류애를 실천하기 위함이 아니었음은 두말할 필요 없겠다. 한일병합조약은 다른 서구 열강과 대한제국이 맺었던 모든 조약을 일방적으로 무효화하는 것이었는데 무엇보다 신흥 강국인 미국과의 관계가 가장 껄끄럽게 되었다.
2) 1937년 중일 전쟁 중 일제의 대학살극이 중국의 수도, 남경에서 벌어졌다. 역사가 ‘난징 대학살’이라 명명한 반인륜적 제노사이드다. 난징 대학살에서 보인 일제의 잔인함은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나 소련의 대숙청 때의 잔인함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덜하지 않다. 난징에 진입하던 일제 장교 두 명가 중국인 100인의 목을 누가 더 빨리 베는지 벌였던 시합은 일제 만행의 불법성과 잔인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당시 일본 언론을 보면 두 명이 너무 집중해서 목을 베다 보니 둘 다 100명을 훌쩍 넘겨 목을 벴고 결국 연장전까지 했다며 이들의 반인륜적 범죄행위를 운동 경기에서 승리한 자국 선수를 소개하듯 자랑스럽게 기술하며 미화하고 있다.

3) 최근 친일토왝들이 건국을 거론하면 근대적 국가의 3대 요소로 영토, 주권, 사람을 거론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이 주장에는 함정이 있다. 계몽주의 이후 서구의 사상가나 정치철학자들이 ‘국가(state)’라는 실체를 규정하기 위해 내건 이 세가지 조건은 일정한 정치체계와 통치제도를 가진 정주 집단을 유목 부족 집단과 구분하고자 제시한 것이다. 따라서 이 세가지를 갖추었다고 근대적 국가라는 말은 아니다. 근대성을 획득한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실질적으로 주권을 누가 가졌고 실행하는 지가 중요하고 당연히 민주정을 채택해야 근대성을 획득한 것으로 간주한다. 민주정이라는 정치적 근대성을 획득한 국가를 ‘국민국가(national state)’ 또는 ‘민족국가’라 부른다. 19세기 구체화된 ‘국민(민족)’이라는 개념에는 동일 언어를 사용하는 역사 문화적 동질성과 함께 생물학적 ‘인종(ethnicity)’ 개념이 혼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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