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구려의 9대 왕인 고국천왕의 부인인 우씨 왕후요. 평강공주는 많이 들어봤지만 내 이름이 낯설다고?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일이요.

출처-<티빙 드라마 ‘우씨왕후’>
그런데 티빙에서 내 이야기를 8부작으로 제작하여 지난 8월 29일에 첫 공개를 했다더군. 배우 전종서가 내 역할을 맡았다고 해서 기대가 크다고 하던데, 시리즈 시청 전 이 기사를 보고 나면 당시 시대 상황도 이해가 쉬울 듯하니 시리즈 정주행 전 예습 차원에서 일독을 권하는 바이요.
태왕의 부인이 되다
난 55년이란 시간 동안 궁궐 내 최고위층으로 있었다오. 삼국사기에는 내 이야기가 광개토대왕보다 할당된 페이지 수가 더 많은데, 왜 이렇게 내 이름이 생소하냐고? 아마도 내 인생에서 몇 번의 선택이 학생들의 교육상 좋지 않다고 판단하여, 교과서에 실리지 않았기 때문일 거야.
자, 그럼 이제부터 내 인생 스토리를 들어보고 판단은 각자 알아서 하길 바라. 다만,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 내 인생의 수많은 선택에서 작은 실수도 있었지만, 난 내 인생을 후회 없이 살았다고.

내가 고국천왕의 왕비로 화려한 궁정 라이프를 시작한 것은 서기 180년이었어. 내가 지성과 미모를 겸비해서 왕비가 된 거냐고? 순진한 소리! 전혀 아니라고 말할 순 없겠지만, 이 당시 왕비가 될 수 있는 첫 번째 조건은 당연히 ‘가문의 힘’이야.
고구려에는 5개의 정치 세력이 있는데 그중에서 으뜸이 연나부야. 제1정당인 연나부의 총재가 우리 아버지였어. 연나부는 왕조차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정치 파워를 가지고 있었지. 맞아 나의 첫 번째 결혼은 정략결혼이었어.
그러나 난 정략결혼의 부속품으로 살지 않기로 결심했어. 왕후가 된 이상 화려한 궁중 생활은 기본이고 권력도 놓치고 싶지 않아. 나를 조선의 소극적이고 힘없는 액세서리 같은 왕후와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지 말아줘.
그런데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더군. 결혼 생활 10년 차인데 왕자는 고사하고, 공주조차 슬하에 없어. 성질 같아서는 내가 문제인지 왕이 문제인지 알 수 없다고 대신들에게 일갈하고 싶지만, 그 정도 사회 분위기는 아니야. 후궁을 들이라는 각계각층의 상소가 끓이질 않아.

묵사발 난 친정
여기에다 우리 친척인 좌가려와 어비류가 나를 믿고 너무 해 먹어서 여론은 우리 집안에 완전히 등을 돌린 상태야.
위기는 곧바로 찾아왔어. 조금의 틈만 보이면 치고 들어오는 게 정치판의 생리잖아.
“무엇이라? 왕이 우리 가문의 횡포를 더 이상 못 참고 공격을 하기로 했다고? 내 언제가 이런 사단이 날 줄 알았다. 일단은 어느 쪽이 이길지 모르니 상황을 지켜보자 꾸나. 그다음 남편의 편에 설지, 가문의 편에 설지 결정해도 늦지 않아……”

뭘 그리 놀라고 그래! 이런 것이 비정한 정치의 세계란 거야? 차분히 두 세력의 싸움을 관망하던 중 긴급 보고가 전해졌어.
“왕후마마 방금 고구려 정규군이 연나부군을 완전히 진압하였다고 하옵니다. 왕께서는 내일 농부 출신 을파소를 국상으로 하는 파격적인 새 내각을 발표하신다고 하옵니다.”
“오호라. 더 이상 외척에 시달리지 않고, 자기만의 왕국을 만드시겠다? 하하하하하하. 그래 내 남편이 될 자격이 충분하시구나. 나에게까지 불똥이 튀긴 튈 것인데 이 위기를 어찌 넘기느냐가 관건이겠구나.”
“마마. 여유를 부리실 때가 아니옵니다. 목숨은 건질 수 있겠으나 폐위당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내 남편인 왕은 나를 차마 폐위까지 시키진 못했어. 대신 나는 이후 7년의 시간 동안 알아서 바짝 엎드려 쥐 죽은 듯이 지냈어. 친정이 대형 사고를 쳤으니 당연한 일이지.
태왕의 죽음
나는 왕이 달라고 하는 모든 것을 내주었지만, 오직 하나 후궁을 들이는 일만은 사력을 다해서 막아냈어. 권력의 최정점에서 비켜난 7년의 세월은 끔찍했지만, 언젠가 기회가 다시 올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버텨냈어. 그 결과 반전이 일어난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어.

“마마….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왕께서는 한 달을 넘기기 힘드실 거라는 의원의 전언이옵니다”
“알았다. 우선 왕의 상태가 절대 외부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입단속을 철저히 시키고, 넌 내가 시킨 일들에 한 치의 빈틈도 없어야 함을 유념 또 유념 하도록 하여라.”
남편인 왕이 사경을 헤매고 있는데, 무슨 일을 꾸미냐고? 우리 한 번 툭 까놓고 이야기를 해 보자고.
왕과 나 사이에는 왕자는 고사하고 공주도 아직까지 없어. 그런데 남편 고국천왕 밑으로는 둘째 동생 발기, 셋째 연우, 넷째 계수가 있어. 왕이 후사 없이 승하하시게 되면, 이 장성한 동생들이 가만히 있을 거 같아?
그래. 솔직히 내 안위가 최우선 순위였어. 하지만 또한 나라를 위한 가장 현명한 선택을 난 왕후로서 해야만 해. 사리사욕으로 가득 찬 여자라고 욕만 하지 말고 한 번쯤 내 입장도 생각을 해봐.
“마마!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서기 197년, 고국천왕 19년, 5월 21일 밤 11시 23분. 고국천왕께서 승하하셨습니다.”

살기 위한 발악
“입단속은 철저히 했겠지? 지금 당장 가마를 준비시켜라. 왕의 둘째 동생 발기네 집으로 간다.”
맞아. 난 왕이 죽은 날 밤. 사사롭게는 남편이 죽자마자 남편의 바로 밑의 시동생 발기네 집으로 향했어. 아직 왕의 죽음은 나의 최측근들만 알고 있어. 사실 난 시동생인 발기가 나의 안전을 보장해 줄 거 같지 않아.
왕의 죽음은 언젠가는 알려질 테고, 발기 자신이 정통성을 가진 유일한 계승자인데, 굳이 나의 신변을 보장해 줄 이유가 없자나? 그럼에도 내가 발기네 집으로 향하는 것은 어떻게든 내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함이야. 그래, 발악 맞아.
이제 가마에서 내려야 할 시간이야.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몹시 떨리는군.
역시나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았어. 발기는 나의 은밀한 제안을 거절했을 뿐만 아니라 야밤에 시동생을 찾아왔다며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해 줄 꺼야. 내가 왕의 죽음을 알리지 않았지만, 이 자도 어느 정도 눈치를 챘을 거야. 더 빨리 움직여야겠어.
둘째 시동생 연우의 집으로 향하고 있는 현재 시각은 새벽 1시야. 내가 실질적으로 정한 타깃이고, 목적을 이룰 가능성이 아주 크다고 봐. 그러나 연우마저 나의 제안을 거절한다면 절망적이야. 막내인 계수는 나중에 알겠지만, 의협심이 너무나 강하고 융통성이 없어. 둘째 연우가 거절한다면 플랜B도 준비되어 있어. 이 정도면 나도 정치 9단 소리를 들을 만하지 않아?
발기는 결혼하여 아들까지 있지만, 연우는 싱글남이라 그런지 집 안 인테리어도 로맨틱했어. 게다가 요리하는 매너남이라는 소문답게, 야심한 밤에 방문한 형수를 살갑게 맞아줬어.

“아이고 형수님 이런 시각에 저희 집을 찾으신 건 분명히 곡절이 있으실 테지만, 일단 이야기는 천천히 하시지요. 제가 직접 고기를 잘라 주안상을 좀 올리겠습니다. 얼굴에 화가 가득하신데 제 요리를 드시고 마음의 여유를 좀 찾으세요. 그런 연후에 이야기는 천천히 하시지요.”
됐어! 이 느닷없는 방문에도 싫어하는 내색 없이, 시종들 시키지 않고 직접 요리를 하겠다는 건 내 의중을 받아들이겠다는 신호지. 역시 내 선택이 옳았어. 그때 주방에서 연우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어.
“아악! 이런!”
“무슨 일입니까? 어디 몸이라도 상하신 겝니까?”
“마마. 제가 칼질을 하다 그만 손가락을 크게 베었습니다. 잠시 치료 후 바로 돌아오겠습니다”
연우의 이런 퍼포먼스는 귀엽기까지 하더라고. 이제 더 이상 시동생이 아니니 나도 답례의 퍼포먼스를 해줘야겠지?
“어디 보세요? 저런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큰일 나겠어요. 우선 급한 데로 제 옷고름으로 지혈을 하세요”
내가 옷고름을 풀어 피가 나는 손가락을 지혈 해주니, 더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해졌어.
연우와 난 바로 궁궐로 들어가서 비상 각료 회의를 소집했어.

“국상 이하 각료들은 잘 들으세요! 지금은 국가 비상사태입니다. 고국천왕께서 어젯밤 승하하셨어요, 후사가 없는 고구려에 대한 걱정으로 제대로 눈도 감지 못하셨습니다. 워낙 갑작스런 승하로 인하여 유언장도 없지만, 둘째 동생 연우 왕자가 왕으로서 가장 적합하다는 하교를 내리셨어요. 한 말씀 하시지요.”
“경들도 경황이 없을 것이라 사료되오. 나 또한 발기 형님이 있는데, 선왕께서 나를 후계자로 지목하셨다니 당황스럽기 그지없소. 하지만 선왕의 간곡한 뜻이니 내 어찌 거절한단 말이오. 그리고 우리 북방 민족의 고유한 전통인 형사취수혼에 따라 형수를 나의 왕후로 받아들이겠소.”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고, 공격 중에 으뜸은 기습공격이자나. 난 왕의 동생을 왕으로 만들고 왕후 자리를 보장받게 되었어. 새 왕과 한 물밑 교섭으로 국상 자리에는 우리 집안인 연나부의 떠오르는 별 명립어수를 지명하였고, 난 모든 걸 잃었던 연나부의 새로운 수장으로 등극했어. 어때? 이 정도면 위기가 찬스란 말이 실감 나지 않아?
형인 발기가 이대로 가만히 있진 않을 테고, 세력을 규합하여 언제 궐기 할지 모르지만, 오늘만은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고 싶어. 나머지 이야기는 다음에 다시 하자고 오늘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어. 너무나 긴박한 하룻밤이었잖아. 그래도 조금은 로맨틱하기도 하지 않았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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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팩토리공장장이 이제와서(?!?!) 유튜브를 시작했다.
기나긴 역사 중 흥미로운 주제를 집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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