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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링크)

 

택배기사 일을 하면서 겪은 경험담을 <29살 택배기사입니다>라는 제목으로 브런치에 연재하던 당시, 협업 제안 메시지를 받은 적이 있다.

 

“0000 출판사입니다.”

 

메시지 제목을 보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출간하고 싶은데, 미팅할 수 있을까요?”

 

출간을 제안한 출판사가 큰 출판사인지 작은 출판사인지는 모르겠다. 책을 살 때는 책 자체만을 보고 사지, 출판사 이름을 보고 사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게 출간 제안을 했던 출판사는 내 서재에 꽂힌 몇 권의 책들을 낸 회사였다.

 

안 그래도 ‘책으로 꼭 나왔으면 좋겠다’는 구독자들의 요청이 있었던 터라, 출간 제안을 받으니 욕심이 생겼다. 브런치와 딴지일보에 연재하면서 이 글을 읽고 응원해 주셨던 독자들께 ‘찾아 주셨던 콘텐츠가 결국 책으로 나왔습니다’라는 해피엔딩을 전하고 싶었다. 고민 끝에, 나는 출간 제안을 승낙했다. 그런데 출판사의 반응이 조금 이상했다. 곧바로 전화를 걸어 압박 면접하는 듯한 목소리로, 글을 읽어보지 않은 티가 나는 질문들을 던지기 시작했다.

 

“택배 일은 정확히 언제부터 언제까지 하신 거예요?”

 

“현직 택배 기사이시죠?”

 

내가 연재했던 글에 분명히 택배 일을 언제부터 언제까지 했고, 1년 동안 택배기사로 일한 뒤 일을 그만두는 내용까지 있었는데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지금은 하고 싶은 공부가 있어 학비를 벌기 위해 다시 택배와 비슷한 집화 기사 일을 하고 있지만 출판 제안을 받을 당시 나는 일을 쉬고 있었다. 나는 그 질문들에 있는 그대로 답했다. 언제부터 언제까지 일을 했으며, 일을 쉬면서 택배기사 에세이를 썼다고.

 

“아, 그래요? 현직이 아니시구나...”

 

돌아온 출판사의 대답은 역시나 찜찜했다.

 

아, 이 회사는 혹시 현직 택배기사가 쓴 에세이만을 원하는 건가?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았다. 택배기사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강도 높은 육체노동을 하고, 일요일 하루를 쉰다. 그런 상황에서는 헤밍웨이에게 글을 쓰라고 시켜도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과거의 나처럼 내 구역을 편하게 만들었거나, 엘리베이터로 이동가능한 아파트 구역을 맡은 기사라면 가능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이런 찜찜한 의문은 ‘혹시 출판사에서 글을 잘 읽지도 않고 현업이 쓴 직업 에세이의 소재만을 찾다 연락을 한 건가?’라는 의심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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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연합>

 

시간은 흘러, 어느새 출판사와 약속한 미팅 날이 다가왔다. 출판사로 찾아오라고 하기에 나는 시간을 내어 양복을 차려입고 출판사를 방문했다. 내가 사는 곳에서 이동하는 데만 2시간이 걸렸다. 도착해보니 분위기가 조금 이상했다. 누구도 내가 오늘 미팅하러 온 사실을 모르는 듯, 직원들이 나를 힐끔힐끔 쳐다봤다. 조금 있으니 내게 출간 제안 메일을 보냈던 편집 담당자가 다가와 나를 회의실로 데려갔다. 약속된 미팅에 참석하는 것인데, 마치 아무도 반기지 않는 방문 판매 영업사원이 된 기분이었다.

 

“왜 양복을 입고 오셨어요?”

 

마치 취조하는 듯, 옷차림을 지적하는 것으로 시작한 미팅은 진행될수록 힘들었다. “그런데 왜 고졸이세요?”라든지, “정치 성향이 있으신 건지?”와 같이 난감한 질문들이 이어졌다. 그 외에도 더 무례한 질문들도 있었으나, 해당 편집자를 특정하는 것이 될까 봐 이 이상은 줄이려고 한다.

 

내가 지금 어디서 정확히 뭘 하며 먹고 사는지,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전화상이나 서면으로 대답을 미루었던 사적인 질문들이 이어졌고 정작 출판과 관련된 이야기는 없었다. 그래도 마지막에 이런 질문을 하기에 ‘출간을 하기는 하는가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출간 후 마케팅할 때 저희가 하라는 대로 다 따라 주셔야 하는데 그 부분 괜찮으시죠?”

 

미팅은 30분 만에 끝났다. 꽤 오랜 시간을 들여 찾아간 것에 비해 미팅은 허무하게 끝났다. 나는 다시 두 시간이 걸려 집으로 돌아왔다.

 

정말로 당혹스러운 건 미팅 이후였다. 마치 출간 제안을 한 적도 없었다는 듯, 출판사로부터의 연락이 뚝 끊긴 것이다. 혹시 먼저 출간 제안을 하고, 미팅까지 해놓고 말도 없이 출간을 취소하는 경우도 있나? 머릿속에 최악의 가정이 떠올랐지만, 설마 했다. 결국 2주가 지난 뒤, 내가 먼저 전화를 걸었다. 만약 출간을 하게 된다면 더 추가하고 싶은 내용도 있었기에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라도 출간 일정을 알고 싶었다.

 

“작업은 언제부터 시작하나요?”

 

내 질문에, 편집 담당자의 대답은 내 최악의 가정과 맞아떨어졌다.

 

“아~ 저희 내부에서 회의한 결과, 출간은 어려울 것 같네요.”

 

사과 한마디 없이 그게 끝이었다. 당황스러웠다. 백번 양보해 먼저 출간 제안을 하고 두 시간 거리를 오라 가라 해놓고서도 출간을 취소할 수는 있다고 본다. 하지만 그럴 거라면, 제안받은 사람을 2주나 기다리게 하고, 먼저 전화하게 하는 게 맞는 것일까? 솔직히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별말 없이 알겠다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나는 오히려 오기가 생겼다.

 

그래, 해리 포터도 12개의 출판사로부터 거절당했다는데, 내가 뭐라고 한 번의 거절에 풀이 죽겠나? 책 출판? 꼭 해내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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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출간 제안을 주는 곳이 이런 곳뿐이라면, 나와 잘 맞는 출판사를 찾아 먼저 제안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가만히 앉아 누군가의 선택을 기다리기만 하는 것은 내 적성과 맞지 않았다. 생수기사에서 택배기사로 이직할 때도 길 가는 택배기사들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걸고 일자리를 청하지 않았던가? 인터넷상으로 출간 제안을 하는 것은 그것보다 훨씬 쉬운 일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출판사들에 출간 제안서를 보내기 시작했다. 본사 사이트로 투고 받는 곳에는 사이트를 통해, 메일로 투고 받는 곳은 메일로 출간 제안을 했다. 그렇게 수십 군데의 출판사에 제안을 넣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이렇게 해서까지 출간이 안 되면 안 하면 되는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며칠 후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열 곳이 넘는 출판사에서 ‘원고가 너무 재미있다’, ‘출간을 꼭 하고 싶다’는 답이 온 것이다. 출간 제안을 하는 과정에서 나는 출판사의 규모와 인지도 같은 것에 대해서 조금 알게 되었는데, 긍정적인 답이 온 회사 중에서는 처음 제안을 받았던 그 출판사보다 훨씬 큰 곳들도 있었다.

 

거절 메일도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상식적인 수준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거절 메일은 대형 출판사 한 곳에서 온 메일이었는데, 매크로로 같은 내용을 붙여넣기 한 것이 아니라, 원고가 이런저런 부분이 정말 좋다, 출간하고 싶었는데 내부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너무 아쉽다는 내용이었다. 출간을 결정하기 전에 내부 검토를 끝내고 그 확실한 결과를 전해주었다는 점에서 처음 브런치로 제안한 그 회사와는 달랐다. 거절당하고도 오히려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책 출간을 긍정적으로 검토해 준 고마운 출판사들에 나는 바로 답장을 써 보냈다. 사실 여러 출판사에 메일을 보냈고, 긍정적인 답을 주신 곳이 많아 고민을 좀 더 해봐야 할 것 같다고. 기분이 나쁘진 않을까 걱정하며 회신 메일을 보냈는데, 출판사들은 오히려 당연한 거라고, 기다릴 테니 결정되면 알려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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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출판사와 작업을 할지 결정하는 과정에서, 나는 출판사의 규모보다 책에 대한 애정을 중점으로 고려했다. 지금까지 책을 몇 권 냈고, 한 달에 책을 몇 권 내는지도 살펴보았다. 또 창작자의 권리에 대한 최소한의 보장으로 생각하고 10%의 인세를 온전히 지급하는 곳만을 후보로 올렸다. 그 결과, 나는 ‘행성비’ 출판사와 작업을 하게 되었다. 7편의 에피소드를 더해 책을 출간했다. 제목은 <청년 택배기사 자본주의에서 살아남기>이다.

 

책을 만들면서 고생하신 프로 중의 프로 이윤희 편집장님과 응원을 아끼지 않으신 임태주 사장님, 다재다능한 배세나 마케터님, 이 글을 발굴해 많은 독자님과 만나게 해준 딴지일보 편집팀, 가장 먼저 서평을 써주고 책의 가치를 높여 주신 한양대학교 유영만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터넷에 연재할 때부터 택배기사 에세이를 봐주시고 응원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과거의 나처럼 세상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 희망을 잃은 청년들과 그 어두운 시간을 극복하고 일상을 영위하고 있는 훌륭한 어른들에게 이 책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다시 한번 독자들께 고개 숙여 깊은 감사를 드린다(꾸벅).

 

 

 

편집부 주

 

 

본지 화제의 연재물 <29살 택배 기사입니다>가

 

독자님덜의 용광로 같은 성원에 힘입어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자고로 좋은 글은 또 봐도 좋은 것.

 

이 시대의 히어로 택배 기사의 삶을

 

이번엔 종잇장으로 느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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