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도 국가예산은 677조 4000억이다(국회에서 밀당이 있겠지만, 거의 이 정도 수준일 거다). 올해보다 3.2% 늘어난 금액인데, 여기서 주목해 봐야 할 예산이 2개 있다. 하나는 정부 R&D 예산이고, 나머지 하나는 국방예산이다.
기억나지 않는가? 윤석열 정부가 편성한 2024년 예산안을 보면, 대부분의 예산은 다 늘었지만 콕 찍어 R&D 예산안만 대폭 삭감했던 것. 수치상으로 따지면 16.6% 삭감했는데, 이건 법으로 삭감할 수 없는 예산까지 포함한 수치라 실질적으로 보면 R&D 예산의 1/3을 날려버린 거였다.
당시 윤석열 대통령은,
“국가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걸 다 지원할 수는 없다. (중략) 나눠먹기 식, 갈라 먹기 식 연구개발은 제로베이스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라면서 2023년 31조 1천억이었던 R&D 예산을 5조 2천억 삭감한 25조 9천억으로 정리해 버렸다.
기술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이게 뭐 하자는 짓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지금에서야 이게 왜 이렇게 됐는지를 알게 됐다. 윤석열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을 생각하면, 모든 게 이해가 간다. 우선 뭐 하나를 ‘악마’로 만들고 이걸 박살 내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어떤 분야든 악마를 만들고, 자신은 이 적폐에 맞서 싸우는 정의로운 대통령으로 등장한다. 패턴이 다 똑같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윤석열 대통령의 특징 “빠르게 진행시켜”를 외치니까 이 사달이 났던 거다.
출처 -<링크>
연구개발에도 부정이 끼어 있다고 생각했던 윤석열은 앞뒤 재지 않고, 빠르게 진행시켜 버렸던 거다.
2025년도 예산안을 보면, R&D 예산은 3조 2천억, 그러니까 11.8%를 날린 29조 7천억으로 편성됐다. 2025년도 예산안 중, 증가폭으로는 가장 큰 예산이다. 정부에서는,
“에... 연구개발 예산은 2023년도 수준으로 회복했다.”
라고 말했는데, 이건 말 그대로 2023년으로 돌아간 거다. 그렇다는 건 2024년도에 뻘짓을 했다고 스스로가 인정했다는 게 된다.
R&D 예산이 널뛰고 있을 때 안정적으로 예산이 증가한 항목이 있다. 그것도 2년 연속으로 말이다.
그리고 국방예산
국방예산을 보며 참 많은 생각을 했다. 고백하건대, 예산안을 보자마자 김용현 장관이 생각났다.
“정권 실세가 있다 보니, 국방예산은 계속 올라가는구나.”
출처 -<링크>
R&D 예산과 달리 국방예산은 2년 연속으로 정부 예산 총지출 증가율 보다 높았다. 올해만 해도 정부 예산 총 지출이 3.2% 올랐는데, 국방예산은 3.6% 증가 한 61조 5,878억 원이 올랐다.
예산을 살펴보면 그 정권의 색깔과 나라가 가는 방향을 확인할 수 있다. 국방예산에서 눈에 띄는 항목은 방위력 개선비와 전력운영비다.
(국방예산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새로운 무기를 사들이는 방위력 개선비, 이 무기들을 계속 운영하는 데 들어가는 전력운영비. 전력운영비는 인건비라 할 수 있는 병력 운영비와 장비 유지를 위한 전력 유지비로 나눌 수 있는데, 다 합쳐서 그냥 전력운영비로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다.)
2024년 예산을 보면, 방위력 개선비의 경우 전년 대비 2.4% 올라간 18조 712억 원이고, 전력운영비가 4.2% 증가한 43조 5166억 원이다.
여기서 정권의 ‘색깔’에 따라 그 비율이 조정된다.
작정하고 주변국과 대결구도를 펼쳐보겠다 하면 방위력 개선비가 올라가고, 군인들의 복지를 늘리겠다면 전력운영비 그중 병력 운영비가 올라가는 것과 같다.
작년 국방예산에서 주목해 봐야 하는 건 KF-21 최초 양산 분 예산 2387억 원이 배정된 것과 F-35 추가 도입 예산 2300억이 삭감된 게 눈에 띈다. 그 나머지 일선 장병들에 대한 예산이 소소하게(?!) 520억 증액된 게 특징이라면 특징인데, 올해 예산을 보면 뭐랄까... 당면한 과제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KF-21
출처 - <연합>
F-35
출처 - <대한민국 공군>
당장 방위력 개선비에서 주목해 봐야 하는 게, 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한국형 3축 체계 예산이 엄청나게 들어갔다. 북한이 풍선 날리고, 서로 날 선 반응을 보이는 걸 보면... 윤석열 정부도 이에 대응하는 모양새다.
당장 F-35를 비롯해 킬체인 전력을 들여오는 데 3조 2076억 원이 들어가고, 미사일 방어 전력(L-SAM 포함)에만 1조 5326억 원, 그리고 대량 응징보복 전력 확충에 6,249억, 감시 정찰 예산에 7,963억 원이 배정됐다.
(3축 체계 : 북한의 핵미사일에 대응하기 위한 한국군의 방어태세를 뜻함. 킬체인, 한국형 미사일 방어, 대량 응징보복으로 구성돼 있다. 킬체인이란 북한의 핵미사일 발사 징후가 보이면 선제타격을 하는 것이다. 만약 미사일이 발사되면 이를 미사일 방어로 막아내고 이후 대량 응징보복을 한다는 거다. 개인적으로 한국의 국토 상황을 보면, 조금 비관적이긴 하다.)
자, 그리고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봉급 200만 원 인상이 2025년도 시행된다.
지난 대선 기간 동안에 나온 윤석열 대통령의 10자 공약,
<병사 봉급 월 200만 원>
이라는 한 마디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 윤석열 정부도 당장 200만 원을 인상하긴 어렵다는 걸 깨닫고, 단계적으로 병사 월급을 올렸는데, 2025년이 그 마지막이었다. 2024년까지 병장 월급이 125만 원이었는데, 2025년이 되면 150만 원으로 인상된다. 여기에 내일 준비 지원금 55만 원을 합하면 205만 원이 된다. 병장 월급이 오르니 상병, 일병, 이등병 월급도 덩달아 인상이 된다. 각각 120만 원, 90만 원, 75만 원이 인상된다.
문제는 부사관 봉급이다. 병장 바로 위 계급인 하사의 경우 봉급은 193만 원 선이다. 여기다 직급보조비, 각종 수당 등을 더하면 273만 원 선이라고 말하는데, 이건 그저 말장난에 불과하다. 이건 ‘서류’ 상에 있는 수당들을 다 땡겨와야지만 가능한 숫자이다. 이미 일선 부대에서는 초급간부들의 탈출러시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신규 유입은 더 말이 안 된다. 떠나는 사람은 늘고 있고, 유입되는 인원은 거의 없다. 이러다 보니 국방예산에서도 이를 막기 위한 예산이 책정돼 있다.
지금 초급간부들의 상황을 잘 알려주는 것이 고려대 사이버국방학과다. 의외로 잘 알려지지 않은, 학교 내에서도 비밀스러운 곳이다. 고대 의대를 제외하고는 한때 입결이 최고였던 곳이기도 했다. 전공과목도 이름이 비밀로 돼 있었다. 육군과 고려대 학군협약으로, 사이버 전문 인력을 양성해 졸업 후 학사장교로 임관하게 돼 있었다. 보통 장교로 7년 복무하게 돼 있다. 하지만 점점 입결도 낮아지고, 졸업해도 장학금을 반납하고 민간기업에 취업하거나 의무복무를 끝낸 뒤에 장기 복무를 신청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미 군대의 메리트가 사라진 거다.
출처 - <국방부>
당장 초급간부들을 위한 주거여건 개선 예산이 6048억으로 편성돼 있다. 문제는 이렇게 하더라도 언 발에 오줌 누기 그 이상은 되기 어렵다. 해병대가 주둔한 연평도만 하더라도 샤워필터, 식수 필터 등을 갈아 끼우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군인들이 자비로 해결하고 있다. 해병대는 격오지 근무 주기가 엄청 짧다(병력 수가 적다 보니). 연평도 같은 데 부임하면, 그냥 미친 척하고 시간과 공간의 방에 갇혀 있어야 한다. 시설 자체도 열약하지만, 기본적인 사생활 보호는 불가하다. 섬 지역답게 물과 관련된 제약은 엄청나다. 이제까지 군대는 이걸 외면하고 못 본 척해왔다. 병 생활 개선을 위해서는 다 덤벼들었지만, 간부들의 처우에 대해서는 외면해 왔던 게 사실이다. 그 결과는... 초급간부들의 탈출러시이다.
단적으로 간부들의 상황을 말하자면, 2025년 기준으로 최저임금은 시간당 1만 30원으로 편성돼 있다. 월급으로 따지자면 209만 6,270원이다. 시간당 1만 원이 넘어간 상황이다. 문제는 간부들의 당직 비용이다. 간부들은 일과시간 이후 부대를 통제하고 유지관리하기 위해 당직을 선다. 이 비용이 아예 없다가, 주변의 눈치가 보여 책정을 했는데 2012년 기준 평일 4천 원, 주말 1만 원이었다. 그러다가 2023년에 평일 1만 원, 주말 2만 원이다. 그러다 2024년이 돼서야 평일 2만 원 주말 4만 원이 됐다. (더구나 다음날 아침 비용은 간부들이 지출해야 한다. 이건 뭐...)
편의점 근무비용 보다 훨씬 싼 비용이다. 이러다 보니 간부들의 불만은 폭발 직전까지 올라갔다.
출처 - <링크>
윤석열 정부는 간부들의 복지를 챙겨주겠다고 말했지만, 정말 말뿐인 상황이었다. 부대별 작전 예산을 증액하거나 간부 주거시설 예산을 증액하는 건 나왔지만, 실질적인 간부들의 임금 인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결국 2025년 국방예산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건 병장 월급 200만 원이다. 문제는 이 금액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거다. 툭 까놓고 말해서 병 봉급 예산은 2024년 4조 2846억 원에서 5조 1013억 원으로 8천억 남짓 오른 게 다다. 2025년 국방예산이 60조가 넘어갔다는 걸 생각하면, 그렇게 크게 차지하는 비용은 아니다.
문제는 이 때문에 인센티브가 완전히 박살 났다는 거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인센티브란,
“경제적 행동 주체의 행동을 억압, 혹은 격려하는 수단”
이다. 이를 달리 말하자면, 인간 행동의 근원에는 자신들의 ‘이익’이 있고, 이 이익을 사회적 통념이나 ‘도덕’으로 대체하는 건 위험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사병들의 처우 개선과 임금을 개선해야 한다는 ‘정의’를 내세웠지만, 이 때문에 그 나머지 계급들의 ‘인센티브’가 완전히 박살이 났다는 거다. 2025년 기준으로 시급은 1만 원이 넘어가고, 편의점에서 알바만 뛰어도 209만 원이 되는 상황이 됐다. 그런데, 책임과 의무는 많고, 권리는 없는 간부 생활을 할 이유가 있을까?
병장 봉급 200만 원의 대의를 거부할 사람은 없을 거다. 문제는 병장 월급이 200만이 되는 순간 나머지 계급들에 대한 인센티브도 고려했어야 한다는 거다. 당장 2025년 예산에는 병영생활 전문상담관 예산이 확충됐고, 군 의료예산도 증액했다. 장병 진료 접근성을 위한 예산도 확충됐다. 다 올바른 방향이고,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병 생활이 개선되는 만큼 초급간부들의 삶도 개선해야 하는데, 그게 생각만큼 되지 않는다는 거다. 당장 군 간부 복무여건 개선을 위한 예산을 내놓았지만, 실질적인 예산 반영이 눈에 들어오는 건 없다.
2025년 국방예산을 보면, 북한을 상대로 한 3축 체제 예산과 병장 월급 인상에 대한 게 눈에 띄지만, 그 나머지를 본다면 뭐랄까... 2024년도 예산에서 덜 지출했던 부분. 예를 들면 예비군 지원, 군 의료 지원, 군 간부 주거 지원 등등에 대한 예산이 올랐다는 걸 볼 수 있다. 방위력 개선비는 전년 대비 2.4% 올랐는데, 전력운영비는 4.2%가 오른 게 그 증거이다.
마치 R&D 예산의 그것처럼 돌려 막기를 한다는 느낌이다. 방위력 개선비나 전력운영비 비율은 차치하고, 당장 병장 월급 200만 원에 대한 후속 조치, 그러니까 인센티브가 박살 난 걸 윤석열 정부가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해서는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F-35를 20대 들여오든, KF-21을 양산하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당장 싸워야 할 핵심 전력인 초급 간부들이 무더기로 이탈하는 상황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국방력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이미 일선 부대에서는 인원이 부족해 옆 부대에서 인원을 차출해 훈련을 뛰거나, 장비는 남는데 사람이 부족해한 팀을 꾸려 장비들을 실사격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상황에서 인센티브가 박살 난 걸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 군은 장비만 많은 허수아비 군대가 될 수 있다.
하... 진짜 윤석열은 대한민국의 마지막 숨통을 끊으려고 등장한 인물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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