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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쯤, 독특한 제보자로부터 제보가 들어왔어요. 독특하다 한 것은 제보자의 신분 때문입니다. 그는 현직 파출소장이었어요. 파출소에 가서 저장해 둔 CCTV 동영상을 보니 엽기적인 장면이 펼쳐집니다. 어느 날 깊은 밤, 머리와 어깨가 피투성이가 된 남자가 파출소로 뛰어듭니다. 그는 한 아이를 데리고 있었어요.


아이는 이런 일 많이 봤다는 듯 얌전히 앉아 있었고 오히려 경찰들이 허둥댔지요. 조사 결과 그렇게 만든 이는 남자의 아내라고 했습니다. 젊은 나이에 알콜릭에 심각한 간 질환까지 앓고 있던 남자는 아내에게 툭하면 두들겨 맞았고 그날은 깨진 병에 찔렸다고 했어요. 맨발로 도망 나와서 파출소로 뛰어들긴 했지만 남자는 피해자 진술을 거부했고 다시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갔다더군요


“우리야 피해자 진술이 없이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상황이고 하니 좀 도와주시오. 애가 불쌍해서 그럽니다.” 파출소장님의 부탁이었지요.


취재해 보니 이 부부는 일대에서 유명했어요. 아니 그 아내가 유명했다고 표현하는 게 옳겠군요. 보는 사람마다 시비를 걸고, 동네 사람마다 안 싸운 사람이 없고, 남편과의 부부싸움이 벌어지면 온 동네 사람들이 그 전말을 속속들이 알 만큼 수선스러우며, 남편을 쥐잡듯이 잡아 온몸에 시커멓게 멍을 들여놓는 사람이 어찌 유명하지 않겠어요. 남편에게 소리소리 지르는 모습을 잡으려고 어슬렁어슬렁 접근했더니 단박에 이런 말이 날아오더군요. “아저씨 누구예요? 못 보던 사람인데. 뭐하러 왔어요? 아저씨 이상한 사람이죠?” 그리고는 저를 파출소에 신고하는 게 아닙니까.


지은 죄가 있어선지 정신적 문제인지 여자는 주변을 극도로 경계했고, 친하게 지내는 이웃도 하나도 없었어요. 아이는 절대로 집 밖에 나와 노는 일이 없고 가끔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는 정도만 보였지요. 여섯 살 나이인데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그나마 입 밖에 내는 말의 반이 욕이었으니 아이가 정상적으로 크고 있다고는 볼 수 없었습니다. 집 안에서 어떻게 생활하는지, 아이의 상태는 어떤지 좀 자세히 알아보고 싶은데 방법이 없었어요. 그래서 동사무소를 찾았습니다. 아이의 아빠랑은 합의가 된 상태였지요.


무슨 직무 유기를 추궁하러 온 것이 아니라 힘을 합쳐서 집안의 내막을 캐내고 아이를 구해 보자는 의도였는데 담당 사회복지사가 전 MBC 사장보다 더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합니다. 우리가 파출소에서 제공한 영상도 보여 주고, 남편의 동의를 얻어 촬영을 진행 중임을 밝히는데 얘기를 듣다 말고 수화기를 턱 들고는 그 집으로 전화를 하더군요. 그리고는 살기등등한 마누라가 옆에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남편에게 물어요. “아무개씨죠. 여기 방송국에서 나왔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방송한다고 허락하신 적 있어요?”


기절초풍한 남편은 당연히 그런 사실 없다고 딱 잡아뗍니다. 눈치 삐끗하면 이젠 병이 아니라 칼이 날아올지 모르는데 어느 안전이라고 허튼수작을 하겠어요. 그러자 이 사회복지사 전화를 바로 끊어버리고는 우리를 빤히 쳐다봅니다. “동의한 적 없다는데요.”


그 한 마디로 그녀는 모든 책임을 남편에게 미루고 귀찮은 우리를 물리칠 수 있는 구실을 얻은 거지요. 선배......내가 얼마나 화가 났냐 하면 말입니다. 이 공무원 이름은 까먹었지만, 그 동네 이름은 지금도 이를 갈며 기억하고 있을 정돕니다.


더 큰 문제는 좀 앞뒤 분간 못하는 편이었던 남편마저 우리 손을 뿌리치는 계기가 됐다는 거예요. 안 그래도 이거 하자 저렇게 해 보자 요구에 마뜩지 않아하던 그는 “다 필요 없어요.”를 부르짖으며 우리에게 철수를 요구했습니다. 아직 그 등줄기와 허벅지에 시커먼 멍이 가시지도 않은 처지인데 말이죠. 그리고 피칠갑을 한 아버지 옆에서 천연덕스럽게 장난을 치고 있었던 아이가 어떤 상황인지 자신도 알면서 말이죠.


몇 번 더 설득 해 봤지만 남자는 완고했고 저는 입맛을 다시며 포기할 수밖에 없었어요. 한 여자 후배가 어떻게든 집에 들어가 보려고 애 엄마를 설득하다가 계단에서 밀려 넘어질 뻔한 뒤로는 접근을 할 방도도 못찾았고요. 그렇게 수면 아래 묻히게 된 아이템은 석 달 뒤 다시 부활합니다. 애 아버지의 친구가 다시 제보를 해 온 거예요. 이러다가 자기 친구가 정말로 맞아 죽을 것 같다면서요.


마침 아이템 없어 절절매던 후배가 나는 듯이 달려갔고 저는 나름 고생하며 찍었던 테잎들을 고스란히 녀석에게 넘기고 너그러운 체 잘해 보라고 어깨를 두드려야 했습니다. 후배 녀석은 못난 선배와 달리 남편을 잘 설득해서 마침내 아이를 그 지옥 같은 집으로부터 빼내는 데에 성공합니다. 친정의 동의를 얻어 애 엄마를 끌고 정신감정을 받아 봤더니 정신질환이 아닌 ‘인격장애’로 나오더군요. 쉽게 말하면 미쳐서 그런 게 아니라 인성이 망나니라서 그랬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 엄마에게 제대로 된 양육을 기대할 수는 없다고 보았고 아버지의 동의 아래 지방의 큰아버지 집에 맡기기로 했습니다. 큰아버지도 승낙했구요.


그렇게 매듭지어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방송을 준비하면서 옛 사례들의 현재를 추적한 자료를 보다가 저는 또 한 번 기절초풍하고 말았습니다. 알콜릭에 간경화까지 있던 남편이 세상을 뜬 것도 놀라운데 거기다 그 아들이 다시 엄마에게로 돌아간 것으로 되어 있지 뭡니까. 깨진 병으로 남편을 찍어서 피칠갑으로 만들고 죽지 않을 만큼 두들겨 팼던 그 무서운 여자에게 아이가 돌아간 겁니다.


방송 후 2년 동안 엄마가 개과천선했을까요. 아이는 엄정한 심사와 기관의 예의주시 속에 ‘원가정복귀’된 걸까요. 유감이지만 그렇게 생각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거두절미 상황 무시하고 엄처시하의 남편에게 “동의했어요? 안 했어요?”를 물어 그 답을 근거로 활용했던 사회복지사처럼, “친권자가 아이를 달라 하니 법적으로 막을 방도가 없다.”는 편리한 전제를 가동했을 가능성을 절대로 무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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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는 그 부모가 성인이건 망나니건 부모가 책임지는 게 맞고, 늙으면 그 가족들이 책임지는 것이 국격에 맞다고 여겨지는 나라에서는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동보호기관이라고 해 봐야 독립적인 예산은커녕 지자체에서 배정해 주는 돈으로 근근이 운용되는 시스템하에서라면 “친권자가 데리고 간다는데 어떡하냐.”는 말은 불가항력에 가깝지요. 복지 얘기만 하면 수급자들의 도덕적 해이만 질타하는 분들이 정책을 이끄는 사회라면 이런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고 길러낼 수 있는 사회적 양육 시스템이란 은하철도 999를 타고 몇 년을 가야 만날 ‘영원한 생명’보다도 더 머나먼 목표가 될 것이겠구요.


그 자료를 본 뒤 그 아이 엄마가 자주 꿈에 나타났었습니다. 허옇게 치뜬 눈으로 나에게 삿대질하고 우리 여자 후배를 우산으로 찍으려 들었고 자기 남편을 피투성이 멍투성이로 만들기 일쑤였던 그 기이한 여자 사람의 행적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을 돌아듭니다. 이제는 말도 잘할 수 있을 것이고 학교에도 들어갔을 아이가 제발 덕분에 잘 자라나기를 바랍니다. “관계기관의 지속적인 관찰과 상담”을 통해 엄마의 이상 행동에 노출되지 않기를 바라고, 그 엄마와 같은 시한폭탄으로 커 나가지 않기를 바라구요. 내가 할 수 있는 게 그 기도밖에 없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지만요.




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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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딴지일보 너클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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